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서부로, 서부로---

원평재 2006. 8. 13. 16:05

 

미 서부,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친구의 집에는 물고기 모양의 꽤 큰 풍경이

매달려서 미풍에도 아름다운 소리를 울려주었다.

이름난 건축 회사와 언론 매체까지 경영하다가 정치사의 희생물이 되었던

우리들의 동기가 수년전 이 댁을 방문하였을 때에 매달아준 이 기념물은

많은 은유와 명상의 목소리를 풍경 소리로 만들어 뿜어내고 있었다.)

 

 

 

 

 

미서부,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고교 동기가 이번에는 꼭 들러가라는

초대를 했다.

날짜도 7-8월이면 언제나 좋고 기간도 얼마든지 좋으나 반드시 주말을

넣어서 일정을 짜라는 것이었다.

"뉴욕에서 LA 공항까지 여섯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언제 도착하면

민폐가 덜하겠어?"

내가 조심스레 물었더니 "젯트 불루" 밤 비행기로 롱비치 공항에 내리라는

것이었다.

이 친구가 40년 붙박이로 살고 있는 곳이 오렌지 카운티의 애너하임인데

롱비치 공항에서 가깝고 도착 시간도 저녁 9시 대이니 여러모로 편하고

좋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찾아보니 결정적으로 좋은게 또하나 있었다.

비행기 표 값이 가장 싼, 편도 세금 포함 200불이었다.

단 100% 연발 가능성이 있다는 친절한 안내 말씀도 있었다.

과연 내가 비행기를 탄 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시간이 늦었다.

기내에서의 저녁 식사로는 쿠키 종류와 또 감자 칩에 푸른 물감을 들여서

"칩 블루"라는 걸 마음데로 먹으라고 하였다.

"블루 칩"이라도 되는 양, 빈 속에 막 먹은 일이 벌써 추억이 되어 상기된다.

롱비치 공항에는 친구 부부가 나와서 우리를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고등학교 동기이지만 그가 몇년전에 귀국했을 때 만나보고

그 이후에는 메일과 전화만 주고 받았을 뿐인데 우리를 크게 환영해

주었다.

 

나만 받은 환대가 아니라 동기들이 찾기만 하면 그렇게 해 온 사람이다.

사는 곳이 원래 사막 속의 오렌지 밭이었으니 이 부부가 바로 오아시스의

육화, Incarnation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으니 축복을 듬뿍 받아서 아들 둘을 모두 미국에서

낳았고 모두 UCLA를 거쳐서 큰 아들은 메디컬 스쿨을 나온다음 지금

보스톤에서 신장 관련의 특별한 과정을 수련하고 있다고 하며 며느리는

치과의사로 활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둘째는 약학 대학원을 나와서 지금 내 친구가 하는 두군데 약국의

한쪽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곧 결혼할 상대도 역시 약학 대학원 동기

사이라고 한다.

 

 

 

                     (오렌지 카운티 한인 교회 친교의 마당)

 

 

두 아들 모두 집들을 장만해 놓았고 내 친구의 집도 잔디가 깔린 후정을

포함하여 여간 수준이 아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이 집안의 축복에는 두가지 힘이 작용한 것

같았다.

하나는 장노와 권사로 봉사해온 이 집안에 종교적 축복의 힘이 컸으리라

짐작해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친구가 조상들에 대하여 갖는 보통 아닌

숭모의 정념이 거꾸로 이 자손들에게 힘을 보태어 준 것이 아닌가

생각케 한다.

 

 

 

내 친구의 가계는 기독교 전래와 깊은 관련을 맺어서 이 땅의 선교와

순교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고 개화기의 새로운 학문과 신문물의

이입에도 큰 역할을 맡아서 한 영광과 고난의 기록을 갖고 있다.

이어서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사, 특히 삼일 만세 운동에도 헌신하여

마침내 옥사를 맞는 조상을 모시게 된다.

 

 

 

내가 가장 감동한 것은 이러한 선조들의 족적을 내 친구가 혼신의 

노력과 희생적 과정을 거쳐서 자료를 발굴, 확보하여서 미국 교포

사회의 중견 작가에게 대하 소설의 자료로 구술 혹은 기술하여서

마침내 그 일부가 이번 가을 쯤 상재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내 친구는 약업으로 이룩한 가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국내외를 오가며

선조들의 자료를 문헌으로 혹은 녹취와 채집을 통하여서 방대하게

모으고 이를 능력있는 작가에게 맡기는 과정 중에서 시간적, 금전적

투자도 적지 않았으리라고 생각이 된다.

 

애국애족하는 일이 특별히 다른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의식으로 살아온 그의 생애이기에 그는 항상 동포들을

위하는 단체에는 몸과 마음과 금전으로 헌신하며 살아왔기에 지난 날의

그의 직함은 다양하고 광범하였다.

 

 

 

 

첫날 저녁, 지각한 비행기를 타고온 우리에게 부인께서는 늦은 밤참을

대접해 주었고 다음날 아침부터 오렌지 카운티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생활 관광이 시작 되엇으며 저녁에는 레돈도 비치에 잇는 저 유명한

서울 횟집에서 한국에서 보다 더 싱싱한 횟감의 디너 파티로 첫 날의

행사는 성료 되었다.

아니 돌아 온 내 친구집의 후정에서 자정까지 두런거린 우리의 학창

시절의 추억담과 동기들 이야기는 여기 다 실을 수도 없이 무궁무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