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아쉬운 세상 나들이

크루즈 시승기

원평재 2004. 8. 2. 05:17
인연이 있어서 "수퍼스타 제미나이(Super Star Gemini)"
평택 취항 기념식과 기념 크루즈 1박2일 행사에 초대 받아
시승할 기회가 생겼다.

8층 유람선에서 4층 캐빈에 자리를 잡으니 옆으로 툭터진 창으로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멀리 서해대교가 잡힐듯이 각선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긴 서해대교 지을 때도 또 인연이 있어서 주탑을 세우는 거대한
우물통을 전마선 타고 가서 일주하며 이름 휘갈긴 종이를 집어넣어
보기도 했으나 모두 유한한 인간의 한갓 허망한 작난에 다름아니었
지---.

축제는 만찬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찬 식당을 피하여 뷔페 식당으로 온 우리 일행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담아 덱크로 나와서 낙조를 바라보며 만찬을 즐겼다.
낙조가 아름답게 그 최후를 작렬시키는 곳은 우리가 향하여 떠나는
중국의 大連(따렌)항이었다.
칵테일과 생맥주가 마음껏 제공되는데도 우리는 몸을 좀 사렸다.
아니 필리피노 웨이터가 두런두런 "쁘리 오부 차르지"(free of charge)
하는 바람메 그게 무료인줄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다.

이들을 다스리는 하나 높은 위치에 우리나라의 씩씩한 남녀 젊은이
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우리 청년들의 선상경력은 말레이지아와 싱가포어 인도네시아등을
거치며 이미 數年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가 안에서 아웅다웅할 때에 이들은 Ronald, Ivy, Juliet이란
명패를 가슴에 달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물어보니 Crew men and women은 400명이었고 승객은 최대 1200명
이며 보통은 800명 정도, 오늘 초대 손님은 400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몇해전 북유럽 관광 때에 타본 바이킹이나 실자라인에
비해서는 규모가 1/3 수준인듯 하였다.

만찬이 끝난 후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 카드 게임 하는 사람, 바에서
술마시는 사람, 피시 방을 이용하는 사람, 도서실, 슬럿머신, 면세점
등등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졌는데 갤럭시 홀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우리 년배의 소극적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무난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러시아 출신의 남녀 댄스 교사가 "차차차"를 가르쳐 주는 순서도
재미 있었고(우리 일행은 아무도 나가지 못했지만), 러시아 미희 10여
명이 그둘의 몸매를 과시하며 여러가지 춤과 쇼를 보여주어서 냉전
후의 금석지감을 느끼게도 하여 주었다.
하여간 보수도 시원찮은 러시아 무용수들의 몸매라니---.

그러나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김세환의 콘서트였다.
가수 김세환은 부인과 남매 자녀를 대동하고 나왔는데 참 아름다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디너 콘서트라는게 사실 노래에다가 음담패설이 겻들이는
것에 다름아닌데 가족들이 家長의 이런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며
실수에는 민망함을, 신바람에는 함께 열광을 표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제가 한물간 가수 김세환입니다"
"아니오, 한물 가다니요!" 객석의 항변.
"아, 그럼 한 2년은 더해 먹을 수 있겠네요---."

김세환은 48년생으로 5학년 4반이었다. 나훈아가 자기 보다 두살
아래라고 하였다.
앞으로 20년후에 가요무대에 나가서 "사랑하는 마음은"이나 "길가에
앉아서"를 부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김건모나 GOD보다는 낫겠다는
익살도 부렸다.

한편 부인 아닌 여자와 자다가 죽으면 복상사, 부인하고 그러다
가면 순직, 그리고 "마담 20년에 빨아라는 놈은 보았어도 불라는
놈은 처음이네" 시리즈---,
수많은 골프 재담---, 예컨데 언니는 드라이브 샷이 좋더라(파워),
두째는 아이언 샷(테크닉), 세째는 퍼팅(홀), 막내는 오비가 좋대요
(한번더 하니까---).

가수들이 제일 가기 싫은 곳이 교도소 위문 공연이고 청와대도
껄끄러웠다고---. 조영남은 노래하다 하모니카 꺼내는 순서에서
권총으로 오인받아 두드려 맞다가 코가 납작 코가 되었다나---.

김세환이 해태껌 선전할 때 졸졸 따라온 아이들 중에 정윤희와
김혜수가 있었다고.
여기에서 더 심한 조크는 생략하고 넘어가기로 하되 마지막에 그가
데뷰 곡으로 불렀다는 "Don"t forget to remember me"를 부를 때는
마치 헤어지는 연인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점은 부기하고 싶다.
아마도 타임 머신에서 내리라는 소릴 들은 기분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海霧가 자욱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스타 크루즈의 부서장과
방송국 작가선생 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배는 대련항 까지 10시간이면 가는데 크루즈는 20시간이 소요되는
유람항해로 운항하며 아직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속도에 비해서는
조금 빠를는지도 모르나 결국은 "보는 관광에서 즐기는 관광"으로
패턴이 옮겨갈 것이라는것, 현상 유지를 자신하는 이유 중에는 싼
동남아 인력도 한몫 한다는 것---, 그런데 그들의 영어실력이나
엔터테인먼트 능력은 우리가 경탄할만한 수준이라는 것---.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든 승객들의 휴대폰이 방전되어 버렸다.
공해상을 떠다니느라고 이상 신호를 포착하느라 그렇게 되었단다.
유람선은 대련 앞바다까지 가서 돌다가 이미 평택항으로 진입하였다.

평택에서 돌아오는 버스길은 마침 승용차 홀짝 운행 덕분에 압구정
현대 백화점 까지 1시간 10분만에 주파했다.
때가 되면 누구나 꼭 한번 탑승해볼만한, 짧으나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