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석모도에서 생긴 일 (2회중 두번째 - 끝)

원평재 2006. 10. 31. 23:16

그녀를 좇아가던 박종말이는 마음이 앞서서 잡는 시늉을 하며 허우적

거리다가 그만 얼굴을 진흙탕에 박고 말았다.

이전투구라했지만, 그래도 두사람은 막상 진흙탕에서 몸 싸움은 하지않고

악다구니만 벌였다.

 

"종말아, 이 가시나야. 내가 지금 여기와서 부처님께 빈 것은 우리 딸에게

붙어있는 진흙 귀신 좀 떼달라칸거다.

진흙귀신 말이다.

니처럼 한가롭게 마음 변한 옛 애인 준호나 찾고 내 사랑 돌리도 하며

심통부리는, 그런게 아이다 말이다.

우리 딸이 유치원 교사 아이가.

재작년도 서해 수련원에 불이 나서 아이들이 타죽었던 사건이 터졌을 때에

거기 따라간 보육 교사 중의 한사람이었단 말이다.

그때 그 사건 이후에 우리 딸년은 혼이 반쯤 빠지고 정신이 나갔는데 우째우째

하여서 다시 인천의 어떤 유치원에 취직이 되었다 아이가---."

 

 


 

두사람을 떼 놓으려고 달려간 동기들은 엉거주춤 장명숙의 넋두리를 들으며

빙 둘러 서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딸이 다시 취직이 되어 교사로 나가게 된 인천의 

유치원에서는 지난 여름에 이곳 석모도 진흙 해변으로 하계 수련회를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요즈음 "머드 팩"인가 뭔가하는게 신문에도 나고 시중의 인기를 끌자

그런 곳을 한번 보여달라고 떼쓰는 말들이 유치원생들로 부터 나온

모양이었고 이걸 들은 학부형들이 정식으로 유치원에 요청을 하여 이리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학습자 요청의 현장 자연학습 행사였다.

 

그런데 수련회를 나오기 며칠 전에 이 진흙 갯벌에서 참사가 있었다고

한다.

진흙 갯벌에는 갯고랑, 혹은 줄여서 갯골이라고 하는 진흙늪이 있어서 

한번 발이 빠지면 나올 수 없는 곳이 있는 모양인데 어린 아이들이

무려 여섯명이나 거기 빠져들어가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제 인천의 그 유치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우선 가느냐 마느냐가 첫째 과제였다.

유치원에서는 당연히 가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의 등쌀에

학부형들이 견디지 못하고 압력을 가하여서 출발은 예정대로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출입금지 구역은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등의 철저한 사전 교육이

실시되었고 인원 파악을 쉽게 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가정이라면 하나씩은

반드시 있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오게 하였다.

인파 중에서도 일단 그 유치원의 표시를 명확히 하고 또 위험지역으로

가는 것도 쉽게 눈에 띄게 하자는 묘안이었다고 한다.

 

"극성들이네. 유치원 아이들이 무슨 머드 팩에 관심이냐? 걱정이 되어

죽겠다."

장명숙이 정말 걱정이 되어서 석모도로 간 딸에게 그날 낮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엄마,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알아요? 오다가 성삼면 매음리라는

곳을 통과하는데 매음 보건 진료소 간판이 보이니까 아이 하나가

'응, 저기는 성병 치료하는 곳이야' 이런 소리를 하더라구요.

아이들이 이 정도이니 차라리 아무 걱정말어요."

그녀의 딸이 휴대폰으로 그렇게 답을 하며 걱정말라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을 진흙 갯벌에 풀어놓자마자 아연실색할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붉은악마'는 '진흙악마'가 되어서 자기네 유치원생들의

표시나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진흙을 쳐바른 아이들의

얼굴은 가까이에서 보아도 누가 누군지 분간키도 어렵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기 위하여 호르라기로 불러보았자 전달도 되지

않았고 제대로 모일 상황아니었다.

장명숙의 딸은 서서히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하였다.

 

갯고랑, 그러니까 진흙 늪 쪽으로는 접근 금지 줄이 쳐져 있었으나

개구장이들이 아주 가까이 까지 접근을 하는데, 어느 유치원 아이인지

어느 초등 학교에서 왔는지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오후 일찍 철수를 하기 위하여 아이들을 불러모으니

장명숙의 딸이 맡은 반에서 세명이 보이지를 않더란다.




 

이제 장명숙의 딸은 가슴이 울렁거리다 못하여 마침내 머리가 터지는듯

하여서 대절 버스에 들어눕고 말았다.

부족한 샤워 시설을 1인당 천원씩이나 내고 사용케 했는데도 따로

수도 꼭지가 밖으로 달린데에 가서 무료로 몸을 씻고 나머지 세명이

나타난 것은 유치원생들이 모두 모인 30분 후였다.

 

장명숙의 딸은 이때쯤 완전히 실성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석포 부두에서 강화의 외포리로 나오는 페리를 탈때 쯤 그 유치원 교사는

바다로 자꾸 뛰어내리겠다고 해서 유치원 원장이 그녀와 자신을 줄로

묶은채 보호를 했다고 한다.

 

"명숙아 미안하데이.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그래 지금은 딸아이가 잘

출근하나?"

박종말이 머리를 조아리는 시늉을 하며 진심으로 사과하였다.

"이 가시나야. 그랬으면 내가 여기에서 불공을 드리겠나. 그 애가

정신병원에 통원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쉬는데 툭하면 크루즈 타고

지중해에 가서 뛰어내리겠단다. 내가 그래서 여기 관음사에 짬만 나면

왔다간다.

여기에서 진흙 귀신이 붙은 것 같아서 말이다. 또 보문사가 기도 효험이

좋단다.

이번에도 동기회에서 마침 이리로 온다고 하여 따라왔다가 이 모양이

되었네.

넘사시럽고 우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딸이 실성한건 절대 아이다. 사실은 이러다가 혼사길

막힐까봐 겁이난다."

평소 말이 없던 장명숙의 긴 이야기가 끝났으나 사실은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많은듯 하였다.

 

"자, 야들아 물때다, 어서 나가자, 그리고 두사람은 감기 들지 않도록

빨리가서 씻고 오너라. 진흙 들어간데는 다 잘 씻거레이. 강화 나가면

내가 새 속옷 사줄께."

박청수 동기회장이 우스게를 섞어서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머드 팩도 하고 속옷도 생기고 두 사람은 땡잡았다. 부럽다."

누가 덕담성 우스게를 하였으나 아무도 웃지를 못하였다.

양명숙이 또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명숙아, 딸이 유치원 교사 자격증은 있겠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나?"

박청수가 양명숙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신학대학에서 유아교육학과를 다니면서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으로

해서 이급 자격증을 따고 졸업했는데 지금은 일급 시험에도 붙었다

아이가."

양명숙이 울음을 그치고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아니 신학대학 나온 애를 부처님 앞에서 빌면 되나?"

진흙을 얼굴에 잔뜩 쳐바른 박종말이 대화에 뛰어들었다.

역시 박종말이었다.

 

"딸은 교회에 다니지만 나는 불자 아이가. 무슨 상관이고?"

장명숙이 박종말에게 볼멘 소리를 했다.

"그래 맞다. 다 정성이다. 오늘 눈썹 바위 올라가며 보니 돌무더기가

있더라. 그 힘든 길을 올라가면서도 정성으로 돌을 들고 올라가

쌓은 돌탑이더라.

그게 종교심이지 특정 종교에 국한되거나 우상 숭배 같은건 아닐꺼야.

내가 지금 양로원을 하나 할까한단다.

고아원이 요즈음 아이가 없어서 매물로 나온게 하나 있는데 내가

돈벌이가 아니라 사회 봉사 차원에서 인수하여 사회 복지 법인을 새로

구성하고 양로원을 추가로 하나 낼려고 해.

천국으로의 소망과 기대를 건 그런 이름도 지금 하나 궁리중이다."

 

 

"빈포에 짓나?"

누가 물었다.

"미안하지만 거기는 사람이 자꾸 줄어들고 또 누가 거기까지 노년에

가려고 하겠나?

서울 근교인데 다만 빈포 사람들에게는 특별 대우를 할 계획이다.

경제력이 없는 우리 이웃들은 다 무료로 받겠다는 것이지."

"아, 그러면 우리 할배 영감 일착으로 신청합니데이."

박종말이 또 치고 나갔고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박여사네 처럼 돈 있는 사람은 조금 내야지. 그리고 영감님을 고려장

하듯이 갔다 버리면 되겠나, 하하하. 하여간 신청은 받은걸로 합니다.

그리고 명숙아, 내가 니 딸을 한번 볼께. 이런 사업 계획을 알려주면

아마도 증세가 퍼뜩 나을끼다. 일을 같이 할 욕심으로라도---."

 

장명숙이 진흙묻은 두팔로 박청수를 껴안는 시늉을하였다.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을 낮이 짧았다.

벌써 서해의 낙조가 불타고 있었다.

 


 

 



 

 

(이번 이야기 끝)

 

 

18893

'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속초 통신(속초 통신의 답글로)  (0) 2010.04.03
속초 통신  (0) 2010.03.28
석모도에서 생긴일  (0) 2006.10.29
실종 이후 (빈포 시리즈 중 두번째--끝)  (0) 2006.09.21
실종 이후  (0) 200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