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속-속초 통신(속초 통신의 답글로)

원평재 2010. 4. 3. 09:51

 

친애하는 이미래 양에게,

 

그리운 마음으로는 “사랑하는 이미래 양에게"라고 쓰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글쎄 “미래” 양의

지난번 메일 표현대로 아름다움은 조금 거리를 유지할 때 더욱 아름답게 유지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조금 겁쟁이 같은 표현 속으로 자라목을 하였네.

하긴 아름다운 거리가 아니라 비겁한 말을 쓴 것뿐이라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네만.

 

세상에는 근친이 아니라도 비슷한 DNA를 보유한 사람들이 있나보다라는 미래 양의

견해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네.

길에서 스치는 인파 속에서도 무심결에 뒤돌아보게 되는 사람,

찻집에서 만나는 익명의 시선들 속에서도 굳이 연결되는 어떤 직선,

때로 턱도 없는 나이 차이에도 필이 꽂히는 이성 상,

남자에겐 할머니뻘이건 여자에겐 손자뻘이건---.

그런 유별난 체험을 부인하지 않는 나로서는 우리사이에 참으로 기이한 교감이 불타올랐던

그날 티업 때부터 다음날 새벽까지의 배화교도 같았던 시간을 결코 후회의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으려네.

아니 행운이 있는 소수에게만 허용된 필생의 지속으로 움켜쥐려네.

세상 누가 그런 지고의 체험을 얻고 간직할 수 있으랴.

 

평소에도 남들이 겪지 못한 신끼 내리는 순간을 체험해 보았다고 서로 놀라며 고백했던

그날 밤,

우리는 손가락으로 왜 그런 순간을 함께 겪는지 셈해보기로 했었지.

 

1. 나와 미래는 무슨 피치 못할 깊은 인연의 심연이 격세유전으로 내려오고 있는 가.

2. 세포 속 DNA의 두 가닥 나선이 질서로 꼬여가다가 어느 지점에서인가 걷잡을 수 없이 

   뒤엉켜진 매듭을 공유하는 탓인가.

3. 어쩌면 게놈 지도의 미로에서 타액이나 콧물이나 벗겨진 표피 세포가 공기를 타고

    훨훨 날아다니다가 초자연적 시공 속에서 서로를 숙주로 기거하게 된건가.

 

그런 기이함을 전율로 느끼며 우리는 제의처럼 통과했구나, 그날 밤을.

 

바이런이 이복누이를 무도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 눈에 금방 피가 솟구치는

근친 감을 느꼈다고 하였지. 

나중에 그 근친관계는 아내로 부터의 이혼 사유, 영국 사교계로 부터는 파문이라는

파장을 일으키고야 말았지만---.

그로 인하여 영국을 떠난 그는 결국 요절의 운명을 맞기까지 하였으니 그 시선의 결합은

생명줄까지 조이는 숙명이 되고 말았구나.

그들이 근친상간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는지의 여부는 영구미제이지만 그런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생명줄은 당대에 이미 짤막하게 끊어져 버렸으니---.

진실의 확인과는 관계없이 세상사 그런게 많고도 많아.

 

아, 이야기가 미로 속을 헤매는가.

미래 양이 숨 쉬고 사는 설악 연봉의 정갈한 골프 코스나 전문 등산객들이 즐겨 타는 그

산등성이와 록클라이밍 코스의 청솔 바람 불어 좋은 지역에서는 이런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는 횡행치 않겠지만---.

내가 오늘 별 이야기를 다 하는구나. 서양 영화에서 보는 배심원 앞의 뻔뻔한 변론자처럼.

 

그날 모였던 세계 한인 상공인 대회는 배달겨레가 늘 그렇듯이 몇 개로 분열된 조직 중의

하나라네.

통합의 말도 있어왔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하여간 그날의 모임은 주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중소 상공인 대회라고 할 수

있었지.

대학의 미디어 영상학 교수인 나도 따로 “인디 시네마”를 만드는 소규모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역시 출판을 하는 그 빈포 출신의 중견 박건필 사장과 동행이 되었던 것이고

그런 인연으로 골프 코스도 같은 조에서 걷게 되었지.

그린에서 이미 들어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겠지만.

아, “인디 영화”라고 하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대규모 영화사와 달리 소규모로 독립 영화를

찍는 활동을 말하는데 최근 국산 영화로는 “워낭 소리” 같은 것이 있었어.

거기 속초에서도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러하였겠지.

 

우리는 정말 무슨 인연이 그리 깊은지 미래 양의 아버지도 사진관을 하셨다고---,

그리고 미래 양도 거기 동해 대학의 사진, 영상과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하던

캐디 직업을 그냥 전업으로 하게 되었다고 그날 말했지.

그 후 어차피 동해 대학의 영상학과는 학생들이 오지 않아서 폐과가 된 건 나도 좀 알어---.

내 후배 하나도 그 학과에 있다가 교양학부 교수로 밀리더니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허름한 영화사에서 눈칫밥을 먹고 말더라고.

 

어쨌거나 그날 우리 팀의 구성은 캐디인 이미래 양까지 포함하여 절묘한 조합이 되어버렸지.

인디 영화의 콘티를 짜더라도 이렇게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을만큼 그만큼

절묘하였어.

그리고 클라이맥스와 엔딩도 결국 극적인 수습이랄까.

정말 만남은 우연이었으나 과정은 마침내 혈연의식까지 치루며 필연으로 달려간 콘티였으니.

그래, 세계 한인 상공인 대회의 만찬장은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축사를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이미 바람빠진 풍선처럼 되어서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반수가 넘는 분위기 속에

마침 셔틀 버스 장에서 조우한 우리의 동반자 미래 양은 그날부터 월차 휴가가 있는 날이라고

했었지.

우리는 빈포 향우회니 어쩌니 하면서 ‘한번 캐디는 영원한 캐디’라고 물 좋은 횟집을

안내하라고 성화를 부렸고---.

속초 중앙시장 횟집에서 만고강산이 된 일행이었지만 박 사장은 급히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또 한사람은 어찌된 셈인지 속초에 오면 영랑호에 빠져야 된다면서 호수변의 오래된 방갈로로

들어갔고 재미 교포 한 사람은 가벼운 복통을 일으켜서 위생실이 있는 동해 컨트리클럽 콘도로

서둘러 돌아갔고 우리 둘만 강릉으로 갔지.

일찌감치  영랑호에 빠진 사람이 우리의 멘토였어.

우리도 그 사람처럼 경포 호수에 빠지고야 말았으니까.

그 짧고 이동으로 점철된 순간에도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서로를 속속들이 다 잘 아는 사이가

되고야 말았던가.

그건 마치 이산가족 찾기 같은 데에서 살아생전 다시 못 볼 듯싶었던 육친을 기적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몇 십 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감격 그대로인가 싶기도 하였지.

 

미래 양은 내가 부유한 선대 어른 덕분에 UCLA 영상학부를 나온 행복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지만 그건 어제 우리가 골프를 함께했던 사람들에게도 피상적으로만 알려진 사실이고,

사실은 나도 복잡한 가정 사정으로 고통스러운 청년 시절을 보냈다네.

덕대라고 하는 어장 소유권도 태풍 속에서는 맥을 못 추어서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유복하지

만은 않았어.

뿐만 아니라 또 하나 고백하자면 지금 내 팔자는 아내와도 별거를 하고 있는 결손 가정의

가장이라네.

그건 내가 독립 영화사를 한다고, “필름 느와르”니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니 실험 영화를

찍는다고 돌아다니며 가정을 돌보지 못한 탓이 컸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메아큘파!

이런 지경이야.

지금에 이르러서야 후회를 하고 객쩍게 “울고 싶어라”를 불러보지만 운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랴.

미래 양도 잠시나마 사진 영상과를 다녔다니까 그 세계가 어떤 바닥인지,

내 이야기가 어떤 흐름인지 다소나마 짐작은 갈 거야---.

물론 내 가정사에 관한 내색을 주위에 결코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내 자존심 탓이기도 하고,

혼자라는 사실이 혹시 나의 사회생활이나 특히 남녀 관계에서 순방향이든 역방향이든 어떤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한 탓이기도 하지.

 

하여간 우리가 밤을 지새운 그 다음날은 주위의 눈치도 피할 겸, 나도 강릉에서 그냥 새벽같이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올라 온 건 잘 아는 일이고, 덧붙이자면 사실 그 며칠 후에 나는 다시

속초를 찾았어.

동해안에, 특히 속초에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고 뉴스가 나오자 다음날 나는 다시 동서울

터미널로 가서 속초행 우등 버스를 탔지.

그래, 금요일이야.

금요일부터 시작하는 주말에는 내가 항상 독립영화 일 때문에 강의를 빼놓고 있거든.

지난번 갔을 때 잔설 덮인 설악이 눈에 아련하였다는 것이 버스를 탄 가장 큰 이유라고

나 자신에게 거듭 강조하여 일렀으나 사실은 미래를 만나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달려간 것이지.

하지만 버스가 속초로 다가가면서, 그래 산 너머로 동해의 푸른 바다가 보이면서, 이어서

설핏 설악이 보이고, 속초의 수많은 낮은 집들과 좁은 골목길들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리고 마침내 멋없이 큼직한 속초 버스 정류장이라는 글자를 읽으면서 내 격정은 여기에서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습이 되더라고.

 

터미널 스테이션.

그래 종착역의 “대합실”이라는 표지판 앞의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내 감정은 그냥 처박아

두고 나는 그 앞 택시들이 줄을 선 가운데에서 세 시간만 함께할 영업용 택시를 물색하여

설악 주변을 빙빙 돌며 스틸 사진을 찍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어.

정말 거기까지 가서 회도 먹지 않고 황태도 맛보지 않고 순두부로 점심을 때우며.

 

아, 경월소주가 아직 있던가?

젊은 날 강릉 해변 시인 학교에 왔을 때, 만용으로 "월경 소주"라고 고함치며 마셨던

그 그리운 소주도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네.

그냥 화소 1800만에 ISO 2400까지 나오는 카메라에 대포 렌즈를 끼어서 부여잡고

다른 데로는 마음을 흩트리지 않았어.

자칫하다가는 바로 미래를 찾아 나설 듯싶어서---.

그래 물론 스틸 사진만 찍어댄 그날의 변명꺼리와 수확은 있었어.

다음번에 "사중주곡"이나 혹은 "오중주곡"이라는 이름으로 실험 영화를 찍을 때에

대비하여 미리 스틸 사진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놓는다는, 일종의 작업 개시 준비를 한

여정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정리가 되지 않았고 설악을 찍으면서

갖추어야할 콘티, 그러니까 대본이나 지시 말, 미리 써보는 스크립트도 황당한 것이었어.

 

설악, 페이드인, 줌인, 슬프게

설악, 페이드아웃, 슬프게 줌 아웃으로 빠져나오며.

 

이건 마치 유진 오닐의 극작,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 나오는 첫 장면 무대 지시어가

‘욕망을 가득담은 느릅나무가 서있다’, 라고 막무가내로 요청을 한 그런 식 보다도 더

광막하고 황당한 어거지가 아니던가. 지금 생각해봐도---.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내 시나리오는 결국 실체가 없는 허무감 같은 것으로

가득한 콘티였어.

구약 전도서에 나오는 가치의 무가치화 같은 비감함---.

 

사랑이란 무엇인가.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 그 사랑이란 무엇인가의 의문 성. 모호 성, 절망과 허무감.

나는 택시기사가 보는 앞에서 마침내 눈물을 찔끔거렸다네.

 

사랑의 80%는 모두 자기가 갖는 최면이고 인습이라는 말도 있기는 해.

또 사랑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순간에는 거기에 반역의 깃발을 꽂아야한다는

우리의 맹세같은 주장도 있어.

노드웨스턴 대학에서 나처럼 미디어 학을 가르치는 로라 키프니스는 “Against Love",

그러니까 ”사랑은 없다“라는 제목을 내걸고 그렇게 말하였지.

물론 그 본래의 의도는 사랑이란 인간 사이에 애초부터 없었다라는 주장이기 보다

사랑이 있기가 쉽지 않음, 그리고 ‘아닌 사랑’이라면 그 절대권력, 그러니까 제도권 사랑의

권위가 주는 강제 노역에 우리는 저항하여야 한다는 해체적 부르짖음이었지.

가정이라는 절대 권력은 사랑하지 않을 자유, 사랑하기를 멈출 자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자유, 한때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자유를 엄격히

구속한다는 그 미디어학 여자교수의 말이 다시 내 뇌리에 박혀오더군.

사실 그런 해방철학의 이론을 이 땅에 도입하고 소개한 초기의 몇 안 되는 학자들 속에 나도

속하였지만 그 실천적 자유를 행사한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 아내였다네.

 

아무렴 내가 이미래 양의 사랑방정식을 예단하거나 어떤 방향으로 부추기는 건 물론

아니라네.

우리가 그날 강릉 호텔에서 용의주도하게도 두 개의 룸을 따로 얻어놓고는,

같은 방에서 시간을 가졌던 과정은 이성간의 단순한 육체적 제의라기보다는 상실한

사랑 방정식의 복구해법, 해원의 씻김 굿 같은 의미와 모습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자면 상처 입은 새끼 사슴을 어떻게든지 애무하여 생명력을 복원하는

어미 사슴 같은 모양이었달까.

 

우리가 나눈 말들이 생각나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대상물은 한 부분만이 현실의 존재이고 나머지 부분들은 자신의

꿈과 바람이 창안해 낸 성질, 혹은 허구일 수도 있다는 나의 말에,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가지는 사랑, 어쩌면 절반이 넘는 부분이 허구라는 그 사랑의

본질로부터 진정 질기고 질긴 사랑의 진실을 뽑아내려는 고통과 아픔을 애써 감내하겠다는

이 양의 말은 지금도 아프게 내 심장을 짓이기고 있어.

그 말을 들으며 그래, 초자아(super-ego)에 속하는 감정이란 바로 욕망(id)의 초월적 변형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이 문득 내 뇌리를 스쳤다네.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하고 성과 속도 교통하고 절제와 인내와 고통의 감내도 본능의 희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그런 이론 말이네.

물론 이런 내 현학이 역겨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는 내 터질 것만 같은 심정을 다독이고 남은 생애의 삶의 양식을 위해서라도

그날 하루 동안의 경이에 가득했던 의식, 그 제의행위를 반추하고 음미하고 정리해 놓고 싶어.

젊은 날의 저 질풍노도 같은 낭만 시절이 인간 본성의 진실에 더 가까운 감정이라면

그날은 왼 종일 그런 질풍노도가 우리의 주변에 넘실대고 몰아쳤던 것 같아.

또한 정말 진부한 표현일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눈을 뿌리고 사라지려는 검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조금 이지러진 보름달이 거기 경포호수와 우리의 술잔과 가슴에 그리고 눈동자에

내려와 앉으며 우리의 결손을 채워주는 속에서 경포의 밤은 하얗게 지나가고 있었지---.

 

내가 의연하게, 저 웅혼한 설악처럼 부성으로써의 병풍역할을 자임한다는 기록으로 이 통신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네.

동해 컨트리클럽의 브로슈어에 보니까 이 양의 말대로 세 사람의 캐디가 곧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나와 있더군---.

그 수련기간이 끝나고 미래가 저 설악의 앞에 나타날 때쯤, 나도 진정한 부성을 띤 마음으로

그 앞에 나타나고 싶네.

그걸 받아드리고 말고는 그때의 이양의 마음에 맡길게.

 

 

지금 서울에는 봄비가 오네.

예보에 따르면 그곳 속초도 비가 오지만 언제 눈으로 바뀔는지 모른다고 하는군.

설악이 정말 3월에도 제 이름 값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만 눈으로 바뀌지 말고

주룩주룩 봄비로 내려서 봄꽃을 피워내 주었으면 좋겠어.

이번 비가 그치고 이 양이 일본으로 떠난 다음에 인디 시네마, “사중주” 혹은 “오중주”는

슈팅에 들어갈 예정이네.

 

몸 건강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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