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시대의 아쉬운 세상 나들이

실크로드 견문록

원평재 2004. 11. 27. 05:21
작년 여름, 한 열흘간 소위 실크로드 탐방을 했는데
게을러서 제때에 정리해 놓지 않았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무조건 찍어놓고 집어던져 버린
"캠 코더" 탓도 크다고 연장을 나무라도 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태에 따른 미필적 고의일 따름이다.



많은 분들이 나의 팩션(사실은 1인칭 픽션)을 기대하지만
상상력을 위한 창조적 기간도 필요하기에 ,
Silk Road 열흘 코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敦煌(둔황) 쪽에 초점을 두고
한번 간략히 해묵은 정리를 해 본다.
머리를 잠시 식히는 것이다.

우선 전반적인 코스 편람을 해보면
인천공항/西安(시안)/우루무치/트루판/유원/돈황(둔황)/양관/
다시 서안 등의 순서였는데,
서안에서는 물론 진시왕릉/병마용/화청지 등이 포함 되었고
우루무치에서는 "남산 목장"의 위구르 인의 생활과
천산 천지가 포함되었다.

한편 트루판에서는 혜초 스님이 지나가신 화염산,
교하고성으로의 고달픈 열사의 강행군이 있었고
둔황에서는 막고굴 관람이 하이라이트로 제공되었다.

막고굴은, 얼마전만해도 모두 개방이 되었다는데
이제는 십여군데만 개방이 되고 있고
앞으로는 세군데만 개방이 된다고한다.
물론 인근에 이와 꼭 같은 모조굴과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 정교한 모방술은 과연 혀를 내두를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석굴암의 모조굴을
인근에 세운다고 찬반 양론이 분분한데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처처럼 연구기관도 인근에 세우고
후학들도 양성하면서 관광객들도 즐길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안에서는 진시왕릉의 모조관과 아방궁의 모조궁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양관에서의 실크로드 유적지와 타클라마칸 사막 관광은
소위 서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하는 바가 있었으며
나같은 범인의 생사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이 지역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도로의 건설과 확충,
석유와 천연가스의 채굴, 등은 신 서부 개척사를 보는 듯 하였으며
이 곳에 원래 거주하던 色目人(인도-유러피언족)들은
거꾸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상기하는 바가 있었다.

西安은 그들의 말대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가
공존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어둑어둑한 뒷골목을 거닐며
허룸한 안방, 이발관, 미장원,
특히 재봉틀을 돌리며 옷을 만드는 모습은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그리고 70년대의 개발 연대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서 콧날이 시큰하였다.
타임 머신을 탄 기분에 다름아니었다.

실크로드에 관한 늦은 여행기를 간략히 올려보았다.
언젠가 다시가서 보고 보카치오의 "10일 이야기"처럼,
새로운 "데카메론"을 쓰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