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가든 그로브 한인 거리의 잔영

원평재 2009. 12. 30. 17:44

 

잘 알려진 LA 시내의 코리아 타운이나 오렌지 카운티의 한인 커뮤니티에 대해서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횡설수설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오래전부터 내가 많이 다녀 본 곳이라고 해도 정황은 마찬가지이리라.

 

친구의 배려로 오렌지 카운티의 가든 그로브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내 카메라에 담아놓은 잔영만을 여기에

올리는 것으로 이곳 여행기에 대신하고 싶다.

내 친구는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에서 넓은 정원을 가꾸며 40여년을 살아왔다.

여름, 디즈니랜드에서 불꽃놀이를 할 때에는 마당에서 그 활짝핀 꽃불을 감상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집이 있다.

나도 친구의 집에서 그 꽃불 구경을 함께 나눈 귀한 추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가든 그로브에는 월남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있다한다.

내가 머문 라마다 호텔만 해도 원래 한국인이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월남인이

소유자가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월남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디즈니랜드도 구경하고 가는것 같다.

그들과 한인들과의 사이는 상호 보완적으로 괜찮다고 한다.

 

그들의 약진에 다소 셈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사 변치않는게 있으랴.

성공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그들에게 박수쳐 주지 않을수 없었다.

중국인들을 의식할 때에 더욱 그러하였다---. 

Orange County Cities

 

 

 

 

나무들은 푸르른데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추위를 탄다.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준령들은 겨우내 설산이고 스키장으로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나같이 경기가 예전보다 형편없다고 한다.

새해부터는 서서히 풀리리라는 기대도 없지않다.

 

 

 

 

 

 

 

  

 

 

 

 

 

 

 

 

 

 

 

 

 

 

 

 

 

오렌지 카운티의 그 친구가 자기 정원에서 재배한 청정 오렌지를 선물하였다.

맛이 좋았다.

청정 비료를 주었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깨닫지 못하였다.

 

 

유목민에게는 항상 떠나는 일이 머리 속을 뒤채인다.

 

미국 내 최대의 한인 밀집지역으로, 넓게는 노스리지·하시엔다·하이츠·서리토스·플러턴·그렌데일·버뱅크·가든그로브· 사우스밸리·올림픽가(街)와

 그 주변 등 로스앤젤레스 대도시지역에 산재한 한인 주거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나, 이곳은 한인 밀집 거주지역이라기보다는 소수민족

혼합거주지역에 한인 기관, 단체 및 상업 서비스업체가 밀집 분포한 상업업무지구이다.

 

1962년 한국에서 이민법이 제정되고, 1965년 미국 내의 이민법이 개정되어 가족관계와 직업 기술이민으로 한인이 이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지대(地代)가 저렴하고 접근하기가 유리한 올림픽가(街)에 한인의 상업 서비스 자영업체와 주택이 분포하기 시작하였다.

발전 초기에는 동서로 버몬트가·웨스턴가, 남북으로 올림픽가와 8번가 사이를 코리아타운이라고 하였다.

 

1970년대 후반 이후 한인의 이민증가와 함께 자영업체 분포지역은 동서로 윌턴가와 후버가, 남북으로는 피코가와 비벌리가까지 확

대되었다.

이에 따라 윌셔가와 웨스턴교차로를 중심으로 3km 범위 내에 형성된 지역을 구(舊)코리아타운, 후버가-워싱턴가-샌타모니카까지

뻗어나간 지역을 신(新)코리아타운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많은 한인 식품점, 세탁소, 의류제조 및 봉제업체를 포함한 각종 제조업체와 상업 서비스업체뿐만 아니라, 한국 총영사관과 문화원을

비롯한 정부·공공기관, 봉사기관, 종교단체, 방송 및 신문사, 의료기관 등이 분포하며,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을 기린

도산광장도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30, 40대로 장성한 이민 1.5세들이 의사·변호사·무역·보험·공인회계사 등으로 많이 진출하면서 업종면에서 전

문화·다양화 경향을 보였다.

이와 함께 한인의 자영업 운영률은 23%로 타 아시아민족에 비하여 2배 이상 높으며 카운티 전체 평균인 7.8%보다 3배 가량 높다.

 

현재 18만 명 정도가 거주하나, 전체 거주민의 절반 이상이 에스파냐계(系)이고, 한인 거주자는 다른 아시아계 민족에 비해서는

많으나 26% 정도에 그치고 있다.

비영어 사용 주민이 절반 이상이며, 이민자가 3/5 이상으로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한다.

45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남(南)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상징적 중심지로서, 한인들의 구심적 역할을 하고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생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추석을 전후하여 시가행진이 펼쳐져 타민족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한인들이 신이민지에서 생활적응과정을 거친 후, 주거환경이 양호한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거주기능은 약화되었다.

야간에는 에스파냐계인 및 흑인 타운으로 변한다.

 

한인의 주거지와 경제활동지의 분리는 1992년 4월 29일 흑인폭동을 유발시킨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폭동으로 한인은 인명 피해가 나고 상가가 파괴되는 등 커다란 정신적·물적 피해를 입고 경제도 침체되었으나

이후 한·흑인 양측의 꾸준한 인종화합 노력으로 화해분위기가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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