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광화문 산책 (미 대사관 터로 부터)

원평재 2010. 2. 25. 16:24

  

  LA 근교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친구가 잠시 고국 방문을 하였다.

고향 떠난지 40여년이 된 재미교포지만 그간 한국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워서 광화문 거리는 그동안 밟아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우리 젊은 시절은 광화문 쪽이 만사의 중심이었다.

감회와 회포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 곳이 광장으로 재단장하여 등장하였으니 서울 사는 나도 좋은 구경꺼리를

만난 셈이었다.

 

친구는 전에 주로 묵었던 강남의 큰 호텔을 버리고 경복궁 앞에 새로 생긴 깔끔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침을 같이하러 일찍 객실로 그를 찾았더니 창밖의 경치가 또한 일품이었다.

저 말썽 많았던 미 대사관 숙소 자리도 발아래에 펼쳐졌다.

무얼 만들려는지 이리저리 파헤쳐져 있었는데, 제발 주변의 경관에 어울리는 멋진 구조물이 들어섰으면

싶었다.

 

 

   

 

 

   

     

 

  

  

아침을 하고 나와서 친구가 오랜만에 광화문에 섰다.

 

 

    

     

 

     

 

 

  

 

 

 

  

 

 

 

   

  

광화문의 새벽에 작품하나를 건졌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수준이 아니겠는가,

자화자찬해본다. 

 

광화문의 해태상은 본래는  지금의 미 대사관 자리 앞인  세종로 육조거리  사헌부 대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해태를 거기 세운 이유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 목적 외에,  관리들로 하여금 강직한 품성을 기린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유독 사헌부의  대사헌의 관복의 흉배에만  해태가 수 놓여 있는 뜻도 사헌부 직무상 강직함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 된다.

 해태상의 원래 이름은 "해치"라고한다.

1396년 태조 이성계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위해  무학대사의 뜻에 따라, 관악산에 자운암을 세운 뒤, 

산의 중턱에는 물동이를 묻고 궁의 앞에는 해태상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태상은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3년 철거 되었다가,  총독부 청사를 지은 후, 1929년 청사 앞으로 옮겨 

세워졌으며  제 3공화국 시절인 1968년  광화문 복원공사 후에는  광화문 앞으로 옮겨졌다.

다시 2006년 광화문 복원 공사시  해태상을 옮겨 놓은 동안,  2008년 숭례문 화재가 나는 바람에  해태가

없어서 관악산  화기가 침범했다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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