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단상

목멱산(남산골) 한옥 마을의 눈 경치

원평재 2010. 3. 18. 09:01

 

남산골 한옥 마을은 지나다니며 힐끗거리기는 했으나 전에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곳이다.

눈이라도 내려야 평소의 갈망을 좇아가게 되는지, 산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는 나에게

중턱의 한옥마을이 크게 손짓을 한다.

 

봄이 오면 꼭 한번 찾으렸던 곳인데 눈발이 먼저 사람을 부른다.

어쩔 것인가, 막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입구가 생소한 터널이 팬터지처럼 나타나면서 얼른 "통과의례"를 마치고 

남산 마실로 들어오라고 권유한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불러줄 때가 좋다.

 

   

 

  

  

남산에는 문학의 집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창작 센터도 있구나.

연희동에 창작 글방을 마련한 서울 시청의 이야기가 선행처럼 신문지면을 장식하였는데

일찌기 남산골 예장동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인사동과 대학로 쪽을 드나들며 남산 터널을 들락거리지만

막상 이렇게 답사를 하고보니 낯선 풍경들이 나이들며 약화된 감성을

다소나마 고취시켰다.

"낯설게 하기"가 시심의 본질이라는 이론이 생각났다.

.

  

 

  

 

 

 

 문득 딸이 해부학을 하며 예과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여름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하여 겨울철에는 정신없이 첼로 연습으로 피비린내 나던 시절을

극복하던 아이였다.

동급생들 중의 한 둘과 낙제를 친 언니들이 빈 강의실에서 자살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바드 메디컬 스쿨 학생의 10%가 자살을 한다는 사실인지 과장인지

그런 소설이 서점가를 휩쓸던 때였다.

첼로를 멋으로 끌고 다니며 비브라토를 심하게 넣던 아이를 내가 조롱하고 놀리면서도

막상 나 자신은 구원을 느끼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김영의 홀"과 "예술의 전당"에서 서툰 연주를 할 때에는 독주자도 아닌데 녹화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도 당시 레파토리의 하나였다.

 

시집을 가버린 딸과 지금은 사이가 별로이다.

적어도 내 마음으로는---.

 

남산골 눈밭에서 첼로의 저 가슴을 저며내는 음조를 생각해 내다니.

아마도 모든 사라지려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탓인가보다.

저 눈도 내일, 모레면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일석 이희승 선생께 바치는 추모비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낙수물이 마당에 고여서 떨어져 내린 처마를 받들고 있다.   

 

 

 

 

 

 

 

  

 

 

 

 

설화가 일찍 핀 옥매화 같았다.

 

 

 

 

 

 

 

 

 

 

 

 

 

 

 

 

  

 

문헌상으로는 남산이 목멱이라는 지식에 접하고 있었지만 실제 쓰여지는 것은 여기에서 처음 보았다.

한국 서간 문학에는 독보적 경지를 갖고 계시는 김일근 박사의 아호가 목멱, 아니 멱남이시다.

남산 자락, 남쪽에 우거한다는 뜻이라고 하신적이 있었다.

 

문헌에 따르면 남산(南山)의 본래(本來)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인데, 옛말로는 마뫼’였.

 ’()은 남(), ‘’ ()은 산악(山岳)의 음을 취한 것으로, 역시 남산(南山)이란 뜻이라고 한다.

 

 

 

 

대문 안에서 이웃 중국의 젊은이들이 와글거렸다.

인원 점호를 하고 이제 떠나려는 모양같았다.

나도 카메라를 닫고 슬슬 걸어나왔다. 

 

 


Concerto for Cello and Orchestra No.2 In D major Hob.VIIb:2 연속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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