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소래 포구 파파라치

원평재 2011. 2. 6. 07:41

 

 

빈포 초등학교 동기회에 늦게야 얼굴을 드리민 친구 중의 하나인 이창식이가 블라디보스톡에서

흘러 들어온 노랑머리 백인 여자, "옥사나"와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을 돌렸을 때에는 처음 모두들

투덜거렸다.

늦게 나타난 녀석이 늦은 혼인을 빙자하여 동기들 돈이나 뜯는다는 이유였다.

"혼인 빙자 강도짓이야!" 누군가가 소리까지 질렀다.

 

그래도 노랑머리의 신기한 모양을 보러 결혼식장에 다녀 온 동기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의

의견은 임진년 두해 전의 조선 통신사들 처럼 반반으로 갈렸다.

어떤 친구들은 서양 여자가 헤퍼 보인다고 하였고 또 다른 동기들은 노랑머리 아가씨가

야무지고 살림꾼 같이 보인다고 하였다.

어느쪽이 맞는지 쉽게 판별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일은 동기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히게

되었다.

대략 예상했던데로 그는 결혼식 이후에 입을 싹 씻고 연락을 끊어버려서 그 노랑머리 신부에

대햐여 더이상 무슨 평가가 나올 건덕지도 없었고 그렇다고 결혼식에 가보지 않은 대부분의

동기들도 무어라 그의 처사를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얌체 짓을 한 그는 물론이고 옥사나인가 뭔가 하는 노랑머리 부인도 욕사발을 함께 먹었으나

얼마지나지 않자 모두 흐지부지였다

 

그런데 반년이 조금 지났을까, 그가 삼각지의 그 "건강 휴식 이용원"에 다시 나타나서

신세타령과 함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 러시아 여자, 옥사나가 도망을 가버렸으니 시간있는

백수 동기들이 나서서 "그년"을 좀 찾아달라는 하소연이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했던가, 동기회에 마침내 활력이 솟았다.

 

사실 최근에는 빈포 초등학교 동기회도 옛날같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돈을 만지던 여반 동기들 중의 한사람이 타계를 했고 또 한사람은 식물인간처럼

누워있고 남반 총무도 풍을 맞고 오래 누워있더니 역시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인심도 사나워지고 또  어떤 조직이라도 기름이 돌아야 하는데 모임이

제대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니고 모두 동기회원들의 관심과 성의 문제라고 혀를 차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막상 분위기를 살리는 일을 하라면 쑥 들어가 버린다.

모두 기름, 아니 돈이 들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고 몸으로 떼우더라도 그런 역할을 할 헌신적 리더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 줌의 재가되어 청산으로 사라진 김완기 총무 이후에는 아무도 나타나지를 않았다.

"이러다가는 1년에 한번 있는 망년회도 사라지겠다."

그런 위기감이 동기들 사이에 팽배하였다.

더구나 고향으로 내려가서 법무사하는 이준호와 그와 눈이 맞아서 뒷말을 만들어

동기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던 박종말이의 관계 조차 소원해 지고 부터는 서울과 빈포,

그러니까 경향을 묶어줄 끈도 끊어졌다.

 

뿐만 아니라 고향 빈포에서도 돈푼께나 만지던 철만이가 실종과 자살이라는 끔찍한

사단을 빚어냈으니 동기들끼리 만나는 일이 있어도 공연히 슬픈척 노상 인상만

쓰게되며 기쁜 일이 혹시 있어도 내색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창식이 나타난 것은 그런 시점에서였다.

그동안 통 소식도 없이 동기회의 울타리 밖으로만 돌던 이창식이 그 무료하고 썰렁한

동기회의 네트워크에 몸을 담은 것이 바로 그런 미묘한 시기였다는 말이다.

 

간접적으로는 항상 연락선 상에 있었던 그가 "삼각지 건강 휴식 이용원"에 나타난 날은

마침 어떤 토요일 오후, 동향의 친구들이 몇명 놀러 나와있던 시간이었다.

이제는 주말에 이용원에 나와서 안마를 받아가며 아가씨들과 노닥거릴 세태는 아니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뜸하였으므로 한때 돈방석 노릇을 한 이용원 밀실은 이제 동기들의

고스톱 장이 되고있었다.

 

"놀랠 놋자네. 창식이가 이게 왠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장개를 간다면 더 놀랠껄?"

그가 적당히 사투리를 섞어서 응수하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같은 고향의 패거리라는 의식을 사투리로 녹여넣자는 수작같았다.

"재차 놀랬네. 해가 다시 동쪽에서 뜨겠다!"

또다시 탄성이 나왔다.

 

이제 자식들을 결혼시킬 나이에 접어들면서 동기들은 최근 한동안 결혼이라는 말을

화두로 삼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화제의 중심으로 해 온 터였다.

그럴 때마다 또 이창식이라는 인물과 이름이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말하자면 다음 세대가 벌써 짝을 맞추는 나이의 시대에 늙어가는 동기생 중의 하나가

아직도 자신을 건사하지 못하여 장도 들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동정어린 어조로

걱정들을 하였지만 사실은 멸시에 가깝달까, 자신들은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이제는 자식들의 결혼까지를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바닥에 깔고서 그의 이야기에 집착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가 맨날 쭉뿍빵빵 술집 아가씨들을 데리고 잠시 잠깐식 살림을 산다는 소문인지

풍문까지 그럴사하게 풍을 섞어 부풀려서 그러지 못하는 한풀이 엇비슷하게 술안주 감으로

씹기가 일수였던 것이다.

 

"요새는 뭐 하고, 아니 뭐 묵고 사노?"

이용원 사장이 물었다.

"밥 묵고 산다, 왜?"

그가 또 사투리를 적당히 섞어서 큰 목소리로 답을 하였다.

"이 자슥이 오랜만에 나와서도 건방지네. 밥은 뭐해서 얻어먹나 말이다. 빌어먹나?"

왕년에 주먹을 좀 썼던 춘보가 말했다.

그는 빈포에서 자랄때는 떡보라는 별명으로 힘이 세더니 어른이 되어서는 노가다 십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의 실제적 예가 되는 인물인데 요새는 일감이 많이 줄어서 이용원에

나와 노는 날이 많았다.

 

"나야 전부터 남대문 시장의 나까마 아이가. 지금은 주로 메가네를 취급해."

그가 움찔하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정확한 답을 찾아서 진지하게 답을 한는다는 투로

말을 춘보의 말을 정중하게 받았다.

"메가네 나까마 하다가 요새는 아예 안경점도 하나 차렸어."

그가 말을 이어 조금더 정확한 근황을 설명했다.

"안경점? 그런데 왜 그렇게 발걸음이 없었노?"

춘보도 조금 언성을 낮추어 친절한 말투로 물어보았다.

"메가네 장사라는게 바뻐."

그는 소위 메가네 나까마라고 안경테를 생산공장에서 외상으로 사다가 남대문 시장내의

안경점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데, 공장이나 안경점이나 모두 세금을 포탈하도록 하는

무슨 그런 잇점을 중계해주는 역할이 된다는 것이었다.

더우기 요즈음은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선글래스를 주로 다루는 안경점을 아예 하나

냈다고 하였는데 사실 여부는 미지수였다.

 

어쨌든 그는 한동안 자신의 안경 장사를 과시하며 허풍도 많이 떨더니 요즈음은 중국 짝풍때문에

재미가 많이 줄었다고 엄살도 슬슬 피웠다.

주로 대구 등, 지방 공단에서 로열티 내고 생산되는 명품 안경을 세금을 뚝떼고 남대문 시장의

일본 관광객 상대 안경점에 넘겨주는 중간 거간꾼, 속칭 나까마 장사가 예전 같지는 않다는 말이

그에게 점심이라도 사라고 하는 동기생들의 성화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임마, 대구 공장은 무슨 공장이야. 네가 중국에서 밀수와 보따리 장수로 짝퉁을 들여오다가

걸렸다는 소식도 내가 알고 있어!"

춘보가 으름장을 놓았다.

"에이,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지금은 가게를 내어서 그런 짓 못해."

"임마, 그 가게 낼때 너 죽은 춘희한테서 돈 빌려썼고 갚지도 않았다면서?"

또 춘보였다.

"자꾸 억울한 소리하지마. 원금은 다 갚었어."

"하하하, 네가 춘보한테 다 넘어갔구나. 우리가 네 소식을 어떻게 알어, 이놈아!"

강형이라고 부동산 경매하는 친구가 거들었다.

그는 서울 지방 법원, 중부 지원에서 하는 경매만 전문인데 정한 날짜만 주로 일을 하고

노는 날이나 경매 물건의 현장 답사를 다녀와서는 이곳 건강이용원에 꼭 들렀다.

안마를 기차게 잘하는 중년의 면도사와 눈이 맞았다는 말도 떠돌았으나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이고 주로 고스톱을 치며 놀다가 가곤 하였다.

 

"너무들 하네. 친구 좋은게 뭐야. 소문듣고 왔는데 너무 박절하네."

창식이가 말하였다.

"임마, 니가 그 동안 년회비도 한 푼 안내고 지내다가 장개 간다고 혼인빙자로 돈을 뜯으러

왔으니까 그렇지."

다시 춘보였다.

"아니 내 결혼식장에 축하하러 와서 자리 좀 채웠다가 식사와 소주한잔 하라는 건데,

밥 값만 해도 축의금이야 못 건지겠냐---."

그가 진실로 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시시 봉투에 든 청첩장을 몇장 꺼냈다.

청첩장에는 신랑 "이창식"과 함께 "이옥선"이라는 이름으로 신부를 밝혔으니 처음에는

아무도 그녀가 "옥사나"라는 이름의 러시아 여자인 줄을 몰랐다.

청첩장의 형식도 기이하달까, 규격 미달이었다.

앞뒤 거두절미하고 "이창식"과 "이옥선"이 결혼을 하오니 많이 와달라는 식이었다.

 

"야, 느그들 동성동본 아이가?"

누가 소리를 질렀다.

"헤헤이, 노랑머리 백인 가시나다. 키도 늘씬하고 몸매 좋고 그렇다."

"어? 미국 여자가?"

고스톱에 전념하던 친구들의 눈이 왕창 그에게 쏠렸다.

"헤헤이, 미국 백인 여자가 내한테 오것나. 쏘련, 아니 러시아 여자다."

이창식이 양 손은 연신 부비면서도 목에 힘을 주고서 말을 받았다.

"아, 그 뭐더라. 중앙 아시아---."

누가 유식한체 말을 꺼내는데 춘보가 얼른 끼어들었다.

"아, 브라지보스토크다. 내가 한번 놀아본 여자가 거기 출신이야."

"뻥이 쎄네?"

누가 그를 놀렸다.

"임마, 내가 을지로 오가에서도 놀고 워커힐 아래 술집 동네에서도 놀아봤어. 걔들

냄새가 많이나. 피부도 거칠고---.영어도 못하고 우리말도 못해. 그저 몸으로 댓쉬

하는거야, 우하하하."

"우와!"

역시 강한 자에게 바치는 대중의 공물은 존경 밖에 없었다.

그는 좌중을 압도하였다.

그러자 이용원의 정원장이 나섰다.

 

"피부야 흑인 여자지. 여기 흑인 GI 여군들도 있지만 요새는 군기가 엄해져서 힘들어졌고

문관으로 나온 애들이나 혹은 잠시 관광차 온 애들이 주로 돈 좀 벌려고 놀고 있지---."

역시 이용원 터주대감의 묵직한 말이 이번에는 춘보를 눌렀다.

누가 정원장을 이 바닥에서 이길 것인가.

그 틈에 창식이가 말을 이어갈 기회를 잡았다.

"브라지보스토크가 아니야. 블라디 보스톡이야. 동방의 빛인가 뭐 그런 뜻이라데.

그런데 우리 마누라는 거기 출신이 아니고 하바로프스크에서 왔어."

"어, 너 많이 아네."

춘보의 목소리가 약간 비틀거렸다.

"우리 마누라 될 옥사나한테서 들은 풍월이지 뭐. 옥사나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대학도

나왔어.

그래서 우리 말도 금방 다 배우고 우리 사이에는 지금 우리말로 의사가 통한단 말이야. 놀랬지"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이창식이었다.

특히 대학을 나왔다는 말에 그 근처에도 못가본 빈포 출신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창식이도 어디인지는 몰라도 대학을 나와서 무슨 기술사 자격증인가를 갖고 있다고

뻐긴 바 있었는데 그걸 누가 조사하고 확인을 할 수 있으랴.

그는 어엿한 대학 물 먹은 사나이로 이미 군림하고 있었고 이제는 드디어 부부가 모두

대학을 나온 격조 놓은 커플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엄숙한 순간이 도래한 셈이었다.

그렇게 가약을 맺은 부부였는데 그 하바로프스크 출신의 옥사나인지 이옥선인지 하는

노랑머리 아가씨가 도망을 갔다는 것이었다.

 

"야들아, 내 마누라 좀 찾아줘."

그는 앞뒤 차릴 것도 없이 뜬금없이 죽는 소리를 부르짖었다.

"어? 무슨 마누라야?"

머리가 좀 둔한 춘보가 네가 언제 장가나 갔더냐는 식으로 놀라 물었다.

"아, 내 마누라 옥선이 말이야."

"옥선이가 뭐고?"

"옥사나 말이야, 이 놈아. 이 무정한 놈아!"

"아, 그 노랑머리 가시나 말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친구 마누라한테 가시나가 뭐냐."

"도망간 년인데 가시나면 어떻노!"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얼마나 되었노?"

"한 6개월 살다가 도망을 갔어."

"돈도 훔쳐갔나?"

"착한 년이 그런짓은 안했는데 내가 사준 패물은 다 갖고 갔어. 지 이름으로된

통장에 또 돈이 좀 있었고---."

"그럼 먹튀한거네 뭐. 먹고 튀는거 말이야."

춘보가 의기양양하게 전말의 성격을 규명하였다.

"누구하고 눈이 맞았나? 같은 노랑머리든가---."

"그런 기미는 없었어. 이 자슥아!"

이창식이 벌컥 화를 내는 기색이더니 이내 소리를 줄여서 "휴대폰은 자주 울렸지만."

이라고 힘없이 매듭을 지어 대답을 했다.

"임마, 그게 그거네 뭐. 러시아 말로 했을거 아냐?"

정 원장이 분석을 날카롭게 하였다.

"그럴때마다 훌쩍이고 울어서 남녀 관계는 아닌거 같았는데---."

"이런 맹추, 남녀 관계가 아니면 와 우노?"

누가 잘난듯이 끼어들었다.

"지금 그런 이야기할게 아니고 우리가 한번 찾아보자. 우선 사진을 만들어서 한장씩

갖고 놀토와 일요일에 좀 돌아다녀보자. 이런 애들이 가는데가 뻔하거든.

식당은 조선족 차지이고 벽지 바르는 데는 중국애들, 조립공장에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몽골,

방글라데시 아이들이고 노동판에는 티벳이나 우즈베키스탄 아이들이야.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애들은 필리핀에서 왔는데 그룹을 만들어서 놀거든. 그러니까

노랑머리 가시나들이 가는데라면 술집과 밤무대에서 벌거벗고 춤추는 것 말고는 없어."

"설마?"

정원장의 날카로운 분석에 이창식이 낭패한 얼굴로 이의를 달았다.

"설마라고? 노랑머리라면 사죽을 못쓰는 게 우리나라 한량들이잖아. 더구나 옥선인가

하는 네 마누라는 몸매도 좋다면서? 니가 맨날 자랑했잖아?"

 

  

  

  

 

 

마침내 뜻이 통하여 빈포 초등학교 동기들은 남녀 불문히고 옥사나라는 백인 여성을 추적하는 큰일에 나서게

되었다.

현상금도 백만원이 걸렸다.

이창식이 얼굴이 노래져서 동기회 기금에 거금을 공탁한 결과였다.

더구나 이 일이 커진 것은 여학생들 중의 일부가 벌써부터 파파라치 사업을 해오고 있어서 더욱 활기를

 띄었다.

"야, 파파라치가 머꼬?"

춘보의 말이었다.

"아이구 빙신아, 교통위반이나 업소 위반을 사진 찍어서 제출하면 보상금이 얼만데. 한달에 오백도 번다

카드라."

늦게 서울에 올라온 영옥이가 말하였다.

신랑이 중국으로 사업하러 갔다가 소식이 끊어져서 빈포를 떠나 늙으막에 서울에 온 동기였다.

"돈 많이 벌었나?"

춘보가 윽박질렀다.

"아니, 뭐---"

영옥이 얼굴이 벌게졌다.

"협박 당했나? 어느 동네고? 말해봐라."

"아니야."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파파라치가 돈이 된다는 소문에 그걸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가 카메라와

도청장치 사느라고 바가지만 썼고 학원비로도 얼마를 뜻겼다는 것이었다.

"그래, 성과는?"

"뭐 남녀가 불륜하러 MT 들어가는 장면 잡고 원거리 녹음 장치로 숨 가쁜 소리까지 녹취했는데 보상금도

못받고---."

"MT는 뭐고? 그리고 보상금과 포상금을 잘 구별해 써야 된다."

친구 부인의 도망 사건을 듣고 무언가 보탬이 될 일이라도 없겠는지 하고 나와 앉아있던 박 교수의 말이었다.

"헤헤이, 참말로 뭘 모르시네. MT는 모텔이고 요새는 아흥 아흥하는 소리를 아무리 녹음해봤자 삽입 현장과

물증이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이가. 그런거 찍어봐야 아무 돈되는 일 없어."

이발관 정원장의 프로다운 말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핑계 삼아 인천 연안부두의 "연안 크루즈"라는 데를 찾아갔다. 물론 대부분이 카메라를 들고서.

카메라를 든 이유는 여럿이 흩어져서 무조건 백인 여자라면 사진을 찍어 이창식에게 달려가 확인을 받으면 

모두 그리로 몰려가서 잡기로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바가지 쓴 영옥이도 모처럼 신바람이 나서 당연히 동행을 하였다.  

연안 부두에서 크루즈를 탄 그들은 참으로 대단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이렇게 백인

여자들이 많이 진출한건지, 정말 국제화가 제대로 된데는 이런 유흥업소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많은 아가씨들 중에도 옥사나는 없었다.

크루즈라는 이름을 옆구리에 크게 두른 배는 술취한 사람들을 싣고 소래포구로 흘러갔다.

 

이윽고 인산인해를 이룬 포구에서 두시간 후에 배는 다시 돌아갈테니 젓갈을 사고 횟감을 맛보고

돌아오라는 전갈에 그들은 그때까지 아무 소득도 없이 뱃전을 넘어 어시장으로 들어갔다.

"야, 니 마누라 몸매 좋다고 자랑하더만 별 볼일 없나보네. 저런데서 춤도 못추고. 하여간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내려와서 까지 몸을 비비 꼬는데 저게 뭐 그냥 홀딱 벗었더구만."

춘보가 외쳤다.

"아니야, 옥사나도 몸매 끝내줘, 아이구 두야~"

이창식이 반론을 전개하다가 머리를 제 주먹으로 때리며 우는 시늉을 하였다.

"야, 저 노랑머리 봐라!"

영옥이 소리를 지른건 그때였다.

포구 뱃전에 바싹 붙어서 방가로 스타일의 횟집이 몇군데 잇었는데 날이 더워서 포장을 올린 구멍으로

노랑머리 미녀가 술을 따루고 있었다.

"옥사나다, 이년~~~"

창식이 달려들어가서 노랑머리채를 잡아채는데 건장하고 얼굴이 검붉은 사내가 굵은 팔뚝으로 가느다란

창식이의 손묵을 잡아 비틀었다.

"이놈, 너 이바닥의 춘보를 몰라?"

순간 춘보의 발이 날렵하게 사내의 얼굴을 쳤다.

"내 저 여자 언젠가 난리 칠줄 알았지."

새우젓 드럼통을 비우던 젓갈 장수 아주머니가 혀를 찼다.

"저 여자가 여기 선장들 주머니를 다 훑었어요. 저기 춤추는 아가씨들은 다 헛지랄이고 진짜는 여기서

쪽배 선장 후리는거라요. 단수가 높아요. 우리말도 잘하고. 시베리아에서 대학도 나왔다던데."

 

"옥선아, 옥선아."

이창식이 코피를 흘리며 슬피 울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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