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전설의 고향에서

원평재 2010. 4. 16. 07:57

 

 

    

   

                                                                           전설의 고향에서

 

 (빈포 사람들 연작이지만 따로 읽어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시간 있는가?"

빈포 사람들 연작에 골몰하는 박 교수에게 평소 가까운 향우, 곽 사장이 휴대폰을 울렸다.

"나도 이제 은퇴거사, 할 일이 있나. 그래도 오라는 데는 많아서 다이어리 수첩 칸을 하루

한건씩으로는 골라서 메꾸어 나가는데 오늘은 기이하게도 공란이네. 저녁까지 다 비었어."

박 교수가 뭐 할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뉴앙스를 깔았지만 그러나 곽 사장의 제안을 놓치면

낭패라는 심정이 은연 중에 삽입된 답변이었다.

"그럼 전설의 고향에서 6시에 만나세. 거기 음악당에서 첼로 실내악 연주가 있어."

곽 사장이 재담어린 말로 얼른 약속을 정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차, 전설의 고향이라니, 박 교수는 조금 난감하였다.

전에 곽 사장이 우스게 소리로 빈포 향우회를 웃겼던게 기억은 생생하였다.

하지만 웃긴 기억은 생생한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조금 헷갈렸다.

 

웃긴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요즘 완전히 치매의 경지를 헤매잖아. 엊그제는 예술의 전당을 갈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목적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더라구.

그래서 나온다는 말이 전설의 고향으로 가자고 했지.

헌데, 택시 기사 반응이 걸작이야.

그냥 네, 하더니 예술의 전당으로 알아서 달려가는거야."

좌중이 폭소했고 특히 여자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빈포 초등학교 총 동문회 임원들의 회식자리에서 였다.

그런데 헷갈린 곳이 예술의 전당인지, 세종 문화 회관인지, *****인지,

그것이 문제였다.

 

그날 동문회 여성부 총무를 맡고있는 최영옥이라는 중년의 여자는 용기의 화신처럼

가슴이 푹 패인 상의와 나노 급의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곽 사장의 그 웃기는

말이 신호인양 깔고 앉았던 방석을 걷어차고 뒤집어졌다.

그러니까 식당 마루를 데굴데굴 굴렀다는 말이다.

윗 옷은 워낙 아슬아슬했고 아래 쪽의 나플나플한 플레어 스커트도 그제서야 에라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주위에 펄럭-, 바람을 날리자 진홍 색, 으뜸과 버금의 부끄럼

가리개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 위에서 그 화려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너 와코루 입었구나."

곽 사장이 음흉하게 알은체를 하였다.

"아이고, 곽 선배님은 학교 다닐 때도 컨닝을 잘 하셨다더니. 아직도 눈은 밝으시네."

그녀가 흰눈을 하여 곽 사장을 타박하며 새삼 박 교수 쪽으로는 민망한 듯한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동기들 간에 "전설의 고향"이 전설처럼 인구에 회자된건 그때 이래였는데 그 곳 이름이

창시자 격인 곽 사장의 휴대폰으로 다시 현현되고보니 박 교수의 기억력이나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난맥상태에 빠졌.

세상에 이럴 수가 없지. 별게 다 헷갈리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는 재확인을 위하여

휴대폰을 찾았다.

하지만 방금 사용했던 휴대폰은 몸의 어딘가로 숨어들어가서 종적이 묘연하였다.

그가 주머니 속의 잡동사니와 혼연일체로 뒤엉킨 휴대폰을 오른쪽 아래 주머니에서

겨우 찾아내어 소환하려는데 이제는 또 이놈이 구겨진 바지 주머니를 원군삼아

완강하게 버텼다.

한동안의 처절한 싱갱이 끝에 모가지에 달린 줄이 인질이 되어서 마침내 납작한

그 물건은 끌려나왔으나 주인이 자세히 살피니 이번에는 밧데리가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에라, 오늘의 일진에 맡긴다. 전설의 고향은 예술의 전당이다. 그리로 가자,"

그가 결단을 내렸다.

  

예술의 전당이라면 아무렴 시장 사람인 곽 사장 보다야 먹물인 박 교수 자신이

윗길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평소 그는 고수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돌아가는 공기를

보면 곽 사장의 문화 수준이 자신 보다 압도적 우세라는 낭패한 심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전설의 고향이 터져나온 배경도 벌써 예술의 전당을 시시때때로 출입한다는 전제가

엿보이지 않은가.

원인분석을 해보자면 요즘같은 불경기에 유통업을 하는 곽 사장의 돈주머니 덕분은

아닌듯 하였고 모든게 그의 효녀 탓, 아니 효녀 덕분인가 싶었다.

 

세상에!

우리 시대에 그런 효녀를 딸로 갖다니.

타인이 벌이는 세상사에 별로 부러워하거나 긴장감을 갖지않고 살아가는 박 교수도

곽 사장의 그 부분만큼은 샘이 날 지경이었다.

예컨대 박 교수가 이 친구와 간혹 고향인 저 먼 남쪽나라 빈포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동행을 할라치면 언제나 차비 낼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용인즉 그 친구의 효녀가 미리 왕복 표 2인분을 인터넷으로 예매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친구 효녀의 호의 때문에 자신은 기차표나 버스 표를 인터넷으로 예매 할 줄

모르는 신세가 되어버렸다고 진담으로 탓을 할 지경이었다.

사실 향우회 관련 말고는 국내에서 직접 기차와 버스표 예매를 할 기회가 어디 있으랴.

외국여행?

그건 여행사에서 또 다 알아서 해 주지 않던가---.

 

그러니 인터넷 예매문화 절차를 익힐 절호의 기회가 친구의 효녀 때문에 사라졌다는

비명이 단순한 과장이나 농담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자주 이런 비명을 지르는 것은 고마움에 대한 덕담이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하도 미안하여 왕복 차칸에서 음료수라도 살라치면 이번에도 그 친구는 선수를

빼앗기지 않았다.

딸이 기차와 버스 표에 더하여 출장비라는 애칭으로 노자 돈을 또 두둑이 주고서

친구들에게 행여 신세 질 일은 하지말라는 엄명성 당부를 단단히 했다는 것이다.

재주가 있어서 학교 다닐때 부터 장학금에 용돈까지 벌어서 다니더니 좋은 회사에

두번인가 세번씩 스카웃되어 연봉과 인센티브도 그때마다 만만치 않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어떤 기회에 들은적도 있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야 있지만 돈 쓰는 일에는 인색한 것이 인지상정인데

젊은이가 이렇게 어른 공경하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박 교수나 향우들은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샘에 겨워 시름없이 나누곤 하였다.

 

그 효녀는 시집을 가기 전 부터 그런 자잘한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더니 시집을 가고

나서도 효행은 지속인가 보았다.

예술의 전당 연주회의 경우만 보아도 알수가 있지만, 그 외에도 곽 사장이 누리는

즐거움은 예서 그치지 않고 이름난 연극이나 공연 예술의 경지에 까지 가이 없었고,

아이폰, 넷 북, DSLR에 이르기까지 효행의 흔적은 없는 데가 없었다.

병원 관계만 해도 그랬다.

아파도 병원 다니기가 성가신 판인데 이 효녀는 아버지를 채근하여 자기 회사 특약의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때맞추어 받게하였다.

나이 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들이 여기저기 조금씩 다 상해있지 않을리 없어서

그에게도 치명적이지는 않으나 무시할 수도 없는 성가신 질병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손을 쓰자면 가계에 무리가 갈 정도의 적지않은 비용이 들 규모였다.

 

하지만 효심이 있으면 하늘도 돕는가.

그녀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직계 부모의 병환인 경우 치료비에 더하여 마음의 안정을

위한 특별 위로까지 준다는 것이 아닌가.

병원 진료 서류를 딸에게 갖다주는 자리에 할일없는 친구 몇사람이 따라나섰는데

눈물이 글썽한 그녀의 진심어린 표정을 보고는 모두들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삼년 우환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효녀의 예를 보면 옛 말씀의 허사로고."

박 교수가 그날 효녀가 베푼 점심 자리에서 토로한 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려간 박 교수의 이날 일진이 좋았는지 그 '전설의 고향'은

'예술의 전당;이 맞았다.

두 사람은 전설의 고향 정문 앞, 마을 버스가 서는 곳에서 딱 만나게 되었다.

정교한 약속이 아니었지만 흰머리의 두 사람이 똑딱이 카메라로 갓 모양의 본관

건물을 철컥 철컥 찍어대는 양상이었으니, 하긴 서로 금방 만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저 갓모양의 건물이 오페라 하우스야. 우리 신통치 않은 촬영은 그만하고 저녁부터

먹세."

곽 사장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도 잘 알어. 저게 작년에 불이나서 난리가 났던 건물일쎄. 갑작스레 너무 문화인

인체 하지 말게, 그리고 이 사람아, 목 소리 좀 낮춰."

박 교수의 말이었다.

"목소리 낮추라는 자네 목소리도 한 옥타브 높네 뭘. 초록은 동색이야."

"그런 문자 이럴때 쓰는게 아닐쎄, 하하하."

"아무렴 어때? 요즈음 부쩍 모르는 사이에 귀가 잘 안들려서 테레비 음량을 높이다

보니 주말에 손자들이 오면 놀라서 귀막고 펄쩍뛰잖아. 하하하."

"맞어, 할 말 없네. 초록은 동색이야. 그건 그렇고 오늘도 또 감동 먹었네. 자네 그

효녀의 작품이지, 오늘 행사도?"

"아니야, 내가 공연 기획사의 무슨 퀴즈에 응모했더니 당첨이 되었어. 두 사람

초대권이."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어?"

"딸이지."

"그러니 역시 효녀의 작품이구만. 밥은 내가 살께."

"아니야, 오늘 공연 티킷은 값도 싸. 이만원 짜리야."

"이 양반아. 20만원, 30만원하는 오페라 특별 좌석 값 보다도 더 값진 자리네.

저녁은 저기 길건너 순두부 집에서 먹지. 값도 싸고 지금 자네는 병환 중이라

육고기도 못먹지 아마?"

"꼭 금육령은 아니지만 좋을게 없겠지."

"금욕도하게. 자네 지난번 영옥이 보는 눈길이 다르더군. 하하하."

"영옥이 하고는 비싼 연극 보러 다닌다네. 몰랐지?"

"예끼, 이 사람. 최근에는 뭘 봤어?"

"제목이 '논란'이라는 건데, 남녀 주인공이 모두 발가벗고 나오는 거야!"

"논란이 아니라 논쟁이겠지. 나도 신문에서 봤어. 그것도 퀴즈 당첨인가?"

"물론!"

"경사났네, 경사났어."

 

두사람은 순두부 집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 같으면 반주 한잔 했을텐데---."

곽 사장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 공연장에 술 냄새라니 삼가해야겠지만, 안마시는 것하고 못 마시는 건

차이가 크지."

"얼마나?"

"하늘과 땅!"

"하하하"

모처럼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전설의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뒷쪽 경내에

있는 작은 연못까지 산책을 다녀왔어도 8시 공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두 사람은 커피를 한잔씩 뽑아 음악 분수 앞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해가 막 지면서 뿜어내기 시작하는 음악 분수 장면이 장관이었다.

박 교수가 또 똑딱이 카메라를 꺼내어서 자동으로 찍고 있자니까 곽 사장도 비슷한

똑딱이를 꺼내면서 ISO니 장노출이니 무슨 문자를 섞어서 설명을 하였다.

"이 양반아, 설명이 아니라 내 귀에는 설교로 들리네. 내가 게으르고 재주가 없어서

그런거 맞추지는 못하고 그냥 팍팍 찍을 따름이야. 포토 샵도 눈이 나빠져서 엄두를

못내고---."

"아, 그래도 취미 생활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지. 나도 이제 평생하던 유통업

그만 때려치우고 카메라 찍사 일에만 매달려 볼 작정이야."

"그만하게, 지난번에는 향우회 야외 행사에서 화이트 밸런스인지 뭔지 촬영 교시를

내리더니 그날 자네 사진은 다 버렸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찍은 사진

아니었더라면 그 행사 기록 큰일 날 뻔했지!"

박 교수가 핀잔하였다.

"하하하, 아이들이 수강비까지 마련해주어서 카메라와 비디오 촬영반에도 다니는데

귀찮아 죽겠네. 체면이 있으니 중간에 자퇴할 수도 없고, 하하하."

마음씨 좋은 그가 교수의 까탈을 웃음으로 넘겼다.

"Raw 촬영이 어떻고 아웃 포커싱이 어떻고 하더니 그런건 해봤어?"

박 교수가 또 퉁명스레 물었다.

"배운건 많은데 하나도 해보지는 못했지, 허허허"

그가 음조를 바꾸어서 낮고 천진스레 웃었다.

"자, 추워지는데 이제 들어가세."

두사람은 누구라 할 것없이 서로를 채근하여 음악당으로 들어갔다.

 

"야, 참 대단하네. 음악회에는 저렇게 턱시도 입고 오는 남자에다가 보석을 휘감고

오는 여자들이 보여서 간접 만족이나마 기분이 좋아."

마음씨 좋은 곽 사장의 탄성이었다.

"자네 마음은 참 못말리겠네. 나는 그런게 공연히 꼴불견으로 보여. 저거봐,

봄 밤이 차긴 하지만 저 모피 외투는 정말 좀 심하잖아."

박 교수는 역시 꼬장꼬장하였다.

"넉넉하게 봐줘. 그래도 성의가 대단하잖아."

"그래, 보는 사람을 위한 정성이 갸륵한 점도 많네."

마침내 교수도 이상한 동의를 하였다.

 

이윽고 7시 반이 되면서 덩덩하고 징이 울면서 입장을 채근하였다.

"가만있자. 이거 오늘 횡재한거 아냐? 티킷에는 첼로 앙상블이라고 했지만

여기는 거룩하게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인데---?"

잘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 섞이면서 박 교수가 근심스런 얼굴이 되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거 완전히 날짜를 잘못잡았나? 아니 날짜도 맞는데?"

두 사람은 마침내 연주홀 입구까지 밀려가서 표를 내밀었다. 

"아, 선생님, 여기는 콘서트 홀인데요. 리사이트 홀은 저기 끝 쪽으로 가시면---."

아름다운 아가씨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안내를 하였으나 거부의 몸짓은 단호

하고 딱딱하였다.

 

끝쪽은 적막강산이었다. 

아니 꼭 적막까지는 아니었지만 비교되는 느낌이 그러하였다. 

"야 이거 서울 운동장으로 치면 보조 경기장이구만."

곽 사장이 계면쩍게 혀를 찼다. 

"아니야, 리사이트 홀에 맞는 연주들이 있어. 크기만 갖고 말할게 아니야."

박 교수도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좀 객적은 생각이 드는건 마찬가지였다. 

"자위하지 말게. 같은 실내악이라도 요요마의 독주는 콘서트 홀에서 한다고

여기 나와있네, 뭘."

이번에는 오히려 곽 사장이 끌탕을 치며 씩씩거렸다.

"아니, 초대한 자네가 그러면 어떻게하나. 웃을까 말까?"

"울고 싶어라."

곽 사장이 웃으며 답하였다.

 

리사이트 홀은 아담하여 아름다웠다.

연주의 전반부는 최대 10명의 첼리스트가 나와서 문자 그대로 첼로 앙상블을

시현하였으나 멜러디는 썩 귀에 익지 않거나 어떤 레파트와는 실험적 악보조차

있었다.

인터미션이 되자 로비에서 곽 사장이 투덜거렸다. 

"아이구, 진땀 뺐네. 차에서 스테레오 듣는거 보다 훨 못하네."

"아니야. 좋았어. 언제 이렇게 열명의 첼리스트 연주를 원없이 듣겠으며 나중에

특별 연주처럼 나온 다섯대의 콘트라배스 연주는 가슴이 벅차더라."

"정말 느낌이 그랬을까? 교수님이라고 문화인 행세하는 건 아닐까? 헤헤."

"그래, 나도 좀 지루했어.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감상 기회가 드물어."

"그건 그렇고 연주하기 직전에 첼로가 여인들 치마폭에서 자꾸 미끌어지던데

내가 공연히 걱정이더라고. 연주할 때는 미끌어지지 않더만---." 

"하하하, 듣지는 않고 보기만 했어?"

"아니야, 듣기도 했지. "

"그럼 듣보잡일쎄."

국문학하는 교수가 전공을 살리는 듯 하더니 악기에 대한 일가견을 또 풀어놓았다.

"자네 걱정처럼 첼로의 바닥이 미끌어져서 공연 망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네. 첼로를 고정시키는 본체 밑의 저 뾰족한 것을 엔드 핀이라고 하는데.

핀 끝에 고무 받침이 달려 있어서 일단 고정이 잘 되지만 요즘은 무대에 카핏을 깔지

않고 보통 결이 치밀한 나무 마루로 되어있어서 미끌어질 수도 있겠지.

그걸 막으려고 T자로 된 받침대의 윗쪽 두 끝을 의자 두 다리에 깔고 그 T자의 

미리 파인 홈에 엔드 핀을 넣는 경우도 있지---."

"교수님은 어찌 그리 아는게 많으셔? 전공도 아니면서---?"

"딸이 첼로를 좀 했잖아."

"아, 그래 그 미국에 있는?"

"음악이고 효행이고 수준은 모두 함량 미달이라네. 하여간 지금 거기서 딸들에게

못다한 첼로를 시키는 모양인데 레슨 비가 서울 보다 십분의 일 수준이라고

즐거워 하누만. 러시아와 동 유럽에서 넘어 온 교향악단 출신들이 많아서

그렇다네."

"그래? 오다가 마을 버스 의자 뒤판에 붙은 스티커를 보니 첼로 6만원, 바이얼린

7만원 그렇던데? 여기가 전설의 고향 동네라서 저런 광고가 있구나 싶어 유심히

보았지."

"그건 음악 학원이라서 그렇다네. 여럿이 함께 배우고 개인 교습은 겨우 5분

정도라나 뭐 그래. 진짜 개인 교습을 받으려면 따로 몇 십만원이 매달 든다는군.

그것도 일주일에 한 30분 정도만 봐 주는데 말이야. 하지만 미국 중소도시에서는 

교습비로 35불을 내면 한 시간 꼬박 개인 교습이라는군.

그건 그렇고 마을버스가 10시 40분까지 다니는데 놓치겠네---."

"시간 타령하는걸 보니 자네도 지루하구만? 하하하."

 

연주의 후반부가 되자 첼로 앙상블의 진면목이 나왔다.

'콜 니드라이'에서 부터 시작하여 '핀란디아'를 거치더니 마침내 피아졸라의

'리베르땅고', 바로 저 아르헨티나의 경쾌한 음악까지 첼로와 콘트라배스의 음역은

가이없었고 청중은 열광하였다.

막차 시간을 개의치 않고 두사람은 청중과 함께 앙콜을 연호하였으나 앙콜 곡이

준비되지 않았는지 끝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남부 주차장 지하철로 가는 마을버스

막차가 출발 직전이었다.

"영옥이는 어디 두고 오늘은 내가 대타인가?"

끝내 박 교수의 질문이 나왔다.

"계꾼들하고 동남아 여행 갔다네."

기다렸다는 답이 툭 터져나왔다.

 

<이번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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