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장편; 빈포 사람들

청산별곡

원평재 2011. 2. 11. 01:11

 

 

빈포 초등학교에서는 해마다 광복절이면 총 동문회 주관으로 운동회를 개최한다.

삼복더위에 무슨 놈의 운동회냐고 따지는 동문들도 초기에는 많았으나

봄, 가을 행락 철에 누가 꼴 난 초등학교 운동회에 올 것이며 눈 내리는 겨울철에 한다면,

이 바닷바람 거친 땅에 얼어 죽으러 올 년 놈이 있겠냐고,

십여 년 전 처음 행사가 출발하던 때의 총 동문회 회장이 대갈 일성하는 바람에 잡소리가

쑥 들어가 버린 역사도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여름 운동회가 웬일이냐는 항의를 한 축들은 대저 후원회 회비 같은 건 한 푼도 내지 않는

족속들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튼 남해의 빈촌, 빈포 초등학교의 여름 운동회는 자리를 잡아갔고 재경 동기들도 자신들의

성공 사례를 고향 땅에서 확인 받을 겸, 광복절을 기려서 머나먼 남쪽 나라 빈포 땅으로

모여드는 것을 연례행사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빈포 초등학교에서도 25회는 특별히 요란하였다.

크게 잘된 사람도 없는 동기들이었지만 그게 또 쉽사리 동기간의 경쟁을 유발하기가 쉬어서

항상 시끌벅적하였다.

이제는 나이들이 50줄에 접어들고도 꺾어지는 연배이어서 이 사람들도 점잖은 흉내들을 낼 줄

알게 되었지만 40대 초에 시작된 이 행사에 처음 참가할 때의 분위기는 가관이었다.

그 먼 길을 "남반"이나 "여반" 출신 모두가 자가용 승용차를 끌고 내려오는 추태도 마다않더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추세로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힐 때쯤에는 난데없이 남녀 동기들이 "삼천포로

 빠진다"는 풍설이 돌기 시작 하였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그동안 멀쩡히 잘 지내던 남녀 동기들이 1박 2일 일정에 객기가 발동

하여서인지, 집에다가는 고향 방문 일정을 2박 3일이라고 해놓고는 하룻밤을 빈포 인근의 삼천포

모텔에서 눈 맞은 남녀 동기들끼리 얼렁뚱땅 밤을 지세고 왔다는 “야설”이 그것이었다.

 

무슨 시골 운동회에 2박 3일이나 되는 "장기 휴가(?)"를 각자의 집에서 결재 받아올 수 있었느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오랜만에 고향 본가로, 혹은 친정집으로 내려간다는 겸사 겸사의 의미를

들이대면 어느 남편이나 마누라가 늘어나는 날짜를 용납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집안에 따라서는 일주일씩 최장기 휴가를 얻어내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천혜의 조건과 상황에서도 삼천포로 빠진 비밀이 새나온 것은 야설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의 입이 담아두지 못한 낮말과 밤말의 결과 같았다.

고약할 손, 행동이 같았어야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로 백년해로할 부부가 갈라섰다는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고 운동회 행사가

위축되었다는 말도 없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이 25회 요란한 동기회가 누려온 예년의 성황에 다소 위축 현상이 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회장직책은 두해에 한번 씩 바뀌어가며 금전적 과시의 기회를 동기들에게 공평히

배분해왔는데 실질적인 노력 봉사, 가령 연락책임이라든지 특별 찬조금의 징수, 대중교통 티켓의

단체 구입 등등을 완벽하게 해오던 김완기 사무총장이 금년 초 어느 몹시 추운 날에 그만 풍을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이제 동기들 간에는 막 자녀들의 혼사도 시작되었고 연로한 부모님들이 작고하는 현상도 슬슬

일어나는 중요한 시점에 사무총장이 이렇게 쓰러지고 나니 광복절 운동회 참석이라는 빛나는

전통은 그만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고 말 지경이었다.

 

재경 회장 감투를 막 쓰게 된 신발 가게 하는 박청도 사장은 사무총장을 갈아야한다고 펄펄

뛰었으나 풍 맞은 친구를 야박하게 갈아치우자는 운동에 참여할 사람은 없었고 당장 그 사무총장

직을 맡을 후임 인재도 주위에는 없었다.

 어려울 때가 되니 사람값이 더 돋보였다.

김완기 사무총장은 학벌이라고는 사실 빈포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상경을 한 이후,

경기도의 어느 중소 도시의 시청에서 사환노릇을 하면서 야학과 통신 강의록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당당히 공채 과정을 거쳐 그 시청의 지방 공무원이 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동기회 사무총장을 오래 맡았으니 일 처리하는 성의와 정성이 보통 아니었다.

다만 그는 능력은 많았으나 항상 청렴하여서 가난하였고 그러다 보니 무슨 돈이나 물건으로

동기회에 기여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또 그의 자랑이었으며 언젠가는 공무원 청백리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헌신적 활동으로 동기회는 항상 활기에 찼으나 돈을 좀 번 동기들끼리 돌아가며 하는 회장들은

적은 돈, 큰 생색으로 그를 머슴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 돈 버는 일 말고는 범절이 없고 터가 좁고 가난했던 마을에서 자란 배경에 걸맞고도 어울리는

작태였으나 그만은 대범하였다.

 

그는 여러 방면에 재주가 있어서 피리와 퉁수도 잘 불었고 묵화도 잘 쳤다.

하지만 그런 쪽의 재능이 남들의 평가를 받아내고 본인의 자부심을 지탱 시키려면 여러 가지로

자기 신분 조건이 뒷밭침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탓일까,

어느 날 갑자기 그때까지 해오던 고급 “지랄"은 다 때려치우고 새로 민짜 목각 공예를 시작하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늦게 시작한 탓에다 고급 공예로 마무리하기에는 돈과 시간과 칠기 공예 같은 특수 기술이

뒤따르지 않아서 그의 "새 지랄"은 도예로 치자면 항상 초벌구이 정도에 머물었지만 보는 사람들의

느낌은 항상 경이와 신선함이었다.

공짜로 그의 목각을 건네받기가 뭣하여 박 교수는 약간의 선물을 답례로 보냈으나 그런 염치도 없이

널름 받아먹고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친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박 교수에게도 하나 이상 자신의

작품을 주는 일은 없었다.

매일 저녁마다, 그리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나무를 깎는 그의 재주와 정성으로 보아서 목각은 꽤

많을 텐데도 그는 다른 경우와 달리 이것만은 남 주는 일에 인색하였다.

 

"도대체 그 물건들을 다 어디다 두는 거야? 그 놈의 집이래야 광교산 아래 열댓 평 임대

주택인데---. 지금 우리가 받은 것들 말고 조금만 더 예술성을 띈 게 있으면 그런 작품을 순수 예술로

다른 데에 소개를 좀 하고 싶어서 말이지."

박 교수가 박 회장에게 그런 식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하하, 교수도 모르는 게 있구만. 그건 내가 좀 알지. 비밀이야. 잘 깎은 목각들은 장 여사라고

그 여자 집에 좀 있지."

"아니, 그 친구에게 여자가?"

"여자가 있어도 여간 예쁜 여자가 아니야."

박 회장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입맛 다시는 시늉까지 하였다.

"남의 여자한테 이런 친구를 봤나. 더구나 동기동창 간에.“

“아, 뭐 그 친구도 본마누라가 아닌데 내가 좀 기웃거리면 어때? 하하하.”

“에이, 이 사람아, 자네 정말 못 말릴 손이네. 여자라면 항상 걸신에, 궁 끼에 환장이로구나. 자네

그 싱거운 표정은 이제 그만 거두시고 우리의 김완기 사무총장 가정 사정 이야기나 조금 더 들어보자.

그 녀석이 어려운 경제 사정에 더하여 여자 문제까지 엎친 데 덮친 줄은 짐작도 못 했네---.

여지껏 도통 자기 부인 이야기나 자식 이야기는 하지 않았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박 교수는 신발 장사하는 박 회장의 탐욕스런 눈빛과 입맛 다시는 시늉을 힐난하면서도 궁금증은

누를 수가 없었다.

신발 장사라고는 하여도 사실은 중국에서 컨테이너로 미국 상표의 명품을 들여오는 그의 사업

규모는 여간이 아니었다.

"궁금하지? 그럼 내일 모레, 여주에 있는 내 농장으로 한번 와봐. 그 때 그 여자도 나타날 테니 한번

구경해보고 아울러 김완기네 가정 사정도 좀 더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이런 대화 끝에 박 교수가 김완기의 여인을 만나보게 된 것도 벌써 몇 해 전 일이었다.

 대략 김완기가 풍을 맞기 3년 전 쯤 이었을 것이다. 그 때가 계절로는 6월이던가,

신발 장사, 박 회장은 평소 자랑해 마지않던 여주 농장으로 박 교수를 초대하였다.

땅의 일부는 절묘하게 국도에도 면해있는 만평쯤 되어 보이는 야산 자락의 밭이었는데, 또

한쪽으로는 개울물까지 흐르면서 그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빈포 초등학교 동기 하나를 더 불러서 자기 승용차에 태우고 박 교수는 초여름 유월의 농장을 반은

견학하는 기분으로, 또 반은 호기심을 마음에 담고서 찾았던 것이다.

전원주택이란 누구에게나 꿈같은 대상이 아니던가. 꽤 넓은 농장의 한쪽에는 페인트 색갈이

울긋불긋 조악한 농가 주택이 자그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밖으로는 남자 신발 둘과

플라스틱 여자 샌들 하나가 우선 그들을 맞고 있었다.

박 사장의 아우디 외제차와 김 사무총장의 무쏘 중고차도 뒤 곁에서 낯익은 체를 하며

그들에게 인사하듯 파킹되어 있었다.

 

"이 자슥들아 손님이 오셨는데 나와서 인사도 없어?"

함께 간 동기생이 소리를 질렀다. 한여름인데도 문을 꼭꼭 닫고 있는 농가 주택의 모양새로

봐서는 아마도 에어컨을 틀고 있는 것 같았다.

밖의 아우성에 안에 있던 세 사람이 쏟아져 나왔는데 두 남정네 사이에서는 정말로 예쁜

중년의 여인이 허둥지둥 옷을 매만지고 부스스 한 머릿결도 쓰다듬고 있었다.

놀랍게도 박 사장이 그 여인의 허리를 손으로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은 초여름 햇살에 눈이 부시다는 표정을 하며 박 사장의 손길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장면들이 빈포 초등 동기생들의 세계에 장 여인이 처음 등장 하는

순간이었다.

남정네 넷과 장 여인은 그 초여름의 하루를 농가 주택에서 잘 지냈다.

여인은 닭도리 탕을 맛있게 끓여놓았고 삼겹살도 잘 구워내었다.

낮부터 술추렴이 벌어졌는데 농주를 조금 마신 박 교수를 빼고는 모두 소주를 하더니 나중에는

모두들 콜라와 소주를 섞어서 마시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박 사장은 연신 그 여인의 허리로 손이 들어가서 도대체 이 여인이 어느

남정네의 현 주소인지를 의아하게 하였다.

그 의아한 분위기를 술이 좀 돌자 그나마 김완기가 소리를 질러서 깨보려고 들었다.

“이놈아, 느그 형수님 좀 그만 주물럭거려라! 주물러터지겠다!"

내용은 포효 비슷했으나 워낙 음정이 얕아서인지 그 말은 신발 장사에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야 임마, 내가 이 장 여사네 아이들, 그러니까 조카나 다름없는 녀석들에게 고급 스포츠화를

얼마나 신켰는데 알기나 해? 그게 한 켤레에 십만 원이 넘는 것들이야. 본전 찾으려면 아직

멀었어."

낮술이 석양 넘어가는 각도만큼 과하게 넘어갔다고는 해도 저질 수준이 정도를 오버했다.

여인이 참다못하여 풀어진 치마끈도 무시한 채 와장창 일어서는 서슬에 쭈그러진 주전자가

신발 사장의 반쯤 내려진 지퍼 쪽으로 굴러 떨어졌다.

쭈그러진 주전자의 용량이 그렇게 대단한가.

콜라 색갈로 은폐된 혼합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박 사장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폭포수처럼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에헤이, 이 여자가!"

박 사장이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손바닥으로 허공을 한번 가르더니 다시 낄낄 웃었다.

"그래 이 여편네야, 일어선 김에 밖에 나가서 고구마 순이나 잔뜩 따가거라. 반찬으로는

일품이잖아. 어이 박 교수랑 자네들도 좀 따가고---."

그는 휘청거리면서 자기는 농약 분무기를 어깨에 지더니 한 손으로는 풀무질을 하며 고추밭

쪽으로 갔다.

 

"저 사람이 순 막 되먹은 불한당이예요."

그녀가 박 교수에게 가만히 소리쳤다. 그녀는 분노와 술김으로 가쁜 숨을 모았으나 목청만은

나지막했다.

천성이 그런 건지 스포츠화의 위력 때문인지는 박 교수에게 구별이 잘 가지 않았다.

고구마 순을 딴다는 말의 낭만성에 혹해서 박 교수와 또 함께 간 친구도 밭으로 나가서 쪼그려

앉아보았으나 금방 땀이 비 오듯 하는 여름날이라 한시를 버틸 수가 없었다.

"어이, 박 교수, 여기 이 고구마 밭은 자네 같은 도회지 먹물들이 나 올 데가 아니야. 얼른 들어가서

에어컨이나 틀고 앉아있게."

김완기 사무총장도 장 여인처럼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두 사람의 동기들에게 들어가라고 권하고는

자기는 그 여인과 함께 열심히 고구마 순을 땄다.

"이게 순 저 사람의 농간이랍니다. 지금 이 때가 고구마 순을 딸 철이거든요. 그래야 쓸 만한

고구마가 영글어요. 그 일을 우리에게 시키는 셈이지요. 저 자의 수법이 항상 이래요."

장 여인의 목소리에 독기가 들어있었다.

"에헤이, 장 여사. 내 욕했지? 파라치온을 확 뿌려버릴까 보다."

신발 사장이 귀도 밝았다.

"뿌려 봐요, 뿌려봐."

장 여인이 티셔츠 아래로 젖가슴을 출렁이며 유월의 저녁 햇살 아래로 대들었다.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지는 않았지만 한 판 난 장이 시골 농가 주택을 휩쓴 셈이었으나 나이

탓인지 돈의 위력인지, 결말도 없이 결말은 쉽사리 찾아와서 고구마 밭에는 얼른 고즈넉한

정적이 깔렸다..

 

해가 뉘엿거리자 고구마 순 따기도 대략 끝나고 일행은 다시 남아있는 닭도리 탕과 삼겹살로

"소콜주", 그러니까 콜라와 소주 탄 술을 마시고 밥도 조금씩 먹었다.

여름이라지만 어쨌거나 해거름이 되면서 어두움은 금방 찾아왔고 박 교수와 또 동행한 동기 한명이

귀가를 서두르며 일어서자 장 여인도 따라 나섰다. 김완기 사무총장은 술이 취하여 벌써 인사불성으로

누워있었다.

“에헤이, 장 여사는 여기 김 총장과 함께 자고 가야지."

박 사장이 뒤에서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았으나 그녀는 막무가내로 박 교수 일행을 따라나섰다.

"우리는 서울까지 가지 않고 신도시로 빠집니다."

박 교수는 입장이 다소 난감하여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여기 여주, 이천만 빠져나가면 되어요, 저는."

그녀의 태도는 단호하였다.

술을 별로 마시지 않은 박 교수가 핸들을 잡고 세 사람은 농장을 빠져나왔다. 장 여인은 조금 과음을 한

수준이었다.

"제 모습이 흉측 하죠?"

그녀가 승용차의 뒤쪽에 혼자 앉아서 혀를 몹씨 꼬부리며 자학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량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과장이 들어있었다.

"제가 막된 여자 같죠?"

그녀가 역시 낮은 음으로 말했다.

"참 재미있는 분이네요. 춤도 춥니까?"

함께 간 동기가 자기 수준에서 말을 받고 붙였다.

"저 코메디안 아니예요. 땐서의 순정도 없고, 으흐흐흐."

박 교수가 어둠 속에서 뒷거울을 보았으나 그녀가 웃는지 우는지 분별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두 가지 감정이 모두 그 낮은 괴성 속에 포함된 듯하였다.

"제가 사실은 김 계장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요."

그녀가 김완기와의 인연을 풀어내었다.

영업용 기사이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 자식 둘과 망연히 있는데 마침 지방시청의

김 계장이 불우 이웃 돕기 담당이 되면서 아이들 둘의 중, 고등학교 학비를 시청 장학금으로

대어주었다.

그의 능력이 그쯤에서 그칠 때, 박 사장이 현찰로 도움을 또 많이 주었다는 것이다.

"아까 그 스포츠 운동화 이야기는 새 발의 피고요---."

큰 딸은 박 사장이 아는 곳에 취직을 시켜주었고 둘째인 아들은 전문대학에 진학을 시켜 주었다.

"저는 이미 김 계장님하고 살을 섞었거든요. 이상한 사이라기보다 우리는 결혼을 한 셈이었어요.

그 분 사모님이 원래 선천성 간질 환자이잖아요. 속아서 결혼을 했나 봐요. 객지에서---."

"아, 지랄병 말입니까?"

박 교수의 동기가 또 툭 튀어나왔지만 대화의 내용은 오히려 간결해졌다.

"네, 그래요. 그래서 자식도 없잖아요. 교수님 앞에 문자를 써서 죄송하지만 어떤 외국 작가가 쓴

‘꿈속의 아이’라는 글 생각이 나더군요. 간질 환자인 누이를 평생 보살피려고, 또 피 속에 흐르는

유전병을 막으려고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았던 작가의 이야기를 제가 읽고 김 계장님께도 위로삼아

들려주었어요. 정말 애틋한 이야기더라구요."

"그 친구가 채금감이 강해요. 아, 내 친구 김 사무총장 말입니다."

다시 박 교수 동기의 간결한 언급이었다.

"네. 그래서 제가 그 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고 우리는 결혼, 아니 재혼을 한 셈이었지요.

그런데 김 계장님께서는 우리가 몸을 섞은 얼마 후에, 이번에는 친구 되시는 그 박 사장을 소개하면서

일단 도움을 받고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야 막연한 사이의 친구관계라니까

감사하게 호의를 받아들였지요. 그런데 갈수록 너무나 노골적으로 박 사장께서 저에게 덤벼드는

거예요.

친구 간에 그럴 수가 있어요?"

"김 총장이 장 여사를 막연하게 팔아먹었네."

또 따라온 친구의 간결사였다.

"이 사람아, 말을 그렇게 마구하지 말게."

핸들을 잡은 박 교수가 친구의 막말을 막았지만 내심으로는 그도 의문이 없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막말은 하지 마세요. 사실은 김 계장님이 아프셔요."

장 여인의 말이었다.

"어디가요?"

따라온 친구의 급한 물음이었다.

"혈압이 있어요. 한번 쓸어지기도 하셨고---."

"그런데도 그렇게 술을 마시나?"

또 친구의 말이었다.

"가끔 오늘 보신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을 때에는 어쩌겠어요. 약은 계속 드시지만."

김완기는 그렇게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 할 때면 술을 마시고 또 목각을 깎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돈 많은 친구에게 내연의 처를 맡길 궁리도 그 목각 깎는 과정에서 천천히 생겨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박 교수는 운전을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무는 어디서 깎아요? 아파트 같은 데에서는 그런 짓 하기도 힘들 텐데---."

따라온 친구가 쾌도난마로 물어보았다.

"아, 목각 공예 말이군요. 초벌 깎기는 아무데에서나 조금씩 하시지만 마지막 다듬기는 꼭 제 집에서

하지요."

"댁이 어디신데요? 그런 일 하려면 단독 주택인가 봐요?"

"네, 단독 주택이지요."

"위치가 어디신데요?"

"청산에 살아요."

정말 차는 어둠 속에서도 청산을 앞에 놓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이 친구와 저는 수지 쪽에 삽니다. 청산으로 모시려면 어디로 갈까요?"

박 교수가 물었다.

"수지 사신다면 제가 수지맞았네요. 가깝군요. 덜 미안하게 되었어요. 저기 경기대학 들어가는

방향 쪽에 잠시 세워주세요. 지금은 안 되겠고 언젠가 때가 되면 청산으로 한번 들어오세요.

찾기 쉬워요. 경기대 들어가는 쪽에서 광교산으로 들어오시다가 목각이 가득한 집을 물어 보시면

 많이들 아실 겁니다. 다만 오시라고 기별이 갈 때에 오세요. 그 전에는 절대 못 오십니다."

그녀는 높고 푸른 어떤 산 아래에서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햇수로 3년, 만으로는 2년이나 되었을까,

김완기 사무총장은 풍을 맞고 쓸어졌다. 그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삼년 기간에 그날

뭉쳤던 네 사람은 마치 비밀결사나 차린 듯 그날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치 않고 지냈다.

박 교수의 존재가 방패가 되었는지 신발 장사하는 박 사장까지도 아무 말 없이 지냈다.

마침내 그가 쓰러진 올해에도 광복절 운동회는 속절없이 찾아왔으나 사무총장의 노력과

끈기 있는 연락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의 재경 빈포 동기들은 반이나 고향으로 내려갔을까.

하여간 박 교수도 불볕더위를 탓하며 고향을 찾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미친 듯이 고향을 찾았던 것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어쩌면 김완기의 의지에 신들려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박 교수까지도 그런 생각이 드는 판이었다.

광복절이 지난 며칠 후 처서도 지났건만 윤칠월이 있어서 그런가, 무더위가 여전한 어느 날,

박 교수의 휴대폰에 장 여인의 음성이 울렸다.

여전히 낮은 음정이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있는 곳은커녕, 와병 사실조차 잘 알리지 않던 김완기가 장여사의 집에서

박 교수를 찾는다는 전갈이었다.

사실은 김완기가 찾는 것인지 그녀가 찾는 것인지 분간도 되지 않게 느릿느릿 그녀는

주어를 뭉개며 말을 이었다.

"보실 수 있겠지요? 아무래도 한번 보셔야겠네요. 참, 찾을 수나 있으실는지요?"

"경기대학 입구 쪽에서 산자락으로 난 작은 길이라는 걸 기억합니다만---."

박 교수가 고백성사를 보듯 그녀와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고 털어내었다.

"저 때문에 기억하세요? 호호호. 죄송해요. 지금 농담할 처지가 아닌데. 사실은 조금 급해요."

 

전화를 끊자 박 교수는 당장 정오의 햇살을 무릅쓰고 그 오밤중에 그녀와 헤어졌던 곳을

혼자 더듬어 찾아갔다.

밤 도깨비에 홀린 듯, 그녀가 소실점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가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던 그 지점에, 이번에는 그녀가 낮도깨비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 끼는 전혀 없었지만 아름답고 창백한 얼굴에 큰 키, 수척한 몸매를 부러뜨릴 듯 한

유난히 큰 가슴, 부실한 여름 치마를 슬쩍 밀어올린 엉덩이가 전체적으로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욕정과 귀 끼까지 서린 한 여인이 거기 길섶에 나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았는데 여인의 손은 창백한 얼굴보다 더 서늘했다.

여인이 숲길을 앞장 섰다.

사태가 심각함을 직감하겠는데도 여인의 큰 엉덩이는 정욕을 품은 듯 흔들거려서 뒤에 선

사내의 눈을 끌었다 밀었다 했다.

"상태가 심각한 지경인 모양이죠?"

박 교수가 바튼 침을 삼키며 묻지 않아도 당연한 질문을 했다.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여기 산 속에 무슨 집이 있나요?"

"청산에 산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김완기 계장이 시청에 있을 때에 이 산 속에 비닐하우스를 하나 꾸린 모양이었다.

내용이 어떻게 된 건지는 여인도 몰랐다.

겨울을 빼고는 두 사람이 이 누옥을 많이 이용하였단다.

전기도 들어왔다. 목각은 이곳에서 거의 다 깎았고 일부는 싣고 나가서 팔았으며 대체로

남아 쳐지는 것들은 비닐하우스 안팎으로 쌓아놓았다.

지난겨울 김완기가 풍을 맞은 곳은 장 여인의 반 지하 셋방이었으나 봄이 오고부터는

다시 이 비닐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그 사이에 시청에는 병가를 냈다가 명퇴를 했다.

얼마 되지 않는 그의 연금과 간질병 환자인 부인의 이름으로 든 국민연금은 모두 그녀의 병 수발로

들어가고 있었다.

청산에서의 살림은 오로지 장 여인이 파출부로 나가며 버는 돈과 장녀의 월급에서 뗀 약간의

효심어린 돈으로 꾸려나갔으나 최근에는 파출부도 나가지 못하여 어려움이 막심하였다.

 

"동기회에서도 그간 너무 무심했네. 회장하는 박 사장이 좀 돕지도 않습디까?"

산 속의 한 모퉁이에 천혜의 공터가 마치 이 사람들을 위하여 숨어있듯 꼬부라져 들어가 있는 곳에

김완기가 움집을 틀어놓았다. 계장이라는 자리가 그 정도의 불법을 바람막이 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박 사장에게는 알리지도 않았어요. 휴대 전화로 연락이 여러 차례 왔지만 내가 자꾸 이러시면

댁에다 알리겠다고 했더니 그만 뚝 끊어지데요."

그녀가 안내한 비닐하우스 움막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초라하였다.

우로를 막는 초막이라는 표현이 있던가.

사실은 비와 이슬도 못 막을 비닐하우스가 그나마 평지도 아닌 데에 있어서 그게 정말 사람이

들어있는 곳인지 무슨 거름 창고 같은 것인지 애매하게 보였다.

구태여 말하자면 위장술이라고도 할만 했다.

다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거나, 실상 보이더라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그 외돌아져 한단 높게 자리한 절묘한 자리에는 그가 깎은 목각들이 입구부터 잔뜩 일어서서, 아니

땅에 꽂혀있어서 외부인을 경계 혹은 환영하고 있었다.

하우스라는 표현처럼 명색이 집이니 문도 달려있었다.

출입구의 문을 여니 고약한 냄새가 고물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에 실려 확 달려들었다.

하우스의 여러 군데로 창들이 나 있어서 냄새를 뽑아낸 정도가 그러하였다.

하우스 안쪽에도 더 많은 목각이 사방을 꽉 채웠는데 바닥 한 가운데에는 시청 철거반에서 흘러

나온듯한 노란색의 낡은 비닐 장판이 깔려있었고 거기 김완기가 누워있었다.

그는 이제 꼼짝도 못하였는데 눈동자만 조금 박 교수에게 굴리는 것이 최소한의 의식은

있는 듯하였다.

 

"이 사람아! 날쎄!"

무어랄까 치받치는 슬픔을 억제치 못하고 박 교수가 소리를 냅다 질렀다.

"눈동자 굴리시는 게 선생님을 알아보고 반갑다는 표시 라요."

그녀가 낮은 음성으로 일종의 통역을 하였다.

"날 알아보겠어?"

그가 또 소리를 질렀다. 김완기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굴렀다.

"반갑다네요."

또 그녀의 통역이었다.

"사람을 그저 알아보는 수준이지 반갑다는 표현이라니요?"

격정 속에서 달리 할 말이 없어 박 교수가 여인에게 좀 퉁명스런 소리를 냈다.

"눈동자를 굴리시면 반갑다는 거고, 가만히 있으면 보통이고 눈을 감아버리면 사람은

알아보지만 보기 싫다는 뜻이지요."

듣는 박 교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으나 말하는 장 여인은 그냥 담담한 저음이었다.

"가끔 입술도 움직이시는데 제가 대략 알아듣지요. 그래서 큰 소리로 확인하면 눈동자로

맞다, 틀리다 반응을 보내요."

"시립 병원 같은 데에 알아보지 그랬어요."

"저 양반이 공무원 연금도 나오고 해서 극빈자 처리가 오히려 어렵데요. 그리고 또 다른 곳에는

가지 않고 오로지 이 곳 청산에서 눈을 감겠다네요. 자기 숨이 떨어지면 화장을 해서 이곳에다

뿌려달라는군요. 그때 저 목각도 다 태우라고---. 벌써 오래 전, 말을 할 수 있을 때에 모두

작정을 해 놓은 부탁사항이라니까요."

"진즉에 좀 알려주시지 않고---?"

"지금도 사실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에겐 연락 못해요. 저 양반이 곧 죽어도 자존심이 얼마나 센

분인지. 그걸 한 평생 제대로 표현도 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며 살아왔답니다."

"저 놈이나 나나 빈포 인간들이 다 그래요."

"저도 고향 없는 떠돌이라 저 양반이 뜬금없이 빈포 댁이라고 불러주고 부터는 빈포사람 같은

마음인가 하네요. 호호호."

그녀가 낮게 거리낌 없이 웃었다.

고약한 냄새는 산바람이나 선풍기에도 지지 않고 맹위를 떨쳤으나 더위는 산 속, 숲 속이라

견딜 만 하였다.

비닐하우스에는 이런 저런 명상 서적들도 있었고 소설책도 있었다.

풍 맞은 내 친구의 손때가 묻었다 라기 보다는 장 여인의 취향이나 수준을 말하는 듯하였다.

아, 음악도 좋아하는지 MP3도 새같이 만든 목각에 걸려있었다.

"길 찾는 게 자신 없어서 먹을 것도 못 사왔군요. 책이라도 좀 갖고 올 것을---."

"그냥 오신 게 가장 잘하신 거예요. 저도 대접할게 없으니까요."

"제가 도울 일이 뭐가 있을까요?"

"당장은 아니구요. 저 양반이 그냥 보시고 싶어 해서 전화 드렸지요. 이제 얼굴 보셨으니

일어나시지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얼른 연락드릴게요. 일을 당하면 서명을 해 주실

일들이 좀 있답니다. 선생님은 직함이 있으시니까요. 이 양반이 가족도 모두 그렇고 해서

한심해요. 또 저 같은 사람이야 법적으로 아무 연고가 없고 위치도 워낙 비천하다보니."

"비천하다니요. 그런 표현 쓰시는걸 보니 아직 빈포 댁 되려면 멀었네요."

박 교수도 차라리 격의 없는 농담을 하며 환자를 고즈넉히 바라보았더니 그도 기쁜

마음인듯 눈을 껌벅거렸다.

"통역하기 쉽네. 자네도 기분이 좋은가봐, 이 사람아---."

웃으며 시작한 말이 감정이 격해져서 끝까지 가지는 못하고 울먹이며 그쳤다.

"나 그러면 일어나 볼께. 가을바람 불면 벌떡 일어나게. 그래야 고생한 빈포 댁에게도

보답이 되지."

두 사람은 목각이 도열해있는 청산 아래로 난 길을 걸어 나왔다.

"목각도 태워달라고 했다지만 이 산중에서 그런 일이 쉽지 않을 텐 데요."

그가 구체적인 걱정을 했다.

"걱정 마세요, 저 아래에 이곳 시청에서 설치한 소각장이 있거든요. 미리 다 손을 써 놓았지요.

제가 교수님 앞에 문자를 또 써서 죄송하지만 어떤 외국작가가 쓴 소설의 주인공이 남태평양의

섬에서 죽을 때 자기가 그린 그림 전부를 다 태워버리는 그런 이야기를 읽었어요. 저 양반이

정신 있을 때에는 그런 이야기도 나누었네요. 저도 나중에는 이 곳 청산에서 죽어 돌아갈까 해요."

"너무 그렇게 푸르게 푸르게만 살다 갈 생각은 마세요. 그냥 되는 데로 좀 재미있게 살 수만 있으면

그렇게도 살아보세요."

여인이 되는 데로 끌고 나온 신발이 전에 본적이 있었던 그 고급 스포츠화인 것에 눈길이 갔다.

아마도 박 사장이 준 게 수명을 다 하였는데도 새것으로 다시 보충 받지 않은 그녀의 이력이

묻어나는 듯 했다.

박 교수는 진심으로 가슴이 아파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발이 그게 뭡니까. 그렇게 닳고 헤진 걸 끌고 다니면 누가 열녀문이라도 세워준답니까, 이 시대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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