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Sex, &

문학과 성담론 1 (계간 문학과 의식 기획 연재 2011 봄호)

원평재 2011. 3. 25. 00:00

 

 

1. 이끄는 글


지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기체처럼 인간도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문학사의 첫 장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이

바로 이 양성간의 문제와 그 해결의 방법론, 나아가서 양성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의

과정을 다루어 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신화와 전설에서부터 시작하여 시, 소설, 연극 등의 모든 전통적 문학 장르,

그리고 오늘날 새로운 문학 텍스트로 등장한 영상 미디어의 주요 주제까지도 바로

이 성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문학 장르와 매체 속에서 논의되어온 성에 관한 주제라고 하면

우선 성애(性愛)쪽을 주로 다룬 영역, 즉 포르노성 문학의 세계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보다 좁은 하위 가치의 세계이고 성에 관한 진정한 주제이자

여기에서 다루고자하는 내용은 생물학적인 성별(sex)이나 성적욕구(sexuality)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사회, 문화적인 성차(gender), 나아가서 성차별까지 포함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정의하고 운명 지우고 또한 지배하고

있는가를 담아놓은 문학 텍스트에 관한 것이다.

사실 "성"이라고 하는 명제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여도 의식 있는 지식인들조차

성애, 성욕의 문제로만 인식한 경향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는 남녀간의 사회,

문화적인 여건과 그 차이를 포함한 개념이 마침내 분명히 자리잡은 21세기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여기에서는 바로 이 두 번째 범주의 문학 텍스트에 초점을 맞추되, 먼저

우리 나라의 고전과 설화 문학 속에는 남녀간의 성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영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우리 조상들의 의식구조는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동서양의 고전 및 현대의 주요 작품 속에서 성애와 성차를

포괄한 성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주제별로 나누어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는 첨예한 갈등구조 가운데에서 해체의 늪으로 가고있는 오늘날의

심각한 이성간의 문제에 관한 화해와 재 결속의 가능성도 또한 문학작품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2. 우리 민속설화 속의 성

 

 

이동을 하지 않는 특성의 농경문화가 토착화된 우리 나라의 풍토에서 민속설화가

풍요롭게 발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뿐만 아니라 농경문화의 속성상 남녀간의 성적인 행위와 결과는 모두 결실과

풍요를 상징하고 또한 기원하는 바에 다름 아니어서 성 자체를 더럽거나 추악하게

보지 않고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욕구와 생명력으로 너그럽게 보아왔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남녀관계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성행위도 자주 제의적

(祭儀的) 차원으로 취급하며 홀아비나 과부가 다소 상궤를 이탈하여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경우에도 이를 관용하고 있다.

 

 

그러나 순리에 역행하는 행위, 예컨데 결혼한 여자의 간음, 근친상간, 동물들과의

이상 성행위 등은 역천(逆天)의 행동으로 보아서 단호하게 징벌하는 결말을

지어놓고 있다.

 

한국 비교 민속학회에서 엮은 『한국의 민속과 성』에 나오는 내용들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몇 가지 주제를 정리한다.

 

 

 

가. 화해와 성장의 주제

 

이 주제에 걸 맞는 대표적 설화로는 "단군 신화"를 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데로 웅녀는 매일 신단수 밑에서 아들 낳기를 빈다.

이를 본 "하눌 나라"의 환웅은 잠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웅녀와 성적인 결합을

하여 단군을 낳게 한다.

 

이때 웅녀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아마도 당시 우리 나라에 이미

살고 있던 선 주민들 중 일부 부족의 토템이 곰이었을 것이며 이후 환웅(桓雄)이

이끌며 하늘의 자손을 칭하는 이주민들이 이들과는 교류, 통혼하게 되었고,

반면에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다른 부족과는 갈등 관계에 놓였다는 설이 학술적

공감대를 이룬다.

 

어쨌거나 필요한 만큼의 인고(忍苦)를 겪은 웅녀와 "하눌님"의 원만한 성적

결합은 우리 겨레, "백의민족"을 형성하게된 근원으로 높이 자리 매김 되고 있다.

 

결국 단군신화에서는 원래 대립, 갈등의 구조였던 양성이 적절한 인고(忍苦)의

과정을 거치면서 화합과 신생을 얻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 도덕률과 명예심

혼례제도가 정착되면서 혼외정사의 문제는 항상 "정절"에 대한
대립 항(項)으로

제도권 주변을 멤 돌게 된다.
이웃집 남녀, 길 가던 남정네와 빨래하는 여인, 머슴과 안주인의
통정 등이 그 구체적

실례인데 발각이 되었을 때에는 과부나 홀아비 설화의 경우와는 달리 큰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정서에 유교적인 영향력이 일찍부터 깊숙이 스며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지방 근무를 하고있던 어느 교리(狡吏)가 갑자기 한양의 집으로
와보니 아내가

젊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노한 교리가 젊은 녀석을 꾸짖자 이 자가 칼로 교리를 찌르려하여
싸움이 벌어졌다.

교리가 가까스로 칼을 쳐버리고 젊은 녀석을 쓰러뜨린 다음 아내에게 칼을 갖고

오라고 하니 아내가 그 칼을 집으려 하였으되 마음의 향방은 애매하였다.


이때 이 집의 개가 칼을 물어다 버리고 젊은 녀석도 물어 죽였다.

교리가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가자 여자의 아버지와 친정 식구들이 사정을 알고

여인을 엄히 벌하였다고 한다.
부정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친부모와 동기들도 명예를 소중히 여겨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는 당대의 윤리관을 볼 수 있었고 간음의 행위는 개만도 못하다는 것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다. 성적 결핍에 따른 원과 한 

 

성적 욕구를 사회적 제약에 의하여 외면하고 차단해야하는 당사자가 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설화의 본질은 간음과 같이 기본적인 틀을 깨뜨리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성적 결합에

대하여 이해의 폭이 넓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관념이 구체적으로 사회통념 화하고 실제 생활에서 통용되었는가

하는 점은 다소 의아스럽지만

어쨌든 설화문학의 테두리 안에서는 매우 인간적인 기준이 설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적 기준을 훼손하거나 핍박하는 행위는 오히려 징벌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선비가 과거 길에 객주에 들러 촛불을 밝혀놓고 책을 읽는데 이웃집

처녀가 선비의 모습에 반하여 그의

처소에 들어왔다. 까닭을 알고 난 선비가 그 처녀를 엄히 꾸짖어 내쫓으려

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자 처녀의 아버지를 불러오게 하였다.
처녀의 아버지가 사정을 알고 딸을 크게 꾸짖자 그녀는 혀를 깨물고 벽에

머리를 부딪혀 자결하고 만다.

이후로 선비는 그녀의 환상에 시달리며 매우 곤궁하게 살았다고 한다.

비록 군자의 도를 다하였으나 인간성을 말살할 정도의 성적 잣대는 여인의

원과 한을 살수도 있다는 우리 조상들의 의식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우리 설화에 비친 남녀간의 성적 교섭의 모습은 매우 건강하고 풍요로운

바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일탈은 그것이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인간성을 회복하는 면이 있으면 너그럽게 수용하고 이를 각박하게 배척하면

오히려 죄로 간주하고 있다.

 

 

 3.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투영된 성의 모습

여러나라 신화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두 천지창조와 
인류의 탄생이라는 신화소(神話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남녀 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천지 창조 
부분은 논외로 하고 인류의 탄생에 관한 대표적 신화 몇가지를 고찰코자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를 가장 조직적인 틀을 갖고 가장 완벽한 
신화라고 하면 이론의 여지가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훌륭한 
체계를 갖고 가장 잘 알려진 신화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가장 최초의 신은 가이아(Gaea)라고 하는 
여신이었다. 
가이아 여신은 대지의 표상이고 시간이 시작하기 전부터 존재하였다. 
이 여신은 고독을 달래기 위하여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Uranos)를 
만들었는데 이는 아들이자 연인이었다. 이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많은 거인족의 신들을 만들어내었다.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자식들에게 애착을 갖자 질투를 느껴 이들을 
모두 없애려했다. 
가이아는 자식들을 숨겼고 막내인 크로노스는 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
한다. 
마침내 우라노스가 가이와와 잠자리를 하러왔을 때 그는 자기 
아버지를 거세하여 그 남근을 바다로 내던졌다. 
이 남근에서 사알의 여신 아포로디테가 생겼고 바다의 거품을 통하여 
이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이제 신들의 지배자가 된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하여 헤스티아
(가정의 여신), 데메테르(농업의 여신), 헤라(출산의 여신), 아레스
(전쟁의 신)을 낳고 제우스를 막내로 낳게 된다. 
크로노스 역시 자식들에게 애젇을 쏟는 레아에게 질투를 느껴 그들을 
모두 삼키지만 제우스 만은 레아의 기지로 돌을 대신 삼킨다. 
그러나 마침내 레아와 아들들은 공모하여 복수에 성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제우스는 우주의 지배자로 올림포스 산에 자신의 법정을 
설치했다. 
역사 이전의 역사인 신화 중에서도 제신(諸神)의 시원을 설명하고 
있는 이 부분은 남녀 성의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는 내용으로 인하여 
이전부텨 인류학, 역사학, 문학 등 등의 영역에서 끊임없는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중에서도 19세기 스위스의 고전학자 요한 야콥 바흐펜(Johan 
Jakob Bachofen)과 20세기 영궁의 작가 로버트 그레이브스
(Robert Graves)는 인류사의 처음 모습은 난혼상태였다가 이어서 
여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모장제로 이행하였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역사시대의 가부장제로 정착된 주요한 단서가 된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신화해석은 관점에 따라서는 화합적 이론일 수도 있고 
혹은 억압적 이론 일수도 있으며 초기 난혼 상태의 설정이나 남녀간의 
육체적 강도의 차이가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의 논쟁 등을 유발할 
여지는 남겨 놓으면서도 남녀간의 성차와 갈등관계 등을 유사이전부터 
설명하고자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일단 유의할 대목이라고 하겠다.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로마 신화 중에서도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대표성이 있다고 하겠다. 
옛날에 아름다운 세딸을 가진 왕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셋째딸 
프시케(영혼 혹은 나비라는 뜻)의 미는 더욱 출중하였다. 
그녀는 외모뿐 아니라 마음씨까지 고와서 세상 젊은 남자들은 모두 
매혹되고 또한 흠모하였다. 
이제 지상의 사람들은 천상의 미의 신인 비너스(그리스: 아포로디테)
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되었고 그녀의 신전에 공물을 바치지도 않게 
되었다. 
비너스는 이에 격분하여 아들 큐피드(그리스: 에로스)를 보내어서 
가장 못난 남자와 프시케가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 줄 것을 부탁
하였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운명적인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큐피드는 그만 자기자신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비너스의 진노를 두려워한 여러 신들의 방해로 어려움과 
이별의 위기에도 처하였으나 부드러운 남풍의 도움으로 두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다. 
큐피드는 신이기 때문에 인간인 프시케가 자기의 얼굴을 결코 
보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언니들의 질투로 이 약속을 어기고 멋진 
연인의 얼굴을 훔쳐보게된다. 상황은 일단 퍄국으로 달리는 듯 
하였다. 사정을 알게된 비너스는 크게 노하여 도저히 해낼수 없는 
과제를 내놓고 이를 못풀면 프시케를 파멸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씨앗들을 골라놓으라는 일은 개미가 도와 주고, 
무서운 양떼들로 부터 황금의 털을 모아오라는 일은 갈대의 도움으로, 
그리고 세 번째로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으로 가서 물을 길어오라는 
명령은 한 마리 독수리(주피터의 변신)의 도움으로 해결해낸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않은 비너스는 프시케에게 저승으로 가서 그곳을 
다스리는 여왕으로부터 약간의 미를 얻어오라고 시킨다. 
아름다움과 계략으로 이 과제도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한 끝에 완수
하게된다. 
이제 큐피드는 제신의 왕인 쥬피터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자 "일단 
육체적 사랑(그리스어로 에로스)과 영혼(그리스어로 프시케)이 결합
되면 신들도 떼어놓지 못하리라"라고 하면서 이를 허락하였다. 
프시케는 마침내 천사의 음식 암브로시아를 마시고 신이 되어서 
사랑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 신화는 쉐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밤의 꿈"에 극중극의 형태로 
들어 있기도한데 남녀간의 사랑의 본질이 바로 영혼과 육체의 원만한 
결합이라는 것과 이러한 "원만한 결합"이라는 이상(理想)이 말과같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고 수많은 난관과 과정을 겪어야 겨우 이룩된다는 
만고의 진리가 투영되어있다. 

 

참고자료/조선 시대의 춘화도

 

우리나라에서 춘화의 역사가 시작된 건 조선시대다.

조선시대 관리나 역관들이 사신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몰래 갖고 들어온것이 춘화 의

주된 유통경로다.

당시 북경의 책방에서는 우리나라 사신들이 책 을 고르는 척하면서 미적미적 시간을

때우면 은밀히 소맷자락을 끌 어당겨 깊숙이 보관하고 있던 춘화를 내밀었다고 한다.

밀수된 춘화는 사대부를 포함한 양반사회에 빠른 속도로 널리 퍼졌고, 그 영향으로

화가들이 춘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춘화의 성격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하다는 점이다.

우수한 조선시대 춘화의 어디에도 변태적이거나 부조화적인 성은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성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된다.

 

모든 춘화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원 김홍도의 도장이 있는 춘화첩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자연 경물에 음양적 성격을 부여해놓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한국 춘화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예이며, 그것은 바로 도교적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손으로 벌거벗은 두 남녀를 가리고 보면 아름다운 밤 풍경일밖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배경의 정물들도 이 그림의 주제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그림이다.

 

단원의 ‘월하연인(月下戀人)’을 보자. 달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방사(房事)가 아닌 야외 정사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는 운치 있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