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허드슨 강변에서---

원평재 2005. 8. 15. 08:46
 

허드슨 강변에서---.

 

연변에서의 마지막 주간은 다소 지친 상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인터넷 통신 장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워낙 고구려, 발해는 물론이거니와 상고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설쳐대니 혹시

무슨 차단 장치가 된 건 아닌가,

 

나야 막말로 떠나면 그만 이라지만 계신 분들에게 무슨 누가 되는 건 아닌 가---,

하지만 사실 내가 쓴 글들이 무슨 과한 내용을 담은 건 전혀 아니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으나 표현할 수도 없었지요.

이제는 마침내 그곳의 인터넷이 다시 시원하게 뚫렸다니 그지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리운 춘매 복장, 이 곳에서 신사복 한벌을 2만원에 맞추었다. 가봉같은

절차는 없지만 맞지 않으면 열번도 더 고쳐준다. 춘매 사장의 꿈은 한국에

나가서 6개월만 모던한 패션과 최신의 복장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더위였을까요---.

여름 더위야 지구적 현상이겠지만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하여

느끼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금년 여름의 연변 더위는 유난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서울에 와보니 찜통의 수은주는 연변과 비교도 되지 않더군요.

 


 

 

다음은 제가 있었던 아파트의 주변에서 광범하게 전개된 아파트 공사였을 것입니다.

사시는 분들에게는 미래를 향하여 놀라운 금자탑(피라밋)이 욱일충천하는 기상이었

겠지만,

바로 옆에 사는 나그네에게는 먼지와 소음의 원천이었지요.

그러나 떠나는 날이 촉박하게 닥아 오자 이 모든 현상이 앞으로 그리움의 대상이

되리라는 감상이 치솟으며,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더군요.

 

 


      


                  (코스모 호텔의 가장 훌륭한 룸에서---)

 

더욱이 주위에서 베풀어주시는 별리의 환송연은 제 감상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감격이었고 감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부족해 마지않았던 강의, 강연, 토론과 국제학회에서의 발표와 좌장,

역사 탐방, 이 모든 장면들이 아쉬운 파노라마로 몰려옵니다.

아직도 인터넷 사정으로 그 때의 일들을 다 올리지 못한 미련이 망각에 따른 두려움과

함께 강박되어 옵니다.

 


                                     


                                    (역시 그리운 서시장)

 

그러나 따지고 보면 참 좋았던 시절이라고 자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키보드 엘보 증상”도 치료할 겸, 어떤 사려 깊은 에세이스트이자 지혜의

성주께서 충고한데로 푹 쉬는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서울에서의 짧은 체재 기간동안, 몸을 담고 있는 곳의 여러분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만나지 않고  떠나온 것도 그러한 각오의 한 편린이었달 까요---.

 


 (추운 계절에 처음 찾았던 과기대의 채플도 여름 복장의 인파로 바뀌었군요.)

 

허드슨 강변으로 와서 어제는 손자의 돌 사진을 찍느라고 사진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참 빨라서 이제는 교포 2세들을 주요 대상으로 영어로만 진행하는 지적 교회가

성령 충만하게  여러 곳에 존재하는 군요.

 

다음 주에 디트로이트에서 평생 의사를 하고 있는 막내 동생 집에 가서 일주일을

지내고 돌아오면 나는 우리말로 진행하는 한인 교회를 찾아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허드슨 강변에 바싹 붙은 집도 항상 마음을 평온하게해 줍니다.

이 곳에서 동부의 가을 단풍 속에 몸을 드리워 적시며 프로스트가 노래한 이 곳의 긴

겨울과 깊은 적설을 편안한 마음으로 감내코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