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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소설, 소수의 기본 정리

소수素數의 기본 정리 김 유 조 국적기를 이용하여 일시 귀국 길에 오른 수학자, 김상헌 박사의 기분은 옆 좌석의 여자 승객이 ‘개 바구니’를 들고 타는 바람에 더더욱 편치 않게 되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이 여행길이 우울하게 시작되었는데 개를 들고 탄 승객과의 동행이 더욱 힘든 여행길을 만든 것이다. 바구니 속의 개를 보고 그가 놀란 가슴으로는 항의를 하고 싶기도 하였으나 규격화 된 듯한 예쁜 통 속에 비싸게 보이는 개를 담고 당당하게 좌정하는 그녀의 품새로 보나, 스튜어디스가 그녀와 개 바구니에 대하여 각별하게 배려를 하는 모양새로 보아서는 미리 무슨 필요한 절차와 비용이 모두 치루어진듯, 잘못 불평을 하다가는 망신을 당할 형편 같기도 하였다. 그나마 다행하게도 그와 그녀의 자리 사이에는 한 자리 빈 ..

팩션 FACTION 2020.07.26

시, 밤비

밤비 사글 셋방 좁은 사각창을 다시 넷으로 가르는 십자 나무대 그 틈새에 조심하듯 밤새 스며드는 빗물 턱없이 오른 전월세의 방 뺄 날 하루를 또 축낸 자정 넘기며 찾아온 세찬 후두둑 소리 알바로 뛰는 24시 편의점 종 달린 통판 유리 출입문을 꼭두 24시에 머리로 부딛쳐오는 물방울 황송하게 얻어걸린 한밤중의 대리운전 순번 BMW 광폭 차창을 세로로 좌악 밀어내는 윈도 쉴드에 송구하게 안착하는 빗방울 모두 우리시대의 신식 밤비이다 저 추억의 가로등 아래 춤추듯 내려앉던 구식 밤비는 지금 밤비도 아니다 ---김유조

카테고리 없음 2020.07.25

미술관 바깥 풍경

미술관 바깥 풍경 김 유 조 몰라도 눈치 따라 올라가는 길목에 구루마 끄는 청동 황소 등어리 해풍 탓에 햇살이 갈레진다 미술관은 이미 코로나로 잠겼으련만 닫힌 희망에 청동빛살로 열쇠삼아 꺾어진 길 밭담 따라 이어간다 발길 닿은 미술관은 생사람 숨 막히듯 닫혔으나 참 못난 조형이라 짐짓 외면하고 무심결 발아래로 딛은 이중섭 공원에 아, 네 식구가 게딱지 끓여먹고 게 그림 그렸던 게딱지 초가 협포 마당의 밀감나무에는 하귤이 여전 매달렸고 안내 동판에는 벌거벗어 익숙한 아이 문득 그림에서 나온 듯 팽나무 아래 빗자루 든 노인이 볼만큼 봤소라고 뭍 것들을 달래준다

카테고리 없음 2020.07.23

시, 시간과 시각 (현대시협 2020 상반기)

시 시간과 시각 김 유 조 동남간 베란다 앞에는 오월 바라기의 동백 몇 점 라일락 향기까지 탐하는데 서북간 베란다 뒤로는 이제야 피다마는 백목련이 지난해 김장독 신 내에 취한 듯 마는 듯 일러 피어 늦은 지속의 농염 동백 때깔이나 늦어 몇 올 눈뜨다 지레 일찍 떨치고야 마는 무채색 몰각의 백목련 자태 시작부터 마침이란 모두 몰가치의 풍경화 무상한 흐름

문학과 의식 여름호 권두시

권두시 여름노래 6월의 상형象形풀이는 땅위에서 배태된 만물의 원형에 잎새를 달아낸 존재의 표지이며 9월의 예지이다. 지난봄은 홍조와 각혈과 혼절로 꽃샘추위도 이기고 수분受粉을 내뿜어 정받이 씨받이로 마침내 존재를 이루었기에 7월의 상형풀이는 튼실한 나무둥치에 칠칠한 줄기로 과육 받아낼 집을 짓는 형상이다 지난달의 영근 표지가 대지에서만 홀로 나부끼지 않고 한여름의 열음이 되어 높이 잇게 치렁치렁 매달리게 또 그늘 막도 되게 만반대비의 모양새다 8월의 상형풀이는 두 개의 화구로 된 뜨거운 소성燒成 가마 하늘에는 아폴로 태양신 땅에도 열화의 지모 신 팔팔하게 상하로 용융하며 순수의 진액을 걸러내고 숙성시켜 풋내의 열음이 열매가 되게 서른 날짜도 부족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2월에서 하나 뺏어온 하루를 더하여..

모란 동백

모란동백 김 유 조 열흘기한으로 짧게나마 모국 방문길에 나선 것은 집안의 경조사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오빠 네의 큰 아들이 부랴부랴 혼례를 서둘러 올리게 되었는데 중환을 앓고 계신 내 친정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탓이었다. 결혼식은 성황이었으나 아슬아슬하게 끝났다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밤 비행기로 장조카와 조카며느리가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떠나고 난 다음날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오래 앓고 계셨기에 차라리 큰 슬픔은 없었고 상속문제도 법대로 잘 처리되었다. 멀리서 살아가는 일에만 매달려 오래 뵙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불효녀’ 타령을 했는데도 고향의 야산을 오빠와 내게 반반으로 나누어주고 가셨다. 상속받은 야산은 무언가로 묶여있다고 하였다. 하긴 그게 재산 분쟁을 막아주었는지도 모를..

단편 소설 2020.06.13

호러 인코그니투스

지역 문협에서 2020 봄 앤솔로지가 코로나 탓에 좀 늦게 나왔습니다. 일년에 두번 출간하고 연말에는 종합 문예지가 또 나옵니다. 이번 앤솔로지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호러 인코그니투스, 알지못하는 공포라는 뜻의 라틴어로 바로 코로나 역병을 뜻한다고 합니다. 소생도 코로나 관련의 시를 두편 실었습니다. 우선 한편을 올려 봅니다. *************************************** 시 혼밥 미세먼지 개어 말린 흐린 화선지에 먹물을 갈아 엎으니 지난해의 형해가 동목冬木으로 탁본된다 소멸과 생성이 교차하는 이른 봄 창밖의 뜨락 등걸같던 가지에 어느새 번진 연두빛 채색 유두 때 맞추어 날아 온 주먹만한 외래종 새 한 마리 쓱쓱 주둥이 놀림이 엑스타시려니 유두를 탐닉한다 망을 보는 짝도없이 게..

북 리뷰 소설 민영환과 이승만의 세계

소설 『민영환과 이승만』의 세계 근대 리얼리즘 문학의 대두와 함께 역사소설의 변경 문제는 항상 첨예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이전 낭만주의 시대의 소설세계에서는 역사소설이 현실적인 바탕보다는 사뭇 과장과 상상의 야담적 허구 세계를 기본으로 하여서 로맨스 문학의 뼈대가 되었고 로맨티시즘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영국 역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이반호』와 『웨이버리 시리즈』로 유명한 월터 스코트의 예를 들어보아도, 그는 독일의 고딕 로맨스 소설에서 크게 영향을 받는데 모두 리얼리즘 소설에 앞선 당대의 비현실적 허구적 구성이 우선하는 특징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근대 사실주의 문학사조와 함께 낭만적 서사에도 변형은 필연이었다. 야사나 신화에 근거한 역사는 사실성에서 독자의 외면을 받으면서 이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