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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시랜드의 그녀 (5)

원평재 2007. 9. 1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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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의 꿈, 네거티브 드림이랄까, 우리나라를 지금 당장 죽어도 떠나야겠다는 

소망의 이유를 변교수는 졸업여행을 따라가서야 알게 되었다.

3년제 대학의 편입생이 학교에 적을 두는 기간은 고작 2년이어서 졸업은 금방

찾아왔다.

졸업 여행은 더 빨리 찾아왔다.

교수라면 모두들 싫어하는 졸업여행 인솔 책임을 정아의 학년이 떠나던 해에는

변교수가 맡게 되었다.

우연이나 자청은 아니었고 정아의 입김이 작용한 셈이었다.

변 교수도 내심 그런 강요된 기회를 바라고는 있었다.

 

강원도 태백 어느 마을에서 졸업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캠프 파이어와 다양한

축제가 불꽃 그 자체로 타올랐다.

장작더미의 불꽃이 사정없이 타오르자 여학생들은 너울 너울 춤을 추며 불꽃

주위를 원무하였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그녀들은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가정은 대체로 모두 어려웠다.

병원 현장 실습은 말할 것도 없었고 국가 고시 준비와 RN을 대비하느라 또

얼마나  어려운 나날들을 보냈던가.

전문직을 지향하지만 의료인으로서 간호직이 갖는 한계는 또 얼마나 왜소

한가.

불꽃이 밤의 정령들과 어울려 함께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자 그녀들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이른 추위까지 핑게 삼아서 술들을 쉬임없이 마시고 이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취업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으나 '일류 병원', '이류 병원'하는 금 긋기가

분명하여서 한창 때의 처녀들 가슴을 져며놓았고 일부는 또 이미 4년제 대학의

야간학부에 입학 허가를 받아 놓았다는 사실에 그렇지 못한 여학생들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이래저래 처녀들의 음주 정서는 고조되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이런 인솔 교수

자리는 개교 이래, 역사적으로 모두 사양해 오던 터였다.

그걸 변교수가 그 해에는 맡았던 것이다.

졸업생들의 총의가 그러하다는 정아의 선동에 그가 부화뇌동한 꼴이었다.

 

디스코텍 음악이 최고 볼륨으로 야외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자 그는 당장

태백산 아래 수련원 마당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블루스가 하드록과 레게 음악 사이 사이로 섞여나올 때에는 운이

좋거나 뱃장이 좋은 여학생들이 그의 품에 안겼다.

정아는 이런 여학생들의 뒷전에서 기회를 노리더니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어쨌든 광란의 시간도 속절없이 흘러가서 자정을 훌쩍넘어가자 변교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장을  막 선언하려던 즈음, 정아가 어디에선가 술을 많이

퍼마시고 그에게 돌진하였다.

 

"선생니임~, 오늘은 이 내 사설 들어보소."

그녀는 다리를 잘 가누지 못하겠다는 핑게로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입술을

그의 귀에 붙이고서 자신이 유명한 정치가 P의원의 딸이라고 밝혔다.

어머니는 이제는 사라진 강남의 1급 요정의 오너 마담, 그러니까 주인이라고

하였다.

요란하던 음악의 볼륨이 낮아져서인지 그녀의 말소리가 생각보다는 그에게 잘

들렸다.

"1급 요정이 세무서의 공식 분류 명칭이에요. 마지막에서 두번째 까지 강남에서

버티다가 한정식 집으로 내려앉았지요."

그녀는 혼외정사가 어쩌구, 호적이 저쩌구 하는 소리도 했으나 그녀의 혀가

본격적으로 꼬부라지기 시작하여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정아야, 너 취했구나. 이성 차려, 아니 정신 차려!"

변 교수가 미끈한 그녀의 축쳐진 허리를 부여안고 난감해서 외쳤다.

"선생니임, 애매한 부분에서는 항상 취한척해요. 제가."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변 교수에게 눈을 맞추었다.

방금 전과 달리 그녀는 꼬부라진 혀를 폈다.

"선생님, 저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인의 발걸음도 흉내

내고 싶었고, 그런게 모두 제 능력을 넘는 관념 유희에 다름 아니란걸 깨닫고는

간호사가 되어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었구요.

선생님도 항상 떠나려고 하는 모습이 저를 미치게 이끌었어요.

주말이면 훌쩍 떠나시는 자동차를 제가 열심히 뒤쫓은 줄은 모르셨겠지요.

신림동, 선생님 집 앞까지도 쫓아갔어요.

사모님 얼굴도 다 봤어요.

선생님은 저와 선생님이 깊이 가깝다는 소문, 그런 스캔들이 이미 교내에

좌악 퍼진줄을 모르시지요?

학생들은 다 알아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그런 방법 밖에는 선생님을 차지할 길이 없잖아요---."

 

"정아야, 너 돌았구나."

"네, 돌았어요. 저하고 완전히 한번 돌으셔야해요, 선생님은!"

그녀는 정말 변 교수를 꼭 껴안고 크게 한번 돌더니 '태백 수련원' 정원에 있는

연못으로 함께 풍덩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초가을 날씨가 벌써 겨울 같이 차가운 태백산 자락에서 그와 그녀는 얼음물

속에 빠진 꼴이었다.

축제의 저녁은 난리로 끝났고 뒷 수습은 생각 보다 훨씬 힘든 고난의 길이었다.

정아는 퇴학 말이 나올 정도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유명한 정치가의

손길이 작용하였는지 그럭저럭 졸업을 하고서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실로 힘든 과정은 변 교수가 모두 짊어지고 가게 되었다.

서울 대학교로 가려던 그의 계획은 영구 불능이 되어버렸고 봉직하던 간호대학

에서도 여러 곡절을 겪은 후에야 다시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와는 이혼 말까지 나왔으나 그럭저럭 봉합이 되었지만 오해의 고삐는

인생의 구석 구석, 고비 고비마다 죄어졌었고 두 사람은 명목상의 부부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는 '메디칼 잉글리쉬' 계통의 달인이 되어서 간호대학은 마침내 그만두고

압구정동에 있는 '박정 어학원' 근방에서 이민을 꿈꾸는 간호사와 의사들을

대상으로 'MEI(Medical English Institute)'라는 영어 학원을 열었다.

사업이 잘되자 그는 GRE와 GMAT 과정도 함께 개설하고, 유학 영어의 틈새

시장에서 큰 돈을 벌어 이제는 은퇴를 한 셈이었다.

 

지나놓고 보면, 그들이 두어해 동안 사제지간일 때 그녀는 그토록 몸이

달아 있었으나 그는 그녀에게 삶의 전부를 걸만한 감정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일을 그렇게 간교하게 꼬이게 하였을 때에는 원수같은

감정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부부간의 불화 관계가 지속되면서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그리움으로 발전하였다.

철없이 앞뒤 재지 않고 그렇게 한눈에 반해서 돌진해온 그녀의 행위를 증오

속에서 투우사처럼 받아재친 그였지만 개념조차 불분명했던 당시의 감정은

차츰 나이가 들어가며 어이없다 할 만큼 사랑으로 정리가 되어갔고 세상에서

사악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니 그녀의 그런 외곬수로 저돌적인

집념이 마침내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닥아오는 슬픈 그리움---.

돌풍처럼 내습하였다가 여우비 처럼 사라져버린 그녀에 대한 깊은 상심과

감상은 인생 후반의 그를 내내 따라다니며 놓지않았다.

그녀는 RN을 딴 후에 아틀란타에 있는 제너럴 호스피탈에 취업이 되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서 아직 그가 그 간호대학에 있을 때에 아틀란타 병원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의 성적과 지도교수의 소견서를 영문으로 공증하여서 보내라는 편지였다.

알고보니 그녀가 어떤 환자의 사망사건과 관련이 되어 "메디칼 수", 그러니까

의료분쟁에 걸려있다는 딱한 사연이 속보로 전해졌다.

그녀는 결국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벌금형과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도 학교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가 서툴러서 환자의 컴플레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모든 책임을 영어가 서툰 그녀가 뒤집어 쓴 것인지도 몰랐다.

문제는 영어였으리라, 변교수의 생각이었다.

 

그녀에 대한 나쁜 소식은 다소의 시차를 두고 현장으로 부터 들려왔다.

아틀란타 병원에서 쫓겨난 후, 그녀는 뉴 올리언즈의 프렌치 쿼터로 갔다는

소식이 풍문처럼 흘러들었다.

그때쯤 그는 이미 대학을 그만두고 압구정동에서 유학원을 할 때였다.

인텨넷 메일이 이제 일용할 양식에 다름아니었고 그의 유학원도 크게 인터넷

웹 사이트를 내세워 광고를 때리고 있었다.

그의 메일 번호 중 하나는 의료인들에게는 모두 메모가 되어있을만큼 그 계통

에서는 만인이 공유하는 주소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흐느끼는 메일이 그녀로 부터 날아왔다.

태풍 카트리나가 주 정부나 연방 정부의 느린 대책을 희롱하듯 미국 남부를

때리고 있을 때에 그는 영구불변의 불화 속에 지내는 아내와 저녁 TV를

무료하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취침 직전, e-메일을 그가 서제에서 정리하는데 '선정아'라는 이름이 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