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1일 11시에 수원시 장안동 이목 중학교 인근에 있는 해우재(解憂齋)가
드디어 준공식을 갖였다.
빼빼로 날에 맞춘 정도가 아니라 빼빼로 시간에 맞추었나 보다.
`Mr. Toilet’s House'라는 문패가 걸린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파란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 한 가운데 자리잡은 변기 모양의 집 현관으로 이어진다.
해우재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연면적 420㎡ 규모로 가운데가 비어 있는 변기 모양의
건물은 변기처럼 반질반질한 흰색 외벽과 둥근 곡선, 정원으로 난 거실의 전면 유리벽이
탁 트인 인상을 준다.
이날 준공식 행사는 사물놀이로 부터 시작하여 정문 문패 제막, 테이프 커팅, 내빈 소개,
본관 제막 등으로 진행이 되어서 한국 기록원에 해우소 건축의 모든 자료를 넘기고 인증
받는 순서로 이어졌다.
정조때의 화성 건축과 행궁에 대한 자료를 우리나라 처음으로 기록하던 전통을 이어받는
의미가 새로웠다.
내빈으로는 부총리, 경기지사, 수원 시장, 많은 국회의원, 민간 NGO, 각국의 대사 등이
참석하여 이날 한마당을 축하하여 주었다.
해우재는 화장실 변기의 모습이다.
집 주인인 심재덕 의원은 태어날 때, 명이 길라고 뒷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 건물은 앞으로 기네스 북에도 오를 예정이며 하루밤을 자는 데에 5만불을 받아서
전액을 후진국 화장실과 위생 시설의 신축, 개선에 기증할 꿈도 갖고 있다.
건물 자체는 뚜껑이 없는 변기 모양을 갖췄지만 집 안에 있는 3개의 화장실은 중요한
생활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케냐이던가에서 우리나라에 유학온 이 여학생은 전부터 화장실 협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영어
실력이 아주 좋았다.
김진표 부총리 등, 많은 VIP들이 참석하였다.
1층 거실 중앙에 위치한 화장실은 거실로 향한 벽이 `순간조광유리'라는 특수유리로
만들어져 평소엔 안과 밖이 훤히 보이다가 사용할 때 스위치를 켜면 불투명하게
바뀌어 생활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되도록 했다.
표창장은 윗사람들 보다 기능공 들에게 돌아갔고 그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전승되기로 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온 줄리아니(Giuliani)는 여기 화장실에 자동화 설비를 넣은 회사에서 파견되었는데
도자기가 아니라 스테인레스 스틸로 된 시설은 자동으로 모든 뒷처리가 끝나는 최신 공법이
도입된 것이라고 자랑하였다.
"중국에도 수출하느냐?"
물었더니 웃으며 "올림픽도 하지만 아직 그 쪽은---."
그런 대답이었다.
2층은 가운데 공간이 비어 있어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과 인공토양이 깔린
작은 정원으로 꾸며졌다.
다만 비나 눈이 많이 내렸을 때에는 급경사면에 꾸며진 노천 잔디밭에 무리가 없을까,
조금 근심이 되었다.
전문가들이 다 잘 했겠지---.
2층의 화장실 벽은 모두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져 정원과 산으로 둘러 쌓인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3개의 화장실에는 모두 스피커가 설치돼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런 식으로 투명과 반투명 차단이 자동으로 되어서 신기했다.
해우재는 독특한 외양과 함께 친환경 건축물로도 손색이 없다.
각 화장실에는 물 절약 변기가 설치돼 보통
70% 정도 줄였으며 태양광 발전 시스템과 빗물 저장탱크를 이용해 자연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해우재는 11일 완공과 함께 한국기록원 기네스북에 `한국 최초 최대의 변기모양
조형물'로 등재돼 인증서를 받게되며 이후 세계 기네스북에도 도전한다.
실내 방명록에는 전자 펜으로 축하문을 쓰고 작성자의 얼굴도 카메라에 담아서 영구 보관된다고 한다.
나도 한자 적었다.
김문수 경기 지사도 참석하여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다. 내 중등학교 후배 되는 인물이라 반가웠다---.
옥상에서---.
화장실 집에도 화장실이 셋이나 있었다. 마당에 있는 것을 제하고도.
어쩌랴---.
왕년에는 기념식수 삽자루도 많이 잡았었지만 참 오랜만에 포즈를 취해보았다.
주인공께서 문패 옆에 서서 하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선거법 상 음식 대접을 못한다고 아쉬운 인사를
건냈다.
배나무 골 동네 입구에 앙징스레 작아서 낯선 차가 서 있었다.
같이간 내 친구가 왕년에 자동차 회사를 하여서 전화로 알아보더니 저렇게 작아도 벤츠라고 한다.
한때 수입 되었으나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기호에 맞지 않아서 손들고 철수하였다는 것이다.
알아보니
이목 중학교에 차를 세워놓아서 또 조금더 걸어나왔더니 이런 차가 서 있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느낌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