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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클럽

원평재 2005. 2. 15. 11:29
"아시아틱 이코노미스트(Asiatic Economists)"라고 하면 
비즈니스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영문판 
상업잡지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좀 생소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IMF 이후에는 이 잡지와 부설 연구소의 이름이 거의 일반
상식이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그 어려웠던 시절에 외국자본 유입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도 남았다. 
특히 외국계 회사와 국내의 부실 기업이 M&A를 할 때에는 
기업 실사 지수를 정리한 영문판 가이드북이 전무한 상태에서 
여러 컨설팅 회사, 가령 맥킨지, 베인 앤드 캄파니, AT 커니, 앤더슨
같은 곳이나 
골드만 삭스, J P 모건, 모건 스탠리 같은 투자 은행의 자료 공급처가 
되면서 국내외의 언론 매체에 이 잡지는 무슨 난세의 복음서나 
경전처럼 자주 언급이 되었었다.
다만 요즈음에는 이 잡지사와 부설 연구소가 나라를 팔아먹은 
앞잡이였다는 억울한 소리도 심심치않게 듣게 되었지만---.
이런 비중있는 잡지에 강남에서 유학원을 경영하는 내 얼굴이 표지를 
장식하였다고 하면 좀 의아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에는 나도 펄쩍 뛰었다. 
이 나라 최고 경영인들이 십여 년간 얼굴을 내밀었던 거룩한 공간에 
일개 지식 장사꾼이 그 성소를 더럽힐 일이 있느냐는 나의 항변에 
저 유명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 MBA를 하고 온 발행인은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지식 장사꾼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라고 
엄중히 주의에 가까운 충고를 했다.
지식 장사는 우선 현금 장사이며 재고가 쌓이지 않고 자본의 회임 기간이 
짧아서 변화하는 시대의 추이에 즉각 변신, 대처가 가능하니
소위 위기관리,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쉬운 신흥 유망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좀 고상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말하자면 망해도 썩을 물건이 없고, 
생산 시설의 노후화를 별로 걱정하지 얺고서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냐는 설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격변하는 지식 정보 사회에서 외국어 중심의 평생 사회 
교육 사업만큼 봉사성, 지속성, 역동성은 물론 고부가가치까지 겸전한
산업분야도 없다는 평소의 내 지론을 와튼 스쿨 출신의 그 발행인이 
재확인해 주어서 나도 내심 하늘을 날으는 기분이 들었고 
마침내 이 잡지사의 취재 계획이 바뀌지나 않을까 안달이 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알량한 토플 실력으로 자비 유학 시험이 있던 시절에 시작한 
우리 “명문 아카데미 유학원”의 발전사만 따져보아도 초기의 단순한 
토플, 토익 강의 시대를 거쳐서 지금은 최고 수준의 영어회화 반을 
여럿 유지하고 있고,
대학원 진학생들을 위한 GRE 과정반, MBA를 지망하는 중견 회사원들을 
위한 GMAT 준비반, 
미국 의사 협회인 AMA 주관의 미국의사 자격시험인 ECFMG 응시반,
미국 공인 회계사 시험 지원생반, 컴퓨터 토플 방식에 맞춘 CBT 
대비반, 다양한 유학 지도와 유학 후의 추수지도에 해당하는 미국 동부 
현지 지사에서의 유학생 학사 생활 지도 센터의 운영,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과 베트남 및 몽골 등에서 오는 한국어 과정반을 
수도권에 있는 신생 명문대학인 “명문 대학교”와 공동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어서 규모의 면에서도 준 재벌급은 된다고
자부하는 현실이기도하다.
물론 매출 총액에서는 제조업에 훨씬 못 미치겠으나 순익이라는 면을 
따져야 할 것이다. 
특히 Net Profit After Tax, 그러니까 세후 순익을!
WTO 체제에서의 이런 지식 산업은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던지 
시사주간지 "뉴스 위크"는 이미 오래전에 “English, Ehglish, 
Everywhere"라는 특집 기사를 내고 세계적인 영어 교육 산업의 열풍에 
주목한 바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이 나라 경제가 어려워져서 유학원 중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많지만 우리 “명문 아카데미 유학원”을 비롯하여 적어도 
탑 파이브에 속하는 기관들은 오히려 이런 힘든 시기가 호경기라는 
아이러니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흐름을 포착한 "아시아틱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이 탑 파이브, 
다섯군데의 학원 CEO를 찾아내어서 함께 표지를 장식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단독으로 표지에 등장하는 것 보다는 격이 떨어질는지 몰라도 사실은 
과대 포장보다 마음이 편한 느낌이었고 세금 문제에서도 자칫 혼자 유명세를
타면서 두드려 맞을 위험도 분산되어서 마침내 표지 동기가 된 다섯 원장들은 
각각 기꺼이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도 응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함께 모여
이 방면의 주제로 좌담회도 개최하였다.
사진을 찍던 지난 가을날의 기억이 생생하고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각자 자기 학원의 옥상으로 올라가서 하얀 바닥 천을 발 아래에 
깔고, 자연 채광을 어깨로 받으며 머리와 앞 얼굴이 강조된 입상(立像)을 
찍었다. 
근육질의 카메라우먼은 웃음을 강제하면서 들고 다니는 알미늄 사닥다리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열번도 더 사진을 찍었다.
나는 억지웃음을 끈기있게 만들다가 힘이 들면 그녀의 다 들어난 배꼽을 
감상하면서 때가 끼었는지의 여부를 관찰하였다.
결과는 내 눈이 근시라는 점만 재확인 되었다.
국제화 시대에 돌입한 조국의 언어 정책과 전략과 이에 따른 부가가치를 
스탠딩 포즈로 진지하게 근심하는 다섯명의 학원 재벌들은 
이후에 국세청과의 관계는 다소 미묘해졌지만 하여간 
장안의, 아니 강남의, 아니 이 나라의 시대적 담론에 한 보탬이 되었고,
수백만원씩 사다가 뿌린 그 달의 "아시아틱 이코노미스트" 잡지는 
청운의 뜻을 품은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잠시나마 영문 경전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해가 바뀌고 화제도 수그러질 때쯤, 경제계의 어떤 쟁쟁한 인물이 보내는 
신년 교례회 초청장이 날라들었다.
초청장 상단에 있는 고문으로 모신 분들의 이름은 감히 배독하기도 
송구스러웠고 총무라는 명칭으로 몸을 낮춘 집행부의 수장도 
사실은 매일 아침 경제신문을 장식하는 주요 인물이었는데,
모임의 명칭은 “커버스토리 클럽”이었다.
커버스토리 클럽이라니?
아하! 
얼른 느낌이 오면서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장소는 이태원의 C 호텔 특별실이었는데 모이는 곳으로 강남을 버린 
이유가 이태원 쪽에 일부 거대 재벌들의 집이나 집무실이 가까운 
때문인지 영문판 잡지가 미군의 용산 캄파운드와 관련이 있어서인지는 
내 수준에서 촌탁도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 지식 장사꾼들 다섯명의 표지 동기들은 시간을 맞추어서 
함께 갔다.
만나는 시간에서 십분 전을 신참들의 에치켓 시간으로 삼은 우리는 
예약된 룸으로 들어서다가 좌석의 태반이 이미 가득찬 데에 
놀랐다.
“좀 더 일찍 오셔야지요.”
배꼽 카메라 우먼이 조용히 힐난하였다.
차가운 날씨 탓인지 분위기 탓인지 오늘은 그녀의 배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옷 매무새가 사뭇 달랐다.
“거물들이 정각에 오시거든요. 거의 나타나실 시간이 되었잖아요.”
그녀는 계속 낮게 속삭였는데 말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정말 정각이 되자 흰머리가 성성한 이 나라 최고의 경제계 인물 두 분이 
나타났는데 그 뒤로는 30대 중반의 기막히게 예쁘고 준수한 여인이 
두 손을 겸손히 모으고 따라 들어왔다.  
“여성 CEO인가?”
내가 옆에 있는 마당발로 통하는 표지 동기에게 물어보았다.
“에이, 처음 보는 여성들이네. 그리고 여성 CEO는 이 클럽에 나오지 
않는게 관행이라던데---. 내 정보로는.”
“늙은이들이 주책스럽네, 이 추위에---.”
다른 동기가 또 속삭였다.
“쉬---.”
연달아 플래쉬를 터뜨리던 배꼽이 경고했다.
“저분들은 창간호와 두 번째 호에 나오셨던 인연으로 매년 
신년 교례회에 꼭 나오세요.”
“그럼 저 여자들, 아니 부인들은 어떤 분들이시오?”
또 우리 동기였다.
“애첩이죠, ㅋㅋㅋ!”
낮은 목소리지만 ㅋㅋ거리다니, 이번에는 그녀가 주의 부족
이었다.
“허걱! 애첩!”
이건 가장자리에 위치한 지정학적 잇점을 십분 살린 
우리 테이블에서 터진 조용한 파문이었다.
“에이, 농담이구요. 그런 인터넷 표현이 있잖아요. 비서 겸 보디가드
들이지요.”
배꼽이 얼른 수정하였다.
“웁스! 여자가 무슨 남자의 보디가드를---.”
역시 우리 중의 누군가였다.
“몸을 보호해 주는 게 보디가드 아니던가요---?”
배꼽의 속삭임.
“대명천지에, 아니지 이 휘황한 샹들리에 조명아래에서 우리 시대에 
무슨 몸 보호라는 이야기야? 몸종인가---.”
마당발 원장이 조금 야릇하게 흥분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 몸 보신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모르세요? 두 분이 다 
기저귀 차고 계시답니다. 그걸 자주 갈자면 아무래도---.”
실내악 사중주와 지방 방송의 소음을 가르고 총무를 맡은 사장님이 
카랑카랑하게 사회의 마이크를 잡았다.
“조용히 하십시오. 이제 여기 두 어른이 차례로 건배 제의를 
하시고나서 신입회원 소개가 있겠습니다.”
커버스토리 클럽에 내가 입문한 첫날 저녁은 이렇게 경이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