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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잔해 앞에서

원평재 2008. 2. 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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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보이는 세개의 컷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손을 흔들어 무언가를 기대하는 몸짓, 묵언으로 따라가는 자세, 그리고 끝내 낙망하여

고개 숙이고 돌아오는 모습---.

숭례문이 불타 사라진 다음날 아침, 우리의 마음을 내비치는  한 조각  판토마임이었다---.

 

 

 

저 시커먼 잔해는 인도 간지스 강변의 바라나시, 바로 그 불의 터에서 본 모습이었다.

 

 

 

 

불에 그을린 굵은 대들보가 안타깝다---.

 

 

 

 

이게 바로 잿더미라는 것이다---.  

 

 

        (이 사진이 숭례문이 사라지기 닷새 전,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간 마지막 자태였다)

 

까치 설날에 숭례문을 훌쩍 지나치며 똑딱이로 사진 두장을 박았다.

존숭(尊崇)하는 남대문에 외경을 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까치 설날에

서울내기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빼고 서울은 호젓하다라는 늦은 소식을

블로그에 올려볼까 하는 심산에서였다.

 

헌데 그날, 까치 집을 너무 많이 찍어올리는 통에, 거기다가 고인돌 사진,

그리고 무슨 간첩 무인 포스트 관련 표지가 또 들어가고 하는 통에  사진이 넘쳐서

남대문 사진은 빼먹고 까치 설날 이야기를 올렸다.

 

그까짓 남대문 사진이야 지천으로 있고 또 나중에라도 올릴 다른게 없으면

그때가서 하나 올리면 되지뭐---,

그런 되지 못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꼴 좋다~~~.

그렇게 남대문을 홀대하고 며칠 블로그에 손을 대지 않고 바쁜척 지내고 있는데,

엊그제 저녁 9시 뉴스에 남대문이 잠깐 얼굴을 비치는가 하였더니 무슨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아나운서는 심드렁하게 불이 꺼져간다는 식으로 다른 나라의

에피소드처럼 우리나라의 불 이야기를  읊조리는 것이었다.

 

"에이, 물을 뒤집어 쓴 남대문이 내일 부터 때빼고 광내려면 담당자들은 이 추위에

고생께나 하겠네---."

나도 나른한 몸으로 동정심을 발휘하며 잠이 들고 말았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세상에나~~~!

"나라의 1호 국보"는 밤 사이에 유명을 달리하여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구나---.

그래, 우리 하는 일이 항상 이렇구나.

 

  

11일 0시 30분 쯤 소실된 나라 최고의 보물, 일러서 국보 1호가 사라진 후

하루를 게으름 피우다가 12일 아침, 올들어 제일 춥다는 날씨를 물리치고

불 탄 자리로 갔다.

 

보니 참담했다.

무슨 말을 여기 덧붙일까.

그림이나 되는데로 찍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몇자 해설을 못나게 달아 볼까 한다.

 

 

 

  

 

 

외신 기자들과 우리 기자가 대담하고 있었다. 곁에 서 있기가 민망해서 자리를 떴다.

 

이럴 때 씻김 굿이 필요할 것이다. 무슨 민족 정기 현양회에서 "민족이여, 힘을 잃지 말지어다"

라고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책임자 나오라"고 외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어서 다행, 아니 고마웠다. 

 

 

 

  

 

 

 

 

 

  

기자들이 과학 수사반원들에게 방화범 수사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소나무 보기도 부끄럽고---.

 

 

우리의 모습이라면 너무 자학인가---. 

  

   

곳곳의 흰 국화가 삼가 근조의 뜻을 표하고 있다. 

 

 

  

 취재 인터뷰가 불 붙었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이라고 한다. 소감을 물으니, "파이어, 파이어!"하고 떠난다.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참 어쩌다가 우리 사정이 딱하게 되었다---.

  

 

 여기가 어딘가---. 흥인지문, 동대문이다. 남아있는 사적이나마 잘 보존할 일이다---.

 

 파고다 공원도 도심에 방치되어 있다.

 

  비각이 날아갈 듯, 아름답다---.

 

 헐려짓는 광화문~~~.

 

 번듯한 대한문이 보이니 덕수궁이다---.

 

 

 

 

 귀가 길에 오르는데, 방화범이 붙들렸다고 한다. 일흔 넘은 노인이 600년 민족의 자긍을

붙태워 먹었다.

듣자하니 수용된 "땅" 값이 문제였다고 한다.

이 시대의 부끄러움이 모두 내포된, "땅"을 칠 일이었다. 

 

 음악은 해금, "오래된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