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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닭판의 월복기

원평재 2009. 8. 5. 10:49

여름을 많이타는 내게 삼복을 넘기는 일, 그러니까 월복(越伏)의 고행은 남못지 않다.

금년에도 초복 중복을 그런 사정에 있는 중, 그나마 재수좋게 몇몇 친구로부터 소집 통보를

받아서 시원한 곳을 찾아 그럭저럭 넘기고 말복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고향 동기회에서

전갈이 왔다.

월복 행사가 있으니 참석을 하라는 권유의 목소리였다.

 

교수 모임인 "경연 포럼" 때부터 보여준 K 교수의 은근한 목소리와 이어서 역시 같은

포럼에서 더욱 익숙하게된 고향 동기회장의 채근이 다른 구실을 만들 여지를 주지않았다.

만사 제하고 고향행이 확정되고야 말았다.

 

 

내게 고향 가는 일은 항상 서울역에서 시작되는게 아니라 경부선을 한참 타고 내려가다가

구미를 지날때 부터 실감으로 닥아온다.

구미는 내 고향이고 나는 구미국민학교를 나왔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증과 갈등과 다시 애틋한 정으로의 복귀는 그 누구에게나 있지 않으랴.

내가 너무 센치멘탈한지도 모르겠지만---.

 

저기 보이는 구미 역 옆의 현대식 절집 터는 원래 가파른 언덕배기였고 내 유년의 고난도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언덕의 흔적도 없이 대가람이 들어서 있을 따름이구나.

 

 

무심한 귀향을 탓하듯이 고향의 영산 금오산은 구름 뒤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향역은 이제 그 예전의 형체에 대한 기억도 희미한 상태로 변형되었지만  

언제나 살갑고 따뜻하다.

세계화 바람의 얼굴이 느닷없어도 말이다.

 

 

고향에 지하철이 두가닥이나 생겼어도 한번도 타보지 못했던 아쉬움을 씻어보겠다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승차를 하기에는 도무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서 도우미에게 매달렸다.

 

 세상에!

지하철 표가 원형이어서 더욱 겁을 주었다.

 

아무튼 고대 이집트, 테베의 길목을 지키고서 과객을 시험한 스핑크스 같은 지하철 관문을

가까스로 통과하여 동기회 사무실이 있는 역에 이르고 나니 드디어 동기들의 따뜻한 얼굴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친구가 하는 팔공산 아래 토종 음식점에서 "개판"과 "닭판"을 앞에놓고 고향 회장이 만고의 

사자후를 토하였다.

개식사 겸 환영사에 좌중이 술렁이고 분위기가 바야흐로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개판은 실내에 차려져 있었고 닭판은 마당에 있었다.

나는 혼자 갔지만 66명의 동기 내외들이 개다리, 닭다리를 뜯기 시작하였다.

꼬냑 한병은 개판 쪽을 돌다가 그냥 꼴깍하였다.

닭판 쪽 사람들은 "쏘맥"으로 심기를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몬도가네라고 누가 비난하랴.

나도 간만에 두가지 음슥 모두에 손을 대 보았다.

 

 

 

 

  

개판 쪽에 좌정하신 정경부인들을 사진으로 옮기지 못하고 닭판에만 렌즈를 드리댄 나는 만고의 겁장이인가---.

그뿐 아니라 여러 동기들과 합부인들의 용안이 렌즈를 비켜났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살아남은 개들은 살판이 났다.

 

 

 

 

 

이 주철 구조물이 무엇인가?

겨울 난로라고 한다. 

 

 

 동기회는 숙명적 단체이면서도, 이 역시 인간들의 조직이고 보니 여러가지 현안들이 많다.

비록 공식적으로 참석한 것은 아니고 다정한 초청으로 합석은 하였지만

고향 회장과 재경 회장인 내가 주요 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아울러 이날 여러 동기들의 의견들이 많이 개진되었다.

청사에 남을 일들을 도모하고 계승하자는 마음들이 오고갔다.

주로 내년으로 닥아온 50년전의 함성, 2-28 의거 기념행사에 관한 것이었다.

  

떠나야할 때가 왔다.

기차역과 철길은 "미래"라는 이름의 목적지로 인하여 가슴을 뛰게도 하지만 "작별"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도 한다.

그런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심정이 이심전심하였던가,

고향에서 약국을 하는 동기가 떠나는 역 발치에 있는 생맥주 집으로 상경 동기들을 이끌었다.

고향 분지의 저 후텁한 더위가 근방에도 오지 못하고 달아났다.

 

 

 

 

 상경길에는 금오산이 조금 얼굴을 내밀었다.

 

 두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서울역이 앞에 나타났다.

 

 

 

 

같이 간 친구 두사람이 고향의 선물을 서울에 전달하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서울은 역시 서울이란 말가?

여자도 담배를 꼬나물고 노인도 영어를 한다?

 

 

 

 서울 역 앞에 대형 종합 승강장이 생겼다더니 이런 시설물인 모양이다.

나도 처음 보았다. 

 

 

 

  

 

 바닥에 뒹구는 형체와 남산을 배경으로한 빌딩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이제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가 생각났다.

 

나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한번 갈아타서 최근 개통된 9호선을 이용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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