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와의 축구를 비겨서 마침내 우리나라 축구팀도 개최지가 아닌 곳에서 16강에
들어갔다고 나라가 들썩인다.
한동안 "나라를 비워서" 국민 여러분들과 감정상의 괴리가 있을까 염려하던 차에
FIFA 축구의 열기는 이 모든 거리감을 일거에 제거해 주었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이런 설명까지 구차하게 달아야하나---.
그래도 축구 경기 내내 누리꾼들에게 댓글을 허용한 인터넷의 내용을 읽어보니
아차,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몰매를 피하기 어려운듯 하여서 진정 농담이라는
설명을 달아둘 수 밖에 없다.
SBS는 계약상 중계방송이 해외로 송출되지 않는다고 하여서 내가 무슨 축구광이라고,
일단 스포츠 채널인 ESPN 2 채널을 열고 우리글이 나오는 노트북 까지 동원하여
시시각각의 해설을 읽으며 마음을 졸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음이 편했을걸, 공연히 문외한의 마음만 더욱 두근거리게 하였다.
이번 토요일에는 ESPN 2, 같은 TV 채널에서 우리와 우루과이 대전을 역시
중계한다는데 멀리 나갈 일이 있어서 가슴 두근거리는 맛을 다시 음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여간 북한 까지 포함하여서 삼천리 방방곡곡이 축구의 열기에 사로잡혀있는데
이런 판에 문학 이야기가 당하기나 하겠는가 모르겠지만,
한두마디 문학이야기를 축구판의 사족으로 달아봅니다.
<국제 문예>라는 격월간 문예지에 소설 신인 등단 심사평을 쓴 글을 이 축구의
열기 속에서 불쏘시개 처럼 올려봅니다.
심사를 하여 추천을 한 소설 작품은 딱하게도 흔히 말하는 이야기와 인기를 아예
내팽개친 난해한 작품입니다.
작품 보는 눈이 있는 발행인이 건져내서 심사평을 부탁하여, 다시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추천에 선뜻 나섰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잘하면 현대의 고전이 될는지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난해하니까.
텍스트를 여기 올리지 못하고 심사평만 올리는 어려움을 헤아려 주시고 도대체
요즘 순수 문학하는 작자들은 어떻게 궁상을 떨며 지내는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및 심사평>
안광수의 단편 응모작, "가석방"은 메타 픽션 계열의 작품이다.
소설 쓰는 방법론, 나아가서 소설 장르 그 자체에 일단 회의의 시선을 보내며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러티브 자체에 다시 매달리는 그런 계열의 소설이다.
소설이 장르로서의 자리매김을 확보한 것은 주요 문학 형식 중에서는 가장 나중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방법론에서는 가장 심각한 회의와 개혁과 진화라는 이름의 해체를 겪어왔다.
예컨대 외형적 리얼리즘을 확보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내면 심리의 사실적 묘사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이름으로 걸러내면서 이제는 전통적인 플롯 개념도 내 팽개친 지
오래이다.
그러나 해체에서도 의미가 상실되어서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 작가와 독자의 게임과 유희가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줄다리기에서 실족하면 작품은 허망한 거품이자 포말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
안광수의 "가석방"은 이 게임의 룰을 잘 지켜서 이겨낸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나레이터인 나와 A와 B, 세 사람이다. 나의 존재에 대한 고백 성사는 최종으로
미룬 채, A는 수배자, B는 신불자라는 별명으로 희미하게나마 인물 묘사(characterization)를
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며 2인분의 음식을 장만하는 데에서도 보듯이 이들 3인은 각각 별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모두가 한통속의 가석방자라는 존재, 어쩌면 우리 시대, 후기산업사회의
대표적 성격으로 분류될 인물들 같기만 하다.
여행을 마치면 각자 사무실로 감옥으로 무덤으로 가야할 존재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에게
부분적으로는 고루 해당하는 이정표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본문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요람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출발한 이후 우릴 찾는 전화가 없다. B는 아예 핸드폰이 없고
A는 받을 수만 있는 핸드폰이다. 나는 정상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무통은 곧 불통과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린 ‘한시적으로 잊혀 졌다’.
이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숨을 고르며 우린 같은 꿈을 꾼다. 이런 ‘일시적 유리’가 아닌
‘철저한 단절’의 꿈을. 우리는 숨고 싶은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것이다.
우리를 숨 막히게 압박하는 세상의 가치와 법칙과, 우리를 비열하게 만드는 세상의 욕망과
그 터무니없는 요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회한과 끝내 다하지 못 할 책임으로부터도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안광수 신인은 중견 내과의사라고 듣고 있다. 인간 의식에 관한 꼼꼼한 분석과 음미가
임상 일지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임상 일지처럼 의사만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록이어서는 문단의 호응을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공감을 전제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메타픽션을 앞으로도
많이 써서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야할 의무가 있음을 심사평의
끝으로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