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끄는 글
지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기체처럼 인간도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문학사의 첫 장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이
바로 이 양성간의 문제와 그 해결의 방법론, 나아가서 양성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의
과정을 다루어 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신화와 전설에서부터 시작하여 시, 소설, 연극 등의 모든 전통적 문학 장르,
그리고 오늘날 새로운 문학 텍스트로 등장한 영상 미디어의 주요 주제까지도 바로
이 성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문학 장르와 매체 속에서 논의되어온 성에 관한 주제라고 하면
우선 성애(性愛)쪽을 주로 다룬 영역, 즉 포르노성 문학의 세계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는 보다 좁은 하위 가치의 세계이고 성에 관한 진정한 주제이자
여기에서 다루고자하는 내용은 생물학적인 성별(sex)이나 성적욕구(sexuality)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사회, 문화적인 성차(gender), 나아가서 성차별까지 포함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정의하고 운명 지우고 또한 지배하고
있는가를 담아놓은 문학 텍스트에 관한 것이다.
사실 "성"이라고 하는 명제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여도 의식 있는 지식인들조차
성애, 성욕의 문제로만 인식한 경향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는 남녀간의 사회,
문화적인 여건과 그 차이를 포함한 개념이 마침내 분명히 자리잡은 21세기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여기에서는 바로 이 두 번째 범주의 문학 텍스트에 초점을 맞추되, 먼저
우리 나라의 고전과 설화 문학 속에는 남녀간의 성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영되어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우리 조상들의 의식구조는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동서양의 고전 및 현대의 주요 작품 속에서 성애와 성차를
포괄한 성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주제별로 나누어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는 첨예한 갈등구조 가운데에서 해체의 늪으로 가고있는 오늘날의
심각한 이성간의 문제에 관한 화해와 재 결속의 가능성도 또한 문학작품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2. 우리 민속설화 속의 성
이동을 하지 않는 특성의 농경문화가 토착화된 우리 나라의 풍토에서 민속설화가
풍요롭게 발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뿐만 아니라 농경문화의 속성상 남녀간의 성적인 행위와 결과는 모두 결실과
풍요를 상징하고 또한 기원하는 바에 다름 아니어서 성 자체를 더럽거나 추악하게
보지 않고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욕구와 생명력으로 너그럽게 보아왔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남녀관계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성행위도 자주 제의적
(祭儀的) 차원으로 취급하며 홀아비나 과부가 다소 상궤를 이탈하여 성적 욕망을
충족하는 경우에도 이를 관용하고 있다.
그러나 순리에 역행하는 행위, 예컨데 결혼한 여자의 간음, 근친상간, 동물들과의
이상 성행위 등은 역천(逆天)의 행동으로 보아서 단호하게 징벌하는 결말을
지어놓고 있다.
한국 비교 민속학회에서 엮은 『한국의 민속과 성』에 나오는 내용들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토대로 하여 몇 가지 주제를 정리한다.
가. 화해와 성장의 주제
이 주제에 걸 맞는 대표적 설화로는 "단군 신화"를 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데로 웅녀는 매일 신단수 밑에서 아들 낳기를 빈다.
이를 본 "하눌 나라"의 환웅은 잠시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웅녀와 성적인 결합을
하여 단군을 낳게 한다.
이때 웅녀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아마도 당시 우리 나라에 이미
살고 있던 선 주민들 중 일부 부족의 토템이 곰이었을 것이며 이후 환웅(桓雄)이
이끌며 하늘의 자손을 칭하는 이주민들이 이들과는 교류, 통혼하게 되었고,
반면에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다른 부족과는 갈등 관계에 놓였다는 설이 학술적
공감대를 이룬다.
어쨌거나 필요한 만큼의 인고(忍苦)를 겪은 웅녀와 "하눌님"의 원만한 성적
결합은 우리 겨레, "백의민족"을 형성하게된 근원으로 높이 자리 매김 되고 있다.
결국 단군신화에서는 원래 대립, 갈등의 구조였던 양성이 적절한 인고(忍苦)의
과정을 거치면서 화합과 신생을 얻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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