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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빙벽 앞에서 (해동 육룡이 나라샤)

원평재 2011. 9. 28. 11:51

빙하의 빙벽이 무너지면서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장면

 

 

빙하를 용에 비유하며 이번 여행 중 대략 여섯군데에서 그들과 대면하였지요. 

우선 멘덴홀 빙하처럼 민물 강상의 빙하(그 물은 물론 자신의 몸을 녹인 것),

그리고 바다에 면한 거대 빙하들,

끝으로 북유럽 fjord나 카나다 록키에서 처럼 이제는 말라버린 빙하 흔적,

여섯번의 용과 조우하다보니 어느틈에 "해동 육룡이 나라샤"를 주문외듯했네요.

 

가장 깊은 인상은 말라버린 빙하 흔적에서 받았지요.

비감한 느낌이 벅차올랐으니 이거 무슨 과대 감상이라니.

하긴 오대호를 만든 그 빙하들도 사라졌지만 지구는 아직도 펄펄 살아있지요.

생태학자나 되는 것처럼 비분강개가 들어간 글을 어떤 문예지에 보내 놓고

지금 좀 부끄러워하고 있지요---.

 

내가 원, 이 나이에도 무슨 도그마를 붙들고 알량한 지식으로 결기어린 진실의

수호자 타령인가,  

하지만 Googledge!

구글에 가면 다 있는 세상에서는 상상의 변경을 넓혀주는 것도 글쟁이들의 할일이자

그나마 주목을 받을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글은 이미 떠나갔고 눈을 질끈 감습나다.

 

 

 

빙하는 바다로 떨어지면서 천둥치는 소리, white thunder를 내며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둥실 떠오르며 유빙이 되어 흘러갑니다.

빙하가 시퍼런 색갈을 띄는 것은 한과 원이 맺혀서 그런가 합니다.

400년씩 묵은 눈이 압력을 받아서 빛의 굴절각 때문에 시퍼렇게 된게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너무나 급속히 늙어 소멸해가는 운명이 한스러워서~~~. 

 

 

 

 

처음에는 빙하 무너지는 소리가 하나하나 천둥같았으나 익숙해지자 작은 소리는 신음 같았고

큰 소리는 통곡 같았다는 주관적 감상입니다.

 

 

 

배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수 있는것은 옆구리에도 디젤 엔진 스크루를 달았기 때문이랍니다.

바다 오염이 더 심하겠지요---.

 

 

 

 

 

굴절된 군중상이 또다른 공간을 연출하네요---.

 

이 텅빈 빙하의 자리가 달이나 화성의 거죽이라도 되는듯 황량하고 부정스러운 인상을---.

 

 

 

 

빙하가 급속히 후퇴하며 뼈대를 드러내고있는 지형

 

 

 

 

안에서는 아무리 젠틀하게 내다보아야 천둥 소리도 안들리고 피상적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게 나을 정도이지요.

 

빙하마다 우선 외형이 다릅니다.

 

 

 

 

 

 

 

이제 방향 돌렸으니 빙하와도 이별이군요~~~.

 

돌아오는 뱃길에 바다사자가 겹겹으로 햇볕을 쪼이는 장관입니다.

 

빙하에 접근하는 뱃길은 예사롭지 않아서 구역구역마다 전문인들이 임무 교대를 합니다.

Pilot, 도선사라고 하는데 친구 중의 한사람이 지금은 은퇴하였지만 바로 그 전문인이었습니다.

아이가 학교 다닐때 제출하는 서류가 있어서 종교 "불교", 아버지 직업 "도선사"라고 하였더니

"대처승이시구나"하였다던가.

 

 

정말 떠나는 뱃길이 을씨년스럽군요. 슬픈 해로, 어두운 뱃길입니다.

 

 

 

 

소년 시절처럼 비행정에 매달립니다. 마음이~~~.

 

숙제처럼 보낸 에세이의 제목은 "알라스카 블루"였지요.

대략 이런 색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주노에 들던 새벽 빛갈입니다. 잿빛을 바탕으로한 에메랄드 블루---.

 

 

주노에서 새벽에 만났던 쓰레기 장

 

 

이동식 주택이 이렇게 예인되어 들어오더군요.

 

아, 선탠녀의 추이와 귀추가 궁금하지요?

 

 

세 여성들이 식사 기도를 너무나 정성드려 하기에 감동했습니다.

기도 중에 사진을 찍기가 뭣해서, 식사 중에 포커스를 잡았더니 감동적 분위기가 좀 덜합니다.

영어나 스페인 말은 아니었고 동 유럽 어느나라 말인지---. 

사진을 찍으면서 꼭 재현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분위기가 사뭇 경건하였습니다.

 

무슨 장면일까요.

유화 옥션 장이 섰습니다. K 옥션에서 좀 익힌 익숙한 장면이더군요.

보석 장도 서고,

미술품과 보석의 바다 위에서의 시장 한마당.

그런 분위기도 서려있었고.

 

밤이면 또하나의 세계가 열리지만 많이 즐기지는 않았지요.

여행의 진미는 밤에 더하고 그렇게 하면 여행을 두배로 즐기는 줄도 알고 많이 실천도 했건만

집안, 아니 배안에 멍석을 펴주니 게으른 참가자가 되고 말다니,

세월 무상인가.

배경음악으로 "과거는 흘러갔다"를 넣고 싶을 지경.

 

 

이런 장면들은 필수인가요?

 

아래에 스냅의 편린들을 주워담아봅니다.

 

캐치칸에서 본 흰 머리 독수리 목각입니다.

 

캐치칸의 무공해 관광차

 

급속히 늘고있는 크루즈 선의 디젤 매연이 생태계를 더 빨리 교란하는듯~~~.

근심의 글도 여기저기 써 봅니다.

 

 

 

 

 

 

이제 돌아갈 길이 남았습니다. 뱅쿠버의 빅토리아 항에 반나절 기항를 하고 시애틀로 돌아갑니다.

리포터에게는 아직 두 도시 이야기가 남았군요.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1806)
(Cadenzas by Kreisler)

를 감상하겠습니다.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영웅적인 백절불굴의 투지로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은 때입니다. 교향곡 제1,2번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제2기(1804-1816)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입니다.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의 작품입니다.
제3기(1817-1827)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인데 영감의 창작기입니다.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이후의 감각을 초월한 시대의 작품을 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9번 등이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합니다.
베에토벤이야말로 많은 유산을 우리 인류에게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1806)

1806년 그가 36세 때에 작곡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명 바이올리니스트 클레멘트를 위하여 쓴 걸작입니다. 베토벤은 여기서 바이올린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구사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융합을 이루어 교향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군에 점령당한 때였지만 불멸의 애인 테레제와의 희망에 찬 교제가 한창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규모가 큰 구상에 풍부한 정서, 찬연하고 어려운 기교 등으로 보아 그의 독특하고 힘찬 정열을 가진 작품입니다.
1 mov.Allegro ma non troppo
2 mov.Larghetto attaca
3 mov.Rondo-Allegro

Oistrakh, David (1908-1974 R.) Oistrakh, David (1908-1974 R.)

금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선배인 엘만과 하이페츠, 연하인 메뉴인과 슈테린처럼 유태계입니다.
5세부터 스토랴르스키를 사사하고 눈부신 재능을 보여 러시아내에서는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와 이자이의 두 콩쿠를 통해 서구에도 그 이름을 알렸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 각지에서 눈부신 연주 활동을 펼쳤습니다.
솔리스트로서의 활약 외에 오보린, 리히테르 등과의 실내악연주도 활발했으며 지휘경험도 적지 않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자질을 대단히 균형 있게 겸비한 보기 드문 대가로, 이른바 유파를 초월한 고고 (高孤)의 예술을 높이 세운 인물입니다.
시대와 양식을 가리지않는 레파토리의 광범함도 경이적입니다.
연주 여행지인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이어듣기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Cadence:Kreisler)

2악장 Larghetto

3악장 Rongo-Allegro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61 (1806)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Oistrakh, David :Violin
Orchestra National de la Radiodeffusion Francaise
Andre Cluyteus:condu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