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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 수도원을 거쳐 불가국 수도 소피아로 입성

원평재 2012. 9. 5. 10:17

 

불가리아는 음운상으로도 우선 우리나라 건국 설화에 나오는 "밝" 사상과 일맥이 통한다.

물론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많은 민족들의 핏줄, 젖줄이 가감첨삭되는 과정에서 지금은 예전과 같은

근친성이 많이 벌어지긴했다.

그래도 몽골 반점은 맥맥히 흐르고 있다니~~~.

이 먼 땅에 "사돈의 팔촌의 머슴의 구촌"이나 "왕고모 육촌척" 쯤이 산다는 생각은 여독을 풀어주는

청량제가 아닐수 없다.

 

부여족의 일파는 4세기말쯤 서방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때 부여족들은 그들이 세우는 나라나 도시에

"밝"자를 붙이는 특징이 있었다.

발하쉬호(밝하슈호), 바쿠(밝고), 바그다드(밝은땅), 발칸반도(밝한,밝은)등의 이름을 남기고

카프카스 지방으로 이동을 했다.

바이칼 호수 근처의 "불한" 혹은 "불함"사상과도 음운상 일맥 상통한다.

서양사에서는 불가족("부여"의 발음은 "부르" "부유" "불"로 발음되었고 "가"는 부여고구려의 정치제도인

가(加), 즉 "부여가족"이다

 

동 로마 제국의 기록에 따르면 불가리아 인들은 전투 전에 "박산"에 올라 조상신인 "단구르"에게 제사를

지낸다고도 하였다.

백산, 백두산과도 어떤 인연이 보인다.

여기서 "단구르"는 "단군"과 닿는 맥락이 아닐까.

 

또한 이전에도 올렸다시피 부여족은 수도를 "소비" 라고 하였는데 백제의 사비성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서울, 셔블, 서라벌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불가리아의 수도는 소피아 이고~~

발칸반도의 귀족층에는 "보야르"라는 계층도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훈족이 세운 헝가리는 자신들을 마야르, 마자르(Majare)라고 하는데 이는 "말갈"과도

통한다는 주장이 있다. 핀랜드의 핀 족과 에스토니아도 아시아 계통이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들어가기 전에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을 소개하지 않을 수없다.

이곳은 불가리아의 "정신적 수도"이기 때문이다.

소피아에서 남쪽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화려한 색채의 수도원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릴라 수도원이다.

릴라 수도원의 역사는 10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반 릴스키(John of Rila)라는 수도승이

은둔 장소로 작은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이 점차 중세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릴라 수도원이 지금의 모습으로 갖추어진 것은 14세기경, 즉 제2 왕국시대이다.

그 후 약 500여 년 동안 불가리아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기독교는 물론 불가리아어로 쓰인

서적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릴라 수도원만은 지리적인 이유로 인하여 불가리아어를 사용해도 묵인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360여 개에 달하는 방에 전국의 수도승이 모여 수도와 학업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터키의 불가리아 지배 시대 말기인 1833년에 대형 화재로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반스코 출신의

네모피트 릴스키의 주도하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될 수 있었다.

 

릴라 수도원은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에서 유일하게 활동 할 수 있었던 불가리아 종교 및 문화의

본거지였으며 민족 부흥의 정신적 지주로써 활약하던 불가리아의 국민적 수도원이다.

 

 

 

 

 

화재 후에 중수를 할 때 큰 역할을 한 릴스키가 자신의 얼굴을 슬쩍 올려 놓았다.

 

 

 

 

 

수도원 뒤쪽 문밖에서 문득 합천 해인사 계곡을 생각케한다.

 

 

 

 

동방 정교회의 특징은 지역적인 토템 의식 같은 것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슴의 뿔 등이 결려있다.

 

 

감동 끝에 이제 밖으로 나온다.

 

 

수도 소피아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한식당에서 퓨전 한식으로 잘 먹었다.

 

가까운 곳에 러시아 대사관이 있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여기 사진에는 조금 밖에 담지 못하였다. 러시아의 위세를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의 지상 구간인 모양이다.

 

 

 

발칸최대의 정교회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회

 

 

 

발칸반도에서 최고 규모의 성당, 러시아 정교회,

네오비잔틴 양식의 건축물로서,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가 투르크와 전쟁(1877~1878)을 하여

승리한 기념으로 지은 교회이다.
그때 죽은 20만 명의 러시아 군인을 기념하기 위해 1882년 착공하여 1912년에 완공,
1960년 러시아가 기증한 20kg의 금으로 도장을 했다.
프레스코, 벽화, 조각 등은 주위에 있는 6개 나라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러시아황제 알렉산더 네프스키 2세(Alexander Nevsky 재위1855-81)는

미국에 알라스카를 팔아버린 바로 그 황제이다.

 

 

 

대통령 궁 앞의 이 교회 건물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하였다.

검은 천은 별 의미가 없다는데 통역이 잘못된건지---.

 

매 정시마다 있는 근위병 교대식

 

 

붉은 광장 앞의 지하철 입구

바로 옆 소피아 동상, 지하 교회 등과 함께 수도의 중심지역이다.

 

지혜의 여신 소피아 상이 매우 관능적이다.

원래 레닌 동상이 올려져 있다가 임무 교대했다고---.

불가리아 은행 건물이 배경이다

 

저 붉은 지붕 아래에 지하 교회가 있다.

 

 

소피아 성녀상 아래의 세인트 페트카 지하교회


백화점 부근 지하도에 있는 중세교회로 고대 로마사원 위에 건축했다고---.
1395년부터 지배를 받던 터키의 지배자 터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하에 지었다고 한다.

킬 힐은 어디에나~~~

 

 

지하 교회 근처에 대 목욕탕 유적이 있다(건너편 건물).

 

 

원래 로마시대 때 부터의 대 목욕탕 건물이었는데

지금 현대식 빌딩으로 개조중이라고 한다.

 

목욕 문화 너무 좋아하면 사회가 위태해진다---.

우리 찜질방 문화로 인한 위기론은 없는지.

 

 

소피아 시 중앙에 위치한 스베타 네델리아 광장에는 유명한 온천 음료수가 있다.

뜨듯한 물이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멈추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광천 온수의 원수 기념탑

 

 

 

반야바시 이슬람 사원.

 

 

대 목욕탕 근처에 있다고 하여서 "반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16세기 중엽에 만든 유럽 최고의 이슬람 사원.
네오 비잔틴양식.

투르크의 지배를 벗어나며 모든 대부분의 모스크가 파괴 되었지만

이곳 하나는 잘 유지되고 있다.

바냐바시(banya bach)는 많은 목욕탕(many baths) 즉 ‘공중목욕탕’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1576년 오스만제국 최고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설계했다고---.

.

 

 

대통령 궁과 쉐라톤 호텔의 내정쯤에 해당하는 성 게오르기 교회

 

 

이 교회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 때 로마목욕탕 위에 건축한 건물로

소피아 시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며,

터키지배 때는 이슬람사원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흔히 내정에 배치하는 꽃밭이나 분수대신 비잔틴시대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2000년 묵은 건축물이다.

이 사진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아깝고도 안타까운 마음에서이다.

쉐라톤 호텔은 원래 대우에서 아주 싸게 매입했던 것인데 IMF를 겪으며

아쉽게도 내 놓은 물건이라고 한다.

세상에 아쉬운게 어찌 이뿐이랴---.

 

 

 

 

 

대우, 아니 쉐라톤 호텔로 통하는 문

화장실을 다녀왔다.

 

 

 

지하도에 있는 티 셔츠가 구 시대를 비틀고 패러디한다.

"KGB는 지금도 당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문구를 보면

이 나라도 확실히 많은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모양같다.

정부 종합청사와 붉은 광장

 

 

 

 

 

세르디카(Serdica) 지하 유적지


이 유적지는 대통령궁과 국무총리실을 연결할 지하도를 파다가 발견되었다고 하며,

기원전 6세기 경에 이 지역에 트라키아 세르디 족이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점령한 후 3세기경에 유적들을 건축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이 동문에 해당하는 성벽과 2개의
탑이라고 하며,

전형적인 로마의 빨간 벽돌과 석조 벽도 보인다.

 

 

 

 

 

 

 

국립 미술관에 삼성이 후원하는 전시 행사가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성 니콜라이 교회"

 

소피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아담한 교회

 

구룡반점에서 한끼를 들었다.

어느나라 음식인지 한식 다음으로 좋았다.

레닌광장의 벼룩시장

 


재미있는 벼룩시장을 구경하였다.

공산당 시절의 동전, 화폐, 훈장, 악기, 아이콘 등이 있어서

구소련이 해체 되던 때 모스크바와 레닌 그라드로 여행을 했던 때의 생각이 났다.

그때 사지 못했던 물건들을 평소 아쉬워했는데 이번에도 살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제는 후회도 되지 않는다.

 

 

 

 

앞면의 활기찬 인물상과 뒷면이 대조를 이룬다.

벼룩 시장에 때맞추어 마술을 하러 가는 마술사

소피아의 낮

 

 

 

 

 

 

변두리 판자촌이 보인다.

예전 청계천 생각이 난다.

이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떠난다.

발칸 내전의 참상이 보다 생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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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의 모짜르트..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찰리채플린-

 



클라라 하스킬
(Clara Haskil 1895. 1. 7. ~ 1960. 12. 7)

루마니아의 별

루마니아 태생 스위스 피아니스트.

독일의 비평가 요하임 하이저는 자신의 저서

『우리 시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클라라 하스킬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클라라 하스킬, 1960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녀는

'피아노의 성자'로 일생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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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바이올린 소나타 2,3악장

바이올린/아르투르 그뤼미오

피아노 / 클라라 하스킬

 

 

 


2악장 Andantino sostenuto e catabile

 



3 악장 Rondo allegro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에 있는 클라라 하스킬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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