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소년 소녀의 모습으로 내 대뇌 속에서 화석처럼 고착된 형상이 실제 현실에서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런 인간적 궁금증과 호기심이야 누구나 다 똑같지,
하필 세포 생물학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같은 사람이라고 뭐 특별히 다른게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변한 모양을 보인다고 해서 내 기대가 너무 순진했다는 자책도 말이 되지않으리.
사실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으면서 내 지나온 이야기나 듣고 하소연을 유발시키고 또
그들의 이야기에 나 또한 눈물까지 흘리는 시나리오는 일일 연속극 같은 비현실적 욕망일 뿐,
이기적 DNA가 꾸민 일종의 음모에 다름 아니리라.
사람은, 아니 모든 유기체 나아가서 무기물질 까지도 자체의 내부적 기호를 따라가기
마련이고 그것이 군집을 이루어도 그런 경향성은 다르지 않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늘의 뜻일게다.
"나르는 새를 보아라" 그렇게 경전의 말씀은 비유를 하지만 비유가 아니라 그건 바로 하늘의
뜻 그 자체일 것이다.
내가 이번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슬픈 이야기 때문에 사진 기술만 강조된 이야기를 펼치고
발표한 셈이 되었지만 사실 "DNA-->RNA-->단백질" 이렇게 연결되는 유전자 생물학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결국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확율과 조합으로 귀착되지 않던가.
Gene이 아무리 방아쇠를 당기고 단백질에 깊은 신호를 보내어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카오스의 법칙이거나 수많은 경우의 수가 만드는 조합, 그리고 그 확율.
내가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제일 못배운게 통계학과 논리학이었을 것이다.
내 통탄의 반대급부일까, 하나밖에 없는 딸 자식은 수학에 빼어났지. 세계 청소년 수학 경시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게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에서 였던가.
학부에서 수학과를 마치면 의과대학원으로 갈 트랙이 확 꺾여서 인도계 남편과 파푸아 뉴기니
옆 이리안 자야로 선교사가 되어 떠난 데에는 나와 조나단의 관계에 대한 착시, 그보다 병든
아버지를 내팽게쳤다는 오해가 몇십 퍼센트나 작용했을까? 아니 그보다도 더 먼저 아버지가
쓸어진 원인이라는 확신까지 더불어.
지금 그 아이 쉐럴이 가까이에서 나의 통계학 자문 역할이 되었더라면 나는 노벨 상에 몇
발자국 더 가까워졌을까. 유전자 학문 뿐 아니라 메디컬 리서치 전반이 수학자들에게 의존을
하게 되다니,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하여간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렇게 유전자의 전달에 변이의 축선이 되는 확율의 불가측성,
그 온갖 조합으로 연구자를 낭패시키는 이 살벌한 전쟁터에서 잠시 사흘간의 휴전 기간을
확보하여 낭만적 고향, 조금도 변하지 않은 고향을 그려 보고자 함은 설혹 그 꿈이 허상으로
끝나더라도 평생 한 번 쯤은 그런 어리석음을 부려보아서 후회될 일은 아닐 것이다.
변화와 변형을 타락이라고 하지도 말자. 어떤 세상에라도 서로 봐주기 하는 "이너 서클"이
있지 않겠는가,
권력 이너서클 말고 서로 모든걸 발가벗고 그게 힘들다면, 가면 파티라도 열면서 서로 알고도
모른체 하고 용서하는 서클이 있다면 축복받은 인생이 아닐까.
세상 쪽으로는 그들/그녀들이 어떻게 보일지라도 저 욕망의 리비도, 그것을 내 쪽으로는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 친구라면 다시 헤어진 후에라도 영원히 그리워할 대상이 되리라.
나 자신은 다 털어놓치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내게 가감없이 투영된 그들의 모습이라면
내 마음도 세탁이 되는 저 카타르시스의 과정을 공짜로 얻는게 아니겠는가.
결과를 먼저 발설해 보자면, 내 여자 친구 세 사람을 만난 기록은 참으로 기이한 고딕 로만스
같은 세계였다.
한사람은 설혹 미확인의 범죄자 심리 속에 자신을 속박하며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순간들을
간신히 지탱하는가 하면 또 하나는 평범을 가장하여 가면 무도회를 날마다 개최하는 사람,
또 하나는 우울증의 심연 속에서 님포마니아의 비밀 계좌를 꼭꼭 여미다가 내게만 슬쩍
보이고 다시 말문을 닫은 그런 기록,
그런 기록의 첫 장을 열어본다.
후배 여의사와는 출국 때까지 다시 직접 만나지는 못하였다. 24일은 심포지엄 발표로 바빴고
다음날은 대담 준비와 녹화로 하루가 다 날라갔으며 26일은 낮 12시에 포스팅 자료가 철거
되는 것을 구경하듯 바라보면서 후원사에서 베푸는 서울 관광과 회사 방문으로 정신이 없었다.
이날 저녁에는 워커힐에서 만찬이 있었는데 참가비 70불이 아까워서는 아니었을 터이고
현업과 가정을 꾸리는 후배가 그렇게 한가롭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전화로만 연락을
하고 정을 나누었다.
참가자들이 워커힐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만찬장을 떠날 때에는 수퍼문에 달무리가 져
있었다. 예보대로 며칠내에는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후배 여의사는 집에서 내 대담
프로를 재미와 함께 깊은 감동으로 잘 보았다고 전화를 주었다. 나는 미리 녹화 테입을 받은
바 있었다. 마지막 27일에는 많은 참석자들이 이미 떠나서 자리가 듬성듬성 비었으나
존경하는 선배, 다음 4년을 이끌고 갈 차흥봉 회장님의 페어웰 연설을 경청하느라고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여럿이 이런저런 공적 사항으로 공로패를 받는 순서에서는 나도 전날 방영된 좌담
프로그램 덕택으로 차례가 왔다.
대회가 끝나고는 사흘을 같은 호텔에 할인 가격으로 더 있도록 미리 주선을 해 두었다.
사흘을 더 묵은 후 오전에 도심 공항을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적기를 타러 인천공항으로 나갈
때 까지가 내 개인에게 주어진 사적인 시공이었다. 삼차원 아니 사차원의 자유 차원이었다.
현재 진행형은 물론이려니와 어쩌면 고향의 능금나무 과원으로까지 거꾸로 굴러갈 수도 있을
아, Free Dimension!
호텔의 비즈니스 룸에서 인터넷을 통하여 연구소로 요약 보고서를 일단 정리하여 보내고 깜박
졸고 있는데 스마트 폰이 울렸다. 프론트에서 승용차 기사가 나를 찾고있었다.
쿠페 스타일의 페라리가 서있고 잘 생긴 청년이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인사를 꾸벅하고 문을 열어서 내가 편히 안도록 세심함을 보이느라고 그가 대쉬보드 아래 쪽의
콘솔에 내 쇼울더 백을 받아서 넣어주려던 동작과 내가 앉으려는 동작의 불일치가 묘하게 일치
되면서 우리는 서로 스킨쉽이 되었다. 청년이 왼쪽 눈을 찡긋하며 사과하였다.
"죄송해요. 아주 잘 모시라고 해서."
하지만 별로 죄송한 표정이나 말 솜씨는 아니었다. 그가 아무 말없이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나는 스킨쉽이 돤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운전석으로 금방가서 앉고 스크린 터취로 시동을 걸자 쭉 올린 날개쭉지 차 문이 사분의
일 각도로 내려오면서 금계포란형으로 두 사람을 감쌌다. 이어서 안전 벨트가 스르르 내려오는
사이에 기분 좋은 느낌의 탄력과 더불어 엔진 소리가 들렸다.
"슈겅, 슈겅"
은박 포일을 부채처럼 부치면 이런 소리가 날까, 쿠페는 냅다 달렸다. 내가 좌석을 조금
당기려고 다시 대쉬보드의 스크린을 찾는데 오른쪽으로 California라는 흘림체 글자가
화들짝 눈에 들어왔다. 페라리 캘리포니아구나!
글자로 놀란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년이 아까 차의 앞쪽 그릴을 지나가는데 보니
청바지가 엉덩이를 바싹 들어올려주고 "돌체&가바나"란 영문 글자가 거기 긴장 상태로
붙어 있었다.
"아이구, 페라리 캘리포니아! 난 거기 바로 그 동네에 살아도 못 타본 거네."
이건 물론 청바지의 청년에게 한 말은 아니고 명품으로 몸을 감싼 김민지를 만난 다음의
토로였다. 그녀는 우선 입생 로랑의 베이지 색갈 핸드백에서 살바토레 페라가모 지갑을
꺼내더니 청년에게 저녁 값을 우아하게 쥐어주었다.
옷은 또 어디 명품일까, 찬찬히 봐야겠네. 신발은 프라다였다.
내가 그녀의 명품 리스트를 다 알아챈 건 순전히 내 눈썰미, 기억력 DNA 덕분이다.
세포 생물학의 권위자가 거져된 건 아니었다.
물론 전자 현미경을 셋업하고 촬영하는 기술력이 저 품목들을 걸치도록 보장해 주는건
전혀 아니다.
레미제라블?
천만에!
내게는 명품같은건 하나도 없으되 있어도 무용지물일 따름이다.
민지는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방학 중 내려왔을 때 보아도 작은 키는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 들어간 이후에도 키가 더 큰 것 같고 노년을 내다보며 조금씩 줄어드는 지금도 그녀의
키는 위축을 거부하는 몸짓같았다. 내 눈썰미의 판단이었다.
"너 키가 점점 더 크는구나."
이말도 그녀를 처음 만나며 터뜨린 감탄문 몇개 속에 들어갔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렇게
30년만에 친구를 얼싸 안으며 엉뚱한 소리만 내질렀다. 그녀는 원래 이목구비가 수려했는데
그 얼굴 모양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주름살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터뜨린 감탄문은 또 있었다.
"어머나, 부군도 계셨네요!"
그 부군 같지 않게 생긴 사내는 와인 바의 안쪽 청록색 은은한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우리가 입구 밝은 쪽에 서서 난리를 치다가 안으로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자
엉거주춤 서있는 모양새였다.
"내 동기 동창, 저 유명한 노벨 의학상 차기 예정자, 강덕희 박사! 여기 어둠속 사나이는 내
보이 프렌드~. 유택수 회장. 돈은 많은지 몰라도 이건 빈 분이야."
그녀가 머리통을 가르켰다. 내가 오기 전에 한잔씩 미리 걸치긴 하였겠다.
"우리가 고향이 같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다녀가신 곳이지요. 이번에는 세계적 석학을
지척간에 뫼시다니 큰 영광입니다.
나는 "아니 뭘요"하지 않고 자세를 꼿꼿이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아까 너무 호들갑을 떨었는가 싶었다.
"여왕님 행차만 강조하실게 아니라 이육사 시인이 태어나신 곳이고 시인 김종길 교수님의
향리이기도 하시고."
문학 소녀의 근본은 저 명품 속에서도 모두 지워지지는 않았구나.
그렇게 우리의 해후는 이루어졌다.
"네 친정이 원래 잘 지내셨지만 그 보다는 분명 네 힘으로 성공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대략 그런 식이었는데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내 직관에.
"성공이란 표현은 덕희 너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난 좀 돈은 벌었달까~. 다 허무한 일이지."
그녀가 허무란 말을 하는데 그 서슬인지 목에 매단 다이아먼드가 은은하게 우선 서너가지
빛갈을 선사하며 존재를 과시하였다. 저건 가짜가 아닌 진짜일 것이고 텐 캐럿 정도?
아니 홀수로 나인 보다는 일레븐을 택했을 것이다. 민지라면 그 정도 돈과 안목은 있을거야.
손에는 아무 반지도 끼지 않았다. 아마도 사파이어를 끼고 싶었겠지만 이곳 분위기가
청록이니 빛을 발하기에는 힘들었을 테고 루비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을거야.
그럼 꼭 여기라야 되나? 다른 장소를 물색하지.
순간 내 생각을 꿰 뚫은듯 그녀가 카운터 쪽을 불렀다.
"심 회장~! 우리 그거 시킨 것 좀 갖다줘요. 그리고 와인은 뭘로할까?"
그녀가 나에게 와인 리스트의 초이스를 맡기며 몇마디를 붙였다.
"저 심 회장이 유명한 그 탤런트의 언니이고 또 동생도 있어. 세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지."
아하, 사파이어를 포기하고도 이곳 청록 분위기를 택한 이유가 있었네.
"나는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산이면 다 좋아. 특히 삐노 누와르면 더 좋겠고."
"그건 부르고뉴 지방 산이 오리지널 아닙니까?"
유 회장이 알은체를 하였다.
"네, 그렇지만 거기서 유래하여 미국의 오레곤과 캘리포니아 산도 대단해 졌지요.
유럽 보다 이쪽이 항상 일조량이 좋고 관개시설도 잘 되어있어서 무슨 해를 특별히 따지지
않아도 좋구요. 값도 부담이 적지요, 호호호. 꼭 프랑스 산으로 고르라면 같은 맥락에서
브루고뉴 산 샤도네이도 좋구요."
"얘, 꼭 그거라야 되니? 난 그게 좀 달고 과일향도 느껴지고 색조도 좀 히덕시그리 하더만."
민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히덕시그리"란 표현은 내게 대한 다정함, 동향의식의 발현
이리라.
하여간 와인의 특징 설명으로라면 맞는 표현이었지만 혹시 예전처럼 "대 경기" 의식의
발로는 아니겠지?
유 회장은 재까닥 그녀의 말에 복종하였다. 납작 엎드린다는 표현이 예전에 있었는데 바로
그런 자세였다.
"하하하, 우린, 아니 나는 뭐가 뭔지 모르니까 그저 비싼걸로 시키면 틀림이 없다니까요.
심 회장, 우리 그거 달지 않은 걸로 우선 한병 따고."
양고기가 갖은 양념으로 나왔고 마침 일본에서 와규가 들어왔다고 해서 또 그걸로
스테이크를 시켜서 푸짐한 안주를 즐겼다. 술은 막 딴 코르크 마개 뒤를 따라 모연이 거만
하게 피어오르고 술 향이 묵직한 것으로 봐서 보르도 산 까베르네이 쇼비뇽이 푸르스름한
어둠 속을 침노함에 틀림없었다. 모연 속에 조나단 모습이 잠시 스쳤다. 그와 나는 와인
취향만은 달랐다.
술이 조금 오르자 유회장은 자꾸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명사들과 찍은 사진이 수도없이
많다고 자랑까지 곁들였다. 내가 모델을 허락하는 대신에 절대적 발언권을 요구하고 모두
찬성하였다. 심 회장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즉석 사진과 디지틀 사진을 찍었다. 승용차
기사로 쓰는 그 청년이 들어와서 "누님"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심씨 성을 가진 유명한 탤런트는 끝내 오지않았다. 전화 독촉까지 했는데도.
"작은 차는 갖다두고 큰 차 갖고 왔습니다."
청년이 높은 음으로 보고를 하였다.
"이번에 벤츠 S를 뽑았답니다. 참 잘하셨어요."
유 회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아까는 람보르기니를 빌려 보내지 그랬니?"
내가 농담을 하였다.
"저 청년을 빌렸는데 수중에 페라리 캘리포니아 밖에 없다고 하더라. 호호호."
그녀가 헐리우드 식 농담으로 받아내었다. 아직도 머리가 좋았다.
"민지야, 너 오늘 나하고 만나자마자 너무 작위적, 아니 위악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무슨
곡절이 있니? 우리가 뭐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헤어지거나 만난 것도 아니고. 또 그런걸
따질 나이도 지났는데 좀 심하구나, 얘-".
"아니 작위적이라는 건 좀 어폐가 있다만 일단은 미안하구나. 그렇게 보여서. 사실은 내
실제의 모습이고 또 내일 닥터 나, 그래 희은이 만나면 다 이야기를 들을테니까 싶어서 미리
고백하는 셈이야. 희은이도 오늘 함께 만나자고 했는데 피치못할 일이 있어서 내일 따로
만나겠다니 그애 속을 어떻게 알아. 분명 나하고 같이 만나기가 싫었을거야."
"그래, 뭐 그건 좋아. 그대로 넘어가자. 그런데 너 내가 미국가기 직전에 결혼 청첩장을 보냈지?
내가 갈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축의금은 보냈을거야. 그때 결혼한 부군과는 헤어졌니?"
"응, 사별---, 아니 이혼을 했어. 이혼이 더 정확해."
"언제?"
"한 십년 전이야."
"지금 기억이 나네. 학교 다니면서 열애를 한다고. 집안에서는 물론 반대가 심하다는 소문이
고향에까지 자자했어."
"아, 저기 저 양반 집안, 그러니까 풍산이지 뭐, 거기 고시에 합격한 예비 검사님이 있었는데
결혼하라고 집안에서는 난리였지, 나는 그때 안암골 호랑이하고 연애중이었다네."
"호랑이 한테 홀딱 빠졌었구나. 너같은 고집장이, 잘난체하고 버르장머리없는 여자가, 호호호.
뭐하는 분이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엔지니어 계통이었어. 다리를 놓는 꿈을 가진 이상한 사나이였지. 내가
왜 그런 사람하고 연애를 했는지, 그걸 지금도 모르겠어. 호랑이가 아니고 고양이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다만 나한테 참 잘해주었어. 노예, 그래 종이었다고나 할까.
그게 내 오만한 정신에 딱 맞았나봐. 의대 공부가 치열했잖아, 특히 그때가. 그리고 자살한
학생들도 해마다 두어명 각 의대마다 나오고 했잖아. 그때 그 사람이 매일 밤이면 찾아와서
나를 북돋우고 발을 씻겨서 마사지까지 해주고. 그러니 내가 홀딱 몸을 맡겼나 봐.
우리집이 그때 강남이었는데 내가 학교 근처 연건동에 방을 얻어놓고 있었거든. 사실
내가 말만 거칠고 고집만 쎈게 아니라 나도 몰랐는데 심신이 모두 거칠고 강렬한가봐.
그건 저기 저 양반도 잘 알지."
동의를 요청받은 사나이가 경청을 하다말고 벌떡 일어나서 민지에게 가더니 마사지 같은걸
해주기 시작하였다.
"오늘 스무일곱 홀을 함께 돌다 왔지요. 이 더위에."
"미안하지만 그래도 좀 비켜나세요. 저와의 대화에 방해가 되네요. 그리고 그게 뭡니까?
취하셨어요?"
내가 그의 동작을 제지하며 힐난하였다.
"정말 이 양반이 더위먹었네, 강 박사 미안해. 그래도 내 우울증을 증발시켜 주는 사람은
이 양반 뿐이야. 지은 죄는 있지만. 호호호."
민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별로 말리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혼을 했니?"
내가 사내의 동작에는 구애받지 않고 민지에게 물었다.
"내 말을 좀 더 들어봐. 내가 레지던트 끝날 때 쯤에 아이가 섰어. 지울수가 없더라고. 다리
놓겠다고 하는 엔지니어에게 아이 양육을 맡기고 영등포에서 산부인과를 열었지. 돈이 정말
억수로 들어오더라. 전부 어린 여공들이나 가난한 여염집 여인들의 임신 중절, 공공연한
비밀 낙태 시술이지 뭐. 죄 많이 졌지만 그때는 국가에서 장려하는걸로 여기고 열심히 애국
하는 줄 알았지. 돈이 막 들어오는데 강남 신사동에 땅이 하나 은행 차압으로 넘어가는거야.
그걸 경락 받고 은행 빚을 얻어서 있던 건물을 헐고 5층 빌딩을 올렸지. 그걸 또 머리를 써서
병원 전문 건물로 만들었단다. 그 과정에서 친정 덕을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무슨 전문?"
"성형 외과야. 내가 낙태 전문의로 새 생명을 들어내기만 한 게 아니라 타고난 손재주를
이용해서 예쁜이 수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단다. 낙태가 법으로 강력하게 단속을 받고 또 그런
무자비한 방법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다른 여러가지 피임 방법이 들어오자 나도
인륜에 반하는 일은 집어치우고 예쁜이 수술로 한동안 이름을 날렸는데 어느날 갑자기 성형
수술이 이 나라에 유행을 타기 시작하는거라. 사실 예쁜이 수술이 뭐야? 성형 수술이지. 내가
그 방면에 원조격이 되네. 하여간 신사동, 압구정동에 성형외과가 갑자기 얼마가 생겼다더라.
우리 메디컬 전문 건물은 모두 성형외과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있던 치과 병원 하나도 교정
전문으로 바뀌었다니깐."
"처음의 끔찍한 에피소드는 유감이었지만 해피 엔딩이네 뭐."
"그게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야. 다리 짓겠다던 엔지니어는 사람이 참 유하고 약하게 보여서
나한테는 절대 복종형이었는데 잔인한 데가 있었나봐. 메디칼 빌딩이 성형외과 빌딩으로
바뀔때 제대로 전업을 한 사람은 좋았지만 그렇지 못한 병원들은 몫 좋은 이곳에서
성형외과를 차리러 들어오는 야심찬 의사들 때문에 쫓겨나다 시피 했는데 죽이네 살리네
원성이 자자했단다. 이걸 모두 그 빌딩에서 개업을 하고있는 내게도 모르게 처리했으니
무서운 사람이었어."
"정말 그렇네. 미안한 표현이지만 범죄형이네."
내가 몸을 좀 떨었다. 성격적으로 아주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어봐, 그보다 더 큰 일이 또 있었어. 그때 성형외과를 차리는 데에는 대단한 시설
경쟁이 있었어. 인테리어와 새로운 장비, 시설을 들여오는 데에 십억 이상이 들었어.
백만불 이상이라구. 하여간 대부분 몫돈이 없으니 모두 당시 인기있던 '엔 케리' 자금을
썼거든. 일본 돈 말이야. 그게 이자가 아주 쌌으니까, 그리고 원화 환율도 한참 내려갔어.
그런데 그게 얼마 안가서 반전이 된거야. 엔다까, 그러니까 엔고라는 것이지. 그런게 되고
보니 빚이 갑자기 30프로 정도 늘어난거야. 이자가 싸다고 해도 원금이 불어나니 견딜 수가
있나. 거기 더하여 경기가 안좋아졌으니 장사도 안되고. 그런 형편의 의사들을 또 다
내몰았지. 설비와 시설은 그렇게 되면 모두 쓰레기야. 알다시피. 이걸 또 모두 우리 아저씨가
똥 값으로 모았데요."
"아저씨라니?"
"아이구, 그 다리 만들겠다던 내 전 남편말이야. 그 사람 이름이나 이야기만 나와도 끔찍해.
아주 뱀 같았다니까. 이사람이 나 몰래 돈을 빼돌려서 딴 살림까지 차렸다네.
그때 나는 거의 내 건물 전체를 복합 성형외과 병원으로 직영을 했는데 비즈니스가 또 말도
못하게 잘되기 시작했어요."
"아니, 무슨 성형 수술 국민운동이라도 일어났나?"
"그런 운동이 일어났지. 바로 중화인민 공화국에서 말이라네. 지금 내 빌딩의 표준어는
중국어야. 나야 물론 시술이고 경영이고 다 손을 떼고 물러났지만. 그런데 그 복 받은 와중에
하나는 못견디겠더라는 것이야."
"남편의 딴살림?"
내가 말을 받아주자 그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바로 이혼을 결심했지."
"아이들은?"
"둘인데 무슨 걱정이야. 모두 내 편이고. 그런데도 이혼에 도장을 찍지 않는거야. 교묘하게.
물론 이 이혼 다툼이 모두 다 변호사 끼고 하는 거지. 우리 무궁 교지 만들던 남자 동기들이
둘이나 변호사 개업이야. 그런데도 이 사람들이 또 너무 유해서 그런지 성사를 못 시키더라고.
송병만이는 국제 로펌으로 갔으니 별도였지만 자문도하고 애 많이 썼지. 전적인 위임은
박범수 변호사가 맡았어. 그런데 그 동기는 얌전하여 판사를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저쪽 검사 출신 변호사를 못당하더라고, 정성관이는 은행장도 했지만 그때는 어디 지점장인가
뭐 그랬고. 도움이 안되었어요."
"쟁점이 뭔데? 돈 때문인가? 아이들 양육권? 친견권?"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얘도 그 방면에 아는게 많구나. 하긴 미국 사니까. 쟁점으로 떠오른건 방금 말한게 모두 포함
되었고 그보다 이 인간이 나와 헤어지는 것 자체를 불안해 했어요. 그렇게 구박받고 딴
살림을 차리고 해도 내가 옆에 있어야 된다고 울면서 고백을 하대. 온갖 수모를 다 받으면서도."
"그래도 말이 안되네. 남편이 그렇게 바람을 피고 있는데 이혼 사유가 안돼?"
"그때쯤은 내게도 문제가 좀 생겼어. 골프가 이게 문제더라고, 저 양반이 원흉이야."
그녀가 유 회장을 가리켰다. 그는 웃고만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만 계속해봐."
"내가 힘들어하는 낌새를 눈치 차리고는 의협심 강한 스포츠맨들로 무슨 특공대를 만든다고
법석을 떨대. 유 회장은 저기 좀 자리를 비켜 주세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죽마고우와의
자리에서는 좀 그렇네요."
유 회장이 얼른 일어나더니 카운터 쪽으로 가서 심 회장과 무언가를 시시덕거렸다.
"어떻게 된건지는 몰라도 다리 만들겠다던 사람이 그즈음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거야. 이
인간이 점점 입장이 곤란해 지니까 비겁하게도 어디론가 도망을 친거야."
"민지야, 말이 좀 어폐가 있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 북한의 이산가족도 다
찾고 만나더라."
"모르는 소리 말어. 요즈음은 중국도 있고 동남아도 있고 하여간 비겁하게 도망을 친거야.
이 인간이~! 같이 살던 젊은 여자도 버리고 말이지."
"자꾸 도망갔다, 비겁하다고만 하지말어. 행방불명이 된거네. 그래 행방불명자로 신고는
했어? 실종 신고를 해야해. 그거 제 때에 안하면 미국에서는 고지 의무가 있는 사람이
큰일나. 여기 이땅에도 법이 있고 당연히 그럴테지만. 난 무섭다, 얘. 범죄 스토리같다,
정말로 미안하지만."
"몰라, 나도 겁도나고 무서웠어. 하여간 그건 그런데 그 비겁한 인간이 사라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또 이혼 도장도 못받게 생겼지 뭐니. 그때부터 내가 술을 좀 과하게 마시게 된거야.
겁이 나서가 아니라 도장을 못받아서 화가나서 말이야. 그게 내 고집이고 자존심이야.
그리고 내가 돈 많은 돌싱이란 소문이 나고부터 저 비슷한 사람이 주위에 확 꼬여."
'유 회장이 이렇게 옆에 있는데도?"
"저 사람을 내가 대단치 않게 보니까 한 눈을 파는 내 자세에도 문제가 있겠지. 도무지 믿음
이나 존경이 가지 않는 사람이니까. 엮인 끈이 있다면 어쩌다가 괴상한 일에 얽혀있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랄까---."
"그 전 남편께서 조울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예에서 황제 사이를 오고간."
내가 직업의식이 발동하여서 무심결에 말을 하고는 아차 싶었다. 여기와서까지 케이스
스터디를 할 만큼 표집대상이 궁핍한 것도 아닌데 이 자존심 강한 옛 친구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는 없지 않았겠는가.
"그래, 그 작자가 조울증이 있었어. 나한테 와서는 조에 해당하는 온갖 납작 굿을 다했고
딴살림 여인에게는 울 때의 특징을 마구 보였나봐."
"특징이라니? 아, 옳아! 가학성!"
"그래, 육체적으로도 마구 패고 정신적으로도 고문하고."
그녀가 발끈하지 않고 이제는 무던하게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연애 기간중, 내게 한없이 복종하고 팍 엎어질 때에는 피학과 자학의 쾌락을 느꼈나봐. 또
그때도 한참동안 나타나지 않을 때는 지금 생각해보니 울의 증세로 어디 숨어지냈나봐."
"아니, 두 분이 계속 이야기만 나누실 건가요. 2차를 가야지요. 노래도 부르고."
유 회장이 어느틈에 다가와서 힘주어 권유하였다. 카운터 쪽에서 독한 꼬냑으로 몇잔을 더
하더니 그 사이 용맹무쌍하게 되었다.
"가만 있어봐요. 아직 초저녁인데. 나눌 이야기가 더 있어요. 이제는 내가 물어볼 차례-."
내 친구가 자기 이야기만 너무 많이 들려주어서 손해라는걸까, 대담 스타일을 의문문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그래, 좋아. 그런데 빨리 물어봐, 저분도 댁에 들어가셔야지."
"그 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 저 인간이 나와 합치겠다고 염불을 외더니 내가 가까스로
실종 신고자와 이혼을 법적으로 성사시키고 나니 마누라가 도장을 안찍어 준다고 오리발이야.
내가 반은 죽여놓았다가 특별사면 한게 얼마되지 않아, 그러니 그 걱정은 말어. 재수 없다,
얘~!"
"지금도 석고대죄하는 심정입니다."
그가 금방 풀이 죽었다.
"사극 보는 것 같네요. 제가 심심할 때마다 영화나 뮤지컬을 많이 보고 또 한국 드라마도
CD를 빌려보곤 하지만 이런 시추에이션은 처음이네요. 호호호. 너무 재미있고 우습다.
미안해요, 호호호."
"얘, 호호호는 또 더 남아있어. 2차가 있단다. 하하하." 그녀가 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때까지 비니에아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 "전설"이 유현한 분위기로 나와서 놀라움 겸
다행이라고 느꼈는데 갑자기 맘마미아가 나왔다. 심 회장이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는듯
카운터에 있었는데 어쩌면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뮤지컬이란 말에 곡이 바뀌었다.
아무렴, 어때!
"덕희야, 너 LA 교포사회에는 통 나오지도 않고 그렇다며? 네 소식은 카더라 통신으로 다
듣고있어, 여기 강남 소식통은 LA에 관해서라면 거기 보다 더 밝아. 동부 쪽은 좀 멀어서
그렇지만. 그런데 재혼은 할거니?"
그녀가 포물선을 그리는 국궁 자세로 화살을 재는 것 같더니 갑자기 양궁으로 바꾸었다.
방금 내가 너무 웃었는지 모르겠다.
"반 정도는 맞네. 교포 사회에 출입을 않지만 주류 사회에도 섞이지 않고 그래. 난 혼자가
재미있고 좋아. 그리고 재혼이라니 그건 조금 비약이네. 아직 영감님이 들숨 날숨은 건재해.
알츠하이머가 많이 진행되었어도--.
내가 몰두할 대상이 없었다면 데이트도 신나게하고 꼭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라도 여러가지
일을 많이 저질렀을거야.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겐 일이있었고 지금도 결판을 낼 일이
산더미야. 그렇게 세포 생물학계가 험한 전쟁터야. 내가 가만히 보니까 너나 나는 우울증 같은
건 걸리지 않을것 같아. 아깐 네가 우울증이었고 저 분이 증발시켜 주었다고 했는데 그건
일시적 우울 반응이었을거야, 유전자, 즉 진에 그게 들어있는 고질병은 아니야.
우울증도 솔직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생존경쟁의 한 단면이고 우리는 극복 메카니즘으로
두툼한 갑옷을 입고 태어난거 같네. 조그맣게 이기거나 위로를 찾아도 우리의 진은 다치지 않아.
한때 조울증 환자가 네게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걸 때에도 같은 빌딩 안에서 태연히 예쁜이
수술에 정진하였다지? 그리고 마침내 행방불명 실종자가 된 배우자를 비겁한 도망자로 몰아
부치는 내 친구, 그대 김민지. 또한 여기 이렇게 멀쩡한 사람의 가정사까지 좌지우지하는 그
삶의 원동력, 결코 우울증의 희생자가 될 사람은 아니네.
난 그보다 스케일이 훨씬 작은 일, 예컨대 내 이름이 덕희 아니냐. 세련된 이름은 아니지.
아니 촌스런 이름이야. 그걸 데보라로 바꿀때는 우리가 뭐 데보라 카아 밖에 몰랐잖아.
그것도 나중에 보니 구식 이름이야. 그래도 내 자매 이름처럼 덕자, 덕이가 아닌게 구원
같았지. 우리 항렬자 돌림에서는 내가 가장 운이 좋았구나. 나는 승리자! 이런 얄미운 생각을
철들면서 하고 위안을 받았다니깐. 내 속아지가 이렇게 못되먹어서 매사에 떨지않고 살아
왔어."
"아하, 무시못할 무용담이네. 덕자 언니 이름은 미국에서 뭐가 되었니?"
"매리야, 예전 우리나라 집안에 하나씩 다 있던 이름, 호호호."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집안 이야기는 빼먹었네. 나는 아들 형제인데 모두 노라리야. 의사 하나
만들려고 했던 것도 실패했고 며느리도 노라리고. 의업과 관계되는건 메디컬 빌딩에서 임대료
받아먹고 사는 것 뿐이야. 그래서 내가 돈을 좀 헤프게 막 써. 우리나라도 이제 증여나 상속에
세금이 얼마나 붙는지 아니? 다 뜯어가거든. 내 자식들 노는게 하도 우습지도 않아서 그거 참
잘하는 정책이다라고 막 소리쳐. 방송에도 나왔어."
복지를 내건 여성 대통령이 나왔는데 혹시 무슨 벼슬 생각으로 그런건 아니었을까, 아니 신변
정리가 이래서야 꿈도 못꾸겠지 하는 객적은 생각을 하는데 친구가 또 내 신변에 관한
질문으로 말을 이었다.
"아주 공부 잘하는 딸이 하나있어서 UCLA 학생 회장한다는 소문도 들렸어."
"비밀이 없구나. 아, 그애가 벌써 졸업을 했고---."
"그럼 의대로 갔니?"
"아니야. 저기 파푸아 뉴기니 옆의 이리안 자야라는 정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어.
자기 남편과."
"놀랠 놋자네. 미국 교회가 예전처럼 선교사 파송하는 데에 큰 돈을 대기도 힘들텐데. 네가
보태주니?"
"과학자가 무슨 돈이있니. 그리고 나는 뜨거운 기독교인이 아니라 좀 쿨한 쪽이야. 미국
건국의 초기에 성했던 Theism이라고, 이신론을 신봉하던 사람들의 생각에 많이 기울어져
있달까. 그러니까 일위일체설이고 인간도 신의 한 부분이라는 과학 신봉 기독교 사상이지.
최근 아침 저녁으로 봉은사를 보았다만 불교적인 우주론도 나는 호감이 가요. 내 사위와
딸하고는 트랙이 조금 다른 셈이지."
"아이들이 고생이 많겠네?"
"상상에 맡겨. 아니 상상도 못할 정도인가봐,"
나는 꾸밈없이 다 말하였다.
아까부터 유 회장의 스마트 폰이 바빴다. 어디서 자꾸 독촉이 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벤츠를 타고 정말 몇 발자국도 안되는 이동을 하였다.
위치를 잘은 몰라도 옆으로 광림교회라는 야광 표지가 보였다.
"아, 저기 한국 교회에서도 파송비의 일부를 보낸다더라."
내가 무심코 말을 하였다.
민지가 말을 받았다.
"내가 공연한 불안감과 허무감으로 또 절세를 한답시고 허튼 데에 돈을 많이 쓰고 사나 봐."
"그런 것도 재미있으면 시들해질 때까지 해봐, 내 연구에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집착하고
있어. 그럼 마음이 편해. 어딘가에 매몰되고도 밥 잘 먹고 살 수 있으면 큰 축복이지 뭐.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베라 왕이네. 아까는 내가 좀 자신이 없었거든. 지금 보니 틀림이 없네.
웨딩의 신부 복장으로는 세계적 명성이잖아."
나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봐 걱정이 된다는 심정에서, 그러니까 그녀의 입을
막아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 답변을 좀 늘렸다. 옷 이야기를 그래서 꺼낸 것이다.
"그래, 내가 결혼할 때에 제대로 신부복을 못입었어, 사실은-. 집안의 반대가 그렇게 극심하니
거지같은 신부복을 잠시 빌려입었고. 그래서 요즘 베라왕의 신부복 스타일을 즐겨입지.
하지만 주책이 없는 짓이야."
김민지가 이제 어른스러워지고 있는가. 키도 많이 자랐으니.
"어서 오십시오."
보타이를 한 미남 청년이 큰 빌딩의 앞에서 우리를 맞았다.
"여기는 또 빌딩 전부가 레스토랑과 바아, 그리고 노래방으로만 가득찼지요."
유 회장의 설명이었다.
세상에~! 우리가 들어간 노래방은 8층에 있었다. 잘 생긴 중년 신사 두명이 칵테일을
마시며 앉아있다가 유 회장에게 "형님!"하면서 먼저 인사를 하고 그 다음 민지에게는
"누님!"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아마도 그 의리의 돌격대?
마침내 한참 설명을 듣는체 하더니 나보고는 "박사님!"하면서 역시 또 깊은 인사를
하였다.
자리를 잡자 나는 골프공이 든 멋진 상자 위에 사인을 몇번 하였고 이어서 골프 공에도
사인을 해 주었다.
내게는 금박이 찍힌 골프 악세서리와 골프 공이 선물로 전달 되었다.
이어서 골프공이 받침대 역할을 하는 예쁜 술잔에 꼬냑을 한잔씩 따루어 단숨에 마시는
주법이 있었는데 "노털카, 노털카, 노털카"라고 모두들 만세 삼창처럼 외쳤다.
나는 조영필과 너훈아라고 하는 모창 가수가 들어와서 구성진 노래를 불러서 DNA 생각을
하면서 실없이 웃었다. 이어 유명한 현역이라는 여가수의 노래까지만 듣고 직접 한곡조
뽑으라는 권유를 완곡하게 뿌리친 후, 밖으로 나가서 장난감 같은 예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니 엘리베이터가 그 방안에 있었던 것 같다. 민지가 1층 바깥까지 따라나왔다.
그녀가 자기 승용차를 부르는데 내가 좀 걷겠다고 하였다.
"덕희야, 이거 그 선교사 부부에게 좀 전해줄 수 있겠니?"
그녀가 봉투를 내게 건네는데 어쩔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까 승용차 안에서 그녀가
허무감과 허튼 마음을 이야기할 때 부터 나는 그녀가 품은 감정의 기복을 느끼고
일단 거부의 몸짓으로 짐짓 베라 왕의 의상을 언급하며 딴청을 부리지 않았던가.
무언가 그녀로 부터 그런 식의 도움을 순간적 충동의 소산으로 받는다는 건 부정타는 일
같기만 하였던 것이다.
"거절하면 너하고는 절연이다. 받아주면 매달 조금씩이라도 쉐럴에게 선교비로 보낼께.
그래야 내 영혼을 구하고 천당가지, 천당가는 보험금이란 말이야, 호호호."
길건너로 더운 날 밤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가 그 큰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을 속죄하고 또 간구하려는 것일까.
나는 말없이 봉투를 받았다. 봉투는 얇았으나 만만치 않다고 내 직감이 알려주었다.
"밀림으로 부터 그 옆나라 수도인 포트 모레스비로 매달 나와서 보급을 받는가봐. 진심으로 고맙다."
나는 이름없는 파이버 재질의 지갑에서 쉐럴의 명함을 꺼내어 민지에게 주었다.
건너편 예배당 문이 닫히는데 불빛은 넉넉하게 흘러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