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광복 70주년을 보내며
K 형!
팔월은 광복의 달입니다. 뜻 깊은 광복절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해마다 펄펄 끓는 이 달만 찾아오면 또 다시 광복절 타령이냐고요?
삼복더위에 이제 그만 혈압 좀 낮추자고 비분강개(?)하시지는 마십시오.
저도 K 형 말고는 누구에게 제 마음을 외치겠습니까? 이 나라 근대사의 전후 사정을 살피면
팔월은 펄펄 끓어도 부족 할 만큼 열 받는 달이기만 합니다.
광복의 감격이야 영원하겠지만 펄펄 끓는 열기의 사연은 그런 데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올해는 물론 광복절을 일흔 번째로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인생 70 고래희"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수명 관계이든, 무슨 축복받을 사연이든, 심지어 몹쓸
사건일지라도, 일흔 번의 햇수를 넘긴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겠지요.
공자님은 인생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30 이립(而立), 40 불혹(不惑), 50 지명(知命), 60 이순
(耳順)이라고 하였는데, 시성 두보(杜甫)는 다시 "인생 70 고희(古稀)"라고 노래하였지요.
그때 그분은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아서 어쩌면 외상 술값을 걱정하며 그런 시를 썼을 수도 있다는
말이 돌기도 합디다만. 하여간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더라(人生七十古來稀)"라는 뜻이 담긴
성인의 말씀이니 우리의 광복 칠십 주년이야 그 연륜 자체만으로도 어찌 뜻 깊은 기록이 아니겠습
니까.
물론 역사상 항시 깡패같기만한 이웃 왜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은 일이 크게 자랑
할 만 한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 일이 일어 난 지 칠십을 셈하게
되었으니 깊은 감회 속에 "고래희"라는 말도 묻어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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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광복의 팔월 달에 날씨 말고도 또 무슨 열불 날 일이 많다는 것인지 형은 의아
하시겠지요?
따져보자니 흔히 한일합방이라고 하는 "한일 병합 조약(韓日倂合條約())"이라는 게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고 8월 29일 에 발효가 되었으니 하필이면 모두가 다 이 뜨거운 달, 팔월에
이루어집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우리의 팔자에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조국은 광복을 맛보고 3년간의 미군정 체제를 거친 후 1948년
8월 15일 똑같은 날에 정부 수립이라는 밝은 기억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멀쩡하던 강산이
두 동강이 난 비극의 그늘을 내내 극복하지 못하고 반쪽의 광복만 향유하게 되니 8월의 열불은
그치지 않고 우리의 팔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렇게 된 책임은 미국이나 소련 어느 일방에만 있다기보다 일본이라는 원인 제공자와
허술한 국력의 우리 내부에도 함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요.
8월의 열불에 군불을 때는 일은 더 있습니다. 광복절만 되면 도쿄 발로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이른바 "일본 기여론"이라는 망령이 여름 밤 귀신이 되어 아직도 반딧불이 인양
떠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합방 당시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약삭빠른 일본을 상대로 슬그머니 민족자결의
원칙까지도 무시한 태세는 두고두고 분통이 터질 일이었지만 더 큰 일은 다시 우리 내부의 문제
였습니다.
당시 일본이 내세운 명분 즉, 동아시아의 평화와 후진국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조선
반도로 진출했다는 저들의 주장에 소극적이나마 동조하는 이른바 국학파들이 이 나라의 역사
편찬에 영향을 주어 왔다는 사실이 이때가 되면 은근슬적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나라의 광복 팔월이 펄펄 끓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왜인들 보다 조금 늦기는 했으나 대한제국 당시 한양에
개통된 전차는 일본 보다 3년이나 먼저였고 국민소득도 당시 중국보다 앞선 아시아 둘째였다
라면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심적으로라도 일본에 빚질 일은 하나도 없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아니 일제의 기여란 조선을 거지꼴로 만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본이 건달 깡패들을 동원하고 그 후위에는 정규 군대가 포진하여서 이 나라를 강점하는 일만
없었더라면 동아시아의 오늘은 평화와 협조의 본보기가 되어서 유럽의 EU 보다도 더 선진된
모습을 보였으리라고 상상하여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답답한 것은 이런 시론을 펴는 이 시점에도 강산은 두 동강나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시 원인
제공자는 이웃 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후 처리과정에 간여한 열강들을 또한
책할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보면 반쪽이나마 해양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사의 진운에
참여하게 된 경과나마 다행스럽다는 자위도 해 봅니다.
마침내 우리도 경제대국에 가까스로나마 진입하고 우여곡절 끝에 민주국가로 체면을 세우게 된
이 절체절명의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진정한 제2의 광복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민족적 과업을 완수하여야 진정한 광복이 오고 8월의 열불도 납량의 에피소드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K 형,
여름 소나기를 고대하는 8월의 어느날에 올립니다. K는 코리아의 첫 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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