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글작가대회” 첫째 마당 참관기
“세계한글작가대회”의 참가 신청 안내서를 메일로 받은 것은 미동부에 체류하던 때였다.
시차와 느긋함으로 하루 이틀을 지나서 신청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슬아슬하였다.
국내외의 한글 작가들이 이번 행사와 그 주제에 이렇게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평소의 얕은 소견으로는 다소 염려의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와 석학들을 모았던 대규모 세계적 문학 행사도 이미 거뜬히 치러낸
한국 PEN이니까 조직과 진행관련이 아니라, 우리문학에 대해서는 정작 한 번도 글로벌한 학문적
향연이 없었다니까 공연한 기우가 생겼달 까.
그 다음, 개인적으로는 외국문학을 해오다보니 우리말의 언중이 거대 언어 군과 비교하여 항상
너무 왜소하게 느껴졌고 이러다가 덜컥 “나랏 말싸미” 어찌되는 건 아닌지, 맨 날 하늘 무너지는
걱정을 해 온 탓도 있었겠고---. 걱정이 많다보니 한글과 찬란한 한글 문학이 때로 화석이나
카타콤베 형상으로 보이기도 하였고, 동유럽 유태인들이 한때 일상으로 사용하며 문학으로
지켰으나 마침내는 형해가 된 “이디시” 언어처럼 의식 속에 어른거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 이번 대회가 학술적 지향점이 있어야한다면 자칫 “세계주의”와 “국수주의”, 이른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징고이즘”의 갈등국면은 없을까.
아, 그런데 단체로 KTX를 타고 내려간 신 경주역에서 이상문 이사장께서는 두 손이 부족하여
온몸으로 회원들을 반겨주며 이어 “화백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 한글작가 발표 자료집”과
회원들의 “문집”이 듬직하게 존재감을 피력하자 내 가슴은 뛰었다.
특별히 “세계 한글 작가회의”라는 글자가 새겨진 낙관은 페이지마다 선연하여서 행사의 값진
주제를 꽃으로 피워주니 문학 방법론의 “카니발 이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텍스트북을 들추니 “문학 축제 : 한글, 문학을 노래하다”라고 율동하듯
아름다운 서체가 윗머리를 장식한다.
과연 문학은 카니발이 되어, 혹은 강강술래가 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야만다.
조직위원장 김후란 시인께서 “겨레의 자산인 한글을 긍지를 가지고 더욱 소중히 가꿔가면서
깊은 문학의 뿌리가 문화의 숲으로 융성해지도록”하자는 인사말은 모국어를 담아내는 한글처럼
해맑으며 명료하였고, 이상문 대회장의 인사말 “온 세상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글”이라는
외침에서는 이번 대회가 천명하는 기본 정신이 반포되며 천년 고도에서 글로벌하게 퍼져나갔다.
이미 내게는 주제발표 첫째 마당, “세계 속의 한글 문단, 한국문학”의 일곱 꼭지 발표에 관한
중점 음미와 정리가 과제로 주문된 바 있어서 심포지엄의 다른 마당은 둘러볼 여유가 없다.
좌장인 최동호 교수께서 허용시간과 내용이 뒤척이는 발표현장을 세련된 숙수의 솜씨로 요리
하는 마당을 관찰하면서 필자는 감탄 밖에 다른 재간이 없다.
물론 멀리에서 오신 동포 작가들의 불타오르는 리포트는 시간과 길이의 경계를 넘기 일쑤라서
일종의 찬탄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발표마당(세션)을 더 늘리고 마당별 발표자 수는 줄여서 개인 발표 시간을 늘리는 방법도 생각
할 수 있겠으나 너무 그렇게 쪼개다가는 지리멸렬의 폐가 생겨나리라.
사회자의 지혜로 질의응답은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그리고 저녁 자유 시간을 활용하시라는
안내가 비록 선언적이었을지 몰라도 비상구가 되기는 했으리라.
발제자의 순서는 다소 변화가 있었으나 배포된 텍스트의 순서에 맞추어 정리해본다.
첫 순서는 장사선 교수로서 “(독립국가 연합) 고려인의 디아스포라 한글 문학”이라는 제목이다.
장 교수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교포문학을 논하고 있으나 세계에 산재한 우리 동포들은 슬프게도
통일된 명칭이 없다고 개탄한다.
조선족, 한인, 조선인, 고려인 등으로 명칭부터 디아스포라가 된 호칭을 지금부터는 고려인,
고려인 문학으로 통일해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해외 동포 중에서 가장 고통 받은 고려인들의 굳은 민족의식을 상기하면서 한글이 급속히
잊혀져가는 현실도 직시하자고 강조한다.
한국문학사에서 해외동포문학을 다루고 있지 않은 현실을 바루어야한다는 예리한 지적도 나왔다.
조규익 교수가 발제한 “이념과 탈이념, 식민과 탈 식민의 단절 혹은 지속(중국 조선족 문학의
현실과 이상) 강연은 그간의 업적을 집대성한 방대한 자료와 더불어 청중을 사로잡았다.
중국 조선족 문학에 관한 공시, 통시적 분석은 물론이려니와 연변 과기대의 권철 교수 등의
연구자료 등을 인용하며 문화혁명의 와중에 우리 조선족 작가들이 겪은 고난참담을 전한다.
또한 중앙아시아 쪽의 고려인 문학까지 언급하여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한글은 그쪽에서 잊어지고 있으나 러시아어와 중국어로 발표된 고려인 혹은 조선족의
문학작품도 매크로하게 거시적 담론으로 우리문학에 포용하자는 대목은 이번 대회의 의의를
더욱 절절히 각인시키는 바가 있었다.
장영우 교수가 발제한 “재미 동포문단의 형성과 특징” 역시 플로어로부터 깊은 관심을 이끌어
냈다.
재미동포 문학이라면 물론 그 수적 측면에서나 양국 간의 역사적, 현실적 측면, 개인적 유대관계
등 모든 면에서 오늘날 압도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 제반 배경 속에서의 재미동포 문학에 대한 장 교수의 해박한 연구는 핵심을 꿰뚫었고, 그외
해외 한글 작가에 대한 포괄적 연구와 언급도 인상적이었다.
장 교수는 재외동포문학 활동이 이번 대회에서처럼 다양하게 거론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가 분석하고 정리한 재미 동포 문학의 태동과 발전사를 실은 PEN의 이번 텍스트는 그래서
사료적 중요성을 더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앞으로 고려인 및 재일 동포문학이 퇴조의 기미를 보일 때에도 재미, 재 캐나다 동포 문학은
상당기간 대안으로서의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 1세대 초기 문학이 추억과 영탄 쪽이 강했다면
미래세대 문학에서는 그 탈피 과제가 수행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영어로 쓴 동포문학의 한국
문학사 공식 편입 제창 등이 아직도 강력한 울림으로 남는다.
“남미 한글 문학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양광용 교수의 발제는 남북미간의 계량적 차이가 극명
하게 대비되는 양상이었다.
양 교수에 따르면 남미 한글문학은 현재 10만 명이라고 통칭되는(실재로는 6만명 내외) 한인
교포들을 배경으로 하는데 실재 교민문단이 형성된 곳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도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1985년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던 배정웅 시인이 문예 동우회를 결성하고
안데스 문학상 등도 제정하는 등 한글 문학의 태동에 기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남미 한인들의 성향 중의 하나에 남미를 종착지로 보지 않고 기항지로 여기는 현상이
있듯이 배 시인도 현재는 LA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발표에서 양 교수는 아르헨티나 한글문단 문인협회장인 최태진 문인을 현장에서 소개하고
발표와 질의응답자로 내세웠다.
최 회장은 “해외문학은 이젠 변방문학이 아니다”라는 팸플릿을 통하여서 현재 “로스 안데스
문학”이 통권 16호를 곧 출간하는 단계라고 하였다.
금년 한인이민 반세기 기념회에서는 이 출판물을 배포할 예정이고 한글과 스페인어로 이민
50주년 기념 특별 공모전도 준비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의 참여도는 저조하다고 한다.
“호주 한인문학의 현황과 전망”은 윤정헌 교수가 하였다. 윤 교수는 호주가 다민족주의,
다문화를 외치지만 인종차별주의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여건은 한글 문학의 성장에도 영향을 주 수 밖에 없다.
이곳 한글문학은 유학생으로 온 돈오 김(Don'o Kim 한국명 김동호)이 1968년 아시아인 최초로
영주권을 얻고 영어로 장 단편을 발표함으로써 자생적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호주 이민의 물결이 일면서 시, 수필, 소설 모든 장르에 한글 문학이 꽃피고
있으나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고 전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이민자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세계 다른 나라의 한인문학이 노령화와 쇠퇴를 겪는다고 할지라도 아직은 전도가 유망하다는
평가를 윤 교수는 내 놓는다.
“유럽지역의 한글문단”이라는 발제는 이명재 교수가 담당하였다. 이 교수께서는 사실 유럽문학
뿐만 아니라 글로벌 한인문단을 남들보다 일찍이 섭렵하고 진단하고 또한 소개를 한 분이다.
이번에는 유럽지역을 맡아하였지만 다른 지역 발표자들로 부터의 이른바 피인용지수가 높았다.
이 교수는 유럽 쪽 소개에 앞서 세계적인 한인 분포를 살피며 7300만 한인 중 10%가량이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글 작가대회를 갖는 의의가 대단하다고
갈파하였다.
이어 유럽 한인문학의 중심은 역시 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독일(3만5천명 이상)에 있고 그
근저에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라고 하는 수준 높은 인적 자원과 그 분들의 자생적 문학연찬이
뿌리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 지역 한글문단의 내용을 살피면 역시 고국을 향한 그리움, 문화충돌과 적응, 가난 탈피운동,
경계인의 정체성 찾기 등을 짚을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분석하였다.
텍스트에 소상하게 언급한 독일 한글 문단 외에도 이 교수는 우리 문학의 글로벌 현상을 예시
하면서 지구를 감싸는 궤적도 그려 보여주었다.
끝으로 스웨덴에서 온 해방둥이 예은묵 작가는 북유럽에서의 한글 문단 가능성을 외쳤다.
주어진 지면 관계상 첫날의 한마당을 스케치하면서 글로벌 한인문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고
기약해본다. (끝)
Artist: Paul Mauria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