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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조선문 독서사에서---(첫번째 글)

원평재 2005. 3. 30. 09:58

---(전략)
별로 대단한 경륜도 없는 사람이 100년 이상의 찬란한 문학 전통에

빛나는 연변 문학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 연구한다는 것이 외람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국내에는 구체적으로 온전히 소개가 덜된 상태의 이 곳 문학의 현황을

일별하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제 역할의 일부는 하지 않겠는가 하는 변명도 미리

마련하고서 이리로 온 것입니다.

(---중략)

 

제게 주어진 제목이 “미국 학교에서의 독서지도에 관하여”로 되어 있습니다만 마침

제가 연전에 한국에서 “한우리 독서 지도자 양성 과정” 및 “21세기 독서 대학” 등에서

잠시 강연을 한 경험이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먼저 잠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산업화의 과정과 특히 후기 산업화의 과정을 겪는 많은

나라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교양의 수준이나 질서와 규범을 이해하고 지키려는

의지는 눈에 띄게 이완되기 마련입니다.

 

(독서사는 공원 소학교 옆에 있었는데 연길의 번화가에 있습니다. 조선족 선생님들을 많이

모으고자 좀 무리를 해서 이 곳에 마련했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같이 영화와 영상 미디어가 판을 치는 사이버 시대, 지속적이고도 굳은 기준이

없는 순간적이고도 찰나적 인상만이 수용되는 시대에는 이런 형상이 더욱 팽배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을 극복하고자 열의가 대단했던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국민들의 배움의 열망이라든지, 지식이나 삶의 지혜에 대한 갈망은 끝 간 데를 모를

정도로 대단하였으며 이 때에는 선생님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대우도 심원한

유교의 전통이 가르치는 그대로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스승의 날이 생긴 것도 이러한 시대정신의 소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업화가 점차 진행되면서 이런 문화적 전통, 규범, 교양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낮아지거나 소멸되기 시작하였고 배금사상, 물질주의만 팽배하게 되어서

교양이라는 덕목은 마침내 소위 골동품이나 서화를 수집하여 수입을 올리는

“골부인들”의 전용물이 되었고 성실과 근면이라는 삶의 규범 대신에 아파트 투기에

나서는 복부인들의 기회주의, 한탕주의가 판을 쳤고 그 밑에서 공부를 하는 2세들의

심성도 척박해 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국가적 위기를 느낀 정부와 교육부에서는 입학시험에서 단답형이나 사지 선다형

문제를 가급적 축소하고 서술형, 논술 형 시험을 크게 장려하였으며 학교 공부와

시험에서도 서술, 논술 형 출제를 적당한 비율로 의무화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한우리 독서 지도회”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런

정책이 나오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 자신 조금 회의도 있었습니다.

새롭게 바뀐 국가 시책에 발맞추어서 이번에는 또 “독서 지도”라는 것이 무슨

영리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국립도서관 역삼 분원”에 모인 독서회의 구성원들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모두 산업화의 어지러운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가장 보편적인

가치인 교양의 성곽을 다시 쌓고자 하는 진지한 그 모습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