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 중서부, 플로리다의 여정

알레그로 논 트로포

원평재 2005. 8. 30. 02:00
 

알레그로 논 트로포

 

7년 만에 동생의 집이 있는 디트로이트를 찾았다.

지난 일요일이었다.

그 사이에도 물론 얼굴이나 음성을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숲 속에 있는 동생의

집을 찾은 것은 정말 7년 만이었다.

후정에 에이커 가든과 실개천이 있는 숲 속의 그 집은 양가의 아이들이 어릴 때 장난

치고 놀던 추억의 둥지였다.

 


 

아, 그들의 옆에는 항상 그 집의 애완견, “알레그로”가 추억의 실타래를 감고 혹은 풀며

원기 왕성하게 뛰고 있었다.

그 역동적 모양 때문에 이름이 아마도 “알레그로”가 되었을 것이다.

 

뉴욕의 라가디아 공항까지는 아들이 데려다 주며 NWA 파업을 걱정했었는데, 게이트로

나서니 별일은 벌어지지않았고 “On Time"이라는 액정 글씨가 선명했다.

 

미시간 방문 때에는 바로 그 미시간 호 상공을 꼭 한 삼십분쯤 날라 가야하는데 그게

항상 여로의 절정을 이루었으며 이번도 맑은 하늘 아래 그 광경은 다를 바가 없었다.

 


 

디트로이트 공항은 오랜 만에 찾는 나그네를 깜짝 놀라게 했다.

새로 지은 공항의 규모도 그러려니와 최신 시스템이 사람을 압도하여서 우리는 머리

위로 달리는 트램 카를 탈 생각도 않고 구경도 할 겸 슬슬 걸어서 나가는 길을 찾았다.

 

마침 큰 성조기를 내다 걸며 제복의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아마도 우리를 환영하느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농성을 하는 NWA의 정비사들이었다.

 


 

나와 디트로이트 공항에는 일화가 있다.

오래 전, 내가 이스트 랜싱에 있는 미시간 주립대학에 연구 교수로 올 때에 이 곳으로

들어왔는데 정전 사고로 그 때만 해도 구식 공항이 암흑 천지였다.

마중 나온 내 동생이 저만치서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감격으로 얼싸안았고 그 사진이 다음날 디트로이트 타임즈에 나왔다.

우리를 환영하는 기사가 아니라 공항의 정전을 나무라는 내용에 우리는 들러리였다.

 

하여간 최신식으로 바뀐 공항의 출구를 가까스로 찾아서 나오니 내 아우가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우리를 찍는 사진 기자는 볼 수 없었다.

 

흰 머리가 일찍 찾아온 동생의 머리에는 눈발이 더 내려서 의사라는 전문직의 권위를

더해주었지만 공연히 가슴이 아팠다.

 


 

늦게 도착한 술 속의 집, 그 숲에서는 제수가 차콜에 갈비를 굽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교수직과 “바이오 캄파니”를 겸행하는 강인한 대한의 딸의 모습은 여전하였다.

DetroitRandD.com이 그 주소라고 하였지만, 나도 아직 들어가 보지는 못하였다.

 

실개천 쪽으로 가는 소로 길은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부터 흔적도 희미하였는데, 중간에

8월의 햇살을 그대로 통과 시키는 공지가 있었다.

몇 년 전 여름 낙뢰에 큰 나무가 쓸어져서 베어버린 곳이라고 하였다.

 

“아이구 형님, 잡아 놓은 골프 스케줄은 다 취소해야겠네요.”

아우가 내 손목에 감은 패드를 보고 소리쳤다.

“그게 아마도 카팔 터널 신드롬 같네요. 논문을 너무 쓰셨구료.”

꿈보다도 해몽이 좋았다.

“아닐쎄. 중국에서 논문도 썼지만 잡문을 더 많이 쓴 결과 같네.”

“조심하세요. 미국에서도 의료 보험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카팔 터널 신드롬

이라구요. 우리 병원에서도 테크니시언 중에는 하루 종일 키보드만 두드리는 부서가

있는데 그걸 많이 앓고 또 그래서 손가락과 손목에 무슨 스트링 장치를 하고 작업을

합디다.”

 


 

그가 이 신드롬은 골프 엘보나 테니스 엘보와 같은 것이라면서 치료법 강의를 하려는

것을 내가 제지하였다.

“오늘은 그 정도로 하고 우리 일주일 스케줄이나 짜세. 여기 알레그로도 왔는데 여전히

힘찬 알레그로이겠지?”

알레그로는 오랜만에 만난 내가 모른 체 한다고 아까부터 낑낑대고 있었다.

 

“아주배미님(아주버님), 알레그로가 벌서 열두살이 되었는데 사람으로 치면 칠십을

넘었지요. 알레그로 논 트로포랍니다.”

“아, 세월이 무상하군요---.그래도 이번 한주간은 알레그로 비바체로 지냅시다.”

알레그로 비바체라니, 꿈도 야무진 선언문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우리가 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시카고의 어떤 문우를 찾아갔을

때에  그 분이 보여준 정열적 삶은 우리의 상태를 적어도 알레그로 아사이 정도로는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 할 시카고 이야기의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