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동짓날 주례사

원평재 2007. 12. 22. 22:42

일년을 게으르게 지나고 보니 세모가 정작 바쁘게 되었습니다.

하던 일도 마무리 해야하고 졸문 청탁도 밀렸습니다.

해를 넘기지 않으려는가, 혼사들도 많습니다.

다 찾아뵙지 못하는 결례가 많습니다.

인터넷 글밭에도 새글 얹기가 빠듯하여서 솜씨 없는 사진으로도 대치하다가

오늘은 주례사로 슬그머니 대신해 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물들과 새해를 맞는 빛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져지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광경 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튼실한 젊은이 한 쌍이 가약의 자리를

여기 마련한 가운데에서 주례의 자리에 서게 되어 기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오늘은 동짓날 입니다.

동지는 일년 중 가장 긴 밤의 어둠을 불살라버리고 새로운 빛의 날을 시작하는

경사스러운 날이자 생명의 재생과 그 시초를 뜻합니다.

크리스마스나 서양력의 첫날이 예전에는 모두 이 날이었다고 합니다.

 

이토록 오늘은 여러모로 시작을 알리는 뜻깊은 날입니다.

다시한번 새롭게 출발하는 신랑과 신부, 양가의 부모님, 형제자매, 또한 친지들에게 깊은

경하의 말슴을 드리며 아울러 주말의 귀중하신 시간을 내어서 이 자리에 만당해 주신

하객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여 드립니다.

 

제가 오늘 이 아름다운 가약의 자리에 주례로 임하게 된 인연은 신랑의 부친 K 대사와는

중등학교 동기이자 지금까지도 오랜 세교를 나누며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횡행하는 이 시대에도 K 대사는 엄부에 가까웠고

신랑도 아버지의 훈도를 잘 받아드린 효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랑 신부 소개 중략)

 

이렇게 훌륭한 배경을 가진 두사람이 가약을 맺는 자리에서 주례는 무슨 교훈적인 이야기를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저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 생활에 관한 간곡한 지혜의 말씀을 간략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언필칭 이 시대는 짧은 주례사를 시대정신, 자이트가이스트로 삼는 때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먼저 남남이었던 여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을까를 한번

상고해 봅니다.

주례가 두 사람에게 미리 알아보았더니 "아름아름"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비록 실사회에서 두 사람이 추구하고 있는 분야는 서로 다를지라도 이 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위치에 있는 젊은이들이다 보니까 주위에서 아름아름으로 이 미덥고

튼실하고 아름다운 커플을 천생의 배필로 알고 느끼고 추천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주례사의 모두부분에서 부터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만 사실

"아름다움"과 "알다"라는 어휘는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여기 언어학박사인 신부 앞에서 문자를 씁니다만 "알아야 아름답게 보인다는 우리 겨레의

지혜로운 "말"이라고 항상 감탄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랑, 신부들이 이 가약의 자리에서는 상대방을 최고로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이제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 그 느낌은 점점 희석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상대방을 알고 이해하며

아름다움을 더욱 더 찾아내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아름답게 보이고 아름답게 느끼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말의 지혜로움을 여기 서있는 신랑과 신부에게 주례는 꼭 심어주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아는 만큼 아름답다"고 했는데, 우리는 어떤 마음의 자세로 상대방을 알야야 하느냐?

이런 물음을 던져봅니다.

그리고 그 답으로 이번에는 이 시대의 만국어인 영어를 동원해 봅니다.

 

영어로 "알다", "이해하다"라는 말은 understand입니다.

즉 상대방 보다 아래에 서야 상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는 절묘한 뜻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깊이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한가지 말만 덧붙이겠습니다.

우리는 부부 사이를 "반려자"라고 하고 영어로는 "better half"라고 합니다.

고대 희랍의 신화를 보면 인간이 어느때 부터인가 너무 오만하게 되어서 제우스 신이

인간을 반쪽으로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인간의 부족함, 우리는 모두 반쪽짜리라는 이치가 함축되어 있는

신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부족한 인간은 나보다 나은 절반을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치루고

찾아서 거듭나야 온전한 합일이 된다는 철학이 담긴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 서있는 두 젊은이는 모두 이 시대의 뻬어난 엘리트 들입니다만, 지금까지는

겨우 반쪽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이제 이 순간 두 사람은 지적으로나 외양으로나 마음과 품성으로나 모두 자신 보다

나은 반쪽을 마침내 찾았고 이제야 온전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아름아름으로 아름다운 반려자를 찾아내어서 한 평생 겸손하게 상대보다 아래 자리를

고집하며 인생을 함께 걸어갈 이 지혜의 커플에게 영원한 축복이 함께 할 것을 우리

모두는 확신하고 또한 기원을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축하의 말씀을 양가에 드리며 주례사로 가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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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는 24절기 중 하나로, 태양 황경이 270도가 되는 때이다.

 양력으로 12월 22일경에 드는데, 북반구에서는 이 시기에 낮의 길이가

가장 짧다.
            

동지날 태양과 지구의 위치

   동지날 태양지구의 위치


 

동지를 지나면서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많은 곳에서 축제일,

또는 1년의 시작일로 삼았다. 서양 달력의 1월 1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이

동지 축제가 변형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부르며

크게 축하했다. 찹쌀로 된 새알이 든 동지팥죽을 먹고, 달력을 주고 받는

 풍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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