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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 해금 산조 (6회중 5회)

원평재 2008. 10. 8. 06:28

"여보, 정말 해금이 좋아요. 악기를 찬찬히 들여다 볼 기회가 더 생기고 부터는 점점

더 많이 반했어요.

정말 아주 예쁜 아낙네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은 봉긋하고 몸매는

가늘어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 모습이 정말 그래요.

또 그 기능은 얼마나 신기한지, 악기에 줄이 딱 두 가닥 뿐인데 모든 음을 다 낼 수가

있어요.

더 놀라운 것은, 그 음들이 연주 중에 제가 다 조절을 한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악기들처럼 연주전에 미리 조율을 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무조건 그대로

음이 나오는 그런 장치가 아니라니까요.

연주 중에도 제 손가락으로 줄을 조금 더 힘주어 쥐면, 음이 그만큼 올라가고, 힘을 조금

빼면, 음이 낮아지고, 저와 일심동체가 되어서 순간순간마다 호흡을 맞춘다니까요.

정말로 딱 두 줄 뿐인데 바깥 줄, 유현은 대체로 높은음을. 그리고 안줄, 중현은 낮은음을

내요.

두 줄의 사이는 너무 좋아요. 금슬이 우리 부부처럼 좋아요. 꼭 사랑하는 연인 같아요.

둘이 서로 어우러져 만지고 사랑하고, 그래서 소리를 내고---.

그리고 해금의 줄이 붙어있는 그 긴 막대를 죽대, 혹은 줏대라고 해요.

그래서 ‘줏대가 있다, 없다’ 하는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거기 줏대 높은 쪽의 끝에 붙어있는 여인의 가슴 같은 것을 주아라고 해요.

그걸로 현, 그러니까 줄을 조절해요. 조이고, 또 느슨하게, 그래서 정음을 찾아내지요.

그리고 활. 활대에 말총을 묶어서 활이라고 하는데, 손잡이가 있어요.

이 손잡이는 여기 보듯이 이렇게 가죽으로 되어 있잖아요. 그 모든 힘을 제가 또 조절을

해요.

말총이 묶어진 이 활, 이것을 이렇게 팽팽한 긴장 상태로 제가 제 손의 힘으로 만들어

내지요.

바이얼린 같은 현악기나 다른 모든 악기는 이 활도 미리 조절해서 연주를 하는데, 우리

해금은 제가 제 손과 손가락으로 힘을 조정해서 한다는 게 참으로 마음에 들고 대견

하다니까요.

여보, 제가 언제 이렇게 세상에서 제 마음대로 소리를 내며 살아 본 적이 있어요---?"

 

"그래, 그것 참 신통하네. 나도 정말 당신과 똑같이 맨 날 눈치나 보고, 또 미리 짜여져

있는 공사 진도표대로 꼼짝없이 살아왔지. 언제 내 손에 힘주고 내 창의성 갖고 살아본

적이 있느냐 그런 말이지.

교양 교육 받으러 가면 맨 날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하지만 말이야, 하하하.

정말 신나는 당신의 설명이야. 당신이 그걸 느끼며 악기를 배우고 있다니 그게 더 신명이

나네.

그런데 해금에도 무슨 콩나물 대가리 같은 게 있어야할 것 아니요.

그런 게 당신 노트에는 통 보이지 않더만?"

 

남편은 자신이 워낙 아는 범위가 좁아서 노상 걱정이라는 듯 이 날 저녁에도 내 긴

설명에 조심스레 물음표로 응대를 하였다.

"네, 서양 음악이야 오선지 위에 콩나물을 그리지만 우리 음악은 그냥 글로 써서

황-태-중-임-남이라고 높낮이를 표현하는데 피아노의 낮은 중간 음 같은 것이지요.

물론 우리도 실력이 나아지면 서양 악보를 놓고 그대로 연주도 한데요."

"난 무슨 소린지 통 모르겠네. 하여간 그러면 국악기나 해금 악기가 음이 좀 적다는

말인가?"

남편의 관심이나 생각이 진정 내가 하는 해금 공부에 깊은 반향을 나타내 주고 있었으며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아뇨, 꼭 그렇지만은 않죠.

해금의 경우, 줄을 잡아당기고 또 풀어서 음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서양 12음계는

물론이고 더 나눈 음, 미분 음까지도 낼 수 있어서, 현대적 창작 음악, 서양 음악까지

연주가 가능하대요.

악보를 여기에선 정간보라 하는데 모든 음악의 음을 이 정간보 위에 그리지요.

모든 수강생들이 한자는 잘 모르고 해서 그저 한글로만 통하지요, 호호호."

내가 웃으며 해금을 쥐고 연주를 조금하였다. 해금 소리가 외곬으로 골이 깊어서

구슬프게 들리기가 십상이지만 오래 끌지만 않는다면 연립주택에서도 그럭저럭

소리가 용서될 만하리라고 나는 내 식으로 해석을 하여서 집에서의 연습에 너무

과민하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그리고 잘은 몰라도 이웃에서는 대체로 면죄부를 주는 듯싶었다.

 

 

40914

 

"여보, 제가 정간보, 그러니까 악보의 계명을 부르며 한번 켜 볼게요. 이게 무슨

곡인지 알아 맞춰 보세요.

황황태태황황남ㅁ

황황남남임ㅁㅁㅁ

황황태태황황남ㅁ

황남임남중ㅁㅁㅁ

여기 정간보에서 보시는 네모는 두 박자이죠. 음이 그만큼 길게 끌려요."

"아, 지금 한 건, 그거 학교종이 땡땡땡이네. 그런데 음정들이 낮으니까 학교가기가

아주 싫은 아이가 부르는 소리구만, 하하하."

“호호호, 그러게요.”

남편의 우스게에 나도 큰 소리로 화답하며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