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려 하는 것, 사라진 것들,
세상 속으로 투영된 모든 짧은 지속들,
그런 잡아둘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의 포로가 되면서도
우리는 미래라고 하는 미망을 행여 부여잡고
과거가 되려는 순간들로부터는 얼른 빠져나와
오늘의 노예로 살아간다.
가을날 어떤 전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내 풀지못한 염원의 앞뒤 끝을 묶어놓은 주제를 발견한다.
<오래된 미래>라는 테마관이었다.
"오래된 미래"라면 강은일이 신음하듯 연주하는 해금산조와 같은 제목이다.
눈이 번쩍뜨인다.
영상으로 그 현장을 붙들어매어 여기 올려본다.
동병상련의 시선을 모아서 집단 캠프를 잠시나마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들은 곧 흩어질 것이다.
이 전시장의 한 순간도 새벽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들 중의 하나이리라,
하지만 이슬 방울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침 햇살이라는 생각이 위안처럼 떠오른다.
젊은날에는 영문법 책 "삼위일체"에 설명된 만큼이나 과거, 현재, 미래 시제가
또렸한듯 확신하였으나
지나놓고 생각해보니 그 경계가 참으로 모호한 시절이었다.
500년도 더 전에 세워진 서울의 상징이 해치(혹은 해태)라는 상상의 영물이었다.
영원성의 시험대로 500년은 짧겠지만 그런 기호학을 선조들이 생각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