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내린 눈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아마도 한동네 사는 분인듯,
누군가 귀띔을 하고 지나간다.
"저기, 동네 작은 공원 쪽에 흑비둘기가 있으니 찍어보시지요. 천연기념물이라는데---."
"확실한가요?"
깜짝놀라서 내가 물으니
"자신은 없네요. 확인도 한번 해 주시지요"라고 한 발 물러선다.
<눈 내리는 날 숲가에 서서>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 서정적 가슴으로 사진만 찍을게 아니라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다는 자각이 닥아왔다.
밤새 내린 때아닌 춘설로 오솔길의 나무가 꺾어졌거나 휘어졌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ㅡ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여기 이 숲이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알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
내가 지금 그의 숲에 눈이 덮이는 것을 보려고
여기 멈춰선 것을 그는 알지 못하리라
내 작은 말도 필경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가까운 곳에 농가도 없는 이 곳에 멈추는 이유를.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
한 해 가운데서도 가장 어두운 이 저녁에.
말은 방울을 짤랑 흔들어본다
무슨 잘못된 것이라도 있는지.
무슨 다른 소리라곤 오직 느린 바람에
솜털 같은 눈송이가 휩쓸리는 소리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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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검은 비둘기가 두마리쯤 보였으나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인줄은 모르겠다.
아무래도 순종은 아니고 잡종이 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의문과 호기심을 갖게 된 것만도 눈내린 날의 사건으로 치고 싶었다.
비둘기 박멸 운동으로 모이를 주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는 것도 이날 처음 들었고
그러나 천연기념물에게 모이를 조금 주는 일이야 시민의 당연한 의무라는
변호도 함께 들었다.
나는 그 말씀에 동의한다는 말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 사진은 이렇게 항상 천편일률이었으나
내려와서 보니 눈내린 오솔길에 의문과 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정의 유색 눈사람이 환경과 생태를 비관하고 있었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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