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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추 일지

원평재 2010. 9. 14. 21:13

# 1. 한로가 지나니 가을 풍경이 스며든다.

 

      9 월 - 헤르만 헤세
            정원이 서러워한다.

            차갑게 꽃속으로

            빗방울이 스며든다.

            마지막 길을 향하여

            여름은 조용히 몸서리친다.

            잎이 하나하나

            황금의 물방울 되어

            높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가라앉는 정원의 꿈속에서

            놀라고 피곤한 미소를 짓는다.


            아직도 오랫동안 그 여름은

            장미 곁에 멈춰서서

            안식하기를 염원한다.

            여름은 조용히

            그의 고달픈 눈을 감는다.
            Der Garten trauert, Kühl sinkt in die Blumen jer Regen. Der Sommer Schauert Still seinem Ende entgegen. Golden tropft Blatt um Blatt Nieder vom hohen Akazienbaum. Sommer lächelt erstaunt und matt In den sterbenden Gartentraum. Lange noch bei den Rosen Bleibt er stehn, sehnt sich nach Ruh. Langsam tut er die (grossen), Müdgewordnen Augen zu.

                   

                     9월이 오는가 싶더니 백로도 훌쩍 금방 지나가고

                    집 주위의 나무들이 단풍으로 몸을 가리기 시작하며,

                    지니기 힘든 부분들은 고엽으로 사위어 버린다.

                    만산홍이 되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은 이미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여

                    헤르만 헤세, 구르몽,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불러본다.

                     

                     

                     

                     

                    # 2. 영화 <마더> 보던날

                     

                    동네 도서관에서 한국 영화 "마더"를 상영한다고 하여 부리나케 달려가 보았다.

                    이 도서관에서는 2주에 한번씩 외국 영화를 상영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번에는

                    한국 영화였다.

                    작년도에 봉준호 감독이 찍은 영화로 칸느 영화제에도 출품된 영상미에 가득한,

                    거기 더하여 일종의 스릴러, 미스터리가 가미된 영화인데 국내에서는 소문만 들었을 뿐

                    감상은 처음이었다.

                    김혜자의 연기는 "역시!" 였다.

                     

                    영화 이야기는 여기에서 이 정도로 하고 그보다 이곳 도서관 분위기만 잠시 스케치

                    해본다.

                    이 동네가 워낙 백인 사회이지만 특히 피츠버그 북쪽 동네, 학군이 좋은 곳이라 그런가

                    영화 감상을 위하여 모인 사람들 30여명은 모두 온전한 백인이었고 이질적인 페이스는

                    2인에 불과하였다.

                    뉴욕-뉴저지, LA 등지의 검은 머리칼, 짙은 피부 색갈의 '샐러드 보울' 구성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중서부 백인 동네의 현장 그림이다.

                    '이런 전차'로 우리나라 기러기 교육 가정에 이곳은 또 하나의 메카로 떠오른다고

                    하던가---.

                     

                    딸네가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나 모임으로 급히 달려들어가면 주위에서 금방

                    "찾는 아이들 저기 있어요" 라는 식으로 알려주는 현상이 우습기도하고 재미도 있지만

                    심사가 복잡하다고한다.  

                    미국 인구의 절반이 비 백인이 되어가는 시대에 여기는 그 나머지 절반인 백인들이

                    최후로 모여사는 모양새인가---.

                     

                    어쨌거나 이날 준비된 다과에는 저기 보이는 한글 이름 크래커, "마가렛드"가 단연 돋보였다.

                    일본 과자도 그 옆에 있었지만---.
                     

                     

                      

                     

                     

                     

                     가을 날/헤르만 헤세

                      

                    숲 가의 가지들 금빛으로 빛나는

                    오솔길을 따라 홀로 걷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수없이 거닐던 이길,

                     

                    이러한 좋은 날에는

                    오랫동안 가슴에 지니고 있던

                    그 행복과 서러움이

                    먼 곳 향기 속에 녹아 흐른다.

                     

                    잡초 불타는 연기 속에

                    흥겹게 뛰 노는 시골 아이들

                    나 또한 그 아이들과 어울려

                    가락에 맞추어 노래 부른다.

                     

                     

                    내 비밀스러운 숲속 오솔길에도 이제 낙엽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 3. '소어겔' 농장 다녀 오던날 (지난 여름의 추억)

                     

                    지나간 여름이 문득 떠오른다.

                    이 동네에 있는 소규모 자연 농원, 그냥 '쏘겔'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청정 과일을 싸게 사고

                    또 먹는 곳이다.

                    지나놓고 보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싯귀처럼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하였다.

                     

                     

                     

                     

                     

                     

                     

                     

                    카네기 멜론 대학 ( CMU), 특수 작물 연구소에서 농업 자동화 로봇 시스템을 개발하여

                    이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를 로봇이 따는 시대가 올 모양이다---.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 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 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한 여름 내내 작은 산을 깎아내는 작업이 근처에서 일어났다.

                    내가 걷는 숲길에도 소음 공해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고즈넉한 동네에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사슴과 토끼와 거북이 노니는 숲속이 곧 매우 부유한 주택가로

                    변모할 모양이다.

                     

                     

                     

                       

                     

                     

                     

                     캐터필라에 이런 덧신을 신켜서 땅고르는 일을 순식간에 해낸다.

                    작업의 효율성은 엄청나지만 일하는 진도는 느리게만 보인다.

                    여름내내 땅만 고르다가 볼일 다본다.

                    우리 같으면 큰 산도 몇 봉우리 옮겼을 것이다.

                     

                     

                     

                     

                     

                     

                     

                      

                     

                     

                     소설책을 끼고 사는 외손녀들을 데리고 나섰다.

                    그저 이 숲과 거기 새로 생기는 신작로(新作路)와 구름을 기억하면 좋겠다.

                     

                         

                      

                     

                     Haunted House 같은 이곳도 어린시절과 함께 아이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집을 비운지는 여러해, 아주 오래된듯 싶다.

                    집안에서는 가파른 계단이 옥탑과 지하실로 연결이되는

                    작은 목조 가옥이다.

                     

                        

                     

                     

                       Herman Hesse
                          (1877~1962 독일)
                    우리의 청춘시절, 그 맑은 감성과 아름다운 언어로 한없이 매료시켰던 시인 헤르만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문학상을 탄 위대한 문호였지만,

                    그의 수채화 그림도 뛰어난 수준의 걸작들이다.
                    헤세의 2천 여점이 넘는 그림은, 뜨거운 여름 태양 밑에서 삶의 역경과 고뇌를 극복하고

                    그림을 통하여 그의 이상세계를 그리려는 영혼의 발자취였다.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의 황폐로부터, 나는 지금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로부터 탈출로를 발견했다.
                    물감과 페인트를 붓으로 칠하는 작업, 이 작업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이 예술 작업을 통해 나는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40세가 되었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는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 무렵, 헤세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헤세에게 이 우울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림 그리기 작업은 그가 위기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세는 무려 3,000여점의 수채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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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중
                    두번째 곡  '9월'

                    이곡은 헤르만 헤세의 낭만주의적 시에 붙인곡으로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가 어울어져
                    가을에 잘 어울리는 짙은 서정성을 그려내고 있다.

                     

                    Marilyn Horne, American mezzo-sopr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