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달레 궁전은 라트비아의 남쪽 리투아니아와의 접경지대에 "서있는" 화려한 궁전이다.
"서있는"이라는 표현이 진정 적절하다.
가난한 농가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시골 평야지대에
갑자기 웅장하고 사치스러운 궁전이 어울리지도 않게 그 웅자를 들어냈기 때문이다.
지도로 보면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의 접경지대 중간 쯤
Bauska라는 곳 인근이다.
궁전이 가까워 오면서 헐벗은 농가 촌락에 섞여서
개울 왼편에 보이는 정도의 괜찮은 수준의 집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빈촌 허허벌판에 경제가 싹트는가
"궁전 경제"의 신호인 셈인가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가 뜬금없다.
학우 김수행 교수가 정치 경제학을 1988년도이던가 우리나라에 들여왔을 때의 놀라움은예카ㅣ
그보다 십여년도 더 이전에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김포 공항에 나타난 충격
이상이었다.
먹고사는 일과 돈이 도는 이런저런 모습의 해석과 예측이라니~.
Rundāle Palace
Rundale Pala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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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information | |
Architectural style | Baroque |
Town or city | Rundāle municipality |
Country | Latvia |
Construction started | 1736 |
Completed | 1768 |
Client | Ernst Johann von Biron |
Design and construction | |
Architect | Bartolomeo Rastrelli |
Rundāle Palace (Latvian: Rundāles pils; German: Schloss Ruhental, formerly also
Ruhenthal and Ruhendahl) is one of the two major baroque palaces built for the
Dukes of Courland in what is now Latvia, the other being Jelgava Palace.
The palace was built in two periods, from 1736 until 1740 and from 1764 until 1768.
It is situated at Pilsrundāle, 12 km west of Bauska.
룬달레 궁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에서 너무나 많이 언급되었기에
여기에서는 이곳에 러시아의 손길이 마지막으로 닿던 시절을 음미하고
즐겨보고자 한다.
200여년에 걸친 이곳 왕국은 룬달레 궁전을 제정 러시아에 바치는 것을 끝으로
종언을 고한다.
러시아 황제는 바로 예카테리나 여제!
영어로는 Catherine the Great!
그녀는 혼자였다.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등극하였으나 다시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
연인은 많았다. 그 중의 일인자가 주보프(Zubov),
여제는 그에게 이 궁전을 사랑의 표시로 증정한다.
그러나 그도 일찍 죽고 짧은 비련이 미화되려는 순간
그의 동생이 예카테리나 여제의 눈에 들어온다.
결국 내용은 어쨌든 형식은 눅진한 정염의 기록이 되어 남게된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두 형제를 사랑하면서 이곳 궁전을 특별히 꾸미고 넓혔다.
그후 몇차례 황폐화의 역사를 겪게 되지만 마침내 오늘날 중수가 되어서
이 보잘 것 없는 평야지대의 동네 사람들이 관광으로 먹고사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정치 경제학의 거대 담론 속에 미시적으로 표출된 애정 경제학인가~~~.
만상, 혹은 잡상에 젖어본다.
Yekaterina Alexeevna or Catherine II, also known as Catherine the Great
(Russian: 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 Yekaterina II Velikaya; German: Katharina die Große;
2 May [O.S. 21 April] 1729 – 17 November [O.S. 6 November] 1796),
전에는 "루헨탈(Ruhenthal)" "루헨달(Ruhendahl)"이라고 불렀다.
바우스카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필스룬달레(Pilsrundāle)에 있다.
1730년대에 이탈리아 태생의 천재 건축가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Ernst Johann von Buhren) 공작의 여름 궁전으로 지었다.
공작이 실세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빈 채로 있다가
1760년대에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돌아와 실내장식을 마무리했다.
1795년 이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 흡수되자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의 연인인 주보프공(Prince Zubov)에게
선물로 하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병원과 사령관 사무실로 이용하였다.
라트비아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919년 심하게 손상되었고 1920년 일부가 학교로 이용되었다.
1933년 라트비아 국립역사박물관이 인수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후 곡물 창고가
들어서고 공작의 식당이었던 곳을 학교 체육관으로 사용하는 등 험하게 다루다가
1972년 들어서야 룬달레궁 박물관이 들어섰다.」
이 궁전을 설계한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 현 에르미타쥐박물관)을
설계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주위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많았다.
그 주변의 가로수는 마로니에(너도 밤나무?),
수령이 오래되었다.
해자에 꽃나무의 암술, 수술이 흐트러져있다.
황새가 집을 지은 굴둑
황새가 아이를 물어온다는데 이 곳도 인구가 줄어들어서 황새를 많이 길러야 될듯하다.
맨 왼쪽의 군복을 입은 두 남자가 에키대리나 대제의 사랑을 받았던
주보프 형제들.
관람 중에는 가방을 뒤로메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림을 부주의로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왼쪽 깃의 빨간 스티커는 실내 촬영을 위하여 따로 구입한 표지
방마다 이름이 있었다. 이 곳은 장미의 방
이곳의 침실은 제2의 베르사이유라는 별명 답게 모양이 아주 비슷하다.
침실은 궁전의 중앙에 두었다.
왼쪽의 도자기 시설은 난방시설이고 침실 안쪽으로는 비밀문이 있어서
궁정의 파티 중에도 귀부인들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바로크식의 야단스러운 실내에 로코코 식까지 가미된 분위기를 외부 정원의 좌우대칭,
균제의 아름다움이 차분하게 제어하고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이 생각나는 대목이랄까.
앞에 보이는 의자의 용도는 화장실 변기라고~
용변이 끝나면 즉시 밖으로 반출되어서 처리가 되었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처럼 궁중 시의가 그 맛을 보고 왕의 건강을 체크했는지는 모르겠다.
이곳의 예술품들은 사실 모작이나 복제 등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주보프의 전처가 재혼을 한 후 1차 대전의 전운이 높아지자 그 집안에서 보물과 가재도구를
모두 반출하였기에 진품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관람을 마치고 한 컷 하였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 국경 검문소가 있던 자리.
지금은 폐허처럼 버려져 있었다.
마르티니 / '사랑의 기쁨' (Plaisir d'amour)
Martini (1741 - 1816)
노래 : 이네사 갈란테
Inessa Galante, sop London Musici Mark Stephenson, c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