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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탈린! (에스토니아 통신 끝)

원평재 2014. 6. 5. 09:16

 

 

 

 

 

 

 

 

 

톰페아(Toompea) 언덕

 

13세기 탈린은 한자동맹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탈린의 올드타운(역사지구)은 상인과 일반인들의 거리인 저지대와

영주나 귀족들의 구역인 고지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지대의 볼거리는 상공업자들의 공동조합조직인 길드(guild) 건물들이고,

 ‘톰페아(Toompea)라는 이름의 고지대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놀랍다

 

 

 

<탈린>은 발트해의 핀란드 만 연안에 있는 항만도시로.

기원은 1219년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이 만든 성채 자리에 성을 쌓은데에서 비롯한다.

 

13세기에 비스뷔·뤼베크·브레멘 등 발트해 연안 여러 도시의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한자 동맹의 중심도시가 되어 무역항으로 발전하였다.

1346년 발데마르 4세가 시(市)를 튜튼 기사단에 팔아 넘겼고,

1561년 스웨덴에 속하였으나, 나중에 쇠퇴하였다.

 

 

 

1569년 덴마크 군함의 포격을 받았으며 1570년, 1577년 러시아에 점령되었다.

 1710년 황제 표트르 1세가 이곳을 러시아 발틱 함대의 근거지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지금 보이는 배는 대형 크루즈 선

 

중세 풍의 성벽과 건물들 그리고 건물위로 돌출한 탑, 뾰족한 교회 첨탑과

 자갈로 만든 꼬불꼬불한 길이 여전히 남아 14, 15세기의 중세 분위기를 잘 간직한 곳으로

 199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아름다워 발트 해의 진주, 발트해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2011 핀란드의 투르쿠(Turku)와 함께

유럽의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다

 

 

 

 

 

 

 

원통형의 탑은 톰페아 캐슬

 

 

멕시코 대사관저 등이 있는 길과 광장

 

 

 

대사관 건물이 뫃여 있는 Rahukohtu거리

똑바로가면 대사관 건물들이 모여 있고 Toompea언덕의 Patkuli Vaateplats전망대가 나온다.

 

 

구 시청사(Raekoda)건물

 

전망대에서 성곽 밖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튜턴기사단의 십자군이 세운

아름다운 구시가지 광장과 중세풍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북유럽에 있는 중세 시청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구시가지의 남쪽 광장에 있다.

13세기에 건립된 이 건물은 1402년부터 2년에 걸쳐 재건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정면이 광장을 향하고 있는 탈린 시청은 고딕 양식의 2층 건물로

외관은 석회암으로 마감되어 있다.

지금 이 건물은 콘서트홀로 사용되고 있다.

시청 앞 광장은 시청이 들어서기 전까지 여러 세기 동안 시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곳은 축제의 광장이자 죄인들을 처형 하는 장소로도 사용 되었다.
오늘날에는 도시의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약국건물

시청광장의 명소 중 또 하나는 1400년대에 문을 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Raeapteek 약국.

약국 한쪽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말린 두꺼비와 이집트의 미라,

불에 그을린 벌 등 다양한 약초와 재료들이 전시되고 있어 중세시절의 분위기를 되살려 준다.

10대째 후손이 지금도 약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른쪽 끝에 약국이 조금 보이는데 방문한 날은 문을 닫고 있어서

내부를 보지 못한게 유감으로 남는다. 

 

 

약국 왼쪽으로 미로같은 통행로들이 있다.

 

 

 

 

 

 

 

 

루터 교회

 국회의사당과 정교회 사이로 난 박석 길을 따라 오르면

 루터 교회에 이른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루터 교회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이ㆍ취임식이 열릴 만큼

탈린 시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곳이다

 

 

  

저지대와 고지대를 이어주는 골목은 둘인데,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오를 때는 뤼히케 얄그,

반대로 내려갈 때는 픽 얄그를 이용하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스웨덴 군인의 장화로 물받이를 만들었다.

 

       

내려갈때는 픽 얄그를 이용^^. 골목 이름 끝 글자가 보인다.

 

 

 

 

 

 

 

 

 

 

 

 

 

 

 

한자동맹으로 도시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탈린은 공공건축물, 교회, 상인들이 상주했던 건물 등

화려한 중세시대의 건축물들이 역사를 뽐낸다.

 고딕 양식의 구시청사 건물 등은  1400년 대 초반에 지어졌는데

옛 모습을 그대로이고 지금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구시청사 앞, 라에코야 광장

 

탈린의 중심은 시청광장인 라에코야 광장.

날씨가 좋으면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노천카페에도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고딕양식의 구시청사(Raekoda)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북유럽에 있는 중세 시청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시청사의 첨탑 꼭대기에는

깃발을 든 파수병 모양의 풍향계가 있는데

바로 탈린의 상징, 토마스 아저씨 혹은 토마스 할아버지이다.

 구시청사는 지난 수세기 동안 탈린시 의회의 회의는 물론 탈린의 중요한 행정 사항을 결정하던

곳으로 현재는 콘서트홀

 

 

 

 아키코 스와나이가 노래하고 있다.

 

 

 

 

 

 

 

 

 

 

 

 

 

스시 바아

 

 

 

 

 

1944~49년 2차례에 걸쳐 탈린에 살던 에스토니아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증거도 없는 반역죄, 독일군에 협력한 죄, 집단화 반대 등의 죄목으로

소련군에 의해 추방당하거나 투옥되었다.

추방된 사람들은 대부분 스웨덴이나 북아메리카에 정착했다.

이후  러시아인들이 이 도시로 이주하여 인구의 35%(1970)를 차지한 반면,

에스토니아인은 56%로 감소했다.

 

 

 

 

 

비루(Viru) 게이트

 

16세기에 건설된 탈린의 성벽에는 각기 다른 모양을 한 19개의 탑이 남아 있다.

(원래는 총 27개였다고 한다.)

이들 탑들은 대부분 박물관이나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비루(Viru) 게이트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신시가지 모습.

 

 

점심은 중국집, 사계미에서 먹었다.

 

 

 

 

 

 

 

 

 

 

       

발트 3국 중 가장 아름다워 발트 해의 진주, 발트해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에스토니(Estonia)

에스토니아에는 신비스런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성터, 영주가 살었던 저택 등의

유적지와 동굴, 퇴적암석층, 깍아지는 듯한 절벽 등 멋진 경관,

자연과 관계된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하다.

지리적으로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해 연안 3국에 속해 있다.

국토면적은 3국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이고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50미터정도인

저지가 대부분인 나라로 습지와 야생동물 서식지가 산재해 있다.

교외 개발지구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상뜨 배째르부르그로 향하는 버스는 국경 도시이자 초소인

나르바로 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상뜨 빼째르부르그를 "빼째르부리"하고 부른다.

 

 

 

 

 

원자로는 아니고 폐기된 소규모 화력 발전소가

풍력 발전소와 함께 있다.

 

 

 

 

 

 

황새 집이 아주 거창하다.

황새들의 주택 공사 현장에 초점을 맞추어보았다.

 

 

 

국경 도시 나르바에는 러시아인들이 더 많이 산다고.

에스토니아로서는 별로 신경을 쓸 지역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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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통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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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Roma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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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Colombina
06. Fantasia Venezia
07. Casanova
08. Donna Lucrezia
09. Cecilia
10. Sinfonia Per Un Addio
11. Acqua


1980년대 이탤리, 베네치아 출신의 클래식 작곡가인
쟌 피에로 레베르 베리(Gian Piero Reverberi)가 이탈리아 음악학교
졸업생을 주축으로 결성한 실내악단 론도 베네치아노(Rondo Veneziano)는
18세기적 전통의상과 가발등을 연주시 착용하므로
청중들이 당시의 사회상과 바로크풍의 음악을 함께 엮어서
연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