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신부의 아버지가 주례석에---

원평재 2004. 4. 3. 00:28
신부의 아버지가 주례석에---
어쩌면 오늘 내가 참석한 어떤 결혼식의 신선한 진풍경이 내일 아침이면 스포츠 신문의 한 지면을 차지할 수도 있겠기에,지금 얼른 써서 그보다 일찍 올려야겠다는 강박관념으로퇴고도 없이 그냥 올려보고자 합니다.
A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 도착해 보니 인물 좋은 내 친구는 고운 한복을 입고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꽤 이름난 시인인 부인께서도 잘 어울리는 한복으로 고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부인께서는 줄 선 사람들의 이름이나 직함을 불러주며 고맙다고 하는 인삿말이 건성이 아닌 마음을 담고 있었다.호텔 결혼식의 하객으로 갔을 때에 테이블에 못 앉으면 낭패인 점을 익히 아는 나는 얼른 친구들이 진을 친 곳으로 가서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맥주를 아끼지 않고 공급하는 모양새가 조금 예사롭지 않은 넉넉한 혼례 인심을 보이고 있었다.퇴근 시간에 서둘러 뛰어나와서 도심의 러쉬 아워를 뚫고 달려 도착한 시간이 6시 5분전, 가까스로 낭패를 면한 순간이었다.맥주 몇 잔을 친구들과 나누는데 신부의 아버지인 내 친구가 실수로 주례석까지 올라섰다.썩 어울리는 한복에 여유있는 미소를 짓고 있는 품새가 주례 역할을 그냥 그대로 하여도 좋을성 싶었다.과연 내 친구는 기왕에 주례석에 올라선 바에야 그냥 주례를 서겠다고 웃으면서 말하였다.신랑 쪽은 바깥 혼주가 없었다. 청첩장에 내 친구 부인이 좋은 글귀로 시와 다름없는 청첩글을 올렸던 사연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이윽고 신랑과 신부가 함께 입장하였다. 씩씩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그래 요즈음은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경우가 많지---.신랑 신부가 주례의 앞에 서자 장인이자 친정 아버지이자 주례는 "신랑 신부 맞절"이 아니라 "신랑 신부 포옹!"이라고 엄숙히 명령하였다.만당한 하객들이 시원하게 웃었다.그 다음에는 "결혼(!) 선언문"!"아무개와 아무니는 부부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함----." 성혼 서약도 없었다. 두사람이 만인의 앞에 섰는데 무얼 또 묻고 하랴.주례사 순서는 당연히 "아버님의 말씀"으로 이름이 바뀌어 나왔다. 사회자와도 말맞춤이 잘 되어 있었다."두사람에게 복잡한 말은 피하겠다. 서로 사랑하고 잘 살라는 말로 아비의 당부는 마치겠다. 하객 여러분!때는 바야흐로 저녁 시간이 아닌가요. 한 상 차려 놓고 시간 낭비할게 뭐 있겠습니까. 시간을 저녁으로 한 것도 예식장을 못 잡아서가 아니라 평일의 저녁 시간이 오셔서 즐기기에 가장 좋은듯하여 일부러 이렇게 잡았습니다. 중국식으로 음식을 차렸고 술은 아끼지 않고 내다드리겠으니 많이 많이 드시고 말씀 나누시고 즐기다 가십시오. 저는 날짜도 윤달을 가리지 않고 잡았습니다. 벌써 6개월 전에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주례도 원래는 저명 인사에게 위촉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저명한 분은 요즈음 칩거하고 나오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제가 직접 나선 것입니다. 양해 하소서. 신랑 신부를 소개하면 사위 아무개는 애니메이션 PD이고 신부 아무니는 일간 스포츠의 기자입니다. 더 이상 소개하면 팔불출이 될터이고 이상 소개 마칩니다. 음식을 중국식으로 한 것은 조류 독감과 광우병을 감안한 처사이니, 하여간 많이 드시고 서 있는 분들은 식권을 드리니 갖고 나가셔서 많이 드십시오. 이상 끝입니다. 주례사 겸 혼주 인사 마치겠습니다."이제 신랑 신부가 퇴장할 차례인데 주례는 다시 두 사람을 불러 세운다."신랑 신부 이번에는 격식을 차리지 말고 따뜻한 포옹!".둘은 아비의 말씀을 공손히 받아드려서 힘찬 포옹을 따뜻하게 한다.아, 축가 소개가 남았다. 사회자가 무어라고 했으나 요새 젊은것들 노래 패를 내가 알 수 있나. 소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옆에 서있는 멋있는 젊은 남녀에게 저 노래하는 남녀 노래 패가 무신 이름이냐고 물어보니까 "휘성"도 모르세요? 눈을 둥그렇게 뜨며 "Endless Love" 멋있잖아요---한다.나도 그 노래 가락 음정은 알지---.신랑 신부가 노는 물이 모두 신선한 곳이라서 그런가 젊은이들이 모두 키가 크고 통통 튄다.봄날은 간다---.신랑 신부에게 축복 있으라."주례기"를 언젠가는 연속하여 올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오늘 한 건하여 예정에 없이 올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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