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저 재혼하는데, 주례 좀 서주세요."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약국을 하는 여자 후배가 전화를 했다."상대는 어떤 놈인데?"라고 내가 감정을 묻혀서 묻지는 못하었다."무얼하는 사람이 미즈 최를 유혹하였을까?"아마도 이런 정도였었나 보다."그냥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평소 여장부로 여긴 미즈 최는 혼자 사는 여자였다.아니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였다.내막은 잘 몰랐다.그렇다고 그녀와 고등학교 동기인 남자 후배들에게 사연을 물어볼 입장은 아니었다.내 모교는 어느새 남녀 공학이 되어있었다. 하나의 추세였다.높은 지위를 갖였던 동문회의 회장님이자 대선배가 여러해 전에 나에게 동문회 집행부에 참여하여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을 때 거절치 못하고 찾아간 회의장의 내 옆자락에 당찬 여성이 하나 앉아 있어서 인사를 나누었고 그러다가 차츰 구면의 처지가 되면서그녀가 "이 메일 주소"로 "바자 회"나 "일일 찻집" 행사의 공적인 연락을 해오더니 차츰 음악이 담긴 안부 메일도 보내왔다."이런 메일은 이 세상에서 선배님을 포함하여 단 두 사람에게만 보내드린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자주 전제를 하면서 내가 답도 제대로 못하는 메일은 쌓여만 갔는데,그 내용으로는 건강을 제일의 화두로 항상 챙겨서어렴풋이 이 후배가 혼자이고 배우자의 건강이 유고의 사유가 된건 아닌가---짐작은 자유롭게 하면서도 더 이상을 관리하지 못한 것은 나의 나태한 습성 탓이었지---.아니 관리라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다.오직 사회생활에서의 인간 관계의 측면을 말할 따름이다.오해가 두렵다.동문회 주소록에서 그녀가 약사인줄을 알았지만정말 알고보니 그녀는 거대 규모의 의약품 도소매업을 운영하였는데 더 알고보니 고용한 약사가 다섯이나 되었다. 하지만 의약 분업 사태 때에는 이 기업도 크게 경영이 기울 수 밖에 없었는데 그후 다시 수도권의 어떤 종합병원 앞에서 재기하였다던가---.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재혼 주례를 부탁한 것이었다."에드가 드가"가 그린 "여인의 초상"처럼 코가 좀 너무 크게 얹힌 그러나 참 예쁜 인상이었지.전화로 주례 승락을 덜컥해버렸더니 내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스러웠나, 아니 예의를 깍듯이 차리고자 했겠지,당장 이튿날 예비 신랑과 함께 찾아온 그녀와 다시 직접 대면한 것은 꽤 오랜 만이었는데 그 사이 짐작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상한 모습이었다.그래 그녀 또래 나이의 얼굴이 잠깐 세월에도 얼마나 취약하던가"신랑이 훨씬 젊어 보이네?"어깨를 꾸부린 자세로 대범하게 묻는 내 태도에는 불필요한 의심이나 경계심을 미리 예방코자하는 면밀함이 있었다."아이구, 선배님, 5년 년하의 남성이예요."내 팔을 툭치며 미즈 최는 깔깔 웃었다.두 사람은 재혼을 주선하는 어떤 결혼 정보회사에서 만났단다.주로 등산을 하며 상대를 탐색하였고 확신을 얻었다고 하였다."미즈 최는 술을 못하는 줄 내가 익히 알지만 신랑은?""죄송합니다, 저도."다행히 그도 술은 체질적으로 받지않았다. "참으로 다행이오."나 혼자 맥주를 몇잔 하며 나는 진심으로 치하하였다."오늘 하루 저녁만 자유롭게 물어보겠소. 미즈 최는 사별인가?""네, 11년 되었지요. 오늘 선배님 뵈러 오기전에 이 사람과 신태인에 있는 선산으로 가서 망부에게 고하고 왔어요.""그럼 신랑은?""전 이혼입니다. 3년 되었지요."좋은 답은 아니었다.그러나 어쩌랴---.신랑은 대학 다니는 아들이 둘이었고 신부는 빼어난 미모의 딸이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아이들은 따로 나가 살 궁리들을 모두 해 두었고 두사람의 재혼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했단다.두집의 아이들은 결혼식장에서 축하 점촉도 웃으며 함께 해주었다.보기가 참 아름다웠다.결혼식장은 압구정동에 있는 어느 깔끔한 호텔 6층이었는데,위에서 언급한 장관을 지냈던 선배 회장님은 물론이고쟁쟁한 선후배들이 만당하여서 미즈 최의 활동 범위가 돋보였다.처음 얼떨떨했던 내 주례사는 말문이 터지면서자칭 빛과 윤기가 더하여지는 느낌이었다.주례사를 여기 밑에 띄웠으나 읽기가 급한 분은 이 부분(푸른색 글)일랑 뛰어넘고 다시 브라운 계통의 끝부분만 읽어주시기를---.
(재혼)주례사; 누가 주례사를 듣고 있으랴.생략하는 염치를 발휘---.
주례사가 끝나자 사회자가 조금 느닷없이 "커플 링"을 교환하는 차례가 왔다고 선포하였다.미리 부탁받았으면 주례가 보관하고 있었을텐데 나는 내심 조금 당황(황당?)하였다. 그러나 역시 미즈 최였다. 얼른 도우미를 부르더니 나직히 링이 들어있는 곳을 알려주어서 얼른 링 케이스가 주례인 나의 손으로 전달되게 하였다.이제 정작 힘들어한건 나였다.의식용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링 케이스를 열다보니 링 하나가 비스듬한 연단을 떼그르르 굴러서 밑으로 떨어졌다.다행히 링은 주례의 발과 연단 사이에 떨어져서 멀리가지는 않았다.왕년에 가슴이 큰 배우,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식장에서 링을 떨어뜨리자 "처음이라 그랬노라"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했다던가---.연단의 뒤쪽이라서 하객들은 별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고 다만 면전의 신랑과 신부는 느낌이 어땠을까, 아니 이런 일이 어떤 전조는 아닐까?위기를 예시하는건가,아니, 아니야, 이건 아무런 전조도 아니고 혹시 어떤 상징성이 내재해 있다 할지라도 별 것이 아닐 것이다.혹시 초혼이 아닌 재혼이니까 그렇게 한번 궁글러야 되는 것 아닌가하는 정도로---.액막이로서, "양밥한다"는 말도 있지, "고시네~~"하고 밥 한 숫갈 먼저 공양하는 의식 같은것---.식이 끝난 다음 나는 헤드 테이블을 버리고 회장님과 선후배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찾아갔다.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건가.역할 때문에 다소 긴장했던 내 마음이 확풀렸다.스테이크를 썰고 있는데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눈에 들어왔다.재혼 식장에서 부케 받을 여자들이 있을까?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중년의 여성 여럿이 던지는 꽃다발을 받을 준비로 워밍업을 하고 있지않은가---!하나, 둘, 셋, 마침내 부케는 날라갔고 잘차려입은 어떤 여성이 결사적으로 다이빙하듯 꽃송이를 움켜잡았다."독신인가? 재혼 할려나?"선배 회장님이 말하고 나서 좀 어색하게 웃었다."아뇨, 가정이 있는데요."어느 후배가 알은체를 하였다."그렇다면 계획이 있나? 황혼 계획같은거---"내가 좀 좌중을 웃기려고 말을 꺼냈으나 아무도 웃지않았다.시대상을 고려할 때 주제가 생각보다 심각한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