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너무 밋밋했어요."골굴사를 오르면서 우리 다단계 회사의 새로 승진한 점장,미즈 천이 상급자인 내게 말을 붙였다.여기에서는 기혼, 미혼을 따지지 않고 내부적으로는 모두 미즈라고 호칭한다.대외 호칭은 점장, 부지배인, 지배인등 다양하다.남자들은 대개 파트너, 디렉터등 미국식 호칭을 대내외적으로 함께 쓴다.미국의 다단계 판매 조직을 흉내낸 KORWAY가 한국의 유통 시장에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성공 여부에 깊은 회의가 앞섰으나 한국적 인맥 조직을 잘 이용한 우리 회사는 승승장구하였다.혈연은 기본이고 지연 학연, 그래 학교 다니며 동아리에서만나 몸까지 나누고 헤어진 오빠나 누이들까지 이 곳에서는판매 대상으로 눈독을 들인다.워커힐같이 큰 호텔에서의 분기별 실적 발표및 성공사례 발표는 경쟁심이라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의도적 판촉 전략이었고 이제는 지방으로 다니며 관광을 겸하여 실시하는 판매 전략 교육도 궤도에 올랐다.나아가서 미국 교포 사회를 넘보는 전략 세미나도 LA의 코리아 타운에서 내년도에 수행할 계획이 잡혔다.교재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글러 박사의 "지글 지글 지글러"판매 전략서는 하나의 경전이었다.이번 대구에서의 행사에서는 T 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세미나를하고,야간에는 희망자들만 경주로 옮아가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자 하였다.아줌마 부대의 중간 관리자인 내가 경주 남산의 일야(一夜)를포기하고 일찍 상경길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남산 일야는 매일 저녁 일기 대신에 천일야화를 쓰는 나에겐 너무 싱거웠다.노래방으로 우루루 몰려들 갔으나 안면있는 중년들이 짝짓기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누가 부르짖었다."오늘 온 사람들끼리 짝짓기하면 근친상간이다" 화들짝 몸단속 분위기가 좌중을 사로잡았다.아니 분위기 경색의 직접적 원인은 분임토의 숙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관리와 유통에 관한 분임 토의 후에 각자의 개선방안을써내야하고 잘만 쓰면 상품으로 금 두꺼비, PDP 수상기,못해도 딤채 교환권은 하나 얻을 판이었다.모두들 본격적인 술판은 내일 방문하기로한 문무 대왕능 앞에서 벌이기로 하고 판매전략 증진을 위한 분임토의에 들어갔다.열기가 지글지글했다.노트북을 여는 관리 파트도 있었다.그래도 마지막에는 준비해온 헤네시 꼬냑을 강제로 돌리며 꽤 마셨다.다음날 아침,일행은 아침도 걸르고 감포로 향하였다.감포가는 길은 금계국이 도로 양편에 뭉텅뭉텅 자라고 있었다.노란 색갈이 갑자기 정욕을 돋우는듯 하였다.노란색은 시기심의 상징이었지, 아마.하여간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로 들어왔기에 볼 수 있었던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골굴사 오르는 길누가 소릴 질렀다."골굴사를 들렀다 갑시다요.""불국사 말이오?""아니, 골굴사요. 새로 마애석불이 발견되어서 그 인근에 대웅전과 선방과 삼신각등을 지금 중창 중인데 흔한 절집하고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산자락에서 정상까지 전개 된다네요---.""에이 그러면 등산이네, 피곤하겠어요.""그래도 운동이 되고 좋지요. 지금 가봐야 감포의 횟집이아직 문도 열지 않았을 것이고---."골굴사는 1500년전에 인도 쪽에서 온 일단의 스님들이 창건한 절로써 인도나 중앙아시아 특유의 토굴 속에 부처님을 모시는 방식이 돋보이는 곳이었다.이런 방식은 토질이 굴파기에 적절한 점토성이거나 아예 자연 토굴이 있거나해야 되었는데 골굴사에는 이 두가지가 모두 겸전되어 있는듯 하였다.골굴사 마애석불우선 토질은 화강암이나 토사질이 아니고 점액성이 있어서 이리저리 미로와 작은 토굴들을 만들어 주었다.그리고 이 토굴들은 또 곳곳이 부처님 모시는 벽감 역할을 했는데,다만 거대 규모의 마애석불이 새겨진 석질만은 대리석 같은 느낌을 주었다.하여간 특징이 있는 도량이 대규모로 중창되고 있었다."아이구, 손 좀 잡아줘요."미즈 천이 소리를 질렀다."조심해요. 신참 점장님, 그러다가 자칫하면 뒷말이 생겨요."우리 조직이 어떤가,경쟁으로 먹고사는 살벌한 곳이어서 판매 성과가 못하여 승진이 늦은 여자들이 들고 나오는게 잘나가는 동료의 사생활 문제였다. 어쨌거나 할 수 없이 내가 비틀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서너걸음만에 그녀는 더욱 비틀거렸고 이제는 내가 안아주는 모양새가 되었다."나 좀 안아줘."삼십년 전, 총각 시절에 미자가 석굴암 토함산 뒷 켠을 오르면서 지른 소리였다.아마 절기도 지금쯤이었을거야, 날씨가 퍽 더웠던 기억이 난다.미자는 미모였으나 지금식으로 말하면 한 미모 하면서 남자들을 울리다가 마침내 본인이 우는 그런 여자였다.그녀는 지방 신문의 사진 기자였다.나는 지방 최고의 기업, 삼성 게열의 제일모직에 엔지니어로 취직이 갓 되었고---.그녀는 취재기자와 우리 공장에 함께 왔다가 어쩌다 인연이 되어서 일과 후의 저녁이면 시도때도 없이 나를 불러내었다.그녀의 복장은 사진 기자에 어울리지 않게 항상 쉽게 펴지는 플레어 스커트였는데 내 앞에서도 자주 펄럭였으나나는 한동안 용케 견뎌냈었다.어쩌다 그랬는지, 우리는 토함산, 석굴암을 휴일에 함께 오게 되었는데 이 때도 그녀의 옷차림은 플레어 스커트였다."야, 카메라 우먼 한미자, 산에도 후레아 스까도냐."내가 한 방 먹였을 것이다."흥, 내 이름은 한미모, 후레아 확 펼치면 쓸모가 좀 있지, 이 바보야.""플레어(flare)와 플래퍼(flapper)는 어원이 같지, 취직시험 준비하느라고 워드 파워 외우며 생긴 지식이야, 이 한심한 아가씨야. 플래퍼, 그래 후레빠 라는 말, 몰라?"말이야 어쨌거나 결국 둘은 플레어 스커트를 요긴하게 산 속에서 사용하였고 청년은 결코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였다.일을 치루고 나서 카메라 우먼은 돌아오는 길에불국사 대웅전으로 들어가서 나풀나풀 절을 하며 무언가를 빌었다.청년은 그 소원이 무엇일까 짐작이 가면서도 뒤로 물러났다.몸이 뜨거운 그녀는 몇차례 더 체온을 청년에게 전달하다가 중앙 일간지로 뛰었다. 그 다음은 주간지 사진기자로 기획 기사에 이름을 떨치더니 큰 사진전도 열고 국제적인 상도 받고 하다가,광화문 인근에 포토 스튜디오를 열어서 주부들의 누드를 시들기 전에 찍는다고 한동안 사회적으로 떠들석하더니 이윽고 사라졌다.미즈 천은 산신각을 오르면서 또 기대어왔다.그 위 마애석불 쪽에서는 일찍 올라간 어떤 사내가 "나무아미 따블 따블 따따블---"하고 소릴 질렀다."미쳤네!"나도 좀 흐트러진 기분이 되면서 소릴 질렀다."뭐요? 몸 좀 기댔다고 미쳤다 그러기에요?""아니, 저 따따블 놈 말이야."내가 분위기상 할 수없이 총각 때의 토함산 일을 조금 줄여서 그녀에게 말해주었다."나 그때 이래로 야외나 산에서는 주눅이 들어. 산에 가도 여자들 손 잡아주지 않는 이유가 당시 내가 무슨 독성죄를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야.""독성죄가 모야요?""대학1학년 때 교양영어로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었는데 그 때 배웠던 단어가 토함산에서 일을 치룬 후에 툭 터져나오더라구. 샤머니던가---, 스펠링은 기억이 나지않는데 신성모독 같은거요." "떠 벌린 사람들도 산에서 떠 벌리고 했나요? 헤헤헤""어제 돌린 헤네시 꼬냑이 좀 심했나보네. 미즈 천, 아직 작취미성이야."하긴 나도 좀 작취미성끼가 있었다.작취미성의 방심함이었달까,골안사 옆쪽에서 마애석불로 올라가는 좁고 꼬부라진 토굴 길을 이리저리 기어올라가며 이런저런 음흉한 과거지사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머리통을 굴의 천정에 부딪쳤다.석질이 단단치 않아서 큰 아픔은 없었지만 나는 머리카락 아래로 피가 나왔으리라고 대충 짐작하였다.손으로 쓰윽 문질러보니 붉은 포도주의 잔흔 같은 것이 손바닥에 조금 묻어났다.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약간 범한 독성죄 비슷한 정황에서 피나는 벌을받았으니 최소한의 죄 사함은 이 것으로 떼웠으려니---. 이건 물론 조계사나 바티칸에다가 확인하거나 문의할 성질은 아니고 내 마음의 문제이겠지만---.하지만 저 따따블 녀석은 모야---.피도 흘리지않고.우리는 서둘러 감포의 대왕암으로 달렸다.나에겐 세번째 방문 여정이던가, 문무대왕께서는 지금도 왜구의 발호와 이 땅의 동쪽을 근심하시면서 분투 노력하는 다단계 판매원들을 따뜻이 맞아주었다.우리는 "브런치", 그러니까 "아점"을 대왕암을 바라보며 먹었다. 전복죽과 모듬 회와 그리고 산소주를---. 대낮부터 얼큰해서 우리는 해변으로 나와 어슬렁거렸다.빨간 옷을 입은 어떤 몸짱 여성 점장은 이른 여름임에도 바다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버지니어 울프처럼 그냥 물 속으로 계속 들어가 버리나.바라보는 분위기에는 치열한 경쟁 조직에서 잠시 일탈한이 몸짱 동료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정서가 묻어나서 이윽고 일행을 무겁게 지배하였다.이제 마침내 어제 오늘의 세미나 개최를 확인하여 본부에 보고하는 합동 증명사진 촬영의 순서가 왔다. "유통은 영원하다, 힘차게 땅끝까지!라고 로고를 넣어드릴께요."카메라 맨이 소리쳤다."유통은 마침내 끝내준다!라는 말도 넣어줘요."미즈 천의 혀꼬부라진 소리.어제 오늘, 견디기 힘든 분위기에서 술이 잔뜩 취한 그녀가 비틀거리며 나에게 돌진하여서 우리는 모래 밭에 쓸어졌다.90퍼센트가 여자들인 판매회사 중간 간부의 비애인가,얼마나 경쟁에 찌들고 기진맥진했으면 이렇게 된건다.순간 쓸어져 누운 모래 밭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돈이었다.은빛 백원짜리 동전이 세개 나란히 모래밭에 누워있었다.이 광활한 모래밭에 추락한 삼태성, 오리온 좌였다.나는 미즈 천을 옆으로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본능적으로 은빛 별을 쓸어안았다.이걸 놓치면 재수가 없어서 우리 파트의 판매고가 떨어질는지도---.지난 여름, 혹은 얼마전에 이 곳을 지나간 어떤 가슴 넉넉한 시인의 실수인가, 장난인가.이 시대 이 황무지에 내던진 詩心인가 恩典인가---.흐르는 음악은 최재호 사, 이수인 곡의 "석굴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