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신판 대공황의 골은 깊고 따라서 그늘도 짙고
길것으로 예상이 된다.
희생양을 만들어야 굿판이 끝난다면서 한국, 브라질, 우크라이나 쪽으로 월가의 무수리들이
요령을 흔들고 칼춤을 추어대는 꼴이다.
초기에 외환을 축낸 실수는 있었지만, 아직 펀더멘탈이 견조한 이 나라에 제발 눈독을
들이지 말라고 WSJ이나 NYT, 특별히 한국의 IMF를 예상했던 프린스턴 대학의 크루그만
교수에게도 부탁을 하고 싶다.
하여간 이런 난세지만 지난 주말(10월 25일), 문예지 <문학과 의식>사와
<화산 문학회>에서 주최하는 "가을 문학 기행"에 참가하였다.
주최하는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의 운영위원이라는 마음의 짐 때문이 아니라
기행 유적지의 면면이특별히 마음을 끌어서 고대하던 참이었다.
이번 문학기행에서는 고교 1년 후배이자 동인 문학상에 빛나는 한국 소설계의 문호,
정소성 교수(단국대)와 만날 기약도 있어서 오랜만에 동창 해후의 즐거움도 덤으로
얻었다.
정말 세상사는 어떻게 떫게 돌아가거나 문우들의 즐거운 하루 기행은 시작이 되었다.
문학과 의식의 안혜숙 주간 겸 발행인, 그리고 화산 문학회의 김동설 회장님,
세계 한민족 작가 연합의 교수님 몇 분, 여러 문우및 문학을 지향하는 문청들과
함께한 단풍 계절의 하루가 짧았으나 그 여운은 길었다.
첫번째 방문지인 충남 당진군 송악면의 필경사는 개인적으로 전에 한번 들릴 기회가
있어서, 당시 못난 상상력을 펼쳐 작품 한꼭지를 매어보았던 인연이 깊은 곳으로,
졸작 단편 <필경사를 아시나요?>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어찌 감회가 없으랴---.
필경사는 서해안 시대의 핵심인 당진, 송악에 위치하여서 서해 대교의 착공과 준공을
거치며 오래 땅투기로 몸살을 앓은 곳이다.
글쟁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찌 소재가 다양하지 않으랴.
지난번 펴낸 졸문에는 심훈의 필경사를 주요 대상으로하여 그 주변의 땅투기와 작부를
넣어 버므렸던 작품인데 걱정을 하며 그 곳을 다시 들러보니 다행히 그간 몇년이 흘렀어도
동네의 모습이 그저 고즈넉하고 땅투기라는 외풍을 잘 견디면서 옛 선비의 풍모를 잃지
않고있는듯하여 반갑기 그지없었다.
심훈 선생이 이 곳에 손수 집을 짓고 필경사로 명명하여 낙향을 한 연대는 대략 1933-4년
전후가 되는 것으로 20분 가량의 안내 동영상과 활자 자료들은 말해주고 있었다.
아, 그렇다면 미국의 대공황이 터진 때가 1929년이었으니 그 파장이 유럽과 일본을 거쳐
이땅에도 막 상륙했음직한 시대적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자국의 영토 밖에서 승리로 이끌어내고, 경제적 풍요를 달러의
고평가와 함께 만끽하던 1920년대의 소위 재즈 시대를 마감하고 1929년의 주식 대폭락과
함께 새 기원을 맞게 된다.
그 기원의 본질은 아무도 예측못한 재앙이었고 결과는 참담 그 자체였다.
이때의 비참했던 생활상은 이제 7-80대 고령자가 된 미국의 늙은이들에게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러나 평생 지워지지않으며 몸을 사리게 만든 악몽으로 남아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령자들이 한국전쟁의 참상과 IMF 시대의 고난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듯이.
1930년대의 미국 문단은 존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대표된다.
1939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는 공황 이후의 전반적 참상뿐만 아니라 이 공황의 근원을
인간이 저지른 원죄와 결부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시각이 엿보인다.
재즈 시대의 미국 사회에는 방종과 일탈이 너무나 만연하였다.
스콧 핏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나 <밤은 부드러워> 등의 배경이 그러한 풍조를 잘
드러내보여준다.
그러니까 공황은 경제학자들의 예측이나 경제 구조의 결함에서온 것이 아니라
스타인벡에 의하면 신이 내린 형벌이었다.
30년대의 오랜 가뭄이 그런한 징표라고 작가는 생각하며 여기에 더하여 자본가들과
결탁하여 선량한 농부들에게 대책없이 영농기구를 팔아먹은 제조업자들의 농간은
이집트의 파라오에 대비된다.
이제 중서부 대평원의 농부들에게 남은 것은 출애급기, 엑소더스 뿐이지만 모세와
여호수와에 비견되는 인물들은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절망적
이었다.
꿀과 젖이 흐른다고 중서부 농민들을 유혹한 캘리포니아는 사실 사탄과 악몽이
그려낸 환상의 대지일 따름이었다.
그런 가운데에도 스타인벡은 희망의 구조를 작품의 마지막에 흐릿하게나마 설정해
주고 있다.
우리의 30년대는 어떠하였을까.
세계사적으로 볼때 오늘의 신공황기와는 달리 조선땅을 침탈한 일제의 사정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행복하였다.
세계질서의 중심에 있던 미국은 일단 자국의 문제에 영일이 없었다.
30년대 초에 집권한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파쇼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계속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또한 간섭코자 하였지만
일단은 한계상황이었다.
또한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초록동색 의식도 미국으로서는 위안이 되는 부분
이었다.
대공황이라는 재앙이 빌미가 되어 일본 지식인들도 입에 재갈이 물리기 시작하였고
이땅의 좌파 "카프 문학"도 일대 탄압을 받았다.
말하자면 파쇼 군부독재가 득세할 명분과 현실적 토양을 대공황은 마련해 준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사실 이 시대에 문인, 지식인들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일파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차라리 문학 내재적 기교와 기법으로 파고들며 현실을
외면하는 측면이 적지않았다.
자신들이 살아 숨쉬는 사회에 팽배한 고도의 사회병리를 그들은 이미지즘 속에서
기술적으로 묘사코자 하면서 매우 주지주의적인 모던니즘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민생과는 거리가 있는 지식 전도자의 뻐기는 자세에 다름
아니었다고 지금은 비난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하긴 지나놓고 보니 30년대 미국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별로 문학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을 유산으로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문학이 "이즘"에 빠질때 문학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미지즘의 실험이나 남부 문인들이 벌인 도피의식(The Fugitive라는 일단의 문인
서클), 의식의 흐름 기법의 천착 등등은 그나름의 비판이 감수 되어야할 계제가
아닌가 싶다, 이제 와서는---.
공황기의 세계사적인 개관에서 이제 눈을 우리쪽으로 돌려보면 이 땅에는 심훈과 같은
이상주의자들이 식민지 폭압체제라는 한계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계몽의 전도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고 자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개요를 살피면 아래와 같은 리스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
1930년대의 소설
이기영의 <고향>, 김남천의 <대하> --- 비참한 현실 있는 그대로 그림
이상의 <날개>---인간 내면의 분열을 그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 묘사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도시인의 삶을 그림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역사소설. 주인공 흥선대원군
현진건의 <무영탑>---역사소설. 신라 시대 석공의 사랑과 예술
염상섭의 <삼대>---가족사 소설. 조부, 부 사이의 문제 객관적으로 그림
채만식의 <태평천하>---가족사 소설. 일제 강점기 현실 풍자적으로 그림
심훈의 <상록수>---농촌소설. 야학, 문맹퇴치, 이상촌 건설 등 적극적인 현실
타개책 제시
이기영의 <고향>---농촌소설. 지주와 소작인간의 계급 투쟁
김유정의 <만무방>---농촌소설. 일제 강점기 가혹한 농촌 현실 비판
심훈이 공황기의 세계사적인 의미를 파악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예지에 빛나는 그는 당대에 이미 영화예술에도 손을 대 볼만큼 인류사의
흐름에 예민하였으며 이땅의 미래에 대하여도 어떤 밑그림을, 희망적 미래 예측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이라는 그의 작품은 "자주 독립의 그날이 오면"으로 쉽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오늘날 민중 민족주의 문학 쪽에서 "자주 통일의 그날까지"로
외연, 확대 해석하는 여지를 이미 마련해주고 있다.
바로 작가의 긴 안목, 긴 호흡을 느끼게 한다.
신 공황기에 떨치고 나선 <문학과 의식>사의 첫 문학기행지가 우리 시대와 맞물리는
바람에 그 감회가 조금 길어졌다.
이날의 여정은 이어서 개심사와 해미읍성, 마애삼존석불, 보원사지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간월도에서 비내리는 밤바다를 내다보면서 굴밥으로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심훈의 필경사를 답사한 서두의 행사가 너무 강렬하여서 나머지 일정은 그저 테마관광
여행처럼 인식 될 수도 있었지만 사실 그 의미를 천착해보면 이 또한 무궁무진한 역사성을
뽑아낼 수 있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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