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첫 송년회가 스타트 하였다.
남산 중턱에 있는 "안가"에서 였다.
권위주의 시대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면, 백면서생이 연말에 "남산 안가"로 끌려가서
혼이 난 은유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장소는 틀림없이 바로 그 "안가"였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고 내용도 물론 다르다.
남산 안가 중의 하나가 "문학의 집"으로 진화하였고 또 다른 분실이 있던곳은 지금
"유스 호스텔"로 바뀌어서 좋은 일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기부의 안가"라는 으시시한 전력이 작용해서인가, 이곳은 아직도 찾는
발길이 뜸하다.
교통편에 대한 선입견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게 또 되려 사람의 발길을 막아서 아는 사람들에게는 조용하고 편안한 장소로
자리매김 한다.
(안채 2층에서는 누군가 책을 읽고 계신다. 아마도 대표로 계시는 김후란 시인이리라 짐작하고
인사차 올라가지는 않았다.)
"문학의 집"은 안기부 안가에서 탈바꿈 할 때에 좋은 일 하기로 유명한 어떤 기업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뒤를 봐주고 있다.
사실 개인이 사는 집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규모의 공공 건물을 유지하는게 지역사회나 큰 기업체에서 뒷바침하지 않으면
자생력이 있기 힘들다.
더구나 시시때때로 전시회, 강연회, 세미나가 열리는 역동적으로 열린 공간인 다음에야~~~.
아무튼 그 "집"에서 올해 연말, 첫 송년회를 가졌다.
해마다 "한국 펜 클럽"이 그 해의 주요 문인들과 신인들을 표창하는 뜻깊은 행사를 열고
끝 프로그램, 다시말하여서 휘날레는 "송년회"의 의미를 붙이기 때문이다.
문효치 이사장의 인사말씀
김년균 문인협회장의 축사
내가 간 것은 "세계 한민족 작가 연합"의 이사로서 이 모임의 카나다 지부장을 맡고 있는
"허대통" 교포 작가가 번역상을 받기 때문에 축하와 환영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이름 석자는 소리죽여 웃을 수 있는 요소를 갖추었는데 소개의 순서에서 본인 스스로
이름이 "허 대통령"이라고 외쳐서 감춘 웃음을 큰 웃음으로 끌어내었다.
현명한 유머 감각이었다.
맨 앞 왼쪽에 앉은 분이 허대통(령) , 세계 한민족 작가 협회의 카나다 지부장
아울러 나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계간 문예지 "문학과 의식"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 김용만 교수의 펜문학상 수상(소설 부문)을 축하하는 뜻도 개인적으로는 깊었다.
이분은 한번 수상을 완곡히 거절한 적도 있었다.
나는 마침 낮에 일이 있어서 시내에 들렀다가 이 곳 행사장의 풍치가 좋다는 생각에 문득
이르러 저녁행사에 앞서서 사진 몇컷을 미리 하였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저녁 분위기가 아무리 아늑하여도 카메라의 ISO 감도나 플래쉬의 휘도에 관계없이 자연산
빛이 없으면 사진은 힘을 잃는다.
물론 전문적으로 하이라이트나 플러드 라이트를 쓰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내 아무리 초보 카메라 맨이지만 이 정도 상식은 있기에 바쁜 낮에 굳이 남산 안가를 들러
미리 몇 컷을 한 것이다
울창한 숲이 그 안가를 뒤덮었고 음산한 과거사가 남산의 정기와 어울려서였을까.
인적도 없는 그 구조물 속에서 사진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다지오 풍의 실내악이 나와서
살펴보니 찻집이 하나 나오는데 디오니소스 적인 분위기가 물씬난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자원봉사한다는 아주머니가 어서 오라고 환영을 하였다.
아동용 도서와 명작 도서가 그득한 북 카페인데 카푸치노가 1100원, 쌍화차가 1500원이다.
이런 횡재가 있나.
숲속에서 언 몸을 녹힐 기회가 문득 찾아왔다.
그런데 음악이 그쳤다.
?
그렇지,
북카페라서 실내에는 음악이 차단되고 아다지오는 문 밖, 오솔길로만 솔솔 풍겨나가고 있었다.
딸랑 딸랑---,
다시 문이 열리고 정말 디오니소스 풍의 청장년, 사내가 하나 또 들어왔다.
내가 쌍화차를 하나 받아서 북카페의 의자에 앉는데 그는 카푸치노를 시켜 받아서 따라 앉으며
나에게 죄송하다고 미소지었다.
"저는 경매하는 사람인데요, 아니 이제 배운지 겨우 3개월이 되었는데요---."
"?"
"식당하던 일과 부동산을 처분하여 그냥 경매나 하며 이 험한 경제난국을 버텨나갈 생각인데
여기 숲속에 경매로 나온 집이 하나 있어서요---."
"?"
"집사람이 돈 벌 생각이 아니라 소일거리로 커피 점이나 하나 하고 싶다고해서---."
그의 손에 예쁜 가옥 사진과 견적서 같은게 함께 복사된 A4 용지가 들려있었다.
그가 내게 그 종이쪽을 보일까 말까 망서리더니 무슨 비밀 연판장을 건네듯 보여주었다.
우연히 만난 나를 비밀결사에 넣고자 비밀을 트면서 신뢰를 보이는 그런 엄청난 행위는
물론 아니고 어떤 "물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평가받고 싶은 것이려니---.
내가 가옥 사진에 의례적 관심을 보이자 그가 조금 불안해했다.
"혹시 경매에 참여하실리는 없겠죠?"
"안심해요. 나는 그런거는 관심없는 사람이라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경매물건이 1억이나 될까말까하는 저가라서 공연히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자기 부인이 찻집을 내겠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한 것도 조금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북 카페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흘려듣더니 "아, 거기 작은 집!"하고 알은체를 하였다.
나는 일이있어서 일어나겠다고 하였다.
"가시는 길에 한번 같이 봐주시겠습니까? 바로 옆이니까요."
사내가 나에게 이제는 물껀의 감정을 의뢰하는 꼴이 되었다.
우리가 바로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섰더니 금방 희안한 집이 한채 나왔다.
고목 나무가 쭉쭉 뻗은 것을 가슴 속으로 집어넣는 매무새로 거기 기이하게 작은 집
한채가 서있었다.
"저게 대지 열다섯평에 건평 열세평입니다."
"참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군요."
"네, 그런데 세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와 봤는데 아무도 없거든요."
"차라리 세입자가 지금 있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물어보면 좋을것을---."
"그러게요. 그래 그런지 한번 유찰 되었거든요---. 선생님도 집이 마음에 드시면 한번
해 보시죠. 인터넷 중부지원으로 들어가 보시면 중구 예장동에 올라있거든요---."
나의 의례적인 관심을 그가 자꾸 착각하더니 마침내 진도가 이렇게까지 나갔다.
"사실은 찜찜해서 한번 더 유찰이 되면 그때 덤벼들까 하거든요."
내가 답이 없자 그가 또 속내를 털어놓았다.
"잘 생각하셨어요. 우리가 시골에 사과밭을 하나 갖고 싶다는 꿈과 같을지도 몰라요.
나는 일도 안해보고 게을러서 그런 생각을 머리속에만 그려본답니다.
머리 속의 사과밭---, 좋잖아요.
아까 그 문학의 집 찻집에 손님이 없듯이 여기에 무슨 찻집이 되겠어요---.
이 고목나무를 가슴에 품은 집도 이제 내 머리 속의 별장이 되어 남을 것입니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예장동 남산골 고목나무 집."
나는 그와 작별을 하고 퇴계로 쪽으로 바삐 걸어내려왔다.
약속 시간이 급했다.
저녁이 되고 다시 찾은 펜클럽 송년회는 성황이었다.
오랜만에 옛 동료, 문인들을 많이 만났다.
사진도 넉넉하게 찍었다.
사진이야 요즈음은 문예지의 웹사이트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니까---.
행사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상을 주는 분은 넉넉한 얼굴이었으며, 받는 사람들은
행복 일번지에 있었고 하객들도 모두 기쁜 마음이었다.
원로, 한말숙 선생님은 부축을 받고 강단에 올라오셔서 축사와 송년사를 주셨다.
세월의 흐름이 속절없다.
쟁반같이 둥근 달이 남산 위에 떴다.
낮에 찾았을 때에 데크에 고급스러운 여성 슈즈 한짝이 딩굴고 있었다.
무슨 내러티브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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