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전래 설화에도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수절을 하며
정욕을 억제하느라고 겪는 눈물겨운 고뇌의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
이와 더불어 끝내 성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여서
원과 한을 품고 죽는 사연도 많다.
미국의 단편 작가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은
성적 결핍으로 인하여
그로테스크하게 삶을 유지해 나아가는 일단의 인물들을
『와인즈버그, 오하이오』(Winesberg, Ohio)라는 단편 모음집에서
여러 가지 사례와 함께 잘 그려내고 있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가상의 도시 와인즈버그는
이름 그대로 술 취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무엇인가 결여되거나 왜곡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편 이 단편 모음집은 모든 이야기의 서술자가
항상 조지 윌라드라는 신문기자이고 작품의 배경도 같은 곳이며
각 단편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은 다르지만
그들의 성격적 근본이 일관성 있게 그로테스크하다는 점에서
한편의 장편으로 취급되고 있다.
프로이드(Freud)에 의하면 인간의 심리에는
성적인 충동과 죽음의 충동(공격성)이 있는데
자아는 이를 적절한 수준으로 억압을 하여
자기방어의 기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억압된 기제는
무의식의 상태로 심리내부에 저장된다.
이 억압된 충동의 해석을 둘러싸고
프로이드는 다소 일관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아서
초기에는 이러한 억압이 여러 가지 심리적 병인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으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문화와 예술의 원동력임을 역설하였다.
성적 충동이 인간의 삶 속에서 표출되는 생명의 힘인지
아니면 문명과 질서를 위해 포기되어야 하는
어두운 충동인지에 대한 프로이드의 모순,
혹은 모호성은 나중에 그의 후계자들에게 논란과 해석의
갈등을 초래한다.
이단적 프로이드주의자인 라이히(Reich)는
억압가설의 주창자로서 충동의 포기에 의하여 문화가
탄생하였다는 견해를 단호히 배격한다.
라이히에 의하면 초기의 프로이드는
개인과 사회의 병리현상을 성적충동의 억압으로 설명하였다.
성의 억압이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창조적인 문화를 억압한다는 주장은
당시의 가정, 종교, 나아가 국가의 질서체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유럽 부르주아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프로이드는
윤리를 파괴하는 사람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서 자아와 죽음의 충동의 적절한 억압이
문화라는 꽃을 피우는 원동력이라는 프로이드의 이론은
부르주아 문화에의 순응현상이라고 라이히는 주장한다.
두 가지 어느 쪽에 무게를 실어보아도 성의 과도한 억압이
인간성 파괴의 동인(動因)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상을
셔우드 앤더슨은 자신의 단편에서 극명하게 그리고 있고,
로렌스(D. H. Lawrence)는 억압되고 결핍된 성적 욕구를 추구하여
확보해낸 다음 이를 충족시킴으로써 병적인 상태를 극복하고
자아가 아름답게 개화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먼저 셔우드 앤더슨의『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나오는 단편
"모험(Adventure)"의 주인공은 엘리스이다.
엘리스는 스무 일곱 살의 조로한 노처녀이다.
그녀는 열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이 작은 마을에서
신문기자를 하고 있는 네드 커리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네드는 큰 도시로 나가서 자신의 인생을 한 번 겨루어
보고자하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마차칠장이와 재혼한 어머니 밑에서 살고 있는
엘리스로는 현상을 타개할 어떤 방법도 없었다.
네드가 떠나기 전날 밤,
그들은 마을 언저리에서 육체관계를 맺고 장래를 약속한다.
"이제 우리는 한 몸이야"라고 굳게 언약하고 시카고로 간 청년은
외로움을 겪던 첫 한해 정도 열심히 편지를 보냈으나
새로운 아가씨와 사귀고 부터는 소식이 끊어졌다.
점원으로 취직한 그녀는 네드를 만나기 위하여 여비를 모아오던 저축이
이제는 버릴 수 없는 습관이 되어서 옷도 사 입지 않고
오로지 돈만 모았다.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일만 하는 그녀는
교회에도 일주일에 사흘씩 나가서 기도하고 봉사하였다.
집안에서도 혼자 기도하다가 방안의 물건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른 삶이 그 곳을 범접할까봐 문도 걸어 잠궜다.
한때는 주위의 남자들이 접근도 하였으나
끝내 그녀는 그들에게 마음이나 육체의 문을 열 수 없어서
이제는 구부정하고 마른 몸매로 나이를 먹어 가는
노처녀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부에서는 불같은 정열이 혼자 타고 있었다.
어느 비오는 초저녁에
그녀는 이층 방에서 완전히 옷을 벗었다.
그리고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싸늘한 비가 몸을 때리자
광기와 함께 거리를 뛰어다니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빗속을 알몸으로 뛰어가다가 그는
앞에 있는 어떤 남자의 모습을 보고
"기다려 주세요"라고 소리치며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귀까지 조금 먹은 늙은 노인으로
"뭐라구?"라며 소리쳐 되물을 뿐이었다.
그녀는 손과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집으로 되돌아와 장농으로 문을 막고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다.
강한 자아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억압시킨
엘리스의 심리기제에서 억압의 직접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시골 마을사람들의 눈과 인습 그리고 종교적인 요인이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남은 것은 엘리스의 황폐한 삶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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