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이혼 세태 1

원평재 2011. 2. 10. 05:50

딸네가 무슨 계약을 할 일이 있어서 원군이랄까 증인 비슷하게 친정부모 된 죄로

복덕방을 출입하게 되었다.
시대는 과연 우먼 파워의 계절인가.
부동산 회사의 사장도 대리도 모두 여자였고 사무실 안에 남자라고는 달랑 꿔다놓은

 보릿자루인 나 하나뿐인데 나의 직책은 그만 운전 기사였다.

나이도 젊은 이 우먼 파워들은 입심도 여간 아니었는데, 평소 다변하진 않지만 분명

과묵한 사람도 아닌 아내가 분위기를 탔는지 딸네의 눈부신 발전을 마침내 자랑하는

국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옆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자랑스러운 발전이 국가로 치면 결국 개발도상국

상태에 다름아니잖은가---.

지금 돈을 한참 꾸어다 발전을 꾀하는 단계가 그대로 들어난 셈이었다.
"자랑하다 뾰록났네, 여자들 입이란---"

돌아오는 길에 기사가 감히 한 말씀 터뜨렸다.

아이구, 남자들 입이란---.
아까 자랑 끝의 말 실수도 상기 되었는지 마나님은 진노하셨고 이럴 때는 진정

과묵이 최상의 정책이었다.

다음날 새벽, 마나님께서도 이성을 찾으셨는지 피식 웃으면서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어느 부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번 국회의원 떨어진 집 있잖아요. 전번 반상회 때 이야기를 하는데 전 남편과

15년 살고 이혼하여 지금 남편과는 11년째라네요---"

그날 이 부인은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더란 다.
아닌게 아니라 방학때가 되면 미국말 소리가 아파트 이곳 저곳에서 꽤 들리는데
그 집에서도 진짜 준마 같은 청년 두명이 기세좋게 그들의 모국어, 그러니까 영어를

토해내는 광경이 자주 목도 되었었다.

그 아이들은--- 그렇다면---, 맙소사!
전 남편의 아이들이 아닌가---,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속물 근성을 스스로에게 들킨듯하여 내가 말머리를 돌렸다.
"사람들이 뭐랬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대요---"
"말한 부인은?"
"발설을 하고는 아차 싶었는지 피식 웃고 말대요."
우리도 피식 웃고 말았다.

냉전이 종식되고 베를링 장벽이 무너지고 브란덴부르그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었다.

결혼 식장의 분위기는 축복과 약속으로 가득차 있고 사랑과 온유---가 충만한데

오늘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혼을 골똘히 생각할까.
집안의 가장들이 대문을 열어놓고 태평고를 뜯을 때 아녀자에 불과하다고 얕본

그 아녀자들은 그동안 소리, 소문없이 야멸차게도 이혼을 수차례 생각한 정황들이

마침내 엿보인다.

아, 그나마도 지금까지 지나온 것은 수입이나 재산이 더 늘어난 이후에 황혼 이혼이라는

거사를 도모하려다가 이럭저럭 때를 놓치고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인류학자는 남녀가 사랑할 수 있는 지속기간이 원래 3-4년에 불과한데 이것은

동물이 새끼를 낳아서 길러내보내는 기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백년해로란 어차피 자연법을 거스른다는 말인가---.

인문학 언저리를 겨우 독학한 나같은 먹물이 이 거대한 명제에 무슨경륜이 있으랴.
다음호에 계속되는 이야기는 본질에 대한 무겁고 거창한 천착이 아니라 보고 들은

이혼 사례를 당사자들에게는 辛酸이었겠으나 보는이에게는 당도 높은 인공감미료로

포장하여 올릴까 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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