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배인 K의원이 초청한 점심 약속이 그분의 사정으로
갑자기 무산되자, 의원회관 그분 방에 있는 자원봉사 여자 대학원생이
나에게 좋은 곳을 꼭 보여드리겠다고 제안하였다.
원래 의사당 부지는 10만평쯤 되는데, 기본 구조물은
본청(돔 건물)과 의원회관과 도서관이 트라이 앵글을 이루고 있단다.
그리고 이 세 정점은 지하 통로랄까, 회랑이 잇고 있는데
붉은 카핏이 길게 깔려있고 글과 그림이 벽을 장식하여서
아주 볼 만 하며 이 좋은 기회에 못보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본청 경위의 꼼꼼한 체크와 미로 찾기 과정을 거쳐서
우리 두사람은 마침내 피라밋의 맨 밑바닥에 도달하였다.
과연 길은 장관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회랑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끝 부분까지만도
1킬로미터는 될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의 붉은 카핏 양쪽 위로는, 國父이신 이승만 박사의
크고 대범한 휘호와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건국의 아버지들의 붓글씨,
그림들과 사진들이 적절하게 벽면을 장식하며
부족한 관객을 목매어 고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곳은 이 나라 근세사의 빛나는 기록과 기억을
원없이 풀어보라는듯 길고 긴 통로에 넘실거리도록 채워주고 있었다.
" 미스 김"
내가 젊은 여자 치고는 너무 밋밋한 가슴위에 달린 의사당 출입용
패찰을 보며 자원봉사자를 불렀다.
"도대체 자원봉사로 얻는게 뭐요?"
피라밋 맨 밑 바닥에서 나의 시집간 딸이나 새로 얻은 며느리 보다도
더 어린 자원봉사 여학생에게 무슨 말을 붙여야 지성과 감성이
저 치렁치렁한 머리칼로 아름답게 단장된 머리통에서 함께 일렁이다가
마침내 젖가슴 쪽으로 휘돌아 감돌아 넌츨대며 흘러내릴까---.
아, 이건 요즈음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시선의 폭력은 아닌가---.
피라밋의 맨 밑바닥, 앞뒤 1킬로미터의 인적없는 회랑에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 전에 잠시 그런 한유한 생각도 해봤으나
마침내 "도대체 얻는게 뭐요?"
라는 재미 없지만 후유증도 염려할 바 없는
밋밋한 어법을 채택하고야 말았다.
처녀의 젖가슴도 밋밋하지 않은가 말이지---.
"정치학과 석사 논문 쓰는데는 더할나위 없는 기회이자 보상이지요.
그리고 사귀는 청년이 정치를 하겠다니까 내조 차원에서 미리 경험도
쌓을 겸 말이죠. 제가 이리 당찬 당순이예요---"
또박또박형 스타일의 말씨를 구사하는 그녀에 따르면 헌정사의
이면 자료들을 노트 북에 벌써 많이 넣어놔서 그것만으로도
논문 보다 어쩌면 재미있는 읽을거리 한 편은 넉넉히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지도 않으면서 말했다.
갑자기 그녀의 오뚝한 콧날이 날을 새운 칼날로 여겨졌다.
"이보게, 미스 김!
그런 글 속에는 레윈스키 같은 재미있는 사건들이 들어가야
구색이 갖추어질텐데 그런 자료들을 처녀가 얻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고 또 글로 쓰기는 더 힘들지 않을까요?"
"안 팔리면 어때요."
그녀는 내 말을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 것이 모두 아우러져야 진정한 헌정사가
된다는 말이오. 미국에서는 의원들이 의사당 내의 페이저들과
이상한 관계를 맺은 일들도 회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 나오지않소."
"저는 아직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요. 진실 찾기 게임에도 한계를
두고 싶답니다."
"칼 세이건의 콘택이란 영화는 보았오?"
"아, 그 공상과학 영화 말이죠. MIT 출신이 너무 미화되었더군요."
"딸과 아버지가 만난 마지막 공간은 공상과학이라고 해도 너무 가슴이
뜨겁지 않았소?"
"저도 아버지가 안계세요.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지만---.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죠. 전 사실 학부 땐 운동권이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MIT 부풀리기라면 <굿윌 헌팅>이란 영화가 더 심하였지.
거기에 이런 긴 복도, 긴 회랑이 나오잖소. 그네들은
Infinite Corridor라고, 무한대 복도라고나 할까 그렇게 부르더군.
우리 아들 놈이 거길 다녀서 한번 가봤지요.
이 의사당 지하 복도와 닮은 끝없는 회랑의 연결과 확장이 바로
미국의 저력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오."
"그 대학은 군산(軍産) 복합체의 핵심이죠. 아니 운동권 시각만은
아니구요. 사실이 그런건데 그게 인류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건 아니죠. 여길 보세요"
그녀가 헐렁하게 입은 캐주얼 셔츠의 왼쪽 어깨 쭉지 쪽을 활짝
잡아당겨 내렸다.
쇄골 근처가 울퉁불퉁 요철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 처녀이긴 하여도 너무나 작은 젖가슴이 훤하게 드러나
보여서 내가 시선을 돌렸다.
"데모하다가 방망이에 맞아서 쇄골이 부스러졌어요. 국립의료원에
구호대상자 증명을 떼어가서 겨우 무료 시술을 받았죠.
스텔스기에도 사용한다는 카본 소재로 성형을 했어요.
성형된 모양이 이렇게 좀 좋지않게 나왔어도 전 여름이면
나시를 입어요.
뼈가 으스러질듯 하는 젊은이들의 키스를 할 때면 정말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아서 이젠 포기했어요."
"소대 나시는 일본 말 아닌가?"
"스시처럼 국제어가 되었죠. 전 영어는 더 잘합니다.
돈이 없어서 미국은 못가고 필리핀 마닐라에서 어학연수도 했어요."
어느새 우리는 본청의 로톤도 쪽으로 나왔다.
돔으로 처리한 천개(天蓋) 쪽은 미국 국회의사당에는 못 미치고
MIT 돔 보다는 큰 규모였다.
그 아래쪽에 충청도가 지역구인 김희선 의원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개최한 저명인사들의 친일 행적 전시회가 보는이 없이 썰렁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리 두사람이 유일한 관객인 셈이었다.
아니 신문과 방송은 염두에 두었겠고 그래서 나도 어디선가 이미
보았는지 읽었는지 기억이 있었다.
하여간 민망스럽게도 대한민국 수립의 여러 어른들이
벌거벗고 그곳에서 강바람을 맞고 있었다.
"자네 저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친일 행적 가려내기에 대해서는 저희들도 논란이 많아요. 금이랄까ㅡ,
선을 어디에다 긋느냐. 그 시절의 너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그런데 중요한 점은 해방후의 그분들의 행적이죠. 시치미 떼기와
말도 안되는 강변을 들으면 그게 바로 코메디이자 트래지디였지요.
생각하면 슬퍼져요."
"나라 걱정하다가 MIT의 무한대 회랑으로 나와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옷벗고 벌 서는 모습을 보니
신화소는 다 갖추었네---."
자원봉사 여학생은 어쨌든 나에게 많은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했다.
대회의장 천정에 조명등이 있는데 그 숫자가 365개라는 것도
그녀의 설명 덕택에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만든 문양이 석굴암 본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명도 신선한 지식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초청으로 미국 국회 의사당을 네번씩이나 가 보았고
우리 국회의사당 구경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집은 어딘가?"
맨하탄에 사는 큰 아들 내외를 생각하며 내가 물었다.
"경기도에 전세로 살고 있죠"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누가 전세까지 물었나. 난 아이들을 강북에서 키웠어요."
조그맣게 시작한 말이 강북이란 데에 가서는 왠지 너무 크게 나왔다.
대리석 건물의 공명효과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정리하고
싶었다.
"전철타고 오셨다고 했죠. 학교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고물차이지만요."
"?"
"제 애인이 선생님 학과의 졸업반이죠. 제적도 당했다가 또 군대도
갔다오고 이제 겨우 졸업반인데, 그나마 다행이죠.
선생님 말씀을 많이 하더라구요. 미국가서 미국을 아우르자.
세상은 넓다. 멀리 시집가고 멀리 장가들자, 그런 우스개도
잘 하신다구요, 나이보다 젊어 보이시고 눈물도 많으시다구요---.
의원님과 선후배간이고 보좌관님과 친구라는걸 알고부터는 한번 꼭
모실려고 했어요. 당분간 저희 두사람은 동남아로 가서 몸으로 떼우며
청춘을 한번 걸어볼까 합니다."
갑자기 여학생의 몸에서 광채가 나는듯 눈이 부셨다.
그러나 오후의 햇살을 받고 길게 드리운 그림자도 나는 놓치지는 않았다.
그 장면은 언제이던가 햇살 속에 빛나는 피라밋과 그 긴 그림자를
동시에 보고 전율했던 광경과 비슷하였다.
강바람 탓인가 황사 탓인가 공연히 눈가에 눈물이 찔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