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찌 민속 박물관을 찾아가는 날 아침에는 호텔 근처에서 사진을 몇 컷하였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하면서도 시내 소개에 소홀한듯 싶다.
하긴 도시 전체가 오래된 목조건물로 되어있는데다가
모두 역사적 건물로 지정이 되어있어서 크게 새로 손을 대지도 못하고
그냥 우중충한 상태로 있는데다가 지진 다발 지역이어서 높은 건물을 올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시베리아에 지진대라니 놀랍다.
하긴 알혼 섬의 부르칸 바위 한가운데 동굴도 2년전에 내려앉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딸찌 민속촌의 입구가 꼭 우리 제주도의 대문과 빗장 모습을 닮았다.
무슨 민속적 근친성, 예컨데 집이 비었을때의 표지라던가
출입금지의 뜻을 나타내는 방식이 있지 않은가,
가이드에게 물어보았으나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지 못하였다.
딸찌 민속 마을은 이르쿠츠크에서 리스트비얀카까지는 차로 1시간20분 정도 바이칼스크 도로를
달려야 한다.
가는 길에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중간쯤에 있는 딸찌 민속박물관에서는 부랴트인들이 나무로 만든 게르, 핀란드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유리공장, 성곽과 교회 등을 통해 17세기 시베리아 땅에 정착한 러시아인들과 부랴트인들의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몽골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누빈 데에는 여기 보이는 "등자"의 힘이 컸다고 한다.
말을 탈때, 그리고 타고 달리면서 발을 끼어 넣는 청동이나 쇠로만든 받침대 같은 것이다.
그때까지 다른 기마족들은 맨발로 말을 탔는데 몽골인들은 등자를 이용하여
말의 좌우로 몸을 낮출 수 있었고
말을 타고서도 두손으로 자유롭게 활을 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소총과 기관총의 차이 수준일는지도 몰랐다.
이런 유산을 중앙아시아의 러시아인들이 챙겼다.
오늘날로 치면 방탄 조끼같은 갑옷이다.
중무장하여 몸이 무거운 중기병 보다 경기병, 혹은 경보병으로 몽골 군사들은 적을 압도하였다.
이 모든 지혜와 문명의 유산들은 시베리아 러시아로 이전 되었다.
학교와 교실에서도 러시아 짜아르의 황제권은 대단하였다.
서낭당, 세르게의 풍습
이 곳 전체가 바이칼 수력발전소를 만들면서 수몰된 곳의 가옥을 옮겨 놓은 곳이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지금도 집채를 따다가 다시 건축하는 사업이 성황이다.
새로 만드는 민속촌 둘레의 공터에 폐차들이 버려져있다.
무언가 우리나라 제주의 대문 풍습과 닮은듯한데, 그 기호 풀이에는 실패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우리나라 버스들이 마중을 나온 것으로 착각이 되었다.
자작나무 숲을 나와서 인근에 있는 수족관을 향하였다.
물론 바이칼 호의 심층을 재현해 놓은 시설이었다.
재작년에 개관이 되었다고 한다.
바이칼 상어의 모습
밖으로 나오니 이 동네 여고생들이 마실을 나온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쪽 길섶에는 거리의 예술가도 보인다.
모습 자체가 예술이었다.
아름다운 바이칼을 감상하기 위하여 리프트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겨울에는 물론 스키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푸틴도 자주 들린다고 한다.
세르게 띠가 겹겹으로 매어있다.
저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사람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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