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팩션 스토리

배를 타고

원평재 2011. 2. 13. 10:09

정동진 사진이 얼마전 인터넷에 떴는데
산위에 거대한 여객선이 올라가 있는 모양이 좀 섬뜩했다.
지난 겨울 태백산 등산 때 나도 그곳을 지나며 올려다 보았던
광경이었다.

배가 산으로 올라간 것이 어디 거기 뿐이랴.
상징적으로 보자면 정치판이고 경제판이고 심지어 교육의 장까지도
배가 산으로 올라가 있는듯한 오늘이다.

한편 문자 그대로 배가 산이나 뭍으로 올라온 모습은
도시 외곽의 카페 촌에서 슬금슬금 시작되더니 급기야 도심 한복판에도
거대한 배가 한 두척 좌초하고서 깃발을 만방에 펄럭이게 되었다.
하지만 난파선이 될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않았는데
다만 거함의 위엄일랑 아예 접었고 요염과 교태를 뽐내는 모습만
역력하였다.

그런 좌초된 배를 친구들과 얼마전에 타 보았다.
여객선 선상에는 남녀 항해사들이 부지런히 랍스터 쟁반을 들고
뛰고 있었고 선장은 돈계산에 여념이 없었다.
객실 밖으로는 출렁이는 물결도 만들어 놓았고 분수인지
고래의 분류인지 하늘 높이 뿜어 오르는 물보라도 있었다.

에피타이져를 맛보고 있는데,
바이얼린을 든 조금 피곤한 표정에 몸이 여윈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익숙하게 잭을 앙징스런 악기에다 꽂더니
곧 "라 팔로마"를 연주하였다.

"배를 타고 하바나를 떠날 때, 나의 마음 슬퍼 눈물이 흘렀네---"

중등학교 다닐 때 나는 이노래를 너무나 열심히 불렀다.
당시 이 땅의 젊은이치고 배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나라 밖으로 나가고 싶지않은 사람이 어디 하나라도 있었을까---.

내가 이 노래를 돼지 멱따는 소리로 하도 부르고 다니니까
고향 마을의 초등학교 동기들,
특히 여학생들은 킥킥 대면서도 즐겨 따라부르곤 했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는 大處로 나갔으나 외로움을 탈 때면
고향으로 돌아와서 옛 친구들을 만났던 것이다.

예쁜 명자(아니야 명숙이? 아, 그래 명옥이구나)를 나는 가장
좋아했는데,
그녀는 시골에 남아있던 내 친구이자 동기생의 마누라가 되었다.

이 친구는 고향마을에서 논밭이 제일 많은 시골 부자의
외동아들이었는데,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같은걸 맨날 하면서
술독에 빠져있더니 일찍 죽었다.

과부가 된 명자, 아니 명옥이는 시골 바닥이 거대 공단이 되면서
상전벽해가 되는 바람에 시집으로부터 유산 받은 땅을 팔아
돈께나 쥐고
음식점인지 카페인지를 열었다는데 나는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고
그곳에서 맛있게 조리된 이런 저런 뜨거운 소문만 전해들었다.
하긴 그나마 다 젊을 때 이야기였다.

명옥이가 남들보다 일찍 둔 아들 장가를 보낼 때는
서울 동기회장에게 연락을 하여서,
다들 내려오지 않으면 "죽인데이"하고 공갈을 쳐두었고
그게 약발이 먹혀서 모두 우루루 죽지않으려고 내려갔다.

아니 벌써 여러해 전이니 아이들 성가 시키는 모습이 신기한
탓도 있었겠다.

결혼식 후에 피로연이 벌어졌다.
시골 한량들의 걸진 가요와 춤사위가 한순배 술돌리기와 함께
끝나고
마침내 마이크는 뒷전에 몸을 숨긴 나에게도 찾아왔다.
잘하면 내 순서를 모면할 수도 있을듯한 분위기였는데 바로 옆의
곱게 늙은 할머니 동기가
"거 왜 배를 타고---카는거 오랫만에 한번 불러봐라"라고
강권하였다.
나는 다시한번 몸을 빼 보았다.

그때였다.
벌써 폐백도 마쳤는지 명옥이가 척 나서더니
"정 박사! 배를 타고 한번 해봐!"
이렇게 소릴 질렀다.

그 순간적 돌출행동과 배를 타고 한번 해보라는 내용이 담고 있는
이중의미가 시골 음식점의 낮은 처마를 벗어날 때 쯤에는
거대한 웃음으로 변해 있었으며
우리는 웃음의 꽃마차를 타고 저 낙동강변으로 시간 여행을 하였다.

이동 노래방 반주기에 "라 팔로마"가 없어서 나는 오랫만에 생음으로
돼지 멱따는 "배를 타고---"를 불렀다.

내가 짧은 회상에서 훌쩍 깨었을 때에는 피곤하고 가냘픈 몸매의
바이얼리니스트가 메들리 곡들을 모두 마치고 짐을 싸고 있었다.

아니 짐이래야 작은 바이얼린 케이스와 포터블 컴퓨터가 전부였다.
큰 규모의 반주 기계와 키 보드 그리고 스피커 등은 무대 위의
고정 장치물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식탁으로 불렀다.
"그게 전자 바이얼린이오?"
누가 물었다.
"네, 일렉트로닉 바이얼린이지요."
"크로스 오버 바이얼리니스트인 바네사 윌리엄스가 켜는 것과
같은 형식이요?"
내가 물었다.
피곤한 표정의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밤 무대의 "깽깽이스트"니까 좀 무식하구나---,
나는 속으로 웃었다.
"컴퓨터는 왜 갖고 다니나요?" 공학 박사 친구가 물었다.
직업은 못 속이나---.

"Elf505 컴퓨터 반주기라고 하지요. 소리 생산은 저 무대에 있는
기계가 하지만요. 여기에는 가나다 순으로 노래 타이틀과 코드,
심지어 악보까지 다 들어있죠. 저는 그 악보를 보며 켜죠.
예전에는 피아니스트하고 둘이서 했는데 이제는 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이렇게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탠덤, 즉 쌍두마차 체질이
아닌가봐요."

"탠덤이란 단어를 알다니 유식하구려."
내가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참견하였다.
내 말에는 응대를 않고 그녀는 말을 이엇다.

"요즈음은 대부분이 일렉트로닉 바이얼린을 쓰죠. 유진 박이나
바네사 메이도 이것과 같은 원리의 바이얼린이죠."
그녀가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아차! "바네사 메이" 이구나, "바네사 윌리엄스"가 다 뭐야---,
그러니 대답도 안했지.
나는 자괴의 혀를 찾다.

"헐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원동에 가면 악세사리가 모두 다 있죠---"
"요즈음은 강남의 예술의 전당 쪽에도 많지않소?"
"거긴 공연히 비싸기만 하고요---."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이 "알알알---"하고 이상하게 울어대었다.
"밤무대에서만 일하시오?"
누가 또 물었다.
"아뇨, 공중파 XBC의 단원이고 이건 부업이죠."
"싱글이오?"
싱겁게 누가 물었다.
"아, 아까 그 피아니스트하고 헤어진 뒤로는---."
그녀가 조금 당황해 하더니 거짓말은 안하기로 작정한듯 정답을 주었다.

"너무 정직하고 관대한 답변 아니오?" 내가 말했다.
"아뇨. 제가 출장 연주도 받으니까요. 젊잖은 미래의 고객들 같으시네요.
자녀 결혼식의 축가, 사내 파티, 가족 모임, 수연 같은걸 다 받지요"
"알알알---"하고 또 신호음이 울리자 그녀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황급히 나갔다.

"명함이라도 받아둘껄---"
누가 아쉬운듯 낮게 말했다.
"여기 자주 오시면 되쟎아요."
어느틈에 일등 항해사가 빈 잔에 와인을 채워주며 거들었다.
그러나 후에 우리들중 누구도 그 비싼 랍스터 집에 드나드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도심에 있는 거함은 아무래도 상륙정은 아니고,
그래 좌초된 한척의 배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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