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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처녀

원평재 2011. 2. 18. 02:09

학교 다닐 때 부터 씩씩한 여학생이었고, 지금은 무역회사에서 대리로 일하고
있는 제자로 부터 4월의 마지막 추위가 있던날 전화가 왔다.
"저 선생님 제자 미즈 오인데요---."
캠퍼스 커플로 시집을 가고도 미세스는 싫고 미즈로 낙착한 제자,
영어라서 "미즈"이지 우리 말로는 영원히 "큰 일 낼 오양"이란다.
내가 주례를 서 주었는데 물론 신랑 쪽도 제자여서 그 쪽의 청을
들어준 셈이었다.

전화의 내용은 일본인 여자 친구가 한국에 왔기에 스승님을 한번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어서 어서 오라고 했다.

닥아오는 5월에는 스승의 날이 있으니 미리 찾아뵙는 셈도 되고 또한
아름다운 모교의 교정도 일본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자는 학창시절 일본의 스꾸바 대학에 어학연수를 1년간 다녀와서
영어와 일어를 함께 잘하였는데, 여자이지만 좋은 곳에 취업이 되었다.

스꾸바 시절에 사귄 여학생이 이번에 방한한 친구인데 이 일본 여학생이
지금은 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연구실로 두사람이 찾아 왔는데 씩씩한 제자는 더 씩씩하고
또한 싹싹해졌고, 일본 여자 친구도 매우 명랑했으나 어딘가 얼굴에
수심 같은 것이 보이는듯 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왔으니---.

명함에 도모에라고 이름을 밝힌 일본어 선생은 일본 사람답지 않게
영어가 유창하였으며 그들이 갖는 발음상의 보편적 오류(common error)
도 완전히 극복하였다.

눈이 크고 쌍거플이 깊었고 콧날도 오뚝했으나 친 제자라고 할지라도
"너 공사비 얼마 들었니?"하고 농담은 못할 것이라고 속으로 싱거운
생각을 하다가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선생님 왜 웃으세요?" 제자의 날카로운 질문.
"젊은이들 만나니 눈이 부셔서 그렇다"
"에이, 농담할려고 하셨죠?"
"그래, 그래, 일본 사람치고는 너무 서구적이네, 인물이---."

눈치빠른 도모에도 사정을 좀 짐작했는지 자기는 오끼나와 출신으로
정통 일본인들과는 외모나 정서가 좀 다르다고 했다.
그곳 고향은 일본, 중국, 폴리네시아인들이 예로부터 드나든 국제적인
곳이고 주민들도 진취적이라고 했다.
그녀도 일찌기 위스컨신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녔고 오빠는 LA에서
직장에 다니고 동생은 호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위스컨신이면 트윈시티의 위스컨신 유니버시티에서?"
내가 물었더니 미국 사람과 제대로 사귈려고 아주 작은 도시로 들어가서
지냈다는데 듣기에 너무나 생소한 곳이었다.
"키가 참 크군요"
내가 사실에 입각한 칭찬을 했다.
"오끼나와 사람들이 일본 본토 사람들 보다 좀 더 크죠. 저는 170센티
미터 입니다."
그녀가 밝게 웃었는데 치열이 고르지는 못했다.
일본 사람이 틀림없구만---, 나의 일본 때리기 심사가 슬그머니
묻어났다.

"태국어는 잘 하나요." 내가 물었다.
"제가 언어에 소질이 좀 있나봐요. 간지 반년 지났는데 벌써 생활
언어는 할만해요."
"쉬워요? 말레이 인도네시아어 처럼---"
"아뇨, 참 어려워요. 우선 글자가 이상하잖아요."

맞어, 정말 그렇지.
나도 언젠가 방콕 공항에 내리자 마자 무슨 추상화 같은 그들의 글자에
맥이 탁 풀렸었지.
나는 이 때다 싶어서 그 때의 곤혹을 풀 몇가지 질문을 풀어놓아 보았다.

그녀의 설명은 이랬다. 태국어는 매우 특이해서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
의 중간쯤 되는것 같다.
글자도 그래서 산스크리트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것 같다.
히브리어 문자가 복잡한듯해도 빨랫줄에 걸어놓은 문자의 변용으로
보면 일단 정리가 되듯이 태국 문자도 하나의 축에 걸어놓고 보면
인식과 접근이 쉽다고 하였다.
마치 한글이 하나의 네모 속에 갇힌 구조로 보면 인식이 쉽듯이---.

"한국어를 좀 알아요?" 내가 물었다.
"스꾸바 대학 다닐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때 한국
유학생들을 좀 알게 되어서 스꼬시 배웠죠."
"무슨 말을 알아요?"
내가 이번에는 우리말로 물어 보았다.
"빨리 빨리"
그녀의 말에 우리 셋은 함께 웃었다.
"또?"
"사랑해요"
그녀가 큰 눈망울을 굴리면서 또박또박 말하는데 조금 어두운 기색이
스치는듯 하여서 기이한 아름다움을 보는이에게 뿌렸다.
"또?"
"존말로 사랑해요."
"하하하, 정말로 사랑해요."
나와 제자는 크게 웃었으나 그녀는 전혀 웃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어떤가?" 내가 제자에게 물었다.
"닷새간 머무는데 벌써 이틀은 까먹었구요, 또 가는날 빼면 이틀
남았는데 부산을 자꾸 가자고 해요."
제자가 빠른 말씨로 그녀를 외면한체 나에게 말했다.

"인사동 골목이 새로 잘 단장 되었는데 거기도 가보고, 남산골 양반촌도
찾아보면 좋을걸---. 짧은 일정에 부산은 어떻게?"
나도 제자의 말에 전염이 된듯 우리 말을 빠른 속도로 내뱉다시피
하였다.

"부산에는 또 다른 제 친구가 있거든요. 남자 친구예요."
부산이란 단어에 눈치를 챈듯 오끼나와 처녀가 영어로 끼어들었다.
"모레 결혼식을 해서 축하하려 갈려구요. 사실은 그 때문에 온 셍이기도
하구요. 서울에서 또 다른 친구가 함께 내려가기로 했구요."
"그럼 내일 내려가면 되겠네---. 예매는 함께 했겠지?"
그러자 제자 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또 우리말로 빨리 말했다.
"그런데 서울 있다는 도모에의 또 다른 한국 친구가 부산친구에게
연락을 해보더니 못 내려가겠다는거예요. 심각한 일이 있느냐고 양쪽에
모두 물어보아도 그런일 없다는데 부산 쪽에서는 못 오게 하네요.
그래서 내일 예술의 전당에 공연 보러 가자고 예약 신청을 부탁하는등,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데 이 아가씨는 꼭 내려가야한다는 것이고---."

그 때 제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제자가 "응, 응"하더니 오끼나와 처녀에게 내일 예술의 전당 공연을
예약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내에 있는 식당에서 내가 이른 저녁을 냈다.
갑자기 우리는 말수를 줄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오끼나와 처녀 도모에가 밝게 나에게 물었다.
"내년에 여기 편입할 수 없어요?"
"무얼 전공하게?"
"한국학과 IT를 복수전공하고 싶어요."
"외국인 특별 전형도 있고 하니 뜻이 있으면 길은 얼마든지 있지요.
우리는 또 외국인을 위한 국제학사도 준공 단계이고---. 영어로 강의
하는 과목도 많고, 또 도모에가 우리말도 빨리 빨리 배우면 되고---.
인터네셔널 센터에 내가 부탁할게요."

나의 설명에 그녀의 표정이 아주 밝아졌다.
태국에서의 계약이 내년까지인데 그 전에 우리가 태국에 오면 꼭 찾아
달라고 하였다.

봄이 일찍 오는가 하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얇게 입은 그녀의
입성이 초췌해 보였다.
악수하고 헤어지며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갈때 그녀가 쇼울더 백과
왼손으로 얇은 옷을 터뜨릴듯 솟은 히프를 살짝 가리고 걸어갔다.
젊은 현대 일본 여자들의 행동이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옛적에 제주 앞바다 이어도를 벗어난 우리 어선이 오끼나와로 흘러가서
저렇게 착한 아이를 거기 뿌렸나---.
그리고 "달과 육펜스"에 나오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격세유전으로
고향을 그리고 있나.

귀여운 왼손과 가죽 쇼울더 백 속에 그녀의 마음이 담긴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