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 걸리는 동네 산길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짐작컨데 이 좋은 계절에 다들 더욱 좋은 곳으로 나들이 가지
않았을까---.
그래도 우리 일행은 다섯이나 되었으니 고독이나 우수에도 대적할만
하여서 다행이었다.
두시간 "대장정"이 끝나고 보리밥 집에서 밥을 기다리는데 동기
한 사람이 또다른 동기에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가르쳐준 부산 주소지로 전화를 했더니 50대 초반쯤의
카랑카랑한 남자 목소리가 나와서 전화를 얼른 끊었지. 처음에는 이사를
갔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차츰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니 혹시 그 여자가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하여서 연하의 남자와 사는건 아닐까하는
좀 썰렁한 스토리로 연결이 되네---."
40년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다닐때 아주 순수한 연애 감정으로 같은 학년의 어떤
여학생을 만나다가 대학 들어가며 자신은 서울로 가고 여학생은
지방의 여자대학에 남게된 사정으로 "자연스레" 헤어진 그 여학생이
최근 문득 그리고 부쩍 만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만나봐야 영감과 할마이의 모양새로, 아름답고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영상을 버릴 우려를 딛고서, 그래도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마침 고등학교 동년배끼리 결혼을 한 친구의 부인으로부터 자료를
얻을 기회도 생겼던 모양이다.
아니 사실은 그 친구가 자료를 자기 부인으로 부터 슬쩍 빼내준
사정이었다.
아무래도 마누라에게 그런 설명을 하기가 좀 곤궁스럽더라는 것이다.
지난번 산행때에 모두 이루어진 사연이었다.
나는 그 때 결석을 한 몸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나서 음악감상실도 가고 빵집도 가고---,
손목은 몰라도 키스는 뺨에만 한번 허락 되었던---,
그 과정에서 동기생 친구가 라이벌이 되어 못하는 싸움도 해보고
마침내 "용기있는 자가 미녀를 챙겼다던가---"
서양 속담도 틀리지 않더란다.
라이벌이었던 친구는 연전에 죽었다.
우리도 동기여서 그 소식은 안다.
오늘 그 과정을 처음 들은 나는 뻔한 논리로 다시한번 말렸다.
"지금 만나면 서로 실망이 크지 않을까?! 절대 만나지 말게---."
"아니야,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났고 정말 늙은
사람으로 지난 인생도 반추해 보고 싶어서 그러네. 내가 감정상의
홍역이랄까 예방주사 맞은 사건도 있고해서 이야기해 줄테니까 그런
중에도 만나고 싶어하는 내 심정을 한번 짐작하고 이해 해보게."
그가 풀어놓은 예방주사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다.
지금부터 한 20년 전 쯤, 그러니까 40대 중반에 대학 다닐때 사귀던
여자로 부터 전화가 왔단다.
유명인사였던 내 친구의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부음 난"에 조금
상세하게 보도가 되었고 연락처도 소개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와 연결이 된 셈인데 알고보니 사는 곳도 강남의
매우 가까운 곳이었다.
내 친구도 버젓한 곳에 다닐때였고 여인의 남편도 알만한데에 다니는
처지였다.
물론 두사람은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서너시간 과거를 반추하고 헤어질 때쯤 그녀가
"우리 한달에 한번씩 만나면 어떨까?" 그런 제안을 하더라는 것이다.
내 친구가 단연코 "노"라고 하였고 지금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단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무릅쓰고도 고등학교 때의 그녀는 만나고 싶단다.
"그녀의 제안을 물리친 것이 후회---, 아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때는
없었어?"
누가 물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해보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 그녀가
무얼 어쩌자는 생각이 아닐 수도 있었겠는데---."
그래, 오만했던 죄, 그런가 하면 또 방만했던 죄, 우리가 산다는게
그저 죄값을 치루는건지도 몰라---.
그러나 내가 이런 생각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이야기가 무르익자 얼마전에 고위공직을 그만둔 친구가 말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명륜동에서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집의 질녀가 근처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으로 같은 집, 그러니까
부자인 고모부 집에 기식을 하고 있었다.
예쁘고 명랑한 처녀였는데에도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1년여를 한 집에서
지냈는데도 말한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계절이 바뀔때마다 얼핏설핏 그녀의 영상은 뇌리를 스치는 대상
이었다.
그가 고위 공직 발령을 받고나서 얼마 되지않아 연락이 왔다.
전화로 그녀가 자기 설명을 다하기 전에 이미 그는 금방 40년전의 그녀
인줄로 감이 와닿았고, 과천으로 찾아온 그녀와 밖에서 저녁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동갑이니 물론 손주도 있는 보통의 할머니였다.
다만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좋은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를
하여 이제는 남편은 사업운이 안따르는 모양으로 알고 업체를 그녀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역시 형편이 좋지않아서 집에서 내려오던 秋史의
글과 그림 두폭 짜리를 처분코자 하니 주선을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얼마를 호가하던가?" 내가 물었다.
"한 1억을 받았으면 하는데 내가 살 형편은 전혀 아니고 어디 알선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인연은 그걸로 끝났으나 아직도 나쁜 감정은 아니었다.
아니, 아니 추사의 그림을 감정하여 진본임이 증명되도록 도움도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럴때 정말 돈이라도 많으면 직접 사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늙은 베르테르에게 젊은 날의 샤롯데가 찾아왔는데---.
내 마음도 한껏 너그러워졌다.
하긴 40년전 청춘시절이라면 누군들 아름다운 추억이 없겠는가.
그때라면 바로 폴 앵커와 니일 세다카의 노래가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폴 모리아 악단이 우리의 폐부를 후비던 때가 아닌가.
"사랑의 기쁨"의 첫 소절을 프랑스어로 한번 뽑아서 "쁠래지다무르
네두레 굼 모망, 그 다음은 시간 없어서 다음에 할께" 어쩌구 하던
청춘 시절이 아닌가.
쉔 이스트 디 유겐트,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나도---"
나도 그럴려다가 얼른 그만두었다.
둘러보니 다른 친구들도 모두 "나도---"할려는 기세였는데 보리밥은
이미 다 없어졌다.
바깥으로 나오니 봄날은 가고 있었다.
"야~~ 오늘 우리 모두 40년은 젊어졌네"
누군가가 말하자 다들 "정말이야!"하고 감탄하였다.
아까 모두들 "나도---"할 기세라고 내가 표정 파악한 것이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