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이의 날 (소설집)

세종대왕 밀릉

원평재 2011. 2. 19. 04:26

 

"태 정 태 세 문 단 세 예 성 연 중 인 명 선 광 인 효 현 숙 경 영 정 순

 헌 철 고 순"

 

사회자는 조선시대 왕들의 시호를 열 번도 더 반복하더니,

"7대 왕은?"

이렇게 물었다.

털털거리는 고물 전세 버스의 맨 앞에 앉은 반지르르하게 생긴 중년이

얼른 "연산군!"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네. 잘 맞추셨습니다. 상금으로 오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박수!"

박수가 터져나왔다.

 

오랜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본부 대기 대사로 와 있는 나를

불러낸 사람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동기생, 박 교수였다.

내 나이에 본부 대기 대사란 이제 곧 공직을 떠나야한다는 예비 신호

발령이었고

마침내 퇴임을 하면 다시 한 2년간 "외교 안보 연구원"에서 글을 읽고

쓸  자유로운 자리는 주어진다.

뿐만아니라 어지간하면 그 동안의 경력 기간 동안에 쌓은 지식과

지혜로 대학강단에 나가도 존중 받는다.

전밈 발령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이도 있고하여 겸임이나, 

강의 교수, 연구 교수, 기금 교수 등의 타이틀로 명예롭게 강의 자리도 

얻을 수 있는만큼 내 성정에는 꼭 들어맞는 인생 정리의 수순이었다.

 

박 교수와는 고향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절친한 선의의 경쟁자

관계였는데,

나는 정치학과를 나와서 외무 고시 끝에 여러나라의 대사로 밥 먹고

국위선양하느라 평생을 보냈고,

그는 국문학과를 나와서 박사학위까지 고생을 하더니 서울의 어느 큰

사립대학교 교수로 평생을 지내고 있다.

그가 모교인 국립대학으로 가지 못함을 때로 애통, 절통해 하지만

나는 배부르고 허튼 소리 말라고 면박을 주는데,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UN대사 하면서 주미대사 못하는 한을 갖인 우리 쪽 사정과 비교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자리는 꿈도 꾸지 않았고 소국과 변방만 다닌 사람이다.

 

현대 문학을 전공한 그는 가끔 문학 평론에도 손을 대더니 이제

나이가 들자 직접 소설을 쓴다고 하더니 "팩션"인가 무언가 하는

단편 작품집을 내고는 출판 기념회를 연다고 요란을 피워서 작년

어느 때던가 나도 잠시 참석한 바는 있었다.

 

"패션 쇼우"도 아니고 "팩션"은 무엇이며 이 바쁜 세상에 "출판 기념회"

는 또 무슨 촌스러운 짓이냐고 비아냥대며 참석했던 그 날 행사에서

문학 장르의 재편과 변화와 위기 등등을 나는 놀란 가슴으로 새로

터득하게 되었다.

그때 놀란 이야기는 "팩션 출판 기념회"라는 글로 어디 이름이 좀 있는

문학 잡지에 발표를 한 바도 있다.

엉터리 글을 써서 박 교수에게 보여 주었더니 재미있다고 그가 주선을

하여 어떤 문예지에 글이 올라간 것이다.

 

그 글에서 나는 "팩션 출판 기념회"를 무슨 "패션 쇼우"하는 행사로

잘못 알았다는 것과 이제는 팩션이 팩트(fact), 즉 사실과

픽션(fiction), 즉 허구가 결합된 글쓰기의 새로운 한 장르임을

깨달았다고 먼저 실토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이 횡행하는 이 시대, 그로 인한 현장성, 즉시성,

속효성이 담보되는 이 시대,

전통적인 문학이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새로운 지평이 바로 사실과

허구가 비빔밥이 된 "팩션"이라는 것을 내가 늦게나마 깨닫고 경탄

했다는 내용을 "뻥"과 재미를 양념으로 쳐서 담아냈던 것이다.

 

글의 끝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팩션"을 우리 말로는

"사설(事說)", 즉 사실과 소설이라는 어휘가 결합된 신조어로 표현

하면 어떨까하는 자칭 탁견(?)도 제안했으나 별로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그는 내 글을 높이 평가하면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보듯이

가상의 주인공이 실재의 케네디 대통령과 직접 악수도하고 축하연에

함께 참석하는 등의 상황 설정과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그런 영상을

꾸민 것이 바로 팩션의 본 모습이자 대표적 예라고 하며 이제 활자

매체와 영상 매체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추천사도

달았다.

그의 창작집은 CD로 구워진 소위 "e-book"이었는데 노래와 영상이

들어가 있는 획기적 매체였다.

 

그는 평론가답게 팩션이 역사소설과는 엄연히 다른 장르라는 것도

꼼꼼한 논리와 해설로 명쾌하게 가름하였다.

그러나 현실계에서 바쁘게 평생을 지낸 내게 문학의 세계는 그것으로

그만일 뿐이었다.

내 캐리어를 높이 본 그 문예지에서 수필 같은 것으로 등단 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완곡히 거절하고도 한 해 이상이 흘러갔는데 어느날

박 교수가 역사 탐방이나 하자고 갑자기 연락을 하였다.

 

"이 대사, 자네 세종대황의 숨겨진 왕릉에 대해 들어봤나?"

"뜬금없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모르는구나. 그런게 있대. 만원 한장이면 하루 두끼 식사도 주고

세종대왕 영릉과 인근에 있는그 감추어진 비밀의 능도 보여주고

그런다네.

나랑 한번 그 관광버스 타볼까?"

"박 교수, 그거 공인된 학술 대회같으면 모를까 관광버스 수준이라면

냄새가 좀 풍기는데---.

난 아직도 공무원 신분이야. 잘못하면 망신한다니까. 자네도 교수

신분인데, 사학에 몸담고 있으니까 나하고는 또 좀 다를지 모르겠네

---."

 

내가 은근히 몸을 빼도 박 교수는 막무가내였으며 나도 다시 생각해

보니 크게 낭패날 일이야 없을듯 하여 주말의 이상한, 막말로 요상한 

관광버스 여행에 함께 오르게 하였다.

참가비 만원은 이미 박 교수가 선불을 했다기에 이래저래 그의 강요를

느끼며 주말의 알토란같은 새벽 시간을 헐어서 약속된 장소의 관광

버스에 일단 오른 것이다.

이제 하루 일진이 같게 된 버스 안의 일행들을 살피니 모두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는데 다만 입성들은 모두 괜찮았다.

아무래도 성공한 자식들 덕분에 공양을 받는 팔자좋은 노인들 같았다.

나와 박 교수는 상대적으로 최연소자였다.

 

"자네 이 효도관광 비슷한 데에 어떻게 알고 참여했어?"

내가 물었다.

"응, 대학원 학생 하나 말이 자기 할아버지가 어디서 들은 거라고---,

세종대왕의 비밀 능, 그러니까 '세종밀릉'이 어딘가 존재하는데

그 탐방단이 떠난다는 이야기가 노인 대학 쪽에서 돈다고 내게

헐레벌떡 알려온거야. 국가에서도 지원하기에 이리 싸게 가는거

겠지."

 

"그렇게 엄청난 역사 탐방이 어째 축늘어진 노인들의 경로 잔치처럼

되었을까---.

하여간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속담 잊지

마시게."

 

고물 관광버스는 매연을 검고 길게 꽁무니로 내뿜더니 여주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버스가 중부 고속을 올라타서 조금 지나니까 막걸리와 간식이

나오고 행사 진행을 책임지고 있다는 "노인 복지 선양회"의

회장이라는 풍채 좋은 사람이 직접 술과 안주를 들고 돌아다니며

권하였다.

나와 박교수도 한잔씩 얼떨결에 예의로 받아마셨다.

술이 한순배 돌고나니 분위기는 아연 활기를 띄어서 노인들 특유의

자식 자랑이 두둥실 버스 속을 한바퀴 돌았다.

자식 자랑으로 몸들이 녹으니까 사회자는 눈치를 보아가며 따로

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짝을 맞추어서 한 쌍씩 좌석 재배치를

하였다.

 

"이거 순 묻지마 관광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게 뭔데?"

그가 물었다.

"이 양반이 책상물림이긴 해도 그 말도 여태 몰라? 그러고도 무슨

소설인지 팩션인지 쓴다고?"

"들은 풍월이야 있지만 이러긴 처음이라는거지."

"난들 언제 해봤을까? 척하면 삼척이고 툭하면 옆집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아무튼 이게 말로만 듣던 묻지마 관광, 효도 관광이구만. 훌륭한

국문학 교수를 친구로 둔 덕분에 좋은 경험하네.

빙고! 이 참에 오늘 우리 팔자나 한번 고쳐볼까? 히히히."

아침 빈 속의 술낌에 내가 히히히하고 웃었다.

 

"회장님."

내가 큰 소리로 자칭 노인 선양회 회장을 불러세웠다.

"우리는 할머니, 아니 언니 파트너 필요없으니 신경쓰지 마시오."

"아이구, 그러면 동성연애하시는 줄 알텐데요, 히히히."

이 빤드레하고 눈치 빠른 녀석이 내 웃음 소리를 먼저 귓전으로

나마들었는지 역시 히히히하고 웃었다.

 

"뭐라 생각해도 좋으니 우린 파트너 필요없고 둘이서 그저 딱 붙어

갈거요."

"파티너가 있어야 대가리 수, 아니 머리 수가 맞는데---, 하여간 그럼

두분은 꼭 붙어가십시오. 남자 파티너끼리 꼭, 히히히"

"아이구 이게 무슨 파티라고 파트너도 아니고 파티너네---."

내가 혀를 찾다.

"이 대사도 참 보통 아니네. 언니 파트너라는 말도 척 갖다 붙이고.

하여간 대사라는 사람들의 말 재주는 족탈불급이야.

요즈음 할머니들이 성형도 하고 화장도 짙어서 할가씨라고 새로 생긴

말도 있더라만---."

 

"할가씨?"

"할머니, 아가씨 말이야. 히히히."

그도 부시럭대며 히히히 웃었다.

"아이구, 위대한 할저씨---."

나는 웃지않고 궁시렁대었다.

 

차가 중부 고속도로, 산업도로 등등을 엇바꿔가며 달리자 사회자는

조선시대 역대 왕의 순서를 두고 빨리 맞추기 퀴즈 시합을 시작한

것이었다.

파티너인지 파트너인지 끼리끼리 의논하여 답하라는 주문이 추상

같았다.

저희들 끼리 미리 한패가 되어서 짜고치는 고 스톱 같은 패거리끼리는

퀴즈를 맞출 때마다 현금을 주었고, 만원내고 탄 사람들에게는

우산을 주었는데 슬쩍 보니 무슨 보훈 단체에서 노인 복지 재단에

기증한 물품이었다.

 

왕조 실록 퀴즈가 좀 시들해지자 이제 사회자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상식 퀴즈 순서로 들어갔다.

"여러 어르신들, 패션 쑈라는 말을 아시지요? 이건 패션 쑈하고 관련이

있는 역사 퀴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맨처음 미니 스커트를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기럴! 윤복희를 두고 하는말이네."

박 교수가 좀 알딸딸한 분위기를 풍기며 혼자 중얼거렸더니 우리 쪽에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있던 사회자가 정답을 금방 알아들었다.

교수님께서도 우산 한개를 얻어걸렸고 막걸리 한 사발도 축하주로

마셔야 했다.

 

나도 친구 잘 둔 덕분으로 얼떨결에 옆에서 한 사발을 또 들이켰는데

아무래도 소주를 탔는지 매우 독해서 얼떨떨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소주가 한 커플에 한 병씩 돌았다.

부족한 좌석에는 추가로 또 한병이 배당되었다.

모두 알콜 도수를 낮추어 최근에 출시된 "나즈미"라는 이름의 소주

였다.

판촉 상품으로 무료 기증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도수가 낮았지만 술은 술이었고 "지 애비도 몰라 본다"는 새벽 해장술

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르신들 중에서 한번 퀴즈 문제를 내 보시지요.

아무도 못맞치면 그 출제자에게도 역시 상품이 있습니다."

"저요!"

어떤 할머니 한분이 손을 들었다.

이 사람도 짜고치는 고스톱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무슨 예전에 돌던 우스게 넌센스 퀴즈를 내 놓았는데 아무도

맞치지 못하자 돈을 2만원 타가지고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옆에 앉아있던 박 교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닌가.

"여러부운~~~. 우리나라에 최초로 팩션을 소개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깜짝 놀랄 사이도 없는데, 이번에는 답이 터져나왔다.

"아, 패션이라면 윤복희라고 했잖아요!"

앞에 있던 어떤 귀여운 할머니가 팩션을 패션으로 알아듣고 소리를 친

것이다.

"아니요. 앙드레 김, 김봉남 오빠요."

또 다른 화장이 좀 징그럽게 심한 할머니의 소리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짝을 맞춘 두 할아버지들이 자기 짝이 맞다고 또

소릴 질렀다.

 

"정답은 누구지요?"

놀란 사회자가 어서 답을 내 놓으라고 박 교수를 채근하였다.

"둘다 틀렸는데---, 정답은 나도 모르겠소."

"그럼 벌금을 내셔야죠."

사회자가 소리를 질렀으나 벌금은 용서되었고 상품이 두 할머니에게

고루 돌아갔다.

"자네 술 취했나, 이른 아침 빈 속이라서?"

"왜?  이런데서 그런걸 내 놓는다고? 그래 취했는지도 모르겠네. 우리

나라 문학계도 서양물에 다 취했고---."

"왜?"

내가 물었다.

 

"팩션이라는 장르는 내가 '문학 산책'이라는 대학 교양 단행본을 몇

사람과 어울려 만들다가 우연히 알게된 어떤 미국 문학사 원전에서

얻은 지식이거든.

태라 이글턴이던가 하는 미국의 평론가가 지어낸 말이었어.

팩트 플러스 픽션이라는 데에서 만들었다고 하면서 본인도 적합성

여부에는 물음표를 달았더라고---.

국문학 하면서 사실 영문학 원서를 직접 읽거나 보는건 극히 제한적

이었는데 하여간 그런 재미있는 내용을 내가 우연히 발견한거야.

그래서 내가 몇군데 문학지에도 그런걸 발표도 하고 또 내친 김에

팩션 창작집이라는 이름의 책도 알다시피 작년에 냈잖아.

마침 자네 독후감도 나와서 문예지에 싣고 또 내가 토까지 달았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팩션이라고 하면 저기 국립대학

에서 '서양 비교 문학'을 강의하는 A교수로 치기 시작하거든.

그 친구가 '영화 속의 문학 세계'인가 하는 시리즈를 일간 신문에 연재

하면서 팩션 기법이 어쩌구 저쩌구 하더라구.

언제인가 이 A라는 작자가 한국에 최초로 '비트 문학'을 들고 온 사람은

 '영년 구멍과 뱀대가리'를 쓴 박승훈 교수라고 정확한 고증을 하기에

이제 팩션하면 내 차례를 찾아주겠거니 했는데 그건 자기 전리품으로

굳히기 작전을 펴더라고---.

여기에 일간지들도 국립대학 교수에 서양 문화사를 전공했다고 이

A라는 녀석을 띄우기 시작하고 된장인 나는 슬그머니 깔아뭉게는거야.

이러고도 지식인들이 무슨 중국의 동북공정 욕하게 생겼나!"

 

내 친구 박 교수가 엉뚱하게 동북공정까지 들먹이며 이렇게 흥분하는

것을 이전에는 본적이 없어서 나는 저으기 놀랬다.

빈 속에 들어간 술과 "패션 쑈"라는 자극적 키 워드가 그의 뇌관을

건드리긴 했겠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자리에서 그런 엉뚱한 한풀이를

하다니.

하긴 기회가 좋았나, 묻지마 관광 버스가 아닌가.

무어라 주접을 떨어도 묻지마, 묻지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귀.

 

"어이, 그런데 박 교수! 팩션이란 말이 확실하긴 해? 작년에 자네가

출판기념회 할 때부터의 생각인데, 팩션이란 말은 원래 파당이나

파벌, 족벌을 나타내는 말이라서 우리같이 외교적으로 미사려구나

찾고 국제적으로 우아하게 노는 감각으로는 솔직히 좋게 들리는 말은

아니네.

그런데 미국 문단에서 하필이면 그런 신조어를 만들었을까?"

 

"난 그런 고차원적인 의미 풀이 같은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우리나라

에서 제일 먼저 쓴건 나야 나. 내 팩션 소설집도 그렇게해서 낸건

자네도 잘 알잖아."

"내가 알면 뭐하나. 서양문학과 국립대학 권위만 소중한 줄로 아는

신문쟁이들이 문제지. 진작 언론 플레이도 좀 하시지, 이 양반아."

 

"4대 일간지에도 크게 났지. 경제지에도 두군데던가 박스로 났고---.

출판사에서도 손을 좀 썼지.

그런데 요즈음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말이야.

그건 그렇고 에이, 이 대사 말을 듣고보니 팩션이란 말 뜻이 아주

숭악한 것이라면 더 좋겠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뽀라고 욕하진 말게, 제기럴!"

 

"좋아, 좋아. 그럼 내가 맨해튼에서 디자이너로 있는 그레이스 여사

에게 한번 물어볼까?

그녀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자네가 질투의 쌍심지를 돋우지만---."

 

그레이스는 고향의 초등학교 두어해 후배였는데 맹렬여성이었다.

어쩌다 그 시골 깡촌에서 그런 대단한 여성이 나왔는지 동네 앞산의

야산 정기라도 타고난건 틀림없었다.

미군 기지촌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악성 소문까지 돌던 그녀는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어찌어찌 마침내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았다.

소문으로는 미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말도 돌았으나

그건 물론 잘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문이었다.

 

오래 전, 내가 뉴욕에서 영사로 잠시 근무할 때 알아본 바로는

맨해튼의 패션 애비뉴라고 불리는 6번가에서 꽤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쌓고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패션 회사는 재미있게도 브라이언트 파크 옆,

그레이스 빌딩 바로 옆에 있었다.

여성의 긴 치마폭처럼 생긴 인상적인 그레이스 빌딩이 마침

그옆에서 회사를 연 그녀의 이름과 같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녀도 할머니 소리를 듣는 동양계 디자이너의

대모로서 중국계의 "안나 수이(西)"와 " "베라 왕" 등에게 큰 영향을 준

선구자였다.

 

그녀의 딸이 또 그 곳 어떤 미술관에서 한 이름하는 큐레이터로

있으니까 어쨌든 문학 관련의 이야기도 한번 알아볼 길은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맞네. 시장통 떡쟁이 딸, 정경순이---, 그레이스 정 말이지.

그 쪽으로는 자네가 줄이 좀 닿지 아마.

어릴 적에는 그녀가 나를 더 좋아했는데 이제는 내가 영어도

그렇고---.

자네하고 소문이 돔 있더군. 조심하게, 공직자가---."

박 교수도 대뜸 동의하였지만 한 자락을 또 깔았다.

외국에 나가면 다 연락이 닿는줄 오해하는 우물안 개구리,

박 교수가 평소 떡쟁이 딸 이야기만 나오면 공연히 질시의

시선을 보내더니 선뜻 내 제안에 동의하는걸 보면 팩션과

관련한 그의 마음 상태는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묻지마 관광 버스는 이제 본색이 들어나고 있었다.

여주 신륵사와 세종대왕능을 단숨에 달려간 일행은 일단 현지

에서 점심과 또 술 대접을 받았다.

한 참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일단의 청년들이 나타나더니

할머니, 아니 할가씨들의 손을 잡고 부비며 "실키 로션"을 사서

발라보라고 했다.

선양회 회장도 "시루끼 로숀 구리무"가 특허품이라고 하며 짝궁인

오빠들이 선물을 하라고 부추겼다.

 

처음에는 일행들의 구매력이 시원치 않았는데 짝꿍 전술이 슬슬

먹혀들어서 일행의 반인 할아버지들이 모두 한통씩 샀다.

이게 무슨 강매 짓거리냐고 박교수가 항의 비슷하게 하다가 오히려

일행으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자리를 마련한 분들이 권하는 것을 사지 않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는 마침내 비싼 보약을 파는 터전이 되었고 나아가서는

없어도 좋을 싸구려 물건들이 고급이라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분위기 덕분인지 우리 두사람에게는 그런 바가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세종대왕 밀릉, 그러니까 비밀의 능이라는 곳을

잠시 들렀다.

밀릉은 빈말이고 아마도 신도시로 개발되는 곳에 있는 어떤 씨족의

선산이 대규모 이장을 하는 낌새였다.

이 씨족 책임자들과도 돈이나 공짜 상품이 오갔을 것이다.

 

"노인 선양회" 회장의 설명은 이렇다.

역사적 고증에 따르면 이 곳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반포하실

때에 명나라의 반대가 하도 극심하여서 어쩌면 생전에 비극적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사후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상용 가묘

상태로 유지되어 오던 곳인데

최근에 대왕께서 이토록 현실적으로 곤고했음을 알게 되면서 숭모의 

정신이 더욱 불타올라 이렇게 새로 중수, 단장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설명이었으나 사실로 믿기에는 의문이 많았는데 그걸

따지는 사함은 하나도 없었다.

나와 박교수는 약이고 뭐고 하나도 사지 않으면서 의혹의 말과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나이많은 일행으로부터 핀잔과 꾸지람을

크게 듣고는 입을 봉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황혼이 되면서 일행은 이천에서 좀 시시한 온천장에 들어

가서 때까지 벗기는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또 나왔다.

이제는 좀 허술하게 나온 한정식을 얼른 먹고 박 교수와 나는

벌을 서는 아이들처럼 남들 보다 일찍 밖으로 나와서 휴대폰을

열고 미국의 그레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차를 극복하고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새벽인 모양이었다.

 

"정 여사, 거두절미하고 우리 고향 스타에게 하나 물어봅시다.

큐레이터인 따님에게 문의해서 알려주어도 좋겟고---.

그레이스 여사! 팩션이라는 어휘에 대해서 아시거나 들은바가

있는지,

잘 모르시면 따님에게 물어서라도 그런 말이 쓰이는 경우를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다는 끝말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그레이스의 총알같은 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오우 마이 갓! 그걸 어떻게 벌써 아셨어요? 역시 이 대사님은

국제통이셔요.

여름 컬렉션 소문이 벌써 나갔네요. 이번에 여기에서는 뉴욕 서머

컬렉션을 여러 패션 회사에서 함께 모아서 벌이기로 했잖아요.

유럽과 도꾜, 이제는 중국 북경까지 추격이 심해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뚱뚱이 안나 수이, 깔끔이 베라 왕, 혼자 된 다나 캐어런

등등이 따로 컬렉션 발표를 하지 말고 함께 한번 열어보자,

이렇게 말이 오가다가 합동 이벤트를 벌이게 되었지요.

최종 타이틀은 '팩션 쇼우'로 결정났어요. 팩션이란 뜻 아시죠?

찢어발기는 것, 파벌, 족벌, 편먹기로 자기 영역 고수---.

그게 팩션이잖아요. 그걸 인정하면서도 한번 모아서 종합 쇼우를 하자.

그러니까 '팩션 패션 쇼우'인 셈이죠.

일종의 게릴라 패션 쇼우를 한데 모은거라고 컨셉을 갖여도

좋아요.

팩션 쇼우!

섹시한 타이틀이죠? 이 대사님도 박 교수님이랑 한번 왔다가세요.

게릴라 스트리트 쇼우의 진수를 모두 모아서 맞볼 수 있도록 지금

심혈을 기우리고 있거든요."

 

디자이너 그레이스의 총알같은 이야기를 다 옮길 재간은 없다.

팩션의 선구자를 자처하며 목말라하는 내 친구 박 교수에게 무어라

설명을 해야할지도 당장은 마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팩션"이라는 말이 문학 장르의 한 축으로 고고하게만

남아나지 않고

닳아지는 말,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다음날 맑은 정신에

전달만 해도 이 국문학자의 얼굴에서 미소를 발견하기는 쉬울듯도

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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