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롱 아일랜드로 달려오자 내친김에 카 페리를 타고 커네티컷으로 향할 마음이 생겼다.
작은 페리 항에는 겨울나무가 막 연두색으로 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고 어디메서인가 파도에
실려와 널부러진 죽은 나무들도 즐비하였다.
다행히도 죽은 나무들은 공해에 찌든 더러운 잔해가 아니라 백옥같이 곱게 스러져가는 형해였다.
문득 금산에서 나무를 키우던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은 코마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다.
나무를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있으랴만 "나무 사랑 내 친구"의 경우는 매우 독특하였다.
내무부 산하의 연수원에서 고위직으로 있다가 정년퇴임이 되자 공단이 들어선 고향의 땅을 팔아서
금산 언저리에 땅과 산을 샀다.
그는 원래 농삿군의 아들로 태어나서 농대를 졸업하고는 다시 농토로 돌아가서 활동을 하였다.
그의 활동은 땅을 파는 일 말고 농민회를 이끄는 일이 더 컸다.
"가톨릭 농민회(가농)"를 이끌며 공업 일변도로 나가던 이땅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단식은 기본이었고 투쟁의 방식은 다양, 격렬하였으나 나는 일부만 들으면서 촌탁도 할 수가 없었다.
의식적이지는 않았지만 그와 거리를 둔 적도 있었던 것같다.
물론 가는 길이 달랐으니 동행하지 않았다고 꼭 비겁한건 아니었겠지만.
그는 나중에 정부와 타협하여 높은 직책으로 연수원 교수가 되어 평생을 지냈다.
물론 공직의 마지막 날까지 농민 운동을 하며 농부들의 권익을 신장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추종하는 젊은이들의 떠받듬을 받았는가 하면 변절하였다는 일부의 비난도 있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공직을 당장 때려치우고 농부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노라고 큰 소리도
쳤으나 다행스럽게도 정치판에 나가서 얼마되지 않은 가산이나 몸을 탕진하지는 않았고,
은퇴를 하자 그보다 훨씬 덜한 돈으로 금산 변두리에 야산을 사서 청정 소채를 생산, 직거래 장터를
만든다고 하였다.
하지만 높은 이상과 달리 값은 아무리 싸게 매겨도 원거리 유통 자체가 시원치 않게 돌아가니까
한동안은 무료로 지인들에게 과잉 생산된 청정 야채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지속하기가 여의치 않게되자 채소밭과 야산 일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나는 청정 야채를 처음부터 받지않았다.
사먹기에는 번거로웠으며 나중에 얻어먹기에는 염치가 없어서 완곡히 거절한 생각이 난다.
거절만 하기가 미안하여서 한번은 참치 캔을 잔뜩사서 그가 혼자 기거한다는 금산 지구국 밑의
야산을 위문 공연한 바 있었다.
차를 운전하여 험한 농로를 따라 그가 기거하는 컨테이너 박스를 목표로 덜커덩 거리며 들어가는데
고라니 한마리가 냅다 뛰는 그런 곳이었다.
"고향도 아닌데 하필이면 이런데냐?"
내가 힐난쪼로 말을 하자 그가 금산 지구국을 가리켰다.
"천체 망원경이 가동하는 청정지구잖아! 몸도 마음도 청정!"
"우주와 지구는 그렇고 집안 제수씨는?"
"임마, 형수님은 일주일, 아니 이제는 이삼주에 한번쯤 밑반찬 만드셔서 들린다."
그가 큰 통에 막걸리를 잔뜩 담아서 내왔다.
우리는 한약 냄새가 물씬 나는 그곳 자연산 숙지황을 된장에 찍어서 안주 삼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내가 갖고 간 참치 캔을 따자고 했으나 그건 "유름"해 두어야할 비상 식량이자 공해 식품이니
신선한 숙지황과 된장만 먹으라고 했다.
고추장도 다 떨어진 모양같았다.
술 끝에 밥이 나왔는데 돌 보다는 부드러울까, 일분도도 깎지않은 순 현미밥이었다.
"Plain living, high thinking! 영국의 어떤 시인이 한 말이야."
개다리 소반의 딱한 밥상머리에서 내가 아첨의 말로 간을 좀 쳤는데 금방 답이 나왔다.
"워즈워드구나. 낭만파 시인, 나하고 똑같은 놈이야."
아무렴! 그가 맞추었다.
컨테이너에 축축하게 쌓인 책들이 허세는 아니었다.
"여전하구나. 똑같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만."
"뭐가 달라?!"
"아니, 우선 말이 다르고---."
식후에는 골프를 치자고했다.
돌을 박아서 표시를 한 티잉 그라운드에 드라이버는 아예 없고 아이언 3번인가 5번인가 고물
두어개가 있었으며 아마도 해저드에서 건져 올린듯한 푸석하고 무거운 공인지 자갈인지 그런
물체가 여러개 뒹굴었다.
"굿 샷~~~!"
그가 아이언으로 휘둘러 팬 드라이브 샷의 시커먼 공이 야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정상적인
골프장이라면 클럽 하우스가 있어야할 언덕 배기로 미사일처럼 날라갔다.
계곡 좌우로는 자작나무가 귀족처럼 허여멀끔한 자태를 뽐내는 가운데 이름도 모를 희귀종
나무들이 희귀하지도 않은체 훨씬 더 많이 심어져있었다.
"청정 야채는 포기하고 두어해 전부터 나무를 심는다기에 묘포장을 꾸몄거나 잘해봐야 묘목이나
심었으리라 짐작했는데 이건 뭐 값비싼 고목 투성이네?"
내가 놀라움을 섞어 물어보았다.
"놀랬지? 내가 나무하고 연애를 한다. 저 나무들이 한때 재벌들 정원에서 자태를 뽐내다가
관리 잘못으로 죽어가던 것들이야. 주사도 놓고 별짓 다하다가 결국 쓰레기 장으로 가는 것을
내가 이리로 받아온 것들이지. 여기는 중환자실이자 회복실이야, 하하하. 그리고 좀 격이 떨어지는
허드렛 나무들은 도로 확장이나 새로 공단 같은 걸 만들때 마구잡이로 패어서 내다 버리는 잡목들을
또 받아와서 심은 것이지. 그것도 파낸 후 오래되어 다 죽어가는 것들인데 여기만 오면 내가 다
살려내는 것이지. 하하하."
그가 통 크게 웃었으나 나는 입만 벌리고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한쪽에는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듯한 시들시들 다 죽어가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굵은 향나무, 수형이 기막힌 소나무, 그리고 이름은 커녕 보는 것 만도 난생
처음인 기묘한 나무들이 기품있게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잘 키운 나무도 옮기려면 몇년간 이식 준비를 해야하는데 이건 생나무를 그냥 파다가 옮긴게
이렇게 소생을 했구만?"
"그냥 파다가 옮긴것도 아니야. 땅바닥에 내팽개쳐져서 다 죽은걸 살리는 것이야, 하하하"
그가 우람하게 웃었는데 그럴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을듯 했다.
죽어가는 나무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곳으로 옮기고 하는 일은 농민회의 청년 후속 세대와
내무부 연수원에 있을 때의 인맥들이 큰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내가 이 산골짜기에 혼자 살면서 하나도 무섭지 않은건 저 나무들 때문이야. 나무하고 연애를
하니 무섭지 않지. 특히 새벽이면 나무들이 나를 자꾸 불러. 그러면 얼른 나가서 한번씩
껴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키스도 하고 은근한 말을 건네고 하면 나무들도 내 어깨를 툭툭치고
또 흥분도 하고 오르가즘도 느끼고 그러는걸 내가 알지. 하하하."
막걸리를 마신 뒤끝이긴 해도 그의 눈에서 광채가 펄펄나고 무슨 강력한 힘이 솟아나오는듯도
하였다.
"나무들이 그렇게 반응을 보이면 나는 오줌도 누어주고 또 막걸리도 부어주고 그러지. 하하하."
"비료나 영양분 같은건?"
"물론 내가 여기서 특수 부엽토를 따로 만들어 넣어주는건 기본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한 건
정성이고 마음이야. 사랑하는 마음, 연애하는 진정한 마음."
"그래도 몸이 아름답다고 맨날 껴안아 주다가 뿌리가 흔들리면 좋을건 없겠다!"
"너 날 놀리려는거지?"
"아, 아니야! 사랑의 근본은 몸이 아니고 마음 아이가~~~. 잘 알았어."
내가 그때 유행하던 식으로 여자 몸을 두 손으로 그려내는 시늉을 하였다.
여자 사랑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하면서 실제 제스추어는 잘 빠진 여자 몸을 그리는
그런 우스게였다.
요즘이라면 엄두도 못낼 남성주의가 그때만 해도 유머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래, 마음이 제일이지. 그리고 몸도 중요하지. 하여간 나는 나무랑 몸과 마음을 다하여
연애하는 놈이야. 그렇게 알고 이제 돌아가거라, 하하하"
그때 이래로 잘난 나무를 보면, 아니 아주 못난 나무를 보아도 그의 마음이 생각났다.
형형하던 그의 눈 속 광채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막상 그와 더 이상 만나지는 못하고 여러해가 흘렀다.
어느때던가, 그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식 불명으로 누워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밤중에 달리던 그가 자동차와 정면 충돌을 했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 역주행을 하다가 과속 차량과 부딛쳤다고 한다.
역주행과 과속이 횡행하는 시대에 그의 역주행은 딱히 비난만 할 성질이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건 친구 사이이기 때문일까,
맞부딛친 그 과속 차량에서는 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다는 단서가 있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모두 바른 길을 가는건지.
바른 길을 가기도 쉽지는 않지만 어쩌면 인생을 역주행해 온 그의 행위에 찬탄을 하는
순간도 적지않다.
페리항의 기술자들이 들렀다 가라고 하였다.
세사람인데 한 사람은 카메라에 나서기를 싫어하였다.
하얗게 고아高雅스런 나무를 들고가는 저 사람은 무슨 용도를 꿈꾸는지---.
자연과학도가 필드웍을 하는 듯
함께 승선치는 않았다.
바이커가 포즈를 취해주었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나무와 겨울 모래가 참 아름다웠다.
이사람들은 모두 무슨 꿈을 간직하고 해협을 건너는가~~~.
해협을 건너면 커네티컷 주의 뉴 런던.
인디언 땅에 고향 마을의 수도 이름을 따서 뉴 런던이라니 터무니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카나다 땅에는 그냥 런던이라는 이름도 보인다.
우리도 새벌, 셔블, 서라벌이라는 이름을 이곳에다 붙일 수는 없었던지~~~.
등대와 숲, 내 친구의 꿈이 서린듯 하다.
뉴 런던으로 상륙하려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쓰레기 더미가 쌓이는가보다.
영국풍의 도시가 나타났다.
떠나는 모습들이라니~~~.
커네티컷의 체스터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교통사고를 목격하였다.
앤티크 가게가 많다는 체스터 마을로 들어왔다.
온날이 장날인가, 마을 페스티발이 벌어진 날이었다.
일년에 한번이라는 페스티발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Time And The River - Nat King Cole (세월과 강물)
Time and the river
Will bring my love to me.
If I must, I'll wait forever
By the river that took her to the sea.
Here by the river
We loved, we laughed, we cried.
But with time, my love, my darling,
Left my arms and was gone with the tide.
How long I've been lonely;
Star of love, shine bright.
I need her; oh, lead her
To my arms tonight.
Time and the river,
How swiftly they go by.
But my heart will beat for no other
Till time stands still and the river runs dry.
Time and the river,
How swiftly they go by.
But my heart will beat for no other
Till time stands still and the river runs dry.
'에세이, 포토 에세이, 포엠 플러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드슨 클럽/프리덤 타워 그리고--- (0) | 2012.03.05 |
---|---|
아더왕 궁전에 온 코네티컷 양키 (0) | 2012.02.28 |
해는 저무는데 철길따라 강둑따라 (0) | 2011.12.29 |
피츠버그, 한인 성당이 있는 풍경 (0) | 2011.12.27 |
겨울, 두 도시 산책 (0) | 2011.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