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네티컷 주의 체스터 마을로 들어왔다.
몇군데 골동품 가게로 이름이 알려진 인구 3000명의 동네가 잔치 마당을 벌였다.
일년에 한번,
2월의 세째주 일요일에 벌인다는 카니발에 우연히 합류가 되었다.
독주로 원샷을 나누는 무리 중에 인디언 풍의 여인이 끼어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아서 초상권 문제가 생기는가 순간 긴장했는데
나중에 술 대접을 받았다.
할부 농기계가 이곳에서도 농가 부채문제를 일으키고는 있으나 어쨌든 미국은 세계의 곡창.
세계의 공장 중국과 궁극의 패권(헤게머니)을 겨루는 데
관전 포인트로는
農者天下之大本을 새겨봄직하다.
농사를 짓는데에도 영농기계와 화공 관계 몇가지 라이선스가 필요한 미국의 농부들은
NASA의 우주 과학자 못지않은 이 나라의 힘이려니.
농번기를 앞둔 농한기의 끝물에
일년 한번으로 정하여 놀고 있는 시골 잔치날
지혜로운 택일같다.
"이거 무슨 시상식도 하는 contest냐?"라고 옆의 구경꾼에게 물었더니
"글쎄?!"
우물쭈물 하더니 요리 경연과 얼음 조각 경연은 있어도 이 농기계 행렬에서는 경연같은게 없다고 한다.
그렇지!
이제 농번기를 맞아서 농기계 test나 이런 식으로 하면 그만이지
순위 매기고 상을 주고 하는 con-test 같은건 일년 농사 준비에 골치만 아프게 한다.
겨우내 잠자던 기계에 기름질하고 이렇게 굴려보면 그만이지 등수매기고 무슨 GR이냐,
그런 농심이 전달되었다~~~.
낙동강 갱빈(강변)과 쑤(숲)에서 이런 잔치가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커네티컷의 주도는 하트 포드인데 그곳에 있는 마크 트웨인 기념관을 미동부 문인협회 회원들과
들렀던 기억이 난다.
2005년 가을이었으니 벌써 7년이 흘렀다.
세월이 빨라도 지구가 도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뜻 깊은 말같지만 글쎄
그저 잠시 시간을 멈추어 보려는 언술이지
지혜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꾀라고도 하리라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코네티컷은 뉴잉글랜드 여섯개 주
(Maine, New Hampshire, Vermont, Massachusetts, Rhode Island, Connecticut)에서도
식민지 시대와 독립 초기에 산업과 문화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 아더왕 궁전에 온 코네티컷 양키"가 생각난다.
양키 포병이 머리를 얻어맞고 갑자기 중세의 아더왕 궁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여 일어난 일들이다.
그는 아더왕을 현대 무기로 도와 큰 공을 세우고 권력을 잡지만 궁정 음모의 희생이 되려는 찰나
다시 현세로 돌아온다.
터무니 없는듯한 공상 소설을 그는 왜 썼던가?
평가는 여러가지이지만 그중의 하나는 영국 신사들에 대한 조롱이다.
그가 신대륙에서 톰 소여나 허크 핀 이야기로 이름을 날리자 영국에서는 곧장
하찮고 무식한 땅의 문인으로 폄하를 한다.
그렇다면 기사도 정신의 나라 영국은 원탁의 기사가 끝발을 날리던 시절, 실상이
과연 어떠하였나?
음모와 배신과 배덕과 미신이 판치지 않았느냐
아더 왕의 아름다운 왕비 게나비어만 하여도 최고 기사 랜스롯과 밀회를 하지 않았던가.
왕은 사실을 알고도 기사단의 관리를 위하여 어쩔수가 없었고.
마크 트웨인은 생애의 전반기는 화려하게 지내지만 후반기는 사업의 실패와 딸들의 죽음
등으로 어두운 시절을 지낸다.
작품도 시니컬하고 부정적 인생관을 갖게된 작가의 시각을 반영한다.
아래는 2005년 미동부 문인협회의 단풍 기행 중에 들렀던 커네티컷의 주도
하트포드에 있는 마크 트웨인과 스토우 여사의 집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때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을 조금 발췌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옛 집은 규모가 컸다.
전에 와 본 문우들의 이야기로는 최근 2-3년 사이에 많이 확충되었다고 한다.
45분 정도의 투어에서도 안내원은 최근의 복원 노력을 강조하였고 실제로도 그런
공사가 계속 진행 되고 있었다.
헤밍웨이의 생가와는 달리 내부에서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는데 공사 탓인지는
모르겠다.
기념관으로 쓰는 이 곳의 3층은 당구장까지 놓여있었는데 마크 트웨인은 거의 마지막
작품까지 이 공간에서 써내려 갔다고 한다.
"중년 이후에는 파산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랬지요. 그렇지만 이 집은 부인 이름으로 되어있었거든요."
안내하는 나이많은 부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하였다.
(마크 트웨인이 고안하고 출판사에 도입한 신형 인쇄기 등은 획기적이었으나 그가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마크 트웨인은 부자집 부인을 얻었지만 자신의 작품으로도 거금을 모았다.
그러나 인쇄기의 개발과 출판에 손을 대다가 파산을 한다.
자녀들도 일찍 세상을 떴다.
영국 쪽에서는 미국 문학을 폄하하고 마크 트웨인의 작품도 얕보았다.
생애 전반부에 힘찼던 그의 낙관적 작품 경향은 냉소적인 사회 비판으로 바뀌는데
이런 사연들이 그 원인이었다.
(마크 트웨인 기념관에 마침 CBS의 '60분(Sixty Minutes)' 명 진행자인 Morley Safer가세미나 참석차 왔다가 우리 일행과 조우하여 담소와 사진 촬영에 응했다.
왼쪽은 평론가 김종회 교수)
'아더왕 궁전에 들어간 코네티커트 양키 '라는 작품이나 '도금 시대'
같은 사회 평론이 그 대표적이다.
'도금 시대'는 남북 전쟁 후의 경조부박한 배금 사상을 그리고 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Harriet Beecher Stowe 여사의 만년의 저택이 바로 옆에 있었다.)
솜사탕을 사러 길게 줄이 늘어섰다.
하나에 3$, 일종의 자선 기금 모급이었다.
하수도가 아직 공해 수준은 아니었다.
얼음 조각 경연에는 등위가 매겨졌다.
다만 아마추어와 프로 선수로 갈라서 경연이 열렸다.
잔치 마당에 술이 없을 수 없다.
술집 옆에 비닐 천막을 치고 장소를 늘렸지만 중과부적?
밖으로 나와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가 하우스라고 하는 비닐 막사도 술 손님으로 꽉찼다.
파크라고하는 야외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갤러리의 수준이 상당하였다.
술을 입에 물고 쓰레기 치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
머그잔에 생맥주를 채워서 25$에 팔았다.
인파 속에서 사진을 잘 찍도록 인디언 풍의 부인이 장내 정리를 해주었다.
부인은 아일랜드와 인디언의 피를 받았다고 하였고
남편은 그리스와 독일 피를 받았다고 하였다.
해로하는 정경을 찍어주었다.
부부가 내게 술 한잔을 권했다.
그들은 위스키 독주를 권했으나 맥주를 청했다.
병맥주?
생맥주 한잔으로 낙착하였다.
독일 맥주로 진도가 나아가자 볼멘 반응을 보이는 취객이 있었으나 맥주의 본향은
독일이 아니던가.
내 설명에 수긍하였다.
아이를 옆에 두고도 마시는건 즐겁지 아니한가
잔치의 파장은 나비의 꿈을 그린 동심으로 장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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